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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워싱턴 D.C로 가는 민항기 안,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백인 남녀의 승객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특이한 얼굴의 세 명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백인 남녀들은 그들을 보고 조금 불쾌한 얼굴을 하지만 굳이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역시 불편하군. 여기에 오래 있지 못하겠어. 그 놈의 쪽발이 새끼들 때문에 우리까지 도매금 취급하잖아.”
정필중은 짐짓 화난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비행기를 타기까지 얼마나 우려곡절이 있었는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탄다고 했을 때, 직원의 세 명을 벌레같이 쳐다보는 그 표정을 잊지 못했다. 다행히 병재는 이런 일은 아무렇지 않은 듯 증명서를 제출하자 다행히 통과는 되었지만 말이다.
“그 놈의 잽 잽 역겨워 죽겠어.”
그 때의 일이 화가 났던 정필중은 열이 조금 받은 모양이다. 지금도 자신들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 백인 승객들의 존재 또한 화를 돋구게 만든다. 하지만 병재는 신경쓰지 않고 한 마디 한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건데. 개 같은 추억으로 삼죠.”
열이 받았던 정필중은 병재의 별 거 아니라는 말투에 피식 웃는다.
“그런데 기차를 탈 생각은 안 하고 비행기를 이용할 생각인지는 몰랐어. 비행기 승선권이 비싸다고 하던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입니다. 기차를 타면 늦습니다.”
정필중은 병재의 말이 타당한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정필중은 병재 옆에서 숙녀복을 곱게 차려입고 비행기 창문 넘어 구름들을 바라보는 한 여성과 병재를 번갈아 보면서 염려스러운 눈빛과 표정으로 말한다.
“그런데 자네 여동생을 데리고 와도 되겠어?”
병재는 씁쓸한 얼굴을 짓고는 말한다.
“아직까지 마음의 상처가 덜 치유된 모양입니다. 병원에 혼자 남기기 뭐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끄응. 그렇군. 사실 자네 마음도 이해가 가.”
정필중은 효순을 바라보고 떫은 감을 씹은 듯 표정을 지으며 쯧쯧 거리다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짓고 병재에게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승만 박사님을 만나는 거지?”
“조금 중요한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 정도로 중한 일인가?”
“그 일에 대해선 박사님을 만난 다음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끄응.”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밝히지 않는 병재의 말에 정필중은 침음성을 흘린다.
“정 형 워싱턴 D.C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한 숨 주무세요.”
“아무래도 그게 편하겠어. 우리들을 보고 쥐새끼처럼 쳐다보는 백인들에게 신경을 끌려면 말이지.”
그 말을 한 뒤, 병재와 정필중, 그리고 효순은 서서히 눈을 감는다. 워싱턴 D.C로 향하는 비행기는 기사의 실력덕분인지 순항하고 있었다.
약 몇 시간이 지나 비행기는 워싱턴 D.C로 도착했다. 병재와 정필중, 그리고 효순은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통해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을 바라본다. 비행기 안 방송에서는 워싱턴 D.C에 도착하였으니 짐을 챙기라고 알려준다. 세 명 다 의자 위에 위치한 짐칸에 짐을 챙겼다.
-끼이익!-
비행기에서 내려진 바퀴가 활주로를 달린다. 비행기는 순조롭게 착륙에 성공하였고, 곧 비행기는 멈추었다. 그 때가 되자 짐을 미리 챙겼던 승객들은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비행기에 대는 계단이 연결되었고, 이윽고 승무원이 나와 외친다.
“저희 민항기를 이용해주신 승객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승객들은 짐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나 차례대로 비행기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뗀다. 병재, 정필중, 그리고 병재의 손을 꼭 잡은 효순 역시 일어서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승무원이 그들을 제지한다.
“당신들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에 병재와 정필중은 의아한 눈빛으로 승무원을 바라본다. 단순히 비행기를 이용했을 뿐인데 승무원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백인 승객들이 전부 나가고 승무원이 왜 남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타타타타!-
비행기 안에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권총을 세 명에게 조준하고 외친다. 모습을 보아하니 공항에 근무 중인 청원경찰인 듯 했다.
