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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영국 대사관의 수많은 방들 중 중요해 보이는 방 안에는 조용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단순히 말이 없어서 조용함 이라기 보다 방 안의 사람들의 집중, 그리고 긴장으로 인한 조용함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여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입을 움직여 이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한다.
“소련의 제지에는 수상 각하도 상당히 동의하시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박사의 말에 처칠 수상은 조금 난감한 분위기였다. 결국 처칠은 얼굴을 굳히고는 단언한다.
“그 이야기는 그만두지.”
“......”
이승만 박사는 씁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자네가 아무리 주장한다고 한들 우리로서는 소련을 막을 수 있는 역량과 명분이 부족해.”
처칠의 단언에 이승만 박사는 한숨을 푸욱 쉬고 한 마디 한다.
“한반도에 소련의 세력이 들어와도 모른 척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질문에 답변할 수 없네. 내년 2월 달에 회담이 잡혀있는데 그 때가서 본격적으로 조선의 문제가 제기될 거야.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그 것뿐이야.”
이승만 박사는 그 말을 듣고 ‘끄응’하고 침음성을 낸다.
“우리 입장에서는 유럽 전선을 정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시아 쪽은 중국과 미국에게 문의하는 것이 좋네.”
“......”
이승만 박사는 냉정한 처칠의 말에 할 말을 잃는다. 그 둘의 대화에 병재, 그리고 정필중은 조용히 듣기만 하며 눈치를 살필 뿐이다. 처칠은 험험 헛기침을 하며 이승만 박사에게 말한다.
“지금 이야기는 병재 군과의 계약 이야기야. 조선의 문제를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지. 웬만한 조건은 들어준 것 같은데. 이만 계약을 맺었으면 좋겠군.”
처칠의 재촉하는 말에 병재는 이승만 박사의 눈치를 쳐다본다. 이승만 박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병재는 계약서들의 내용들을 이상 없는지 살피고는 결국 서명 란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고 인주에 지장을 찍었다.
병재의 모습을 본 처칠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일행들의 얼굴을 살핀다. 그리고 병재에게 환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말한다.
“그럼 정식적으로 계약을 맺었으니 부탁하네. 미스터 길.”
병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가지 물었다.
“그럼 재생치료를 배울 의사들은 언제 보내줄 생각입니까?”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시카고로 갈 거야. 재생치료센터의 사무소장에게 연락이 닿으면 그 때부터 강의하면 되겠네.”
“그럼 그렇게 알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처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병재에게 한 가지 물었다.
“아 그리고 미스터 길.”
“무슨 일이십니까? 수상 각하.”
“자네 원래 미군 군의관직을 생활했다고 하지 않았나?”
병재는 그 말을 듣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 포로생활 중 우연히 눈에 띄어서 군의관에 발탁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물어보시는 것이지요?”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말이야.”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번에 유럽의 연합군 전선에 며칠 동안 방문하는 것이 어떤가?”
“전선에요?”
처칠 수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다네. 자네도 전투를 겪어봤고, 군의관 직을 수행해봤으니 알고 있지만 자네 활약이 대단하다고 들었다네. 그러니 자네가 직접 그 곳에 가서 요령과 방법, 체계들을 며칠 동안 강의하면 좋겠군.”
“으음.”
병재는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려 이승만 박사의 눈치를 본다. 이승만 박사는 그 눈짓에 피식 웃고는 처칠 수상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전선은 상당히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유일하게 재생치료를 행하고 교육시킬 수 있는 인재를 희생시킬 수 없는 노릇입니다.”
처칠 수상은 또 인가? 라는 지겨운 표정으로 이승만 박사를 쳐다본다.
“그래. 프린스 리. 뭘 원하는 건가? 아까 소련 건에 대해서 말은 안 했으면 좋겠군.”
이승만 박사는 염려 말라는 듯 잠시 고개를 젓고는 말한다.
“이번 얄타 회담 있지 않습니까? 그 곳에 한 번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 자네 미쳤군.”
처칠 수상은 어이없다는 듯 이승만 박사를 쳐다본다. 하지만 이승만 박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목적을 위해선 미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물론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회담 내용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으음. 소련 관련해서는 자네 의견은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을 거야. 괜찮겠나?”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는 노릇입니다.”
“허.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네. 대신 그 쪽의 임시정부가 중국 쪽에 가까우니 장개석 총통과 한 번 연계를 해보게. 그럼 말을 좀 해보지.”
이승만 박사는 그 말에 이제야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병재에게 시선을 돌리며 잘했다는 눈빛을 보낸다. 처칠 수상은 둘의 연계에 당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병재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게 되었으니 전선에 가는 것은 합의가 된 건가?”
