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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탁자에 빈 술병이 쌓이고 있었다. 병주와 병윤, 신유철이 마신 술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술기운으로 인해 뺨이 붉었지만 이성을 술에 맡기지는 않았다.
“하하하. 형님. 그러니까 이번 일로 내년 초에 화북으로 직접 출정한다면서요? 남경 탈환에 성공적으로 수행한 형님이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유철은 병윤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어디 그게 내 덕분인가? 무장, 방탄복, 방탄헬멧 모든 보급품들을 자네가 다 만들어서 보내준 덕분이지. 자네는 초한쟁패기의 소하라네.”
“하하하. 그 유명한 위인을 저랑 견주는 것 자체가 불쾌한 말씀입니다.”
“글쎄다. 그렇게 불쾌하면 직접 영으로 내려와서 불만을 표시했겠지.”
“히히히. 그러게 말입니다.”
병윤과 신유철은 히히덕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병주는 혼자서 술을 조용히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신유철이 고개를 병주에게 돌리며 말한다.
“이봐. 왜 이렇게 조용히 술을 마셔?”
그 때, 병주 대신 병윤이 대답한다.
“아하하. 작은 형은 솔직히 조용한 편이에요. 한 마디로 재미없는 인간이지요.”
병윤의 옹호 아닌 옹호에 병주는 눈썹이 꿈틀 거렸다.
‘이 녀석이.’
병주는 자신을 건드리는 병윤을 보고 많이 컸다고 느끼며 병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래. 난 조용한 편이지. 너처럼 대책 없이 이리저리 가출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지.”
“아! 형님!”
“먼저 시작한 것은 너야. 감히 나를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부르다니.”
“와! 이 작은 형님 삐졌네.”
병주와 병윤의 대화에 신유철은 키득키득 웃는다. 그 때, 멀리서 한 명이 술자리 안으로 파고든다. 셋이 다가오는 이를 살펴보니 그 이는 헬쑥한 얼굴을 가진 송감연이었다.
“어라. 이제 왔냐?”
병윤이 감연을 맞이해주면서 하는 말이었다. 감연은 비어있는 의자에 앉은 뒤 피곤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댄다.
“에휴 말도 마라. 이제 일 처리하고 왔다.”
신유철이 감연의 등을 토닥여준다.
“녀석 많이 힘들군.”
“그래도. 그 사람이 도착한다면...”
감연의 중얼거림에 병윤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군데?”
“전학삼이라고 미국 로켓 연구기지에 재직 중인 사람이 있어. 그 사람 천재라고 소문이 났더라고. 그래서 난 총괄직에서 물러나고 그 사람 대신 쓰라고 총통에게 말했지.”
병윤은 그 말을 듣고 히죽 웃는다.
“글쎄다. 그 사람이 온다고 해도 네 일감은 안 줄어들 것 같은데.”
“아니야. 줄어들 거야. 난 야학과 독학으로 배운 인간이잖아. 분명히 분명히 그 사람은 천재라서 나를 대신할 수 있을 거야. 분명히.”
“이 자식 뭔가 착각하고 있네.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편하단다.”
“아오! 안 편하니까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다!”
“이 자식 정말 힘든가 보네? 휴가라도 달라고 하지 왜?”
송감연은 그 말을 듣고 앉아있는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투덜거린다.
“휴가는 무슨. 네가 저번에 준 휴가 외에는 나에게 휴가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 퍼뜩하면 전쟁 통에 병사들의 생명이 사라진다. 병사들의 유족이 울부짖는다. 라고 계속 재촉한다.”
“그래? 어쩔 수 없네.”
간단하게 생각하는 병윤의 말에 감연은 폭발한다.
“아오! 야! 너 나랑 바꿔! 젠장 내가 회장직을 맡고 네가 총괄직을 맡아. 이게 그냥 남의 일이라고 넘기다니 안되겠네!”
병윤은 그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감연을 진정시킨다.
“야! 야! 좀 바줘라. 나도 회장직에 있으면서 얼마나 힘든 지 알고 하는 소리야?”
“그래도 넌 제대로 잠은 자잖아! 난 잠도 부족하다고!”
감연의 폭주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병윤, 병주, 신유철은 감연의 폭주와 하소연에 난감어린 표정을 짓는다. 감연은 감정을 풀릴 날이 없었는지 세 사람보다 술을 더 마신다. 그리고 그냥 탁자위로 뻗어버리고 만다.
