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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신영규의 고향친구 피현유는 사실 고아였다. 피현유의 부모님이 직접 버린 고아였다. 그 때문에 신영규가 고향에 있을 때, 피현유는 그들을 부모님이라고 하지 않고, 개자식들이라고 욕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버렸으니 그런 소리를 들을만하다고 신영규는 생각했다. 피현유는 고향에서 주위 사람들의 일을 도우면서 살았는데, 예를 들어 있는 곳 없는 곳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고 벌어먹었다. 특히 고향의 면서기가 일을 잘 줬다. 그렇게 피현유는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피현유는 굳은 얼굴로 신영규를 쳐다본다. 신영규는 미안한 나머지 식은땀이 쩔쩔 멘다. 피현유는 신경질나는 어투로 말한다.
“씨발. 넌 부모님이 있어서 좋겠다.”
“...... 미안...”
“에휴.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산 게 아니에요.”
“......”
피현유는 성질나다가 침묵을 지키며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신영규를 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분노를 잠재웠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런 기류를 깬 시간이 곧장 다가왔다.
-끼익-
신영규는 열리는 문을 쳐다보니 자신을 데려온 군인인 고호윤이 심문을 끝낸 한 명을 다시 방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호윤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시선을 피현유에게 고정시킨다.
“네가 마지막이군.”
고호윤이 피현유에게 그렇게 말하자 피현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와라. 이 자의 심문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순간 밥 생각에 포로들의 고개가 위로 고호윤에게 집중되었다.
“밥이라고...”
“허어... 중국군은 우리들에게 밥을...”
“거긴 진짜 사정이 좋나봐...”
“젠장. 왜놈들 밑에 있을 때는 구타와 부조리 뿐이었는데...”
고호윤의 점심시간이라는 말에 포로들은 웅성웅성 거렸다. 사실 포로들이 웅성웅성 대는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일본군에선 장교가 부식을 뺏는데 여기는 그러지 않네.’
신영규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일본군의 사정이 막장으로 돌아갔다. 신영규는 생각을 끝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포로들의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그럼.”
고호윤은 마지막으로 피현유를 데리고 다시 문을 잠궜다. 그러나 방 안의 수근거림은 고호윤과 피현유가 사라진 이 시점에도 계속되었다.
얼마정도 시간이 지나 피현유는 심문을 마치고 방 안으로 돌아갔다. 신영규가 피현유를 살펴보니 뭔가 결심을 한 얼굴이었다. 아마 저 녀석에게는 망설일 것이 없을 것이다. 고향에 지킬 사람도 없고, 딱히 가족도 있는 것이 아니니 이 곳 광복군에 합류하는 것이 저 녀석에게 희망일 것이라고 신영규는 그렇게 생각했다.
피현유까지 방 안 포로들의 심문이 모두 마치자 방 안으로 밥들이 들어왔다. 식판에 반찬과 밥, 마지막으로 국이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식단이었다. 그러나 포로들은 그걸 남기지 않고 꼭꼭 씹어 먹었다. 어느새 식판은 약간의 설거지만 해주면 깨끗해지는 상태가 되었다. 다 비워진 식판은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걸 아까 심문자들을 불렀던 고호윤이 가져서 치웠다.
그 때, 고호윤이 식판들을 가지고 방 문 밖으로 나가고 있을 때 피현유는 소리쳤다.
“저 아까 심문할 때, 제의에 동의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피현유의 굳은 결심이 담긴 말에 고호윤은 쌓인 식판을 다시 내려놓고 눈빛을 번쩍 날카롭게 뜬다.
“결심이 선 것인가?”
피현유는 고개를 끄덕였고, 고호윤은 그 모습을 보자 싱긋 미소를 짓는다.
“좋아. 환영하네. 이제부터 자네는 그 군복을 벗고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투사가 되는 거야.”
피현유는 연선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포로들은 피현유의 결정에 수근거렸다.
“저 녀석은 왜?”
“으음... 고민되는 군.”
“하 나도 할까?”
“아서라. 일단 상황 좀 보고.”
한동안 포로들의 분위기를 살피는 고호윤은 피현유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신영규는 고호율을 따라 나가는 피현유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저 녀석 사정이라면 이건 절호의 기회겠지... 그런데 아까 심문 당할 때, 심문관 직을 맡았던 그 병주라는 이름의 소대장의 분위기는...’
신영규는 방 안에서 어느새 사라진 고호윤과 피현유를 아직까지도 기억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신영규가 이 곳 포로수용소에 있은 후 하루가 지났다. 하루 동안에 신영규는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생활했다. 별 일은 없었다. 그건 방 안에 있던 포로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포로들 중 한 명이 없을 뿐이었다. 신영규는 어제 고향친구 피현유가 앉았던 자리를 살폈다.
