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87화 (8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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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복도에서 간호사 메리의 단언에 병재는 침묵했다. 병재는 메리의 말에 일리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병재는 메리의 말에 납득하고 만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것입니다.”

“......”

“솔직히 현 시카고 시장이 선생님을 자주 뵙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시카고 시장은 매일은 아니지만 매주는 재생치료센터를 찾아왔다. 그리고 찾아올 때마다 시찰을 핑계로 대면서 병재의 진료실로 들어간다. 병재는 으레 있는 일이라고 그냥 일을 지나쳤지만 메리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으음... 그렇군요. 하하하... 소박한 삶은 불가능이라. 이것도 제 실력의 대가인 셈인가요?”

간호사 메리는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휴우. 소박하지 않더라도 제 고향에서만큼은 병원을 열고 싶네요.”

메리는 병재의 그 소원에 응원하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병재는 메리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을 돌리며 말한다.

“빨리 가보도록 하지요. 환자들이 기다리겠습니다.”

“네. 선생님.”

병재의 진료실로 가는 병재와 메리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걷다보니 금세 진료실 문 앞에 도착했다. 문 바깥 옆에 설치된 대기의자 위에 앉아있는 환자들이 병재와 메리를 발견한다.

“수술은 금방 끝난 것 같네요. 선생님”

“그러게 보통 의사는 몇 시간씩 들여서 수술하지 않나?”

“미스터 길 선생이랑 다른 의사랑 실력이 같겠냐?”

“그건 그렇지.”

대기 환자들의 수군거리는 대화를 들으며 병재와 메리는 엉거주춤한 움직임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다. 병재는 진료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예의 노련한 얼굴을 짓더니 쌓아둔 진료기록서들 중 대기환자들 것을 뽑는다. 간호사 메리는 병재의 그 행동을 보고 신기한지 말한다.

“어떻게 얼굴을 다 기억하고 뽑으시는 건가요?”

병재는 메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가 얼굴 기억력이 좋은지 금방금방 찾게 되네요.”

“그 기억력 상당히 부럽네요.”

병재는 진료기록서들을 살피다가 얼굴을 바로 한다.

“자아 이제 시작할까요?”

메리는 병재의 말에 시작하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병재는 메리의 몸짓을 확인하고는 책상 위의 알림 종을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땡! 땡! 땡!-

문 바깥으로 알림 종소리가 들리자 환자들이 순서대로 한 명씩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병재는 빠르게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병재의 처리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진료실 바깥에 있는 환자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덕분에 힘들어진 것은 병재가 아니라 간호사 메리였다.

“하아... 이번이 마지막 환자입니다.”

헉헉대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의 메리는 병재가 뽑은 마지막 진료기록서를 건넨다. 병재는 메리를 자리에 쉬게 한 뒤 진료기록서를 살핀다. 그 때, 진료실 안으로 마지막 환자가 들어왔다. 병재는 대충 진료기록서를 살핀 뒤 환자를 바라본다.

“어. 알터 대령님 아니십니까?”

왼쪽 발과 다리가 잘려진 알터 대령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봐도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러나 병재는 그런 사람과 달리 올 줄 알았다는 듯 쳐다본다.

“마치 제가 올 줄 알고 있다는 표정이군요.”

“예. 당신이 말했듯이 휘하 일원들의 치료가 끝나면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까 당신 휘하 환자들의 치료가 다 끝나서요. 휘하 중 마지막으로 치료받은 한 명이 당신에게 귀띔을 해줬겠죠.”

알터 대령은 병재의 추측이 맞는지 싱긋 미소를 짓는다.

“역시 선생님은 알고 있었군요. 방금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럼 제 몸 좀 치료해주겠습니까? 이제 불구자의 추억도 여기서 마감해야 하거든요.”

병재는 그 말을 듣고 씩 웃으며 예의 침 하나를 꺼내 알터 대령에게 보인다.

“후후후. 당신의 말대로 추억으로 만들어 드리죠. 이 치료를 받게 되면 급격하게 허기를 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그거야 유명한 이야기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여기서 소모되는 식료품이 다른 병원보다 배가 된다고 하다군요. 거기다 배치된 요리사들도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전부 이 치료 덕분이죠. 그럼 이제 치료하겠습니다.”

알터 대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병재는 아까 보인 침과 더불어 침통 의 침들로 왼쪽 팔과 왼쪽 다리의 잘려진 부분에 꽂는다. 알터 대령은 끝까지 지휘관이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사람이라면 바늘 앞에 순간 몸을 떠는 것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병재의 치료를 받았다.

