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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방 안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승만의 갑작스런 일정 취소에 김충호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승만에게 물어본다.
“저 내일 일은 취소한다고 하셨습니까?”
조심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진다.
“아! 몇 번을 이야기하는 거야? 그 쪽에서 역정을 낼까 두려운 거야?”
“...... 알겠습니다.”
김충호는 이승만의 확고한 의지에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저렇게 결정했으면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 이승만이다. 김충호는 차라리 욕을 듣고 말겠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승만 박사는 다시 시선을 병재에게 돌리고 흠흠 거리며 헛기침을 한다.
“조금 안 좋은 모습을 보였군.”
“아닙니다. 제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박사님을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뭔 소리인가? 자네의 일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 그건 그렇고, 여기서의 숙식은 어떻게 해결할 셈인가?”
병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이승만에게 대답한다.
“주위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왜 그러시는지?”
“그 말은 아직 예약은 하지 않은 것인가?”
병재는 이승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의당 호텔이라든지 아니면 민박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
“저 왜 그러시는지?”
“아니야. 하아. 자네 몸을 아낄 생각을 하게나. 숙식이라면 여기서 지내도 상관없네.”
병재는 조금 놀란 눈빛으로 이승만 박사를 쳐다보며 말한다.
“저 박사님께 폐를 끼치는 일인데 그럴 수는...”
병재의 그 한마디에 이승만 박사는 아까 강경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폐는 무슨 폐. 잔말 말고 여기서 내 집처럼 지내게나.”
병재는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으음. 박사님께 폐를 끼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이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비로서야 이승만 박사의 얼굴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좋아. 내 집처럼 편하게 있어주게나. 아 옆에 있는 여성은?”
병재는 붙어있는 효순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대답한다.
“제 여동생입니다. 지금은 어떤 일 때문에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어서 제 곁에 없으면 크게 불안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 양해를 부탁합니다.”
이승만 박사는 효순의 얼굴을 보다가 이내 기억났는 것이 있는지 어떤 일을 떠올린다. 바로 사이판 전투에서 있었던 위안부 사진이 저 주인공이었다. 사진은 시체로 여길 정도로 심각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병재 옆에 있는 젊은 여성이라니. 이승만 박사는 저 젊은 여성의 굴곡진 삶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시체와도 같은 상태에서 저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치료한 병재의 실력이었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돼. 저 청년은 세계가 주목하는 폭풍의 핵이야. 잘만 이용하면...’
이승만 박사는 그 생각을 하던 와중에 임시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누군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병재에게 시선을 쳐다보며 말한다.
“혹여나 해서 묻는 건데. 중국에 자네 동생들이 있는 것이 사실인가?”
병재는 그 물음에 숨길 것 없이 바로 대답한다.
“예. 큰 동생은 현재 임시정부의 광복군에 투신 중에 있다고 전하고, 작은 동생은 중경의 공단 회장직에 앉아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건 왜?”
“으음. 아닐세.”
‘보기보다 보통이 아니군. 저 녀석도 그렇지만 저 녀석들의 동생들은 그야말로 봉황들이 아닌가? 큰 동생이야 모르지만 작은 동생은 중국의 근대화를 끌어올린 핵심인재. 반드시 둘도 포섭할 상대이다.’
이승만 박사는 생각을 마치고 눈앞에 있는 이는 물론 그의 형제들의 가치를 깨달았다. 이승만 박사는 사람좋은 할아버지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 혹시 식사는 하지 않았나?”
“박사님이 대접을 해주시면 저야 영광입니다.”
“하하. 자네에게 소홀히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자 가자고.”
이승만 박사가 호기로운 말투와 웃음소리를 내지르며 쇼파에서 일어나자 쇼파에 앉아있던 병재, 정필중, 그리고 병재를 잡는 효순도 천천히 일어났다.
집도 호화스러운 만큼 음식들도 그만큼 기품이 있었다. 다만 그 음식들이 전부 서양요리라서 그런지 병재와 정필중은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이승만 박사는 그 음식들에 대해 이미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조금 의아함을 느끼고 말한다.
“얼굴 표정이 왜 그러는가? 맛이 없는가?”
그 물음에 병재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 대답한다.