“꼼짝 마라! 이 잽 놈들!”
병재와 정필중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얼떨떨했다. 그리고 효순은 병재의 등을 잡고 이 사태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승무원이 청원경찰을 보고 외친다.
“저들이에요. 저들. 저들이 바로 수상해 보이는 잽들이라고요.”
승무원의 말에 병재와 정필중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다고? 이를 뿌드득 갈은 청원경찰은 권총을 바짝 들어 말한다.
“손들어! 이 잽 놈들! 자기들이 불리하니까 여기를 폭파시키려고 했지?”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병재와 정필중은 어이가 없음을 넘어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정필중이 억울한 마음에 앞에 나서려고 했지만 병재가 그를 붙잡는다. 정필중은 병재를 보고 말한다.
“이거 왜 이래?”
“일단 순순히 그들을 말을 듣죠. 함부로 행동하다간 총 맞습니다.”
“끄응.”
둘의 대화소리에 청원경찰이 권총을 바짝 들고 외친다.
“뭘 쫑알쫑알 거리고 있어! 손들어! 안들어?!”
병재가 손을 들자, 정필중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뒤에 있던 효순은 안절부절 못한 표정이었다. 청원경찰의 리더가 순순히 손을 드는 둘을 보고 부하들에게 말한다.
“일단 유치소로 끌고 가.”
청원경찰 둘은 병재와 정필중 옆에 가서는 수갑으로 양손을 채운다. 정필중은 곁눈질로 ‘이제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어보지만 병재는 담담한 눈빛을 한다. 결국 세 명은 어이없게도 하이잭킹의 명목으로 끌려갔다.
워싱턴 D.C지역의 FBI로 끌려간 세 명은 곧 경찰들에게 취조를 받게 되었는데, 취조하는 형사는 침음성을 흘린다.
“끄응.”
‘이게 뭔 개 같은 사태야? 하이잭킹이라고? 젠장 엉뚱한 놈들을 잡아서 건수라도 올리고 싶은 것일까? 휴. 미치겠군.’
형사는 책상 위에 놓인 증명서를 보고 울상이었다.
‘건드려도 어떻게 이런 사람을 건드려. 젠장!’
증명서에는 병재와 정필중의 신상명세서도 적혀 있었는데, 소속이 재생치료센터라고 되어 있었다. 형사는 한 숨을 내비췄다. 그리고 병재와 정필중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 어떤 병신 같은 녀석들이 오해하는 바람에 이런 폐를 끼치게 만들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병재와 정필중은 험험 거리며 기침을 한다. 형사는 둘의 수갑을 풀어주고 증거품으로 압류된 물품들을 돌려줬다. 정필중은 궁금해서 물어봤다.
“무슨 일로 우리들을 체포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형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선생님들을 하이잭킹으로 보는 승무원의 증언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FBI는 사정을 몰랐는데 이제야 사정을 알고보니. 하아.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병재와 정필중은 어이가 가출했다.
“......”
“그 맘 이해합니다.”
병재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이제 돌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형사는 연신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한 승무원의 오해로 발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이 사단을 일으킨 승무원은 공항에서 해고조치 당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한편 FBI의 건물에서 세 명은 택시를 탔다. 운전석 옆 좌석에 탑승한 병재는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건네주면서 말하낟.
“이 주소대로 가주시오.”
택시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움직인다. 차량은 어디론가 향한다.
차선을 바꾸고, 건물을 빠져나가면서 차량은 목적지에 도착한다. 병재는 돈을 택시기사에게 건네주었다. 택시기사는 원래 받던 돈보다 많이 받는 것에 대해 미소를 짓고는 말한다.
“굿 럭.”
병재는 그 말에 희미하게 웃고는 차문을 열고 차에서 나간다. 택시 차량은 세 명이 내리자 어딘가로 방향을 틀었다. 정필중은 이 건물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얼굴을 짓고는 병재에게 시선을 돌린다.
“여기가 이승만 박사님이 계신 곳이야?”
“김충호가 건네준 주소는 이게 맞는데 말이죠.”
그 때, 건물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나타난다. 알고 보니 병재가 말한 김충호였다. 김충호는 병재, 정필중, 그리고 한 명의 여성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병재에게 말한다.
