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85화 (8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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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오늘 점심에서 나온 음식들이 식판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병재는 그 식판을 들고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걷고 있었다. 의사 선생이 직접 밥을 가져다 주는 모습이 신기한 지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병재를 쳐다본다.

“오늘도 선생님이 직접 챙기시는 건가?”

환자가 병재를 바라보며 한 마디 작게 말한다. 옆에 있던 환자가 물어본다.

“오늘도 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 넌 처음 왔으니 모르겠지. 참. 사실 이 곳 재생치료센터에는 미스터 길 선생이 직접 챙기는 환자가 있어.”

그 말에 처음 온 환자는 놀라면서 길병재와 아까 말한 환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그 유명한 의사 선생이 직접 찾는 환자라. 저렇게 식사까지 직접 말이야?”

“그렇지. 처음 미스터 길 선생이 부임하였을 때, 여성환자 한 명을 입원시켰어. 아마 그 환자를 직접 돌보고 있나봐.”

“그래? 그 여자와 의사 선생의 관계가 어떻기에 그런데?”

그 말에 설명해준 환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더 이상은 모르는 듯 하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직접 미스터 길에게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목격한 거야. 목격한 거.”

“아 그래? 난 또 뭐라고. 그런데 궁금하기는 하다. 그 미스터 길이 직접 찾는 환자라니.”

처음 온 환자의 말에 설명해준 환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직접 그 여자환자의 병실에 찾아오려고 하지마.”

“왜?”

“미스터 길의 치료를 받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하던가?”

설명해주는 환자의 대답에 처음 온 환자는 궁금한 얼굴에서 눈살을 찌푸린다. 병재는 복도에서 자신을 발견한 뒤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안다. 환자에게 식사를 갖다 준다거나 주사를 하는 일은 간호사들이 자주 하는 일이지만 병재는 이 일은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한다.

병재는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한 눈빛으로 복도의 정면을 쳐다보며 자신의 동생이 기다리는 505호실로 직접 걷고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복도를 걷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병재는 목적했던 문 앞에 도착하자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선다. 그리고 문의 명패를 확인한다.

-505호실-

병재는 자신의 목적지가 맞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문은 잠그지 않아서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끼익-

방 안에는 어제 저녁 나왔던 분위기와 똑같았다. 창문틀에 놓인 허브의 화분들, 심신을 안정시키는 허브의 향기들,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와 따사로운 햇빛, 그리고 눈을 즐겁게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었다.

침대 위에 병재의 여동생 효순은 상체만 일으키고 앉으며 멍하니 있었다. 효순은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밖으로 한발 짝도 떼지 않았다. 병재는 침대에 연결된 식탁을 효순의 앞에 펴도록 하고, 식탁 위에 식탄을 놓는다. 그리고 병재는 자신을 바라보는 효순을 본 후 효순의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헝클었다.

“밥 먹자. 효순아.”

효순은 함묵증에 걸려 말은 못하지만 병재의 말을 잘 듣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앞에 놓인 식판 위의 음식들을 차근차근히 먹었다. 병재는 그런 효순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 재생치료센터에 효순이 처음 입원했을 때, 효순은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 때마다 병재는 교육시켰고, 교육의 효과가 있는지 효순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흘리지 않고 먹었다.

시간이 지나 효순의 식사는 끝이 났다. 효순은 빈 식판을 바라본 뒤 병재를 바라본다. 병재는 그런 효순의 모습이 마치 비에 맞은 아기고양이 같았다. 병재는 효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식판을 치우고, 침대에 연결된 식탁을 원래대로 해놓는다. 병재는 효순을 바라보며 말한다.

“배부르냐?”

효순은 병재의 말을 듣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제 양치질 해야지.”

병재의 말에 효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린다. 효순은 그 날 이후로 아이처럼 변했다. 병재는 효순을 바라보며 착잡하게 생각한다.

‘병윤이가 효순을 많이 따랐는데. 병윤이를 만나게 한다면 나아질까?’

병재는 효순의 칫솔과 치약을 들고 화장실로 데려가면서 언뜻 그런 생각을 했다. 9년 전만 해도 효순은 가족의 상황을 보고 돈을 벌기 위해 나섰던 의젓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그 지옥도를 겪은 뒤 효순은 병재가 일일이 챙겨줘야 했다. 다른 사람이 돌보면 효순은 그 사람을 경계하면서 몸을 떤다.

병재와 효순은 화장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걷다가 한 사람을 만난다. 자신의 진료실에 배치된 간호사 메리였다. 메리는 병재와 효순 두 사람을 보면서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선생님이 여자를 데리고 오다니 옆에 누구입니까?”

