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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117화 (11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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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운전병의 이름은 토마스 래리, 어쩌다가 병재를 태운 차량을 운전한 줄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그 소문의 의사인 병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자신에게 한 가지 물었다.

“위이에는 통신장비가 있습니까?”

“원래 목적지인 안트베르펜으로 가기 전 위이에서 중간 차 휴식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적의 습격을 받아서 이 모양이지만 말이죠.”

“잘 됐군요. 하지만...”

운전병 래리는 병재가 왜 말 끝을 흘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예. 분명 적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위이 주변에 매복해 있을 것입니다.”

“으음. 원래 안트베르펜이 보급기지 역할을 했습니까?”

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물음에 긍정하고 더욱 자세하게 말해준다.

“안트베르펜은 우리 연합군에 있어서 보급기지입니다. 적들의 공격 예상목표가 그 곳이라는 것은 병사인 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이는 중간 보급기지군요”

“예. 위이는 안트베르펜과 전선을 잇는 보급로 사이에 위치한 도시라서 선생님 말 그대로 중간 보급기지입니다.”

“흐음.”

병재는 래리의 말을 듣고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목표인 안트베르펜으로 갈지 아니면 위이로 갈지에 대해 이점과 위험성을 비교하고 있었다. 안트베르펜으로 직접 걸어가면 적들에게 들킬 위험성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 곳까지 갈 식량과 식수 등 물품 등이 부족했다. 위이는 그런 걱정거리가 없고, 또 보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들이 그 곳 주변에 매복해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안트베르펜으로 직접 가기로 결정한다면 가는 도중 필요한 물품 등을 직접 구해야했다. 운이 좋으면 도중에 마을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마을의 상태가 온전하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보통이라면 사냥 혹은 산에서 나는 열매 풀등을 뜯으며 먹을 것이 기대된다.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위이로 갈 경우이다. 위이로 갈 경우, 안트베르펜으로 갈 때 생기는 걱정거리를 충분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을 습격할 당시 그만큼 철저했던 적들이다. 십중팔구 위이 주변에 적들이 매복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적들을 들키지 않거나 들키더라도 따돌리고 갈 방법과 물품 등을 구비해야 한다.

“래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병재는 래리에게 시선을 돌려서 생각을 물어봤다. 고민하다 말고 갑작스럽게 질문하는 병재의 모습에 래리는 잠시 어벙하다가 곧 대답한다.

“한 가지 생각할 점은 위이 주변에 적들이 있을 확률이 높지만 또 그렇다고 안트베르펜 주위에 적들이 안 매복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은 위이로 가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상층부에서는 우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같은 위험성이라면 안트베르펜으로 가는 것보다 위이로 가는 것이 나을 지도 모릅니다.”

병재는 래리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진지하게 바뀐다.

“좋습니다. 이제 생각해봅시다. 십중팔구 위이 주변에 적들이 매복할 가능성은 큽니다. 우선 어떻게 들어갈 지부터 생각합시다.”

“어느 경로에 갈 것인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까?”

“으음. 내가 말하는 의미가 많이 중첩이 됐군요. 당신 말대로 어느 경로를 통해서 갈지 생각해봅시다. 적들이 매복할 장소로는 우리가 쉽게 위이로 갈 수 있는 지형지물이겠죠.”

“그렇다면 대로를 통해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습니다.”

래리의 말에 병재는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대로의 경우 한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급로라 한다면 필시 보급차량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으음.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적들이 그걸 생각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들이 일일이 보급차량들을 전부 검문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검문이라. 그 점을 노린다면 위이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들이 돌발행동을 하여 보급차량을 노리는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다 적들이 공격을 개시하면서 공습까지 하는데 보급로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병재는 래리의 말에 가능성을 느꼈는지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당신 말대로 대로는 제외해야겠군요. 대로의 경우는 운에 맡기는 최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래리도 병재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예. 그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보통의 경우 걸어가야 한다는 뜻인데 어떻게 갈 생각입니까?”

“으음. 험로를 통해 갑시다. 경사가 매우 심한 곳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적들이 그 포위망을 돌파한 우리의 능력을 고려하여 그 곳에 매복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 것보다 더 험난한 장소, 아니면 매복할 곳이 힘든 장소를 건너며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경로가 있겠습니까?”

병재는 씩 미소를 지으며 지도를 꺼내 펼친 다음, 펜으로 지금 자신들의 위치와 위이까지의 경로를 그린다. 경로의 경우의 수는 그야말로 몇 십 개나 되었다. 래리는 놀란 눈빛으로 병재를 쳐다보며 말한다.

“선생님. 어디 군 특수부대에 나왔습니까?”

“군대는 군의관밖에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적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경험이 한 번 있어서 그런지 독도법과 지형지물에 대한 기술들을 익혔을 뿐입니다.”