병재는 그 말의 대답을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신한다. 처칠 수상은 그 대답에 만족하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마 내달 중순에 있을 예정이니까 그 때까지 준비하면 좋겠군. 그리고 이 부탁에 대해선 미국과 이미 합의한 사항이니 걱정할 것 없다네.”
“그럼 그렇게 알고 그 때까지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이제 이야기는 이것으로 모두 마무리됐군. 좋은 계약을 맺어서 다행이네. 미스터 길.”
처칠 수상은 갑작스럽게 병재에게 악수를 청하자 병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악수를 받는다. 그 것으로 병재의 주미영국대사관에서의 일은 끝이 났다.
이승만 박사가 거주하고 있는 호화저택의 한 방 안에 어제처럼 병재와 정필중, 그리고 효순이 쇼파에 앉아 있었다. 이승만 박사는 쇼파에 편히 앉으면서 아까 주미영국대사관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굳은 얼굴로 있었다.
“휴우. 역시 현실은 만만치가 않군.”
이승만 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 처칠에 대해 기억하자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그래도 반은 성과를 달성했으니 다행인가? 앞으로 고향에 들어간다면 자네 할 일이 무척 많아지겠어. 병재군.”
병재는 그 말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스승님을 모시면서 제 할 일을 다 하고 싶습니다.”
병재의 대답에 이승만 박사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말한다.
“쯧. 병재군. 자네는 있지. 능력은 충분해. 아주 충분하고 말이야. 이미 명성과 실력은 세계를 요동치게 만들 엄청난 능력이야. 그런데 부족해.”
“......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까?”
“야망이 부족해. 야망이. 내가 자네의 능력을 가진다면 있지. 난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한 발 앞으로 갈 거야. 그런데 자네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도 그저 풍파 속에서 견디며 떠돌아 살려고 하는군.”
이승만 박사의 말에 병재는 씁쓸하게 웃는다.
“죄송하지만 제 능력으로도 현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박사님 말씀처럼 아마 현실이 제 소망과 반대로 요동치며 제가 거기에 휩쓸릴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부와 명예. 박사님의 말씀처럼 저는 그 것들을 목표로 삼고 정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제 가족들을 지키며 제 할 일들을 다 하고 싶습니다.”
병재의 확고한 신념과 말에 이승만 박사는 쯧 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그리고 표정을 바꾸며 병재에게 한 가지 말해준다.
“언젠가 자네 소망도 현실 때문에 바뀔 때가 있을 거야.”
이승만 박사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병재에게 더는 말하지 않았다.
1944년 11월 12일, 내일이 되었다. 이제 병재와 정필중, 그리고 효순이 원래 근무하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저택 밖으로 친히 세 명들을 배웅하고, 그들에게 비행기 승선권들을 주면서 말한다.
“자주 찾았으면 좋겠군. 그리고 이번 경우처럼 곤란한 일을 겪을 때마다 상담을 해주었으면 아주 좋겠네. 그래. 징용의 형제단은 어떻게 성과는 있었는가?”
병재는 승선권들을 조심히 건네받고는 이승만 박사의 묻는 말에 대답한다.
“그 단체의 활동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가 보호 중인 징용자들과 그리고 위안부들, 협조적이고 양심적인 일본인들로부터 각 종 증언과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래. 일본과 조선간의 관계에 대해 순진한 시선을 가진 미국인들의 시선을 바꿀 수가 있을 거야.”
“예.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박사님과 가족들의 건강이 염려된다면 언젠가 연락을 주십시오. 그 때는 주치의로 찾아가 뵙겠습니다.”
병재의 말에 이승만 박사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처럼 너털웃음을 짓는다.
“허허. 그 것도 좋겠군. 알겠네. 그 때 되면 연락을 주지.”
그 말을 끝으로 이승만 박사와 그대로 헤어진 병재, 정필중, 효순은 차문을 열고 차량 빈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병재가 살펴보니 운전기사의 얼굴이 익숙했다. 병재는 놀란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김충호씨가 직접 운전하시는 겁니까?”
차량의 운전기사가 된 김충호는 그 말을 듣고 병재에게 시선을 돌린 후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귀하신 손님이라 내가 직접 운전하는 거지.”
“일이 상당히 바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널찍해. 걱정하지 말고. 이제 출발하지.”
짧게 대답한 김충호가 차량의 시동을 키자, 차량은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한다. 김충호는 차량의 진동을 느끼자 왼손으로 차량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변속 막대기를 잡으면서 엑셀을 밟는다. 김충호의 운전 솜씨는 익숙한지 차는 잘만 간다. 김충호는 핸들을 잡고 시선을 정면을 고정하지만 입은 병재에게 신경 쓴다.
“이번 상담은 어땠나? 만족했나?”
“만족한 것 같습니다.”