병재의 침술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알터 대령은 정면만 바라보면서 눈을 지그시 감아 침들이 꽂히는 부분을 느낀다.

‘침들이 꽂히는 부분마다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고, 거기다 조금 간지럽군. 재생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가?’

알터 대령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병재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저 의사의 손에 거처 간 환자들 중에 치료가 잘못되었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알터 대령은 자신의 휘하 일원 중 첫 번째로 병재의 치료를 받은 사람이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당당히 퇴원한 모습을 보았다.

‘나도 불구자의 모습에서 벗어난다면 평생 속죄해야 돼.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들의 아까운 목숨이 사라졌어. 미안하다 정말.’

알터 대령은 치료를 받으면서 지난 번 있었던 적의 포격에 희생된 일원들을 죄책감을 가지며 용서를 빈다. 그 감정은 진심이었는지 알터 대령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간호사 메리는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알터 대령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울고 있군. 지휘의 잘못으로 죽어간 부하들을 속죄하고 있어. 군인들이란 정말. 아니지 저 사람이 특이한 건가? 아니면 당연한 건가?’

메리는 쉬면서 알터 대령을 바라보고는 생각에 잠긴다. 그 때 병재는 침들을 거두며 눈물을 흘리는 알터 대령에게 가볍게 말을 건다.

“이제 첫 번째 치료는 끝났습니다.”

병재의 말을 들은 알터 대령은 남은 한 쪽 팔로 눈물을 닦고 말한다.

“죄송합니다. 지난 번 일을 생각하다 그만.”

병재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는다.

“지금 희생된 일원들도 당신의 모습을 보면 분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평안하게 저승으로 성불하도록 참회를 해줬으면 좋겠네요.”

“...... 예. 당연히 그래야죠.”

“적어도 당신이 건강한 모습으로 참회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전 당신을 위해 약을 조제하러 잠시 자리를 뜨겠습니다.”

알터 대령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병재는 알터 대령의 몸짓을 보고 약을 조제하러 옆방으로 들어갔고, 알터 대령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아까의 참회를 계속한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병재는 금방 알터 대령을 위한 약들을 조제할 수 있었고, 병재는 방에서 나와 알터 대령의 멀쩡한 한 쪽 손에 약봉투를 쥐어준다.

“약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 포씩 먹으세요. 그리고 3일 후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알터 대령은 병재의 말에 따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병재는 알터 대령의 몸짓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혼자서 갈 수 있겠습니까?”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3일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알터 대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쩡한 한쪽 팔로 목발을 잡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열심히 몸을 움직여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 메리는 그 모습을 보고는 병재에게 타박한다.

“정말 안 도와줘도 되요?”

“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도와주는 것이 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 사람의 경우 도와주라는 말을 할 때까지 가능하면 돕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도...”

“매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죠. 저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때로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메리는 병재의 말에 동감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했다. 병재는 메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이제 제 치료는 끝냈으니 메리 씨도 퇴근하셔야죠.”

간호사 메리는 그 말에 기지개를 핀다.

“아그그그... 선생님 곁에서 일하면 정규 근무 시간을 지켜도 매번 야근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피곤하면 제가 간호사 바꾸도록 요청할까요?”

병재의 말에 간호사 메리는 얼굴을 바꾸며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친다.

“제 말을 잘 듣지 않나보네요. 전 힘들다고 했지. 바꿔달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병재는 메리의 모습에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예.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전 강의하러 가보도록 할게요.”

병재는 오늘 자신이 진료 치료했던 진료기록서들을 들고 가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 메리는 그런 행동을 하는 병재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리고 병재가 문 밖으로 나가 메리의 눈에 안 보이게 되자 투덜거린다.

“저 사람은 의사야? 아니면 교수야. 내가 저 사람을 보면 여기가 대학병원인 줄 착각한단 말이야.”

간호사 메리는 투덜거리며 자신도 퇴근할 채비를 갖춘다.

한편 같은 시각, 미국 로켓연구기지에 재직 중인 전학삼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귀국이요? 허...”

전학삼은 소식을 전해준 OSS요원과 주미중국대사를 황당한 얼굴로 쳐다본다. 주미중국대사는 전학삼의 황당한 얼굴을 인식하지 않고 제 소리를 다했다.

“예. 총통 각하께서 중국 연구 기술 총괄직으로 전학삼 씨를 임명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능력이 미국 전역은 물론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능력 있는 이를 사랑하는 총통각하께서도 당연한 선택일 것입니다.”

“중국 연구 기술 총괄직이라면...”