“으음. 그 탈출이 얼마만큼 험난하기에 이렇게 철저히 대비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하고 가도 적들이 예상치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래리는 그 말을 하고 지도에서 그어진 경로들을 바라보며 감탄의 눈빛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래리는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과연 자신과 병재는 이 경로를 갈 수 있을 상태가 될 것인가?

래리는 그런 근심거리가 생겼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이미 마음을 정했다. 이대로 앉아 있다가 아무런 득도 없었다.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였다.

래리는 일어서려다 잠시 허벅지에 통증을 느낀다.

“윽.”

‘아 맞다. 허벅지에 총탄 맞았지.’

하지만 래리는 허벅지에 총탄을 맞은 기억이 생생했지만 허벅지에 느끼는 고통은 그저 삔 듯 욱신거릴 뿐, 고통의 강도는 현저히 약했다. 래리는 설마 하는 감정으로 병재를 쳐다본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겼습니까?”

“아. 아닙니다. 혹시 허벅지의 상처는 선생님이?”

“원래 군의관 출신이라서 치료를 해두었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총상의 후유증도 금방 가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참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선생님이 잘 치료를 해주었는데 엄살은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겠죠.”

래리는 총상을 맞은 허벅지에 조금 질질 끌었지만 걷는 데는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병재의 시선은 조금 다른 모양인 것 같았다. 병재는 래리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혹여 몸이 힘들다고 하다면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으음. 지금은 버틸 만합니다. 나중에 제가 버티기 힘들면 그 때 말하겠습니다.”

래리의 눈빛 속에 활활 타오르는 의지에 병재는 걱정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사를 존중해줬다. 병재와 래리는 아까 정한 경로를 통해서 위이로 목적지를 변경하고 발걸음을 시작했다.

독일군의 선봉장 만토이펠은 막사 안에서 상층부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왜 갑자기 작전을 바꾼 것인가? 오토 슈코르체니의 부대를 후방 교란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임무를 변경한 걸 확인했어. 이유가 도대체 뭐야?-

통신장비 너머 상대방의 화난 말투가 여기까지 들린다. 통신장비를 다루는 병사들과 주위 장교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하지만 만토이펠 장군의 표정은 담담하기까지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총통 각하께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용서? 용서라고? 내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작전을 바꾼 녀석에게 용서라고? 정말 빌고 싶나? 어떻게든 빌고 싶나?-

통신장비를 통해 들리는 상대방의 목소리, 바로 유럽에 세계 제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을 시작한 아돌프 히틀러였다.

“이야기를 듣는다면 총통 각하의 생각이 변할 지도 모릅니다.”

-......-

“그리고 각하. 지금까지의 작전은 별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적들의 화력과 장비가 우수해서 막히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보고를 통해서 알고 있어. 그러니 자네의 말은 자네가 공을 세우고 있으니 과를 감쇄해 달라 그런 소리인가?-

“그 것과는 다른 말입니다.”

-뭐가 다른지 이야기를 들어보지. 별 시덥지 않은 변명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야.-

히틀러의 말에 만토이펠은 조금 짜증과 분노가 일었다. 실패할 가능성을 세우고 만들며 시행하는 인간이 누구인데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만토이펠은 인내심을 내어 가까스로 참았다.

“적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정보? 무슨 정보이기에 작전을 바꿀 만 하지?-

“지금 영국군에게 신의가 있다는 보고입니다.”

-신의? 자... 잠깐... 신의라고 한다면 그 팔과 다리를 재생시킬 수 있는 재생의학을 창시한 그 신의 말인가?-

“예. 그 정보를 전달한 사람이 미군에게 잠입하고 있던 오토 슈코르체니 대령이 전해주었습니다.”

-...... 이해가 가는군. 왜 작전을 바꿨는지 이해가 가. 그런데...-

그런데 부분에서 말끝을 흐리는 히틀러의 말에 만토이펠은 조금 긴장했다.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나에게 보고를 안했지? 그런 중요한 보고가 있다면 나에게 즉시 보고해야할 텐데? 변명을 들어보지. 핫산 폰 만토이펠-

“그 점에 대해 송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입수한 시점이 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입수했기 때문에 작전 내용을 바꾸기 위해 보고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 내용이 적들에게 감청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고를 미처 드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 건으로 책임을 지라고 하신다면 책임을 지겠습니다.”

-좋아. 변명거리가 아주 훌륭했어. 보고 시간이 없었다고? 그거야 주위의 다른 놈들에게 보고들을 들어보고 결정할 수 있어. 다만 지금이라도 보고했으니 그 과는 조금 감쇄해 주지. 현재 그를 붙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지?-

“총통 각하께서 저에게 오토 슈코르체니의 작전을 왜 바꿨냐고 항의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바로 그의 부대의 작전내용을 바꿨습니다.”