병윤은 감연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신유철을 보고 말한다.
“쩝 우리만의 만남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네요. 이 자식 때문에.”
병윤은 감연보고 발길질을 날리려다 참는 표정이었다. 신유철은 병윤의 표정을 보고 말리며 말한다.
“냅 둬. 지금 잠잤으니 소원 풀었잖아.”
“그런데 그 전학삼이라는 사람이 온다면 저 녀석 일감이 줄어들지 알 수가 없을텐데요. 여차하면 그 사람이 총괄 직에 앉으면서 그 사람이 맡을 일감들을 저 녀석에게 떠넘길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나한테 말해 봐도 모른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너와 감연 빼고는 과학자는 없어.”
“끄응.”
그 때 병주는 엎드려 잠자는 감연을 보고 병윤에게 말한다.
“저 녀석 침대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니냐?”
“그냥 냅 둬요. 여기서 잠자다가 시간되면 일어나서 갈테니까 말이죠.”
“내가 병사들을 지휘해봐서 아는데 체력관리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성과가 더 좋다는 결과가 있다. 그건 너도 알잖아.”
병윤은 병주의 말에 역정을 내고는 투덜거리며 엎드린 감연을 일으켜서 어깨동무를 한다.
“에잇! 내가 이 원수같은 자식이 뭐가 좋아서! 이런 개고생을! 얌마! 어서 침대로 돌아가자. 이 웬수같은 인간아!”
감연은 완전히 뻗어버렸는지 반응이 없었고, 병윤은 투덜거리며 감연을 방 안 침대로 옮기기 위해 발걸음을 뗀다. 병윤이 감연을 침대로 옮길 동안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병주와 신유철 두 사람 뿐이었다.
“고향에서 저 녀석들 사이가 그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변한지 모르겠네요.”
“글쎄다. 난 중국에서 저 녀석들과 같이 지낸지라 저 녀석들의 행동이 익숙하다만. 고향에서 안 그런지 몰라도 여기서 변했겠지.”
“하아... 그렇군요.”
“그런데 병윤이 자네의 동생이라고 했는데.”
“그거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죠. 올해 일본군에서 탈영하고 중국군에게 항복했을 때, 병윤의 소식을 들었거든요. 그 때까지 고향에서 병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살아있는지도 모르죠.”
“거참. 불효막심한 녀석이군.”
병주는 그 말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도 저 녀석이 멀쩡히 살아있는 것만 해도 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녀석을 통해서 제 누나와 큰 형도 멀쩡히 살아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쩝. 참으로 불운하면서 오히려 행운이군. 모순이야.”
그 말에 병주는 씁쓸한 얼굴을 짓는다.
“그래도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한다면 우리 가족들도 만날 수 있겠죠. 고향에서 한 가족으로 눈물 상봉을 하겠죠. 그 것이 저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신유철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한다.
“그래. 저 웬수같은 녀석들과 같이 지낸 나로서는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군. 뭐 가족들이 다시 만나면 그 때 나도 불러줘.”
“저는 몰라도 병윤이는 부를 겁니다.”
“그런가?”
둘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어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1944년 10월 6일, 시카고 재생치료센터는 매번 바빴다. 미국의 전 전선에서 올라오는 부상자와 불구자들이 몰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의 부상자와 불구자들도 몰려왔다. 대략 숫자로 따진다면 수십만은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고, 그 때문인지 환자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는 안보였다. 오늘도 미스터 길이라 불리는 길병재는 영국에서 온 불구자 한 명을 치료한다.
“와! 선생님 덕분에 제 팔이 재생되고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영국의 한 환자가 팔이 재생되는 모습에 기쁜 얼굴로 병재를 환대하자 병재역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환자를 대했다.
“열심히 나라에 충성했으면 그 보답을 받는 것이 충분합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예. 그렇습니다. 원래 마땅히 받아야하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합니다.”
“이제 후속치료를 하면 환자분의 팔도 완전히 재생될 것입니다.”
“전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영국에서 온 환자는 병재를 믿는다는 눈빛으로 덜 재생된 팔을 내민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겼지만 지금 와서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대신 저 친절하고 신의인 저 사람만 믿을 뿐이다.
저번에 맞아본 침들을 저번처럼 공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고 담담하게 받는 것도 환자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어느 정도 침 맞는 것이 끝나자 병재는약을 건네주면서 말한다.