“아닙니다. 충분히 맛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향수병이 있는지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들이 그리워서 그렇습니다.”
“쯧. 여기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야. 타국에서 고향 음식을 온전하게 즐길 수는 없지 않은가? 조선이 독립을 되찾는다면 그 때 가서 즐겨도 늦지 않을 거야.”
병재는 이승만의 말이 타당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이 상당히 지당하십니다.”
“허허허. 그런가?”
이승만 박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병재를 바라본다. 그 때, 이승만 박사에게 인사를 하는 중년 백인부인이 있었다.
“아 여보. 잘 지냈소?”
“당신의 지극한 보살핌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분들은 누구시죠?”
“내가 저번에 이야기했던 의사들 알지 않은가?”
중년부인은 병재와 정필중, 그리고 효순의 얼굴을 살피고는 말한다.
“한 사람은 빼고 두 명은 젊군요. 혹시 이분들이 그?”
“그렇소. 신문을 통해서 들어보았을 거요. 요즘 명성이 자자한 재생치료센터의 의사들이오. 그리고 이 젊은 청년이 그 주인공이지.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된 멋진 인간이지.”
중년부인은 그 말에 감탄하면서 자신을 소개한다.
“갑작스럽게 와서 죄송하군요. 저는 프란체스카 도너 리라고 해요. 옆에 있는 멋진 남성분과 결혼한 사이입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기품 있고 정중한 말투에 병재는 얼떨떨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까 박사님이 소개해주었다시피 전 재생치료센터에 근무 중인 의사 길병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옆은 제 동료인 정필중입니다.”
병재의 소개에 정필중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정중하게 말한다.
“신수가 훤하셔서 다행입니다. 혹시 몸이 불편하신 일이 있다면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정필중의 소개에 프란체스카 여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병재 옆에 있는 효순에게 돌린다. 그 때, 이승만 박사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말한다.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소.”
갑작스런 이승만 박사의 말에 프란체스카 여사는 얼른 효순에게 시선을 뗀다.
“이 사람들은 내 손님이니 잘 좀 챙겨주었으면 좋겠소.”
프란체스카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점심식사는 끝이 났다. 그리고 프란체스카 여사의 안내를 받아 방들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정필중과 병재가 한 방, 그리고 효순이 한 방을 배정받았다.
정필중과 병재는 있는 짐들을 풀고는 옷을 편하게 갈아입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정필중은 병재에게 넌지시 말한다.
“그런 사정이 있었나? 갑작스럽게 휴가를 신청한 게 그런 일 때문인가?”
“뭔가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정형?”
정필중은 그 말에 고개를 작게 좌우로 흔들고 말한다.
“아니야. 그런 큰일이라면 박사님을 찾아뵙는 것이 낫겠지. 이승만 박사는 이 미국 한인들의 수장이자 동시에 임시정부에 속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예. 정형에게 말을 미리 못한 점은 사과할게요.”
“하하. 아니야.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런데 휴가 때 동안 여기서 지낼 건가?”
“박사님이 부탁하셨으니 들어주는 것도 예의 아니겠습니까?”
“그 것도 그렇군.”
그렇게 서로 둘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방문 두들기는 소리에 병재와 정필중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병재가 문을 향해 외친다.
“예. 누구십니까?”
병재의 말에 문 넘어 목소리가 들린다.
“나야. 김충호.”
“아! 김충호씨군요. 지금 열어드리겠습니다.”
병재는 부리나케 문에 다가가 열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의 주인공인 김충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김충호는 병재와 정필호의 얼굴을 보고는 조금 안심했다는 얼굴을 짓는다.
“그런데 김충호씨 무슨 일입니까?”
“아. 조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할 말이라니?”
“자네 어머니에 대해서 말이야.”
그 말에 병재의 얼굴은 순간 굳어진다. 김충호는 그런 병재의 얼굴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앉아서 해보도록 할까?”
병재와 정필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안 창가에 위치한 탁자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서로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자 김충호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병재를 쳐다보며 슬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자네 어머니의 상태는 잘 있네. 지금 한반도에 있는 한인동지회의 안가에 보살피고 있는 와중이지.”
“...... 죄송합니다. 어머니.”