병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메리의 질문에 대답한다.

“제가 직접 돌보는 환자입니다. 용건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오. 선생님이 여성 환자를 직접 돌본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만.”

“그런가요? 그럼 전 이 아이의 양치질을 하러 그만...”

메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예... 그럼.”

메리가 두 사람을 계속 쳐다보지만 병재는 메리의 눈빛을 신경 쓰지 않고 효순을 화장실 안으로 들여보낸다.

“어 거기는 남자 화장실인데... 뭐 상관없나?”

메리는 병재와 효순이 들어간 화장실을 어느 정도 바라보다가 이내 발을 뗀다. 그러나 발을 떼는 와중에도 메리의 머릿속은 병재와 효순 두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정보가 늦는 건가? 1층의 내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네.’

메리는 그 생각을 하고 1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병재는 세면대 앞에서 효순의 얼굴을 세수시키고, 양치질을 대신 해줬다. 병재는 효순이 아파하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효순의 이빨을 구석구석 양치질을 대신 해준다. 병재는 도자기 잔에 물을 받은 뒤 효순의 입으로 넣는다.

“자아 삼키지 말고. 행궈.”

“아그르르르르”

효순은 병재의 말을 듣고 입 안을 잘 행군 뒤 세면대에 퉤하고 물을 뱉는다. 다시 한 번 병재는 효순의 입에 물을 넣고 행구게 한다. 병재의 이런 노력덕분인지 효순의 양치질은 끝났다. 병재는 도자기 잔을 세면대의 물로 씻기고는 물기를 탁탁 털어냈다. 그리고 효순을 향해 시선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아 자리로 돌아가자.”

효순은 병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병재가 천천히 발을 떼자 효순은 졸래졸래 따라간다.

간호사 메리는 아까 효순과 병재의 모습을 1층에 있는 친구이자 안내 사무원인 루시 시리언에게 털어 넣는다. 루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메리에게 이제야 알았냐는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얼굴 뭐야?”

“넌 항상 정보가 늦어. 이 지지배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래. 여기에 있는 환자들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미스터 길 곁에 있는 너만 모르냐? 이 지지배 은근히 둔감한데?”

“그 이야기 그만 하고 어서 털어 나봐.”

안내 사무원 루시는 간호사 메리를 보고 한 숨을 쉬더니 너도 알고 있으라는 듯 말한다.

“넌 처음 재생치료센터에 오지 않아서 모르는 일이지만 사실 미스터 길이 처음 이 곳에 부임했을 때, 여성 한 명을 업으면서 입원시켰어.”

“허... 그 남자 그렇게 안 봤는데. 혹시 사랑하는 여인?!”

간호사 메리는 눈을 반짝인다. 마치 남자친구가 여인을 지켜주기 위해 병원에 입원시킨다는 그런 로맨스적인 이야기인가? 메리는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루시의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루시는 철저하게 메리의 상상을 깨뜨린다.

“미쳤냐? 미스터 길이 여자 만났다는 이야기는 없어.”

“그럼 그 여자는 누군데?!”

“쯧쯧. 내가 힌트를 줘도 모르겠냐? 잘 생각해봐. 내가 아까 말했던 문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여자 만났다는 이야기는 없다며.”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라고.”

“그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에라! 이런 눈치 없는 지지배야. 아직도 모르겠어?!”

루시의 타박에 간호사 메리는 신경질을 낸다.

“퀴즈 형식으로 내지 말고! 좀 제대로 말해!”

“에휴. 잘 들어라. 여자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없다면 그 여자는 뭐겠어? 사랑하는 여인? 애정이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너가 상상하는 그런 애정은 아니야. 저 여성은 미스터 길의 친동생이라고.”

“뭐?! 친동생?!”

“그래. 너도 알고 있을 거 아냐? 사이판의 위안부에 대해서.”

“......”

간호사 메리는 사이판의 위안부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한다. 처음 사이판에 대한 신문을 바라봤을 때, 밥도 먹지 못했다. 그런 끔찍한 상태의 여자는 처음 봤다. 그 여자의 사진을 보면 공포 영화라도 보는듯한 그런 기억이었다.

“사이판의 위안부라고 해서 그 끔찍한 사진이 대면에 있었을 거야. 기억나?”

“으음... 그게 뭐 어땠다는 거지?”

“쯧쯧 넌 눈치가 없어. 내가 왜 사이판의 위안부에 대해 언급하겠냐? 사실 이건 비밀인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아까 너가 봤던 여자일 가능성이 있어.”

