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81화 (8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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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루즈벨트 대통령이 탄 비서실장은 진료실을 가는 발걸음 도중에 한 가지를 물었다.

“대통령 각하. 저번에 있었던 그 편지에 대해서 미스터 길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손으로 턱을 괴면서 생각에 잠긴다.

지난번 백악관에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평소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다가와서 편지 한 장을 건넸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도 노고에 힘쓴 대통령 각하께 이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요즘 전쟁이다 내치에다 모든 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 대통령각하를 생각하니 이 마음 저도 편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예의를 빌어 한 가지 청하기 위해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요즘 제 귀에 심상치 않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전쟁 중 잘려진 팔이 자라나는 둥 다리가 재생되는 둥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전쟁을 통해서 병사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 사실이더군요. 그런데 그 기적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의사가 알고 보니 우리 대일본제국에 살고 있는 신민이더군요. 지금 그가 미국 내에서 일하고 있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네바 포로 협정에서 포로들을 적 편으로 구류시킨 뒤 일하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협정에 상당히 신경 쓰고 지키기 위한 대통령 각하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력을 신의라고 불리는 길병재 군에게 부디 베풀어주십사 싶습니다.

지난 번 태평양 전쟁에서 구금 중인 미장성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족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 측 포로들과 귀측 포로들의 포로교환을 순조롭게 진행시켰으면 합니다.

순조롭게 포로교환을 해서 서로의 가족을 상봉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 측과 귀측은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인류애는 바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신자 : 대일본제국 천황 히로히토]

그 편지의 내용을 읽었을 당시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현재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지금 승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로교환이라니? 더군다나 온전한 재생기술의 확보를 앞두고 포로교환이라니? 무슨 개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편지를 무시하고 책상 서랍 안으로 넣은 뒤 담담히 일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피식 웃으며 비서실장에게 단언한다.

“그런 건 알려줄 필요는 없지. 괜히 그런 내용을 알려주었다가는 그 미스터 길이 동요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미 미스터 길의 부모가 일제 측으로부터 험난한 꼴을 당했다는 정보가 미스터 길에게 들렸다고 합니다. 어머니 쪽은 다행히 구출했다고 하지만 현재 아버지 쪽은 형무소에 구치 중이랍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팔에 이마를 대고 눈살을 찌푸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런 곤란한 일이 생기다니?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식을 늦게 듣는 것에 대해 조금 당혹스러웠다. 감정을 일단 잡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 가지 물었다.

“언제 그 정보가 알려졌는지 알고 있나?”

“프린스 리가 귀띔해주기를 6개월 전의 일입니다.”

프린스 리, 현재 이승만이라고 불리는 한인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대표자이자 한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였다. 그의 영향력은 미미하다가 이번에 태평양 전쟁이 닥치고, 거기에 길병재가 그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자 영향력은 점점 커진다. 알게 모르게 그는 상원의원들과 교류를 맺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군. 그런데도 미스터 길이 여기에 남아 있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지?”

“예. 현재 그 미스터 길의 어머니 측을 보호하고 있는 단체가 프린스 리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미스터 길이 프린스 리에게 협조하는 것 같습니다.”

“허. 참. 교활한 작자로군.”

“지금이라도 OSS요원들을 동원해서 미스터 길의 부모님을 구출할 수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일단 그 계획은 미스터 길이 재생치료를 어느 정도 전수하면 다시 생각하지. 그의 가치는 그 것 외에도 무궁무진하니까 말이야.”

루스벨트 대통령의 판단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비서실장과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로 대화하다가 이윽고 병주의 진료실의 문 앞으로 다가왔고, 뒤에서 따라와 둘을 호위하던 보디가드들 중 하나가 문을 두들기며 말한다.

“각하의 일행입니다. 문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노크소리에 문을 연 인원은 미스터 길의 진료를 돕는 간호사 메리였다. 간호사 메리는 정중하게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안내 사무원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하하. 아름답군요. 레이디. 그럼 부탁하지.”

메리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에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는 대통령 일행들을 진료실 안으로 들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 유명한 미스터 길의 진료실 안을 둘러보았다. 진료실 안은 여타 다른 진료실과 별반 없었다. 소독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환자를 눕히기 위한 가죽 침대와 의자들, 그리고 벽에 고정되어있는 선반 위에 놓인 약들, 책장에 꽂혀 있는 원서들, 마지막으로 수북 쌓여 있는 진료기록서들까지 진료실 안이라면 모두 있는 것들뿐이다.

그 때, 간호사 메리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말한다.

“저 선생님은 현재 강의 중이라 앞으로 2시간 뒤에 오십니다. 지금이라도 불러 들이겠습니까?”

메리의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오. 이번에 연락을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의 잘못이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루스벨트 대통령은 병재가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약 두 시간 뒤, 메리만 남아있는 진료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손목에 찬 손목시계의 시간을 본다.

“흠. 강의시간이 꽤나 길 군.”

그 말에 뒤에서 휠체어를 잡아주던 비서실장이 한 마디 한다.

“지금이라도 데리고 올까요?”

“아니. 아니. 냅둬. 지금 그는 계약대로 일하는 중이야. 우리가 그 계약을 깰 수 없는 일이지.”

“예. 그럼.”

