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0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1944년 12월 21일 새벽 4시, 위이 주변에 병력들이 모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소총을 양 손으로 붙잡았고, 어떤 이는 수류탄들을 바라보며 점검하고 있었다.
“허. 위이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이들을 뚫고 가다니.”
오토 슈코르체니 대령은 위이를 바라보면서 곤란한 얼굴을 한다. 만토이펠의 연락을 듣고 여기까지 왔기는 하지만 지금 위이 주변에 서고 있는 경계상태가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지난 번 호위실패로 인해 영국군 상층부에서 단단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위이에 주둔하는 경계병들의 얼굴이 긴장감이 서려있고,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힘들겠군. 이번 임무 정말 힘들겠어.”
그 때, 오토 옆에 서 있던 부관이 그에게 말을 건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철수합니까?”
“철수라. 흥! 난 오토 슈코르체니다. 어떤 난관에 있더라도 저 장애물들을 뚫고 나아갈 것이야. 영국 놈들이 아무리 경계를 하고 있다지만 우리를 막는데는 역부족이야.”
“그런데 왜 힘들다고 말씀하십니까?”
“목표물.”
목표물이라는 오토의 말에 부관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목표물이라면? 그 의사 말이군요.”
“그래. 저 경계 서고 있던 놈들은 가치가 없다. 내가 가장 난감해 하는 것은 그 목표물의 능력이야. 지독한 의지를 지닌 사나이라고 볼 수 있어.”
“지독하다는 것에 동의하겠습니다.”
부관은 넌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도대체 몇 번을 놓치지는지 모르겠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포위망을 빠져나오고, 시선을 끌지 않고 위이에 잠입했다. 평범한 의사가 가능한 일일까? 그 때, 오토가 부관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지?”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제 시행합니까?”
부관의 물음에 오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그래. 시행하지.”
결국 마음을 정한 오토는 망원경을 거두고 자신의 소총을 양 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위이 안에서 기다리는 목표물을 생각하면서 이를 간다.
결정을 했으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그건 오토의 경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위이에 잠입 하는데 성공한 부하들은 곧바로 경계를 서고 있는 인원들을 공격했다. 그 후, 잠입한 오토의 부대들과 경계를 서고 있는 영국군 경계병들의 총격전이 이어졌다.
-탕! 탕! 탕!-
한 오토의 부대원이 재장전하면서 소총을 조준 영국군에게 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총은 STG44, 최초의 돌격소총으로 불리는 물건이었다. 그 소총을 든 병사는 벽에서 엄폐하면서 사격하고 있던 영국군 병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갈긴다.
-드르륵!-
잘 사격하고 있던 영국군 병사는 STG44의 위력과 연사에 단번에 날아갔다. 그 후, 화력과 연사력을 앞세운 오토의 부대원들은 위이 안으로 진격한다.
한편, 부대원들 중 정예병들과 오토는 같이 걸으면서 목표물을 탐색하고 있었다. 어떤 한 집에 들어간 오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병사들에게 말한다.
“철수! 이 집은 아닌 것 같다.”
정예병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집을 나갔고, 오토는 웃는 낯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집주인에게 말한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오토는 그 말을 하고 재빨리 집 밖을 나갔다. 간만의 습격을 받은 집주인은 공포와 어리둥절이 섞인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한편, 위이의 습격 사실은 곧 몽고메리 장군에게 알려졌다.
“뭐?! 지금 위이가 습격을 받고 있다고?”
“예. 지금 공격하고 있는 부대는 오토 슈코르체니가 이끄는 부대라고 합니다.”
“오토 슈코르체니라고... 그 위험한 인물이 나섰다니...”
몽고메리 장군은 오토 슈코르체니의 이름을 듣자마자 난감하고도 다급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표정 속에서 나오는 말투는 금방 부관에게 전해진다.
“빨리 위이에 지원부대를 보내.”
“하지만 여기서 위이까지는 병력을 보내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끄응. 젠장. 그래도 보내!”
몽고메리 장군의 결정에 부관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부관은 곧 통신병들에게 몽고메리 장군이 말한 바를 전한다. 그 동안 몽고메리 장군은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제길... 제길... 젠장...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몽고메리 장군은 오늘 새벽이 왠지 악몽처럼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이 난리를 겪고 있는 것은 오토 슈코르체니가 찾는 목표물인 병재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재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말하는 경계병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병재는 경계병이 말하는 상황을 알아듣고 간단한 짐을 챙긴 후, 양 손에 권총을 잡는다. 그리고 경계병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의 안내를 받겠습니다.”
경계병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다시 고개를 정면을 향해 긴장한 얼굴로 살피고 있었다. 양손에 소총을 들면서 적이 나타나면 즉시 쏠 수 있도록 자세를 갖춘다.