“너 혼자 온다고 하지 않았어?”
“하하. 어떻게 세 명이 동시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뭘. 들어와. 들어와. 박사님은 안에 계셔.”
병재와 정필중, 효순은 김충호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꽤 정리가 잘 된 모양이었다. 도자기, 그리고 고풍스러운 그림들이 잘 조화되었다. 이 건물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보였다. 정필중은 그 모습을 보면서 소감 한 마디를 말한다.
“꽤 호사스럽게 사는군.”
“......”
병재는 정필중에게 대답하지 않고 그저 김충호 뒤를 따라갈 뿐이다. 김충호의 발걸음은 어느 방문 앞에서 끝났다. 김충호는 문을 똑똑 두들기면서 말한다.
“저 박사님. 길병재 군과 일행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게나.”
김충호는 그 말을 듣고 문고리를 잡아 방문을 열었다.
-끼익!-
방 안 한쪽 벽에는 도서관에서 볼법한 책장으로 되어 있었고, 책장 앞에 원목의 책상이 있었다. 방 안 중앙에는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쇼파가 있었다. 책상에 세트로 된 의자에 앉아있는 초로의 노인이 방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은 김충호를 따라나선 병재의 얼굴을 확인하고 반가운 얼굴을 한다.
“오오! 길병재 군이 아닌가?”
그 말에 병재와 정필중은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한다.
“잘 지내셨습니까? 박사님.”
“나야 잘 지내지. 조금 일이 난항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야. 자자 쇼파에 앉아서 이야기나 해보자고.”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승만이 먼저 쇼파에 앉자 병재, 정필중도 따라서 쇼파에 앉는다. 그리고 효순은 병재 옆에 척하고 달라붙는다.
이승만은 병재에게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그래. 나에게 상담할 일이 있다고? 평소에 상담도 도움도 잘 받지 않는 사람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지 궁금하군.”
병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어제 점심시간에 어떤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 분?”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한다.
“자신을 대영제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라고 하더군요.”
“......”
이승만은 놀란 눈빛이었지만 이내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는 그럴 수 있다고 여기고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 가만히 이야기 듣는 정필중은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란다. 이승만은 정필중을 무시하고 묻는다.
“자네라면 나라의 수장이 찾아올 수도 있지. 그래 상담하고 싶은 것은 그 일 때문인가?”
“예. 아무래도 이건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말이죠.”
이승만은 병재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아 자세하게 이야기해봐.”
그 말에 병재는 어제 있었던 처칠 수상과의 만남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이야기를 듣다가 얼굴이 점차 굳어진다.
“계약서는 미국과 동일한 조건이었습니다.”
“동일한 조건?”
“예.”
“동일한 조건이라. 흥. 그 사람의 눈빛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군.”
“......”
이승만 박사는 눈빛을 날카롭게 하면서 병재에게 시선을 향했다.
“자네가 이 제안을 보류하고 날 찾아온 것에 대해서 아주 잘 했네.”
“무슨 방도라도 있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불공평하지. 이걸 좀 공평하게 해보자고.”
“공평?”
“미국이야 대국이고, 또 우리들의 생활을 책임져주니까 계약은 공평했지. 하지만 영국은 아니지 않는가?”
“으으음.”
“그 일에 대해서 걱정할 거 없네. 그래. 그 계약에 대한 대답은 언제 할 생각인가?”
“전 내일 혹은 모래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 그럼 내일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좋겠지.”
“내일요?”
“그래. 나라의 수장이니만큼 여기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대답은 내일하는 것이 좋겠지.”
“으음.”
“자네가 결정을 보류한 일은 잘 한 거야. 아무래도 나도 같이 나가야 될 것 같군.”
“박사님이요?”
“그래. 이 일은 내가 전문이거든.”
그 때, 김충호가 이승만 박사에게 말한다.
“저 그런데 박사님 내일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승만 박사는 김충호의 말에 역정을 내며 말한다.
“그 일은 이 시점에서 끝난 거야. 안타깝지만 뒤로 미루자고 말해. 내일 일이 중요한 것 같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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