병재의 조금 흐린 말투에 김충호는 피식 웃는다.
“그래. 박사님은 그런 분이지. 좋은 면, 나쁜 면 양면의 동전과도 같은 사람이야. 아마 이번 상담을 받으면서 박사님이 추구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려고 했겠지.”
“추구하는 바라...”
“내가 저번에도 소개했지만 독립운동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네. 독립 투쟁을 한다든지, 민족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든지, 그리고 강대국들에게 인정받아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든지 그 외에 무수한 방법으로 독립을 위해 가고 있네. 이승만 박사는 외교적인 방법으로 그 길을 추구하고 있는 거야. 강대국들 대사들에게 험한 말, 그리고 욕들을 들으면서 추구하지.”
“으음. 하지만 안 좋은 소문도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양면의 동전이 있다고 말이야. 박사님에게 잘못이 없지 않아 있어.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
“하아. 이런 말 꺼내기 쉽지가 않군. 그래도 지금은 일본이 패망한다는 희망이 조금씩 보이니 힘이 난다네.”
“그런데 김충호씨는 무슨 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것입니까?”
김충호는 병재의 물음에 잠시 동안 침묵한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사람은 말이야.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어떤 사람은 일제에게 자신의 가족이 해를 입었다거나 어떤 사람은 일제에게 고통 받는 동포들을 보고 그저 신념 때문에 독립에 투신하지. 난 솔직히 반반이야.”
“으음. 제가 안 좋은 것을 물어봤군요.”
“뭐. 자네의 경우처럼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아. 그런데 박출환이라고 했나?”
김충호가 박출환을 언급하자 병재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리고 그를 떠올리며 흉신악귀처럼 얼굴이 변하며 살기를 뿜어냈다. 김충호는 그 어마한 살기에 조금 몸을 떤다.
“으음. 그의 이름만 언급하면 찢어죽일 듯 살기를 뿜어내는군.”
“김충호 씨는 반반이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그저 그 자식의 사지를 찢어 죽이고 제 소망을 위해 걷기 위해 갑니다. 그 녀석은 제 가족에게 무수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누구든 그 녀석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전 반드시 그 보호하는 사람의 목숨을 거둘 것입니다.”
“......”
김충호, 그리고 조용히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필중은 병재의 말에서 나오는 박출환에 대한 원한을 듣고 할 말을 잊었다.
그 때, 차량은 곧 공항에 도착했다. 차량은 도로 한 구석에 끼익하고 정지하고, 김충호는 차량의 시동을 끈다. 그에 따라 병재는 살기를 거두고, 차문을 연 후, 자동차 뒤 트렁크에 다가가 짐을 꺼낸다.
김충호는 짐들을 다 챙긴 세 명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이제 들어갈 모양이군. 잘 가게나. 언젠가 만날 일이 있다면 좋겠지.”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필중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김충호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넨다.
“내 가족, 그리고 동료들의 가족은 잘 부탁하네.”
“그 쪽 일이라면 걱정 마십시오. 병재 군의 어머니를 구출한 것처럼 최선을 다할 테니 말이죠.”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백이 느껴지는 김충호의 말투에 정필중은 조금 안심되는 얼굴이었다. 병재는 손을 흔들면서 김충호에게 말한다.
“그럼 이제 헤어질 시간이군요. 잘 지내십시오.”
“잘 가게나.”
병재, 정필중, 병재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효순은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세 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충호는 피식 웃는다.
“이제 일을 처리하러 가볼까?”
김충호는 차 안에 들어가고는 시동을 킨 후 차량을 움직인다.
한편, 공항 안에 들어선 세 명은 곧 공항의 승무원에게 승선권을 건네주며 물어본다.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 지금 도착했습니까?”
병재의 말에 승무원은 잠시 세 명을 바라보더니 무언가 기억이 났는지 잠시 얼굴을 구긴다.
“당신들은 그 때...”
“으음.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면 좋겠군요.”
승무원은 태연히 환불이라도 하려는 병재의 말에 얼른 얼굴 표정 말투를 바꾼다.
“하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손님. 지난 번 있었던 일에 대해 큰 실수를 저지른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시카고로 가는 직행은 지금 도착했습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은 땀을 뻘뻘 흘린 채로 세 명을 시카고 직행 비행기를 탑승하는 입구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지난 번 잘못된 판단으로 저 세 명을 고발하다가 해고당한 멍청한 승무원의 일을 떠올리며 긴장과 억지로 웃는 낯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세 명을 비행기 안으로 안내한 뒤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휴우. 힘들다. 잘못하다 잘릴 뻔 했네.”
============================ 작품 후기 ============================
어쩌다 보니 병재는 유럽 전선에 가게 되었네요.
풍성한 댓글은 작가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