병재는 어머니 생각에 잠시 눈물 한 방울 흘린다. 그 때 정필중이 김충호에게 말한다.
“내 가족은? 내 가족에 대한 소식은 없나?”
김충호는 정필중의 말에 잠시 얼떨떨하다가 이내 소식을 전해준다.
“정필중 씨의 가족들은 현재 생존하고 있습니다.”
“생존이라니? 그게 무슨?”
“지금 일제의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자 일제는 발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된 공출에 지금 전부 산천초목을 뜯어먹게 생겼습니다.”
정필중은 그 말에 ‘끄응’하고 침음성을 낸다. 그래서 김충호가 생존이라는 말을 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잘 지낸다라고 말할 수 없으니 말이다.
“살아있으면 된 거야. 살아있으면.”
정필중은 씁쓸한 얼굴을 짓는다. 어떻게든 살아있으면 된다고 중얼거리며 희망을 가졌다. 김충호는 다시 시선을 병재에게 돌린다.
“알아보니 한반도 내부에서는 지금 몽양 여운형이 이끄는 한 단체가 있다네. 지금 임시정부와 그 단체와 연락망을 구성했네. 아직까지 협조 단계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 말씀은?”
“아버지 쪽은 몰라도 어머니 쪽은 뺄 수 있다는 뜻이지.”
“으음.”
병재는 그 말에 고심했다. 한반도 안가에서 비밀스럽게 생활 중인 어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동하다가 일제에게 덜미가 잡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자네는 자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이동하다 일제에게 잡힐까 두려운 표정이군.”
병재는 자신의 고민을 그대로 밝혀내는 김충호의 말에 조금 놀란 눈치를 짓고는 시선을 김충호에게 고정한다.
“그 표정을 보니 어머니를 옮기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군요.”
김충호는 병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은 자네 어머니를 빼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다만 난 자네 어머니를 빼돌리는 것에 대해 선택하지 말아달라고 말해주고 싶군.”
“김충호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을 벌이다 제 어머니의 안전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경우는 애초부터 안 만드는 것이 낫겠죠.”
“그래. 안타깝지만 말이지.”
“그렇다면 제 군의관 동료들의 가족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킬 수 없겠습니까?”
병재의 그 제안에 김충호와 정필중은 화들짝 놀란 눈치였다.
“자네...”
정필중이 병재에게 시선을 두며 잠시 울먹거린다. 김충호는 하아 하고 한 숨을 내뱉고는 말한다.
“자네 동료들의 가족의 구출은 일제에게 덜미를 잡히게 될 일이지. 지금 일제는 오가작통제를 적용하고 있어. 아마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면 수상하게 여길 가능성이 커.”
“으음. 뇌물로 어떻게 해결은 안됩니까?”
“뇌물이라. 조금 가능성은 있겠지. 그래도... 아! 그거면 되겠군.”
마치 좋은 생각을 떠올린 김충호의 표정에 정필중과 병재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했다. 병재는 혹여나 하는 생각에 김충호에게 물어본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아까 내가 몽양 여운형이 이끄는 단체에 대해 말하지 않았나?”
“예.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들은 왜?”
“조선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눈치 빠른 조선의 친일파들이 그 단체에게 꼬리를 친다는 말을 들었지.”
“으음.”
“그 단체에게 어느 정도 부탁하면 해결 될 거야.”
정필중이 김충호에게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꼭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단체라면 아직 일제가 감시하지 않은 정필중 씨의 가족들을 무리없이 구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생치료센터에 근무 중인 조선인 의사들의 가족들도 말이죠.”
그 말에 병재와 정필중은 휴우하고 한숨을 쉰다. 정필중은 김충호에게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고맙네. 고마우이.”
“이 것이 제 일이라서 말이죠. 그럼.”
============================ 작품 후기 ============================
이승만 박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다만 가정을 또올리면 좋겠습니다. 우리야 이승만 박사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비판을 하지만, 병재 시점의 이승만 박사는 완벽한 독립투사입니다. 그 점을 조금 헤아렸으면 합니다.
요즘 제가 댓글을 구걸하고 왜 저는 댓글을 안쓰냐고 말씀하시는데 그 점에 대해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