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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108화 (10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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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김충호는 병재의 요구에 수락했다. 그는 여운형이 이끄는 단체를 이용해서 현재 재생치료센터에 근무 중인 조선인 군의관들의 가족들을 구출하기로 했다. 정필중은 고마운 눈빛으로 병재와 김충호를 쳐다본다. 병재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정필중을 쳐다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이게 당연한 일입니다. 정형.”

“고마우이. 정말 고마우이.”

정필중은 병재의 말에 감격했는지 한 줄기의 눈물이 쏟아진다. 병재는 그런 모습의 그를 보며 등을 토닥거려준다.

김충호는 둘의 모습을 보는 것에 자신이 조금 민망했는지 흠흠 헛기침을 한다.

“흠흠. 그러면 저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 김충호에게 인사한다.

“부탁하겠습니다.”

“부탁은 당연히 들어줘야지. 감히 누구 부탁인데 하하.”

김충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고, 방문을 통해 나간다. 병재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다가 문이 닫히자 아직까지 눈물을 흘리는 정필중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고향에 돌아간다면 꼭 좀 저에게 소개를 부탁합니다.”

정필중은 눈물을 닦으며 피식 웃는다.

“내 딸이 곱게 컸네. 소개를 한 번 시켜줄까?”

“......”

태연하게 자신의 딸을 소개하는 정필중의 말에 결국 할 말을 잃은 병재였다.

이곳에 머무르는 인사들은 많았다. 아무래도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 거주중인 한인들의 유력가이다 보니 한인동지회의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 외에도 사람은 많았는데 그 중 특이한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아 당신이 바로 그럼 순향양행의?”

병재가 이렇게 묻자 조선에서 순향양행의 사장직에 있었다던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상대방은 미국 유학 중에 있었는데 지금은 OSS 한국 담당 고문을 맡고 있다고 했다. 병재는 별안간 대단한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당신보다는 덜 유명할 거요.”

멋들어지게 정장을 입고 나타난 장년 남성은 병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때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던 정필중이 고개를 돌려 병재와 상대방을 바라보다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갸우뚱하다가 기억을 떠올리고 상대방을 알아본다.

“허어. 참 이거 우연이 다 있군.”

병재가 갑작스러운 반가운 기색의 말투의 정필중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혹시 둘이 아는 사이 입니까?”

병재가 그렇게 묻자 정필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라서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이야.”

정필중을 바라본 상대방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정필중은 피식 웃으며 그 상대방에게 말한다.

“오랜만이야. 문제현.”

정필중의 상대방, 문제현은 정필중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문제현도 정필중에 대해 조금 기억이 갈까 말까한 표정이었다.

“정형은 어디 출신이기에?”

“나? 나 원래 평양에서 먹고 자랐지. 내가 말을 안 해주었나?”

“으음.”

“저 사람은 문제현이라는 친구인데. 정말 대단한 친구지. 아마 고향의 동년배들 중 저 녀석만큼 성공한 이는 없을 거야.”

정필중은 병재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문제현은 정필중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그런데 저 녀석이 9살 때, 미국으로 유학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지.”

정필중의 말에 문제현이라는 장년남성은 어? 하면서 이제야 기억이 나는 듯 했다. 정필중은 그 모습에 피식 웃는다.

“잘 지내고 있었나? 문제현?”

“나야 뭐 잘 지내고 있었지. 아주 오랜만에 보는군. 정필중.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정필중과 문제현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는다. 병재는 둘을 바라보다가 한 번 물어봤다.

“그 말들을 들으니 두 분 다 고향사람인가요?”

그 물음에 정필중은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내 말하지 않았나? 고향친구라고. 하여튼 이 친구 정말 대단한 친구야.”

문제현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정필중에게 말한다.

“글쎄. 간간히 저 병재라는 청년의 소식을 들으면서 너를 포함한 조선인 군의관들도 주목했지. 그런데 네가 의사 일을 하다니 정말 인간이란 알 수 없는 노릇이군.”

병재는 그 말에 궁금해서 문제현에게 물어본다.

“정 형은 고향에서 어땠습니까?”

문제현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슬슬 이야기를 풀었다.

“평범한 삶이었지. 정필중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말이지. 내가 청년 시절에 회사를 차린 후, 고향에 돌아간 적이 있었지. 그런데 저 녀석이 입사를 부탁한다고 청탁했지. 뭐 그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말이야.”

정필중은 그 말에 ‘끄응’하고 침음성을 낸다. 문제현은 정필중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계속 풀어냈다.

“그 부탁이야 당연히 거절했지. 그 후로 계속 막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이사를 했더라고. 알고 보니까 아버지 따라서 농사일을 한다고 하더라고.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보니 의사라. 하아.”

