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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병재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등과 허리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는지 침을 허리에 꽂기 시작한다.
-푹! 푹! 푹! 푹!-
루스벨트 대통령은 바늘이 몸에 찔리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아까의 그 시원함을 등과 허리에 느낄 수 있었다. 병재는 다시 침을 다시 거둔 후 이번에 안마를 시작하여 근육을 풀어해친다.
“윽! 으윽!”
안마의 고통도 잠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원함으로 얼굴에 행복감이 감돈다. 병재는 다시 한 번 침을 꽂는다. 침을 통해 병재의 손끝에서 나온 신비한 기운이 루스벨트 대통령 몸속에 있는 신경계를 이어 붙인다.
신경계는 오래된 혹사로 손상되고 있다. 미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병재는 그 걸 느끼자 이 걸 튼튼하게 변화시키도록 자극을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비서실장과 보디가드들, 그리고 간호사 메리는 치료하는 병재와 치료받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침을 흘리는 것을 느끼지 못 할 만큼 집중하면서 보고 있었다. 특히 병재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그들에게 어떤 신성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루스벨트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은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 병재를 바라보는 눈빛을 번뜩였다.
‘미스터 길.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하늘의 아버지가 다시 강림했다고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럴 것 같군.’
간호사 메리와 보디가드들은 말도 생각도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병재는 그런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못 느끼는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혈을 살핀 병재는 다시 한 번 기혈을 따라 침을 꽂는다. 침을 꽂는 와중에도 병재의 얼굴에는 힘이 든다는 지 일이 잘못되었다는 당혹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이 치료가 맞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표정이었다.
병재의 치료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사실 몇 분이면 끝날 일을 왜 한 시간씩 걸렸냐면 루스벨트 대통령이 하체마비를 앓아온 기간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재는 가느다랗게 이어진 신경계를 회복, 강화시키는 쪽으로 간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 그에게도 병재의 치료는 고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병재의 치료가 끝난 뒤 치료 효과는 곧장 나타났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치료가 끝난 뒤 아까의 고통과 시원함이 복잡하게 얽힌 얼굴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으으으... 끝난 것 같군. 어라...”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리를 움직이는데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릎과 발이 덜덜 떨리면서 감각이 느껴졌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릴 수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회상했다.
“하하하... 왜 미스터 길에게 치료를 받으면 하늘을 찾는지 알 것 같군.”
루스벨트 대통령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이제까지의 고생 모두 보답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힘이 없었던지라 부축이 필요한 것 같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다리와 발이 저릿저릿 하지만 그래도 하체마비 상태는 벗어났다. 앞으로 저 미스터 길이라는 청년의 치료를 계속 받으면 예전의 그 끔찍한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자 한 숨을 쉰다.
“하아... 이제까지 발과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 한낱 악몽으로 기억될 것 같군.”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리와 발의 감각을 재차 느끼면서 길병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맙소.”
진지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감사에 병재는 겸손하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휴우. 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를 자네에게 입었네. 그리고 비서실장.”
자신을 부르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곧바로 달려 나온다.
“예. 무슨 일입니까? 각하.”
“조금은 휠체어 신세를 지겠군.”
그 말에 비서실장은 당혹한 표정을 짓는다.
“치료는 어떻게 되었기에...”
비서실장의 걱정을 루스벨트 대통령은 단번에 일축시킨다.
“잘 됐어. 걱정하지 말게. 발과 다리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다만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각하의 의중이 그러시다면...”
그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움직일 수 있는 다리와 발로 스스로 부축 없이 휠체어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휠체어로 털썩 주저앉았다. 치료 전에는 부축으로 겨우겨우 서거나 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을 보니 병재의 치료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은 뒤 시선을 병재에게 돌린 후 말한다.
“그럼 2주 뒤에 보도록 하지. 그 때쯤에 내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그 말을 들은 병재는 조제한 약을 비서실장에게 건네주면서 말한다.
“이 약들은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때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약들은?”