경계병 2명과 병재는 천천히 원래 있던 건물에서 빠져나간다. 건물 밖 거리는 매우 어두웠지만 병재의 귀에는 주위 사방에 총격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병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사태에 대비하여 온 감각을 집중했다.
그렇게 경계병의 안내를 받아 얼마 걷고 있을 무렵이었다.
-탕! 퍽! 탕! 퍽!-
먼저 앞서 가던 경계병 2명은 총격을 맞고 쓰러졌다. 병재는 본능적으로 주위 벽으로 엄폐한다. 그 때 병재의 귀에서 예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야. 의사 양반.”
병재는 긴장한 얼굴을 하면서 주위를 살핀다. 사방에서 인기척을 느낀 병재는 권총을 양손으로 꽉 잡는다.
“이제 슬슬 말이라도 해보시지.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었거든.”
이미 적들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것 같았다. 병재는 이를 꽉 깨물고 말한다.
“그래. 그렇게 듣고싶다면 말해주지.”
“허! 처음이군. 동양인 의사의 목소리를 들은 것을.”
“하지만 당신에게 납치할 생각은 없어.”
그 말에 적 한 명이 뚜벅뚜벅 걸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인 오토 슈코르체니 대령이었다. 병재는 그에게서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그에게 주눅 들지 않았다.
“긴말하지 않고 말하지. 순순히 따라올텐가? 아니면...”
“순순히 따라오지는 않겠어. 내 별명이 하와이 피스톨이야! 그리고 그 지옥 같은 타라와에서 탈출한 나야!”
병재의 투기가 느껴지는 외침에 오토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할 수 없군. 생포에 용이하도록 사격해!”
-두두두두! 두르륵!-
오토의 말 한 마디에 병재 주변에 총알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병재의 눈에는 그 총알들의 궤적이 보였다. 지난번 사이판에 있었던 경험의 재연이었다.
오토는 총격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꺾이지 않는 병재의 눈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얼굴을 한다.
“젠장. 당신이 그 타라와에서 어떤 지옥을 헤쳤는지 모르겠지만. 난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다!”
오토 슈코르체니 대령이 앞으로 나서서 병재에게 달려든다. 그 때를 기해 주위 병사들도 같이 달려들었다. 병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토와 병사들의 모습에 자신의 막내 병윤에게서 배운 무술의 자세를 취한다.
‘병윤이 야학 때 배웠던 일본인 선생의 키바오니 무술을 쓰게 될 줄이야.’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았던 일본인들의 무술을 쓴다는 것이 병재의 마음에 걸렸다. 먼저 오토는 달려 나가며 권총의 총구를 들이댄다. 그리고 병재의 손을 향해 권총을 쏜다.
-타아아앙!-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다. 병재는 손을 거두며 총알을 피하고 곧 이어 달려 나가는 오토를 상대한다.
-휙!-
병재는 먼저 한 손으로 오토의 손을 잡고 꺾은 뒤 오토의 발을 뒤로 차서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 후 나머지 한 손으로 오토의 목을 잡고 바닥으로 쓰러뜨린다. 곧 이어서 달려드는 오토의 부대원들도 상황에 맞게 처리했다.
“끄윽. 당신을 붙잡는 것이 힘들 줄은 알았지만...”
오토는 쓰러진 채로 병재를 바라보며 한 마디 중얼거렸다. 병재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말한다.
“당신이 전쟁터를 전전해서 경험을 많이 쌓았지만 타라와에서 겪은 지옥은 그에 비하면 별 거 아니야.”
“일본인들이 어떤 지옥을 불러 왔는지 궁금하군...”
그 말을 끝으로 오토는 기절했다. 병재는 기절한 오토와 주위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한 숨을 내지른다.
그 때, 병재에게 다가오는 영국군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영국군 병사들은 소총을 들이민 채 병재에게 다가오다가 이내 병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소총을 내린다. 그리고 적을 제압한 병재의 모습을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바닥에 쓰러진 적들은 당신이 하신 일이십니까?”
병재는 그 말을 듣고 그 물음에 말 대신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신 답한다.
“다행입니다. 선생님이 납치당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허억!”
그 때, 병재가 기절한 인원들 중 한 명의 얼굴을 보고 경악한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오토 슈코르체니 대령...”
영국군 병사의 반응을 보니 병재는 자신이 어떤 이를 기절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덤벼들 때, 자칭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오토 슈코르체니의 부대는 임무에 실패하고 위이에서 와해되었다. 그리고 병재에게 한 가지 별명이 붙었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를 제압한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아주 이름이 긴 별명이었다.
한편, 위이의 소식은 몽고메리 장군에게 전해졌다.
“휴우. 끝났군. 미스터 길에게 닥친 상황은 완전히 끝이 났어.”