문제현의 악평 아닌 악평에 정필중은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그리고 정필중은 하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친구. 정말 정확하게 말하네. 이 친구 말대로야. 난 그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였지. 공부 못하고 돈 벌기 위해 막일하고 아버지 따라 농사일 하고. 청탁을 부탁한 것도 사실이야. 농사일을 하다가 마을 처녀와 어느새 관계를 맺어 결혼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징용에 끌려가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지. 정말 나도 자네 따라서 의사 일을 할 줄은 몰랐어.”

문제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청탁을 받아들였으면 했는데 말이지. 아마 젊은 날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른 저 친구를 공부시켰을 거야. 아니 늦어도 지금은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인가? 아무튼 저 친구가 지금에서 잘 되어 기쁘군.”

문제현은 정필중의 성공에 그제야 기쁜 듯 미소를 짓는다. 병재는 그 둘의 모습에 보기 좋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정필중이 문제현을 보고 한 가지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있어.”

“한 가지 뭐가 더 있나?”

“지금은 자리에 없지만 재생치료센터에 근무 중인 의사목록은 너도 들어봤을 거 아닌가?”

문제현은 그 말에 아! 하고 무언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환호가 섞인 얼굴로 정필중을 쳐다보며 말한다.

“혹시 노송규. 송규녀석 말 하는 것인가?!”

“그렇지. 나와 송규 녀석은 같은 고향친구이기도 하지만 여기 말로는 베스트 프렌드인 사이니까 말이야. 어쩌다 징용도 같은 곳에 끌려갔지만 말이야.”

“허어. 이 것 참 우연이군. 세상 좁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건가?”

정필중은 피식 웃으며 문제현에게 말한다.

“어때? 시카고의 재생치료센터로 오라고. 나와 송규 녀석과 같이 술이나 먹으면서 고향 이야기나 털고 지내자고.”

문제현은 그 말에 좋다는 표정을 짓고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병재는 그 모습들을 보고 보기 좋다는 듯 미소를 띤다. 그 때 문제현이 병재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한다.

“그런데 자네와 저 청년은 무슨 일로 이 곳에 왔지?”

“아. 그건 말이지. 여기서 밝히긴 그렇군. 한 마디로 이승만 박사에게 상담 받을 일이 있어서 말이야. 저 녀석에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나왔거든.”

“말하기 조금 그런가?”

“그렇지. 아무래도 일의 중요성이 높으니 말이야. 그런데 이곳에 왜 찾은 거야?”

문제현은 그 질문에 피식 웃으며 순순히 대답해준다.

“아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있기에 한 번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거기다 일을 조금 쉬고 있었고 말이야. 또 오랜만에 이승만 박사를 찾아가는 것도 있어서 말이지.”

“허. 그런가? 하기야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명성을 떨치는 친구인데 당연한 말이겠지. 사실 내 대에 와서 이 기적 같은 일이 나오기란 생각도 못했지. 재생치료라니. 내가 재생치료센터의 동료의사들에게 듣기로는 재생치료라는 것이 몇 세기가 지난 후에 나올 수 있다고 하더군.”

문제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러니 저 청년이 대단한 것 아닌가? 아마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은 위인 이야기가 저 청년에게 들어맞는 말이지.”

문제현의 칭찬에 병재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정필중은 그 모습에 키득거린다. 문제현이 정필중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 가지 물었다.

“그런데 저 청년 결혼은 했대?”

“무슨 말을 하려고? 결혼은 아직 안 했어. 저렇게 실한 청년인데 신기하지 않나? 그리고 동정이라고 하더군.”

문제현은 그 말에 정말?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병재를 쳐다본다. 병재는 문제현의 표정에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그 때 정필중이 문제현에게 제지하면서 말 한마디 한다.

“아 저 청년 결혼은 건드리지 마! 내 딸 녀석 사위감이라고.”

문제현은 그 말에 비웃으며 말한다.

“퍽이나. 자네 딸이 춘추가 몇이지? 이제 12살 정도 되었나? 그런데 그 정도의 나이로 저 청년과 결혼을 시킨다고? 딸이나 더 키우고 말하게.”

“뭐? 이 자식이!”

결국 문제현과 정필중은 병재의 결혼문제를 두고 다툰다. 병재는 둘의 모습에 하아 하고 한숨을 크게 내지른다. 그렇게 다툼은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었고, 병재는 그제야 문제현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OSS 한국 고문단에 활동하고 계신다고요?”

문제현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신 대답한다.

“내 명성도 있기는 하지만 이승만 박사의 공도 적지는 않았지.”

“으음.”

“내가 OSS에서 근무하면서 조금 이상한 소리를 들었지. OSS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는 하지만 특히 중국에서의 소식은 많이 들리지. 특히 중경공단에서 물품들을 지원받는 것에 대해 상당히 기쁘다네. 그리고 중경공단을 운영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니까 감동했지. 그의 경영방식, 그리고 제품 개발, 신념, 좌우관, 모든 것을 본받을 만한 사람이지.”

“......”