‘그 친구는 따라갔는데. 어떻게 됐을까...’
신영규는 괜히 피현유가 걱정 되었다. 이런 저런 고민에 빠져있던 신영규를 다시 현실세계로 불러들인 것은 하나의 소리였다.
-끼익!-
그리고 그 방 문 안에는 예의 고호윤과 또 한 명이 들어왔다. 그 한 명을 보는 신영규를 비롯한 포로들의 눈이 커졌다.
“너... 넌...”
신영규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호윤을 따라 온 한 명을 바라보았다. 신영규의 시선 끝에는 고호윤처럼 새 군복을 다려 입고, 예의 방탄장비까지 착용한 피현유의 모습이 보였다. 피현유는 신영규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제 난 포로가 아냐.”
“......”
신영규는 어제 예상을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투항자에게 이런 장비까지 지급하는 부대라니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제 심문관이 한 이야기는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실이었다.
“으음...”
신영규는 계속해서 피현유를 바라보았다. 포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 고호윤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미는 피현유의 등을 탁 친다.
“억!”
“신입! 그렇게 있지 말고 밥 돌려.”
“예! 예!”
피현유는 급히 고호윤의 말을 따르고는 아침밥이 담긴 식판들을 포로들에게 주었다. 포로들은 고호윤이 피현유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고 피식 웃었다. 신영규는 피현유를 보고 생각한다.
‘저기서도 녀석은 신입이군.’
그 때, 피현유가 식판 하나를 신영규에게 건네주고는 말했다.
“아직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냐?”
“......”
“천천히 생각해라. 나야 거릴 것이 없어서 갔지만 너는 조금 사정이 있잖아.”
“휴우. 알았어.”
“잘 고민하고 판단해. 그럼...”
피현유는 다시 식판을 포로들에게 돌렸고, 이내 고호윤을 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신영규는 피현유가 건네준 식판을 보고 숟가락을 든다.
‘그래. 먹자. 일단은 먹자. 먹고 생각하자.’
그렇게 신영규는 식판의 음식을 광적으로 먹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고호윤과 피현유가 다 먹은 식판을 수거하러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피현유가 식판들을 수거하고 고호윤과 같이 방 밖으로 나갈 때였다.
“저기!”
포로들 중 한 사람이 방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에게 외쳤다. 고호윤과 피현유는 그 소리에 등을 돌리며 소리친 포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말해. 뭐지?”
“나도... 아니 저도 제의에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고호윤은 잠시 고민하는 척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로써 이 녀석과 같은 신입이 들어왔군. 따라와라.”
“넵! 넵!”
결국 두 사람에게 외친 포로는 고호윤과 피현유의 뒤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그 뒤에 이어 포로들은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기! 나도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들 중 반 수 이상이 벌떡 일어나며 고호윤에게 청한다. 고호윤은 그런 포로들의 모습에 싱긋 웃는다.
“좋아! 좋아. 우린 언제나 당신들을 환영하지.”
신영규가 보기에 고호윤은 정말 기쁜 감정이 얼굴에 표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고호윤은 제의에 동의한 사람들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방 안에 포로들의 수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포로들의 표정은 다급함과 초조함, 그리고 고민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신영규 역시 그 포로들과 똑같았다.
1944년 9월 20일, 시가전이 시작되고 5일 지났다. 남경 공략을 총 지휘하는 중국군 지휘부에는 하응흠 장군이 어떤 의자에 앉아 있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편의 의자는 비어 있었다. 하응흠 장군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한다. 그 모습을 보니 하응흠 장군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벅 뚜벅-
이윽고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하응흠 장군의 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응흠 장군이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와 하응흠 장군에게 경례했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젊고 패기 있는 목소리, 총통 각하의 총애에 입어 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고 하지만 그 만큼의 능력을 증명한 특별한 인물이었다. 하응흠 장군은 헛기침을 하며 그 인물의 얼굴을 살폈다.
“흠흠. 자리에 앉게.”
“예!”
하응흠 장군이 마주 편 자리를 권하자 그 인물은 당당히 하나 뿐인 빈 의자에 앉았다. 하응흠 장군은 그 인물을 보고 입을 연다.
“어떻게?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현재 저의 군단이 정한 작전목표는 전부 완료했습니다.”