“예. 현재 중국의 연구 기술원은 중국의 과학 기술을 선도하는 곳입니다. 그 곳에 당신이 임명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능력으로 그런 곳이 가당찮지 않을까요? 전 아직 이 곳에서의 일도 못 끝냈는데...”

전학삼의 질질 끄는 말에 주미중국대사 옆에 있던 OSS요원이 대신 대답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은 오늘 내로 당신의 후임에게 인수 인계사항들만 건네주면 될 일이요. 그 후 중경으로 직행하는 민항기를 타면 될 것이오.”

“......”

“당신의 능력이라면 우리 중국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부디 당신의 능력을 우리 중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십시오. 총통 각하께서도 그걸 바라실 것입니다.”

“으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내일 민항기로 가겠습니다.”

“오오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전학삼은 자세한 사항들을 두 사람에게 듣고는 오늘 숙소에서 인수인계할 서류들을 만들고,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944년 10월 10일, 중국 중경 총통관저의 총통의 집무실에는 장개석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전학삼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개석 총통은 전학삼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랑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자네가 전 세계를 천재성으로 떨치는 전학삼이라고 하는군. 저번 미국으로 유학을 보낼 당시에만 하더라도 많이 기대를 했었는데. 지금 자네를 보니 내 기대를 해도 되겠군.”

전학삼은 갑작스런 장개석의 환대에 속으로는 어쩔 줄 몰랐지만 겉으로는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각하께서 제게 중임을 맡긴다는 소식을 듣고 한 순간에 달려 나왔습니다.”

“그래. 자네의 천재적인 머리가 매우 필요한 일이지. 자 들어와.”

장개석은 전학삼에게서 문으로 돌리고 누군가 부른다. 문 밖에서 장개석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문이 열리며 흰 가운을 입은 한 청년이 안으로 들어와 장개석 총통에게 인사한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장개석 총통은 청년을 바라보고 손으로 전학삼을 가리키며 청년에게 말한다.

“자네가 그토록 원하는 전학삼이라는 사람일세. 서로 인사를 나누게나.”

청년은 그 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전학삼에게 돌려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한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전 현재 중국 연구 기술 총괄직을 맡았던 송감연이라고 합니다.”

“송감연?”

송감연이라는 말에 전학삼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장개석을 바라본다.

“혹시 4대 가문 중 송씨 가문의 사람입니까?”

장개석은 전학삼의 물음에 고개를 젓고는 대답한다.

“아니. 저 아이는 4대가문의 일원이 아니야. 단순히 성씨만 같을 뿐이지. 그리고 저 아이가 자신의 직위에 자네를 추천했다네. 자신의 연륜과 나이로 이런 중임을 다 맡을 수 없다고 건의했거든.”

“허...”

전학삼은 장개석 총통의 말에 송감연을 놀랍다는 듯 쳐다본다. 기껏해야 청년에 갓 든 얼굴이다. 장개석이 아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나이도 자신보다 훨씬 어릴 것이 분명했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직책을 맡다니. 전학삼은 송감연에게 조금 질투심이 났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저런 중임에 왜 자신을 추대했는가? 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송감연의 말을 통해 풀린다.

“전문지식과 머리 없이 이 일을 하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미국에서 당신의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천재라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당신이라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으음...”

장개석 총통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전학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중국 연구 기술 총괄직은 전학삼 자네에게 넘기겠네. 그리고 저 아이가 자네가 오기 전의 총괄직이었으니 저 아이에게 인수인계를 받게나. 자세한 이야기는 연구소에서 하게나. 난 여기서 할 일이 있으니 그럼.”

장개석의 말에 전학삼과 송감연 둘이서 소리친다.

“예. 각하!”

전학삼과 송감연은 총통의 집무실 밖으로 빠르게 걸음질을 하며 나간다. 둘은 서로 걸으며 대화한다.

“그런데 자네는 왜 이 자리를 나에게 추천했는가? 아무리 자네의 나이가 나이더라도 그 정도의 직위라면 욕심이 나서 계속 앉아 있게 될 텐데...”

전학삼이 자신을 바라보자 송감연은 속으로 미쳐 날뛰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싱긋 미소를 짓는다.

“하하. 전 이 일을 느끼면서 이 걸 할 그릇이 못 되는구나 라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가 당신... 아니 총괄장님께 이 일을 추천해주는 이유는 오로지 총괄장님의 그 능력을 들어서 그렇습니다. 전 총괄장님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총괄장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 작품 후기 ============================

결국 송감연은 전학삼에게 자신의 일을 얄밉게 떠맡기게 됩니다.

댓글. 댓글은 작가에게 소중합니다. 이런 댓글 하나 하나가 저에게 사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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