난데없는 병윤의 칭찬에 병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본가들 사이에 병윤은 그렇게 인식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 사람 이름은 길병윤이라고 하더군. 허 참. 자네 이름은 길병재이지? 상당히 이름이 비슷하군. 형제인가 아닐 정도로.”

그 말을 하는 문제현의 모습에 정필중, 그리고 병재는 할 말을 잃었다. 특히 정필중의 경우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정필중은 병재에게 사실을 말해? 아니면 말어? 라고 눈빛을 보낸다. 병재는 결국 정필중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가정 맞음.”

“가정이 맞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길병윤이라는 중경공단 회장과 여기에 있는 길병재와는 친형제지간이라고.”

“뭐?!”

문제현은 폭탄발언을 들은 것처럼 몸을 벌떡 일어나 입이 턱하고 빠질 정도로 놀란 모습이었다. 정필중은 그 모습에 키득하고 웃는다.

“왜? 놀랐나? 하기야 대단한 형제들이지.”

“끄응. OSS에서 중경공단의 물품들에 대해 많이 칭찬하고 있었는데. 그 중경공단의 회장과 이 건실한 청년과의 관계가 친형제지간이라니.”

“하여튼 대단해.”

“그런데 이 청년들을 키운 부모님도 참으로 대단한 것 같군.”

병재는 문제현의 ‘부모님’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굳었다. 정필중은 그 표정에 아차! 하고 문제현에게 다급히 말한다.

“저 녀석 부모님 이야기는 안 꺼내는 것이 좋아.”

“뭔 일이 있었나 보군. 끄응 미안하네.”

문제현의 사과에 병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아닙니다. 모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왜 괜히 이야기를 꺼내가지고!”

정필중은 괜한 소리를 한 문제현을 구박했다. 문제현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정필중을 쳐다본다.

“아. 화제를 조금 돌리지. OSS에서 조금 특이한 친구가 들어왔어.”

“특이한 친구? 우리처럼 조선인인가?”

“아니. 그 사람은 평범한 백인 남성이야. 이름은 존 제틀이라는 녀석이지. 원래는 유럽 전선에 파견되었다 중상을 입고 귀국했는데. 그 중상이라는 것이 팔을 잃은 것이라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중상을 저 청년이 치료해준 덕분에 팔팔하게 활동하고 있어. 그 때문에 그 녀석은 저 청년의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더군.”

“은혜? 허어.”

“다른 사람한테 말은 안 하고 나한테만 귀띔해준 이유가 뭐니? 하고 물어보니까 당신은 그 사람과 같은 나라 사람이니 말해준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더군. 그 말을 제외하고는 그 녀석 원래 그 쪽 일이 천부적으로 맞는지 빠르게 공을 세우고 있어.”

병재는 문제현이 해준 말들을 듣고, 사이판 전투에 출정하기 전 하와이에 있을 당시 누군가를 치료해준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와 같이 들어온 환자, 그 이름이 아마 존 제틀이라고 하던데 그 사람과 문제현의 말 속에서 표현되는 사람과 일치되는 것 같았다.

‘존 제틀이라. 은혜를 갚겠다 뭐다 하더니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군.’

존 제틀이 잘 지낸다는 생각에 병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문제현은 병재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흘렸다.

“그 외에도 중국의 광복군이 OSS의 도움을 많이 받거든. 그런데 그 쪽 소식에서 임시정부의 사정이 꽤나 좋아졌나봐. OSS에서 잠수함을 구입하기까지 하던데. 아무래도 중경공단의 회장에게 자금을 지원받나봐.”

정필중은 문제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았는지 아!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깨달은 바를 말한다.

“그래서 이 저택이 호화로웠군. 내가 듣기로는 이승만 박사가 서구권에 대한 외교활동과 더불어 임정으로 자금을 송금하는 역할도 하던데 말이야.”

“그렇지. 그런데 사실 이승만 박사는 조금 안 좋은 소식이 들려.”

“안 좋은 소식? 그게 뭐지?”

“송금할 자금들을 몰래 횡령했다는 소문이지.”

“......”

정필중은 이승만 박사의 이면의 모습에 조금 말을 잃었다. 그건 병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현은 둘의 모습을 보고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말해준다.

“사람마다 이면은 있네.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동전의 이면과도 같은 모습이 있지. 아무튼 간에 말이야.”

병재는 문제현의 말을 듣고 조금 생각한다.

‘이면의 양면이라. 좋은 점과 나쁜 점. 저 사람 말을 들어보면 사실이겠지. 괜히 이승만 박사에게 상담했나?’

============================ 작품 후기 ============================

저에 대한 이승만 박사의 평가에 대해서는 나무위키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이승만/평가 라고 치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승만 박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양민들의 학살에 관해서는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원역사 비슷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진행방향을 놓고 본다면 4.3사건은 그대로 진행하는데 반해 보도연맹같은 경우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풍성한 댓글을 써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풍성한 댓글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들 풍성하게 사세요.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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