“이제 자극을 줬으니 후속 재생도 서서히 완료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에 대해서 잘 아시겠죠?”
그 말에 환자는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는지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어휴. 지겹게 들었고 직접 겪었는데 안 대비하면 제가 멍청한 거죠.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이제 치료는 끝났습니다. 혹시 모를 부작용이 있다면 다시 찾아오셔서 고소하세요.”
고소하라는 병재의 말에 환자는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하. 제가 아는 변호사는 없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말대로 부작용이 있으면 다시 찾아뵙도록 할게요.”
“예. 그럼. 이제 자리를 다음 환자분에게.”
“예! 알겠습니다.”
병재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한 환자는 자리를 기다리는 다음 환자에게 건넸다. 이런 식으로 병재의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환자들의 수도 줄어든다. 즉 병재의 치료는 정상적으로 빠르게 잘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환자 수가 줄지 않냐고 한다면 치료받은 사람들 대신 치료받아야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느덧 오늘 할 일을 끝낸 병재는 여성 간호사 메리 헤임질에게 말한다.
“오늘 할 일도 수고하셨습니다. 간호사님.”
그 말에 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재에게 말한다.
“예. 의사 선생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전 재생치료 교육 강의를 할 테니 혹시 누가 저를 부르면 그 곳에 있다고 전해주세요.”
그 말에 메리 헤임질은 병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 말을 들은 병재는 재생치료 강의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고, 메리는 병재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하아. 저 사람도 참 힘들게 사는군. 정식 진료가 끝나면 재생치료 강의에다 그 강의가 끝나면 아까의 그 여동생 이라는 여자를 보살피다가 잠자는 거였지? 그런데 동양인들은 전부 여동생을 저렇게 대하나? 나도 오빠 있는데 그 자식은 안 그러는데.’
메리는 병재의 기구한 사정을 몰라서인지 그런 생각을 다 했다. 그러다 메리는 병재의 진료실을 정리한다.
휠체어에 탄 노인이 재생치료센터 대문을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휠체어를 끄는 한 사람이 노인에게 말한다.
“대통령 각하. 이런 시각에 찾아오는 것이 괜찮겠습니까? 내일이라도 정식으로 진료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문을 바라보면서 휠체어를 끄는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아까의 질문에 대답한다.
“내일 시카고에서 선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시간을 택했네.”
그 말에 비서실장은 한 숨을 푹 쉰다. 사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오래전 소아마비를 앓아서 하체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휠체어의 신세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국민들에게 그 모습을 숨겼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면 그 미스터 길이 재생치료 강의할 시간인데.”
“일단 안에 진료실에서 기다리지.”
“예. 그럼.”
비서실장은 대문 안으로 휠체어를 끈다. 휠체어의 뒤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보디가드들이 보호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따라간다. 그런데 그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갈 때, 치료센터 측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접수처의 안내 사무원이 그들을 보고 쩔쩔맸다. 비서실장이 안내 사무원에게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대통령 각하의 치료를 위해 비밀리에 접수할 것이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안내 사무원은 예! 예! 하면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유명인인 루즈벨트 대통령을 신기하게 쳐다본다. 안내 사무원은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접수가 끝난 뒤 비서실장에게 말한다.
“휠체어를 탄 환자분을 보니 미스터 길 선생님을 보러 온 것 같군요.”
“예. 대신 우리들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으면 합니다.”
안내 사무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미스터 길 선생님의 진료실은 5층에 계시니 그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 말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럼.”
비서실장은 다시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으며 엘리베이터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끌고 가자 보디가드들도 그들을 따라 간다. 안내 사무원은 그들을 보고 한 마디 중얼거린다.
“미스터 길 선생님을 뵈러 대통령 각하께서 오실 줄은 몰랐네. 아 참.”
안내 사무원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전화기의 송수신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린다. 수신기로 연결 음이 들리며 누군가 받고 말이 흘러나왔다.
“여긴 미스터 길 진료실입니다. 혹시 전화 거는 사람은 누구시죠?”
“이 전화 받는 사람이 메리인가요?”
“아! 신디 무슨 일이야?”
“메리. 지금 대통령 각하께서 진료실로 오고 계셔.”
“뭐?! 지금?! 선생님은 강의 중인데. 알겠어. 그리고 고마워.”
메리는 그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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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병재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만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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