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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회의실 안,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신유철의 검지가 턱에 톡톡 건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2일이라는 시간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 모양인 것 같았다.
“정말 2일 안에 돌파할 수 있겠소?”
신유철의 물음에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김홍일 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충분히 가능하다라... 그렇다면 산맥을 넘는 광복군은 보병 위주로 전투를 치르는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우선 산맥을 넘을 동안에는 보병 위주이겠지만 산맥을 넘은 뒤부터는 곧바로 전차, 야포 등을 수송한 후 공격할 계획입니다.”
“전차와 야포의 무게는 수송기로 감당할 수 있겠소?”
“부품들을 따로 구분해놓다가 바로 조립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런 방법도 있었군. 알겠소.”
신유철은 이제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김홍일 사단장을 쳐다본다. 그 후 김홍일과 병주에게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한다.
“알고는 있겠지만 우리 군단의 주력은 여양시를 관통하는 이 철도를 따라서 공격할 계획이오.”
“적들을 끌어내는 계획입니까?”
“일본군 입장 상에는 성동격서를 예상해도 이 철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자기들의 목줄을 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김홍일은 그 말에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신유철은 지도 상 여양성 서북쪽에 있는 산맥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그리고 만약 여양성 내부에 병력을 남겨놓아도 그 쪽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 당연할 것이오.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의 숫자는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이지. 특히 광복군의 공세는 예상치 못할 것이오. 서쪽의 산맥을 뚫고 공격한다는 생각을 못하니 말이오.”
“......”
김홍일은 조용히 신유철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기로는 2일은 산맥을 돌파하기에 아주 빠른 속도인 것 같소. 괜한 허풍은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소.”
신유철이 김홍일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추궁한다. 하지만 김홍일은 당황하지 않고, 병주가 계획을 설립할 당시와 훈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 광복군은 약 1~2개월 전에 산맥을 횡단하는 훈련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돌발 상황의 경우를 상정해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료를 내놓으시오.”
그 말에 병주가 책상 위로 자료들을 올려 둔다. 약 책 5권 분량의 자료들이었다. 신유철은 병주를 쳐다보며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자네도 있었군. 아 참. 내가 불렀지.”
병주는 신유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광복군 훈련에 대한 상황을 총 집계해서 수집한 자료들입니다. 이것들을 살펴보시면 우리 광복군이 왜 2일 안에 산맥을 돌파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조리 있는 병주의 말에 신유철은 됐다는 기분으로 말한다.
“자네가 그렇게 준비했으니 말은 맞겠지.”
“믿어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군단은 광복군이 산맥을 돌파하는 시간을 2~3일로 잡겠네. 만약 그 시간 이후로 산맥을 돌파하는데 실패한다면 우리 군단의 작전이 얼마만큼 헝클어지는지 잘 알고 있겠지?”
김홍일과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믿어주라는 표정을 지었다. 신유철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휴우 하고 한 숨을 내쉰다. 그 때, 병주가 신유철에게 한 가지 물었다.
“저 군단장님.”
“뭔가?”
“태원시에 있는 염석산의 경우는 어떻게 처리되었습니까?”
“으음. 그 쪽의 경우는 아직 잘 모르겠네. 그래도 확실한 것은 그 쪽이 우리 쪽으로 원군을 내보내봤자 전력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또 그 쪽의 성격상 일본군을 내팽개치고 우리에게 협력했으면 협력했지. 우리를 공격할 상황은 아니야. 만약 그가 우리를 공격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멸망일걸.”
신유철의 대답에 병주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예.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염석산이 우리 쪽에 공격하는 경우의 수도 있으니 상정하는 것도 좋네. 그러면 최종계획을 빨리 정하자고.”
신유철은 그 말을 한 직후, 최종 작전계획들을 토의하면서 정했다. 그 속에서 김홍일과 병주가 끼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시각, 중국 연구 기술원의 총괄장실에는 총괄장 전학삼의 호통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야! 이 자식아! 너 왜 이 일을 나에게 떠 넘겨!”
그 말에 부총괄장 송감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그 권한은 총괄장이 하시는 거잖아요. 저는 규율대로 일을 넘겼습니다.”
“이게 말이 돼! 이 자식아!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아. 내가 로켓 전문이지 농학 전문이냐?”
“아니 그럼 전 농학 전문입니까? 저 못 배운 놈이에요.”