-오토 슈코르체니의 부대라면 가능성은 있겠군. 판단은 적절했군.-

“미리 보고하지 못해 죄송할 마음입니다.”

-그래그래. 하지만... 만약 그를 붙잡는데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겠지?-

“이미 이 작전에 제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염려 붙들고 매십시오.”

-목숨을 건다라? 하 웃기는군. 목숨을 걸겠다고 해놓고 실패한 인간들은 참으로 많았지. 하지만 자네의 판단을 조금 믿지. 좋아 알아서 하게나.-

그 말을 끝으로 히틀러와의 통신은 끊어졌다. 만토이펠은 보고가 끝나자마자 얼굴을 바꾼다. 히틀러에 대한 충성스러운 표정에서 히틀러에 대한 반감과 짜증과 증오로 말이다.

“흥. 자네의 판단력을 믿어? 자기는 별 되먹지 않는 작전을 세워놓고 희희덕 거리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짜증나는 백수 녀석이.”

그렇게 히틀러에 대해 욕설을 퍼부은 만토이펠은 신경질 나는 표정으로 부관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어본다.

“지금 오토의 보고는 없었나?”

“처음 목표물을 포위하고 생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예상 지점을 수색 중에 있다고 합니다.”

“뭐? 실패? 그게 무슨 소리야?”

“원래 다리를 끊어놓고 매복 기습해서 생포하려고 했지만 목표물이 한 명을 업고 끊어진 다리 대신 아예 강을 뛰어 넘은 뒤 바로 도주했다고 합니다.”

“뭐? 그게 사실이야? 영화 속 이야기를 생각하고 지어내서 보낸 이야기 아니야? 허. 그 천하의 오토도 실패할 때가 있다니.”

“역시 목표물의 가치가 그만큼 대단한지 일도 그만큼 난이도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개 의사가 철저히 준비된 오토 대령의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다니 역시 그 신의라는 작자는 보통이 아닙니다.”

만토이펠은 부관의 말에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 생각났는지 아! 하고는 자신의 떠오른 생각을 부관에게 이야기해준다.

“원래 그 신의라는 작자는 일본군 노역을 했다고 하더군.”

그 말에 부관은 어이가 없었는지 만토이펠에게 반문한다.

“노역요? 군의관이 아니라?”

“그렇다고 하더군.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 친구에게 들은 것이지만 말이야. 아주 황당하다고. 그런 인재를 노역자로 배치하다니 말이야.”

“뭐 이런. 병신같은 일이.”

“그래. 병신 같지. 그 친구도 그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의 조국에게 욕설을 다 퍼부었어. 병신 같은 조국이라고 말이야. 죽을 떠도 못 먹는 병신들 천국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아무래도 그는 그 노역 장소에서 동료들을 이끌고 탈출했나봐.”

“탈출요? 허어. 노역 장소가 어디었기에.”

“탈출이 불가능한 섬 지역이었지. 이름이 타라와라고 하던가? 하여튼 그 섬에서 죽을 만큼 혹사당하다가 미군이 침입을 개시했을 때, 그 때를 노려 탈출에 성공했나봐. 아무래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오토의 처음 시도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일이지.”

부관은 만토이펠의 말에 그럴 만하다고 느끼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타당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 포위망 속에서 순순히 항복할 것인데.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그 상황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탈출을 시도할 수도 있겠죠.”

“그래. 그래서 골치가 아픈 것이야. 그리고 그를 붙잡는다고 해도 그가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그건 아.”

부관은 만토이펠에게 이유를 물어보다가 이내 자신도 깨달았는지 그만두고 생각에 빠진다.

“우리 대독일제국은 일본제국과의 동맹국 사이였죠. 만약 그를 회유하고자 한다면 철저히 일본제국과의 관계를 부정해야 합니다. 정 통하지 않는다면 협박과 고문도 해야겠지요.”

“글쎄. 고문과 협박한다고 될 일인가? 그는 오토의 철저한 포위망 속에서 탈출을 시도한 인간이야. 고문과 협박으로 의지를 꺾일만한 인간이 아닐 거야.”

“그렇기는 하겠군요. 철저히 회유작전을 통해 그를 감복시켜야 제대로 그를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영국의 수상은 역시 웃기는 인간이야. 그 전선에 군의관 교육한다고 그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인간을 전선으로 파견을 보낸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 실수가 지금 우리에게 기회로 다가왔죠.”

“그래 맞는 말이야. 우리 독일제국을 살리기 위해서 그 기회를 잡아야 돼.”

만토이펠의 눈빛에는 병재의 생포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아마 120편까지는 병재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 후부터는 병윤과 병주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죠.

풍성한 댓글은 당신의 마음도 풍성하게. 모두들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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