루시의 말에 메리는 깜짝 놀라며 루시를 바라본다. 루시는 검지를 입에 대고 침묵할 것을 요구하자 메리는 놀란 감정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니까 입 조심해. 네가 친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나도 더 이상 자세한 건 알지 못해. 미스터 길 옆에서 자신의 여동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메리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말하게 된다면 어떻게?”

루시는 눈치없는 메리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이 년을 어찌할 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루시는 메리가 답답한지 크게 말한다.

“미스터 길이 열 받아서 여동생을 데리고 이곳에 나가겠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알잖아. 이렇게 말해줬는데 모르면...”

다행히 메리는 루시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간호사 메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렀으니 말이다. 루시는 간호사 메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막 말 한 마디를 전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아예 못 들었다고 여기고 기억 속에 남겨둬. 입 밖으로 냈다간 너도 큰일이지만 나도 큰일이라고. 알겠어?”

간호사 메리는 루시의 당부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오후 1시 30분, 메리가 병재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진료실 안에는 병재가 미리 자리에 앉아 환자들의 진료기록서들을 살피고 있었다. 메리는 병재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장실 앞에 있었던 일이 자동적으로 떠올랐지만 필사적으로 기억을 억눌렀다. 간호사 메리는 얼굴을 바로 잡고 병재에게 말을 건다.

“이제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요?”

병재는 메리의 말소리가 들리자 진료기록서들을 가지런히 놓고 메리를 쓰윽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병재는 책상 위의 알림 종을 손바닥으로 세 번 쳤다.

-땡! 땡! 땡!-

진료실 밖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 중 첫 순서가 들어왔다. 병재는 그 환자의 얼굴을 보고는 아까 놓아둔 진료기록서 중 하나 꺼내며 환자의 이름을 부른다.

“맥건 씨군요.”

맥건이라 불리는 환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병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름이 맥건이라고 확답했다. 병재는 계속해서 맥건을 살펴보면서 말한다.

“심장 수술은 어떻게 잘 된 모양이군요.”

맥건은 사실 영국군 알터 대령 휘하에 속한 포병대원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맥건의 사지는 멀쩡했다. 대신 포탄의 파편이 심장을 찔렀다. 근처의 군의관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으로 다른 일원들처럼 불구가 되지 않고, 군의관의 응급치료를 받아 살아남았다. 문제라면 심장에 파편이 남아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맥건의 치료를 맡았던 군의관은 파편을 어느 정도 제거했지만 심장 속에 틀어박힌 파편들을 제거하지 못했다. 그 파편을 제거하기에는 군의관의 실력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맥건을 이번 재생치료센터로 맡겼다. 재생치료센터에는 신의가 있다고 하니 알터 대령과 함께 보낸 것이다. 심장 속 포탄 파편의 제거수술은 병재가 직접 맡아서 했다.

병재는 재생치료뿐만 아니라 외과수술도 수준급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함부로 건드려 죽을까봐 두려운 맥건의 치료도 병재는 단숨에 해결했다. 병재의 치료덕분인지 맥건의 모습은 건강했다.

맥건이 병재를 바라보며 묻는다.

“심장에는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 날이 일어나기 전처럼 멀쩡합니다.”

병재는 맥건의 얼굴과 몸 곳곳을 관찰하며 자신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보기에도 환자의 상태는 건강합니다. 이번에 주는 약을 먹고 퇴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이상이 온다면 꼭 연락을 주십시오.”

“하하하. 선생님이 집도하셨는데 별다른 이상이 오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맥건은 병재의 당부에 감사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선생님의 충고는 뼈에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그럼. 약은 3일치로 지어드리도록 하지요.”

그 때, 맥건이 병재에게 물을 것이 있는지 우물쭈물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저 선생님. 알터 대령님은 언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저번에 알터 대령님이 저를 밀쳐서 불구가 되셨는데...”

맥건의 말에 병재는 단호하게 말한다.

“거기에 죄책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알터 대령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터 대령의 경우는 이제 당신이 치료받고 2명만 더 치료하면 그의 순서가 돌아옵니다. 그러니 이번에 약을 받고 퇴원하셔서 알터 대령의 건강한 모습을 찾아뵈세요.”

맥건은 병재의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미소를 짓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알터 대령님께 전해주세요. 당신 덕분에 목숨을 건져 생명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이에요.”

병재는 알터 대령을 생각하는 맥건의 말에 자신도 기쁜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 말씀은 꼭 전달해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전 약을 지으러...”

병재는 벌떡 일어서서 맥건의 약을 조제하러 옆방의 약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병재는 약봉투를 들고 맥건에게 전달했다.

“앞으로 저를 찾아오지 않을 만큼 건강했으면 좋겠군요.”

============================ 작품 후기 ============================

우리의 효순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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