하응흠 장군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 인물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엄청난 능력이군. 벌써 자신이 지휘하는 군단의 작전목표를 달성하다니. 괜히 각하께서 총애하신 것이 아니군. 그나저나 신유철 저 녀석이라면 내 자리도 위험해지는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 그 인물, 신유철에 대한 경계가 드는 하응흠 장군은 신유철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자네의 목표를 우선 완수했으니 다행이군. 그럼 자네가 지휘하는 사단들을 다른 군단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가?”
신유철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는 척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점령지 안정화는 한 개 사단만으로 충분하니 나머지 사단들은 전부 지원이 가능합니다.”
하응흠 장군은 그 말에 헉 하면서 생각한다.
‘뭐? 그런 넓은 지역을 한 개 사단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녀석 허풍을 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자신이 있는 건가?’
하응흠 장군은 생각을 끝내고는 흠흠거리며 말을 계속한다.
“자네가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점령지 안정화에는 어느 정도 병력이 필요하지. 점령지 안정화는 2개 사단으로 투입하고 나머지 사단으로 지원을 하게.”
“네. 그럼 정확히 어디 어디를 지원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하응흠 장군은 생각하다 결국 일을 신유철에게 떠넘긴다.
“그거야 자네가 더 생각을 잘 하니까 자네가 계획을 짜서 나에게 올려. 난 군단장들의 말을 들어보고 자네의 계획을 검토한 후에 결정할 테니까.”
신유철은 그 말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얼굴을 회복하고 결국 순순히 하응흠 장군의 말을 따랐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 군단의 사정을 살펴보고 세부적인 지원방법을 계획한 후에 올리겠습니다.”
“좋아. 나가봐.”
“옙!”
신유철은 의자에서 일어나 하응흠 장군에게 경례를 하고, 지휘부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응흠 장군은 방 안에 자신과 자신의 부관만 남자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고민에 휩싸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응흠 장군은 견제하는 방법으로 그냥 자신의 일을 떠맡기는 수준으로 끝냈다. 하응흠 장군은 신유철에게 부조리하고 엄청 피곤한 방법을 선사해줄 수 있지만 그 것도 상대를 보고 판단해야 했다.
‘저 녀석 총통 각하께서 총애하시니. 거기다 저 녀석이 나의 말을 안 듣는 것도 아니고.’
하응흠 장군은 괜한 오버를 했는지 결국 생각을 그만두었다.
신유철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하응흠 장군이 있던 방을 잠시 쳐다보며 생각한다. 그리고 투덜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젠장. 내가 저 녀석 뒤치다 거리를 계속하는데 이거 미치겠는걸. 언제 계획을 짜고 검토하지. 저 녀석에게 참모들이 없나? 아. 무능하지 참.”
신유철은 현재 있는 자신의 무능한 참모들을 생각하자 절로 고개가 숙였다. 그리고 내가 잘났기에 이런 거다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신유철이 하응흠 장군의 지휘부에서 떠난 이 후에도 시가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거기서 신유철의 군단은 맹활약을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의 군단의 작전목표를 완수한 뒤에도 다른 군단들을 지원하면서 남경 시내의 점령을 가속화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심은 일본군에게 떠나 있었고, 일본군은 사기도 장비도 그리고 악랄하고 무능한 지휘에 속수무책으로 중국군에게 패배하고 있었다. 중일전쟁 초반기 그렇게 무능했던 군대는 중국군이었지만 지금은 그 무능한 군대가 일본군으로 바뀌었다.
남경에서 일본군이 확실하게 영유하고 있던 지역은 시일에 따라 빠르게 줄어가고 있었다. 9월 25일이 되자 중국군은 남경 시내 반의 점령에 성공했다. 일본군의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갔고, 결국 최후에는 반자이 돌격까지 감행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무수한 희생만 일본군에게 안겨주었다.
그 곳 시가전에서 광복군 제 1 지대와 병주의 소대 역시 맹활약을 했다. 특히 중국군에게 병주의 소대는 유명했는데, 그 중경공단의 회장인 길병윤의 작은 형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병주의 소대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시가전에 맹활약한 것이 컸다.
그 때문인지 병주는 만나는 중국군마다 자신을 보자는 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했고, 그에 따라 소대원들은 자신의 소대장이 인정받았다고 생각했기에 병주에게 충심을 다했다.
1944년 9월 30일, 광복군이 임시 거점의 포로수용소에서 마지막으로 방 안에서 고민 중이던 신영규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자신 역시 광복군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병주는 신영규를 눈여겨보았기에 신영규의 그런 결정을 환영했다.
예의 광복군의 군복과 방탄복을 입은 신영규의 어깨를 병주는 툭툭치면서 말한다.
“이제부터 우린 하나야. 잘 해보자고.”
“예! 소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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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남경 시가전이 끝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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