“지금 저릿한 발과 다리를 회복시키고 안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 약들은 아까 머리 아픈 것을 치료하기 위한 약들입니다. 서로 충돌해서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선정했으니 한 포에 담긴 약들을 한꺼번에 먹어도 별 탈은 없을 것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약을 건네주는 병재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그래그래. 난 이만 가보겠네.”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뒤, 대통령 일행들은 전부 병재의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병재는 자신의 의자에 털썩 앉아 심신을 회복한다. 간호사 메리가 병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역시 선생님이군요.”
“높으신 분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놀랍기 하지만 어찌어찌 넘겼네요.”
간호사 메리는 그런 병재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는다.
“호호호. 선생님도 긴장 어리게 만든 사람이 있네요. 아까 치료할 때는 범접하지 못할 기세를 만들어내고 그 무슨 말씀이에요.”
“메리 간호사도 긴장 어리지 않았나요? 처음 볼 때 안절부절 못했는데.”
“그게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걸 감수하고 노련하게 치료하는 선생님이 비범한 것이고 말이에요.”
“비범이라... 전 아직까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아마 다른 의사 분들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분통이 터질 걸요. 겸손도 때에 따라 골라 하세요.”
병재는 간호사 메리의 충고에 싱긋 웃는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일도 끝났으니 슬슬 퇴근하도록 하세요. 추가근무를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예. 선생님.”
퇴근하라는 병재의 말에 진료실 안은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돌아간다.
한편, 엘리베이터를 탄 루스벨트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비서실장은 아까의 치료하던 길병재를 생각하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말한다.
“그런데 참으로 대단한 자였습니다. 각하의 오래된 고질병도 간단히 치료할 줄 이야. 정말 하늘의 아버지가 강림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실력이었습니다.”
비서실장의 감탄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침묵하더니 한 마디 한다.
“...... 정말 하늘의 아버지가 강림했다면 그를 이용하려고 하는 난 천벌을 받았겠지. 비서실장의 말대로 실력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 실력의 전수에 순순히 동의한 미스터 길도 대단해 보입니다. 솔직히 그런 실력을 어디서 쌓아올렸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습니다.”
비서실장의 순수한 호기심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넓고, 신비로운 사람은 많네. 그건 그렇고 미스터 길이 원래 일본군 징용자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비서실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황당하지만 말이죠.”
“그런데 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포로교환을 운운하다니 웃기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미스터 길의 재생치료 전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아 예.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보고입니다. 미스터 길의 수준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재생치료는 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가르치는 재능은 수준급이군. 벌써 그 정도 수준에 도달했단 말인가?”
“상당히 다재다능한 청년입니다.”
“그와 같은 실력은 아니지만 불구자를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의사는 몇 명이나 되지?”
“으음... 지금으로썬 그와 같은 4명의 조선인 의사들과 우리 측의 오드밀러라는 의사 한 명뿐입니다. 그 외에 나머지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오드밀러라... 그 사람은 원래 군의관 소속이었던가?”
“예. 맨 처음 미스터 길을 눈여겨본 사람입니다. 그와 같이 군의관을 했던 시절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저번에 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서 미스터 길이 수술과 약으로 할 수 있다고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나? 그건 어떻게 되었어?”
그 말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미스터 길이니까 그 논문을 실행할 수 있을 만큼 난이도가 있습니다. 평범한 의사라면 할 수 없는 손재주와 기량이 필요합니다.”
“......”
“각하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합니다만. 지금으로썬 미스터 길이 계약대로 잘 행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흐음... 저번 사이판 전투에서 미스터 길이 홀랜드 C.스미스 중장이 건넨 귀화신청서를 거절했다는 대목에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군. 왜 그런지는 알 수 있겠나?”
“아마 고향에 있는 가족들 때문이겠죠.”
“가족?”
“각하께서도 들으셨겠지만 그 미스터 길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불우합니다. 자신은 일제에게 징용으로 끌려가 가족과 헤어지고 죽을 고비를 다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편한 삶과 부는 필요 없다고 보고 드렸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랬나...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고 기회는 잡겠나.”
“예. 각하.”