“정말. 그 친구는 엄청납니다. 어떻게 그 사나이를 기절시켰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이제 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야. 위이를 습격한 부대는 어떻게 되었지?”
“오토 슈코르체니가 붙잡히자 철수하거나 붙잡히고 있습니다. 위이는 한 숨 붙들어도 되겠습니다.”
“그렇군. 이제 이 이야기는 되었어. 일단 위이에 닥친 상황은 수습하도록.”
“예. 그런데, 44식 중전차의 공여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몽고메리 장군은 부관의 말에 고개를 들이밀면서 말한다.
“그래. 어떤 말이 있지?”
“미국 측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뭐어?! 그 양키 녀석들이 또 왜?!”
“자기들도 쓸 것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특히 미군의 패튼 장군이 결사반대하는 지라...”
“이런 미친 패튼 녀석이 난리야?!”
“지금 그는 티거와 콰이니스티거를 상대하려면 이 쩔어주는 전차가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아까운 녀석을 능력이 안 되는 영국군에게 공여할 수 없다고...”
-콰앙!-
몽고메리 장군은 부관의 설명을 듣다가 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젠장! 패튼 녀석에게 얼른 연락해!”
“예!”
부관은 얼른 통신병들에게 다가가 몽고메리 장군이 말한 바를 전달한다. 통신병들의 능숙한 장비운용에 패튼 장군에게 연락이 되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통신장비 너머 패튼의 으르렁거리는 말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하지만 몽고메리 장군은 그 말투보다 자신이 더 화가 났다는 것을 증명하는지 패튼에게 따진다.
“이것 보시오! 패튼장군! 지금 우리에게 44식 중전차를 공여해주지 않겠다니 이 무슨 소리요?!”
-흥!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 군대에게 이 쩔어주는 녀석을 건네줄 수 없어서 반대했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당신이 그 전차에 대해 오줌을 찔끔찔끔 싸는 것은 내 알 바가 아니오! 당장 그 중전차를 우리 쪽으로 배치하시오!”
-내가 왜 그래야 됩니까? 지금 독일군의 주력이 우리 미군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데. 난 그 쪽 상대하기가 바쁜 몸이오.-
“하! 지금 장난치시오? 그래. 당신 말대로 적의 주력이 당신 쪽으로 향하는 것은 맞소. 하지만 우리 쪽도 적의 전차부대가 안 오는지 아시오?! 그들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장비를 요청하는 것 뿐인데 왜 이렇게 인색하시오?!”
-인색? 인색이라 말했소? 지금 우리 부대는 군단, 군 급의 병력이 쏟아지고 있소?! 당신 쪽으로는 적 2개 사단이 공격 중이라고 하던데. 그런 상황 속에서 중전차를 공여한다는 참으로 소풍가는 편한 짓거리를 할 수 있다고 보시오? 정신 차리시오.-
“지금 이 곳이 뚫려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오?”
-흥. 그 쪽의 일은 그 쪽이 알아서 해야 할 일. 난 내 할 일로 바쁜 몸이니 이 쓸데없는 대화는 그만하도록 하겠소.-
“이보시오! 이보시오! 패튼 장군!”
몽고메리 장군의 절규에도 패튼 장군과의 연락은 툭하고 끊어졌다. 정말 패튼 장군은 매정한 사나이였다. 정말로.
“이런 빌어먹을!”
몽고메리 장군은 책상을 연신 내려쳤다. 그 것만으로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발로 바닥을 연신 밟아댔다. 몽고메리 장군은 바닥이 패튼 장군의 얼굴이라고 상상하면서 밟아댔다. 그래놓고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부관은 그런 몽고메리 장군의 행동에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몽고메리 장군에게 있어서 다행과 분노라는 두 가지 감정이 오늘을 지배했다.
나치 독일군의 아르덴 공세는 이번 오토의 실패를 기점으로 둔화되었다. 거기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병력들의 빠른 재배치와 패튼 장군의 맹활약, 그리고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돌출부를 찌르자 아르덴 공세는 무위로 향했다.
더욱이 독일의 동부전선에 있었던 병력들이 아르덴 공세 쪽으로 쓰인 것을 포착한 처칠 수상은 소련의 스탈린에게 연락하여 방어가 약해진 동부전선의 상황을 알리고 찌르도록 유도했다.
한편, 병재는 이 상황 속에서 군의관 치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미군과 영국군의 호위 하에 안전하게 안트베르펜으로 향하고, 그 곳의 공항을 빌려서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재생치료센터로 되돌아간 병재는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하와이 피스톨이라고 놀림 당했다. 하지만 그 호칭에 병재는 창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한 표정으로 자랑스러워했다.
결국 병재는 호칭이 미스터 길, 그리고 하와이 피스톨로 불려 지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하와이 피스톨!
당신의 용기를 댓글로 표현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