여차하면 보디가드들을 동원해 병재를 데려오려던 비서실장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지에 그만두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간호사 메리의 얼굴이 더욱 안절부절 했다. 환자를 준비한다든지 곧바로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는 모두 다 했다. 이제 병재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아직 강의시간이 다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진료실 안 모두가 기다리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이내 진료실 문 앞에 정지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 때 문 밖에서 미스터 길과 문 앞에서 호위하는 보디가드 2명이 서로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제 진료실인데.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귀한 분이 오셔서 이렇게 미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귀한 분? 지금 영업시간은 끝났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원래. 선생님의 진료실입니다. 저희들이 함부로 이곳에 서서 선생님께 압박을 주었던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화제의 인물인 미스터 길을 만날 수 있었다. 병재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 귀한 분이라는 사람 때문인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비서실장은 휠체어를 돌렸고, 루스벨트 대통령과 병재를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했다.

병재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보더니 당혹감과 놀라움의 감정이 얼굴에 동시에 드러났다. 하지만 병재는 노련하기 그지없는 의사였다. 그는 곧 얼굴색을 고치면서 말한다.

“귀한 분이라고 하셨는데. 대통령 각하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차리는 병재의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눈이 커지면서 병재를 바라본다.

“내 소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대통령인 줄 알았는가?”

병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하게 했다.

“사진에서 보았습니다.”

그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그렇군. 알겠네.”

인사를 한 병재는 곧 바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당당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대한다.

“원래는 진료시간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하겠습니다.”

한 순간 루스벨트 대통령을 보는 병재의 눈빛과 분위기가 바뀌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그 분위기를 느끼며 병재를 달리 보았다.

“분위기를 보니 범상치 않은 자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 각하.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의사 일을 한 노련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입니다.”

“역시. 재생치료를 완벽히 할 수 있는 의사라면 저 정도의 분위기는 나와 주어야 하는군.”

“제가 대신 각하의 증상을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니야. 내가 말하도록 하지.”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선을 다시 병재에게 돌렸다.

“내가 듣기로는 자네는 장애의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들었네. 그 것이 사실인가?”

“구체적인 증상에 따라 다르기는 합니다.”

“그럼 못 고치는 증상도 있다는 말인가?”

“처음 보는 증상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각하의 경우는 저에게 익숙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으음.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내 증상을 한 눈에 알아차린 것 같군.”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각하의 건강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장애 말고 다른 것도 있는가?”

“장애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것이 무엇이지?”

“요즘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또 일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망각을 한다든지 그런 증상도 겪지 않았습니까?”

“......”

비서실장은 병재의 말에 당황하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말한다.

“각하. 그건...”

루스벨트 대통령은 병재를 마치 대단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한다.

“하. 그건 내가 주치의 외에는 숨겨왔던 것인데. 한 눈에 알아차리는 군.”

“가장 먼저 치료해야할 증상을 말한 것뿐입니다.”

“원래 소아마비 후유증을 치료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자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지. 비서실장 다음 치료기간은 언제 잡는 것이 좋겠는가?”

“2주 뒤에 가능합니다.”

“2주 뒤라... 수십 년을 견뎌왔는데 2주를 못 버티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알겠네. 2주 뒤에 하체마비 증상을 치료하는 것은 가능한가?”

병재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치료에는 며칠 시간이 걸리지만 가능합니다.”

“그렇군... 알겠네. 그럼 가장 심각하다는 것부터 치료해주게.”

“예. 그럼 알겠습니다.”

병재는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침을 꺼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침들을 보고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보통 수술이라든지 약으로 치료하는데 그 것으로 치료가 가능한가?”

“원하시면 수술도 가능합니다. 날짜를 정해주십시오.”

그 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손사레를 치며 말한다.

“아니야. 그냥 말해본 거야.”

“예 그럼.”

병재의 신기 같은 손놀림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루스벨트 대통령 얼굴 곳곳에 침들을 꽂는다. 그리고 얼굴 속 기혈의 흐름을 따라 병재는 침들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꾼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치료를 받으면서 머릿속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답답했던 문제라든지 두통이 완화되고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편안하군. 내가 대통령 직을 하면서 이렇게 편안한 시간이 있었던가?’

루스벨트 대통령은 임기 중 벌어진 골치 아픈 일들을 생각했다. 그 순간에도 지금처럼 편안해지는 일은 없었다. 아마 임기 중 벌어진 일들 덕분에 건강을 해친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얼굴에 박힌 침들이 한 순간에 삭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아까의 편안함은 없어지고 대신 개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병재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끝났는가?”

“예. 지금 머리가 상당히 개운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군. 알겠네. 그런데 이렇게 치료가 신속하게 끝나나?”

“제 침술의 치료가 빨라서 지금은 이 침들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다음 주 하체마비의 치료는 수술로 결정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니야. 지금 혹시 치료가 가능한가?”

그 말에 병재는 끙 하고 얼굴에 고민이 어린다. 병재의 그 모습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은 어려운 것 같군.”

“대통령 각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능은 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질병을 동시에 치료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하체마비의 치료를 받겠다고 한다면 침대 위로 등을 돌린 뒤 누워주시면 되겠습니다.”

“비서실장 좀 도와주게.”

그 둘의 눈치를 본 메리와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루스벨트를 부축한다. 루스벨트는 하체마비라는 말을 빈 말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듯 간신히 부축을 받으며 가죽 침대 위로 드러눕는다.

병재는 일어서서 루스벨트의 척추를 살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심각하군. 하체 마비를 겪은 지 시간이 꽤 걸렸어. 그래도 재활 치료를 꾸준하게 했기 때문인지 아직은 신경이 완벽히 굳어지지 않았군.’

병재가 판단하기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지만 걷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걷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절망하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하는 치료 과정에서 숱한 고생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병재는 루스벨트의 그 노력을 한눈에 파악했다.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도록 난 도움만 줄 뿐이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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