-띵!-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도착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비서실장이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끈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로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는 예의 사무원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그런 풍경임에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 측에서 하나의 인원을 귀국시켜달라는 연락이 온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았나?”
“예. 전학삼이라는 중국인 과학자를 귀국해달라는 연락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역할을 하지?”
“현재 미국방부 로켓연구단지에서 연구하는 박사입니다.”
“꽤나 중요하겠군. 그런 사람을 순순히 귀국시켜달라는 이유가 뭐지?”
“중국 과학 기술 총괄직에 임명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주중 미국대사가 보낸 보고 중에서 총괄직에 임명된 이는 19살 청년이라고 하던데.”
“현재 총괄직에 임명된 이는 송감연이라고 불리는 자인데. 그 자가 직접 중국의 장개석에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나이와 연륜의 이유로 자신의 자리에 전학삼을 추천했습니다.”
“단순히 나이와 연륜으로? 그 자리가 중요한 것을 알겠고, 그 송감연이라는 자가 잘 해내는지 왜 그런지는 이유를 모르겠군. 저번에 41식 중전차라든지 폭격기, 야포 외에 공작기계, 장비, 태양광발전기 그의 손에 발명, 설계되지 않았나?”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전학삼을 귀국시켜달라는 중국 측의 요구뿐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 빠진다고 로켓 기술이 진전되지 않다는 건 아니지?”
“예. 다만 기술유출 건에 대해선...”
“기술유출이라 그런 문제는 있겠군. 대신 한 가지 요구해.”
“그 요구란 무엇입니까?”
“41식 전차의 기술들 전부를 보내달라고 그래.”
“...... 중국 측이 순순히 승낙할지 의문입니다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원래 세상이란 건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것이 진리 아니겠나? 난 그 진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일세.”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학삼을 귀국시켜주는 대신 41식 중전차의 기술들을 해부 및 전수를 요구해왔다. 그런 결정에 미국 군부들의 의견도 한 몫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요구에 중국 측은 순순히 동의하고 41식 중전차를 보내고, 설계도들을 보내왔다.
한편, 루스벨트 대통령을 떠나보낸 병재는 어느 병실 쪽으로 혼자서 걸어간다. 늦은 밤에 이승만이 시카고에 마련해준 집 대신 그는 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병재는 자신의 목적지 문 앞에 도착한다. 문 앞에 문패는 505호실로 되어 있었다. 병재는 그 문패를 살펴보고는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끼이이익!-
병재가 그 안으로 다가서자 꽃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자신의 지인들이 보낸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허브들이 심어진 화분들이 창문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화사한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자신의 여동생 효순은 말하지 못했지만 그런 것을 좋아하는 듯 했다.
병재는 방 안을 천천히 걸어갔다. 방 안에 있는 효순이 놀라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리고 병재는 시선을 돌려 방 안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침대에 누운 효순이 소곤소곤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병재는 그 편안한 모습을 보이는 효순의 침대 옆에 멈춰 서고는 한 마디를 읇조린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된다. 조금만...”
병재는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지난 번 병윤이 보내준 편지를 꺼내 다시 한 번 읽었다. 편지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자신과 병주의 안부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누나와 병재 자신을 보고싶다는 문구로 편지의 내용은 끝이 났다.
“하아...”
효순은 10년 동안의 지옥같은 삶을 버텨온 지라 그 동안 생긴 트라우마는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신체는 건강하지만 정신의 상처는 아물지 못했다. 지금도 함묵증에 겪고 있었고, 자신과 자신의 지인을 제외한 남자들에 대해 남성공포증은 아직까지 있었다. 그런 자신의 여동생을 볼 때면, 이렇게 만든 놈을 폐인으로 만들지 않고 죽여 버리고 싶었다. 아직도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오른다.
“너를 만나고 싶다는 동생들이 편지를 보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아빠도 엄마도 만날 수 있을 거야. 이제 다 좋아질 거야. 다 전부 다...”
병재는 곤히 자고 있는 효순의 곁에서 침대에 고개를 엎드리며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오늘도 병재는 재활치료센터의 하루를 여기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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