“야 이 자식아! 사표 써 사표 쓰라고!”
송감연은 그 말에 진짜로? 라는 얼굴을 짓고는 왠 떡이냐는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 사표 쓰겠습니다.”
“...... 이 자식이! 열 받게 할래?!”
“아니 사표 쓰라고 하셨으면서!”
“이 자식이! 그래도!”
“아 몰라몰라. 전 못 배운 놈이니까 전 안 하겠습니다.”
감연은 떼를 쓰기 시작하자 전학삼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감연을 보고 한 숨 푹 내쉬면서 감연을 달랜다.
“아니 감연아. 생각해봐라. 이 농기계 연구 왜 내가 해야 하니? 내가 아무리 물리학, 기계공학을 나왔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냐?”
“전 아무 것도 안 배운 놈입니다. 그런데 왜 이 일을 저에게 떠넘기려고 하십니까? 전 다른 일로도 머리 아파 죽겠습니다.”
전학삼은 감연의 말에 ‘끄응’하고 침음성을 냈다.
“이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총통 각하께 소리를 들어야 정신 차리겠냐?”
“아 전 모르겠습니다. 가뜩이나 재건 때문에 바쁩니다.”
“하아. 중경공단 회장에 있는 친구 녀석의 도움을 받아서 조직을 정비하는데 성공해서 일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는데 내 너 때문에 열이 뻗친다.”
“열이 뻗치시면 당당하게 너 나가 이 자식아! 라고 외치면 됩니다.”
“......”
“아니 남자답게 소리 지르세요. 너 이 자식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하아. 요즘 너가 신경이 날카로워 졌군. 에라 졌다. 졌어. 내가 하마. 응. 내가 한다고.”
전학삼은 결국 항복 선언을 하고야 만다. 감연은 그 말에 슬그머니 미소를 짓고 마음 속에서는 축폭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너를 포함한 조선인 연구자들은 어떻게 지내냐?”
감연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젠장. 내 이렇게 열불 나는 녀석들은 처음입니다. 저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치고 있지만 쓸려면 1년은 더 있어야 됩니다.”
전학삼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너도 조선인이잖아.”
“......”
송감연은 전학삼의 말 한마디에 할 말 잃은 표정이었다.
1944년 12월 29일, 중국 광주의 항구를 바라보는 일단의 눈빛들이 보인다. 지금 인부들과 건설기계를 운영하고 있는 조종사들이 항구를 복구하고 있는 와중이다.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후퇴할 때, 항구를 망가뜨려서 복구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항구의 재건모습을 쳐다보는 병윤은 소감 한 마디를 내뱉는다.
“재건이 조금씩 이뤄지는 것 같군.”
그 중얼거림에 귀에 들린 비서실장 진세연이 병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예. 대략 50%까지는 복구 완료한 것으로 보입니다.”
“50%라.”
“그리고 복구한 시설 순으로 외국 국적의 배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요즘 광주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은 빠르게 재건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쟁의 피해로 파괴된 폐허들을 치우고, 신도시 계획에 따라 시설들을 차차 건립하고 있습니다.”
“시설이라 한다면 중경에 만들고 있는 상하수도 설비 시설과 전력수급 시설, 문화, 교통시설을 말하는 군요.”
“예. 광주에 있는 유력자들이 재건분위기에 따라 돈들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광주의 경기가 활황인지라 요즘 시민들의 유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병윤은 진세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면 총통 각하께서도 만족하겠군요.”
“예. 회장님의 능력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음...”
진세연의 말에 병윤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 때, 정장을 차려입은 백인 중년 남성이 병윤에게 다가오면서 인사한다.
“당신이 그 유명한 중경공단의 회장님이십니까?”
그 물음에 병윤이 고개를 돌리며 중년 남성의 정체를 확인한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인 것을 확인하자 병윤이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전 트라이트 해운 상사의 사장인 바밀 쏘이든 이라고 합니다.”
쏘이든 사장이 악수를 건네자 병윤은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받는다.
“아 당신이 이 광주에 원재료들을 수출하고 있는 해운 상사입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전 중경공단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길병윤이라고 합니다.”
“하하. 당신의 존재는 이미 전 세계의 자본가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새로운 계약이라도?”
“예. 어디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병윤은 좋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호의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병윤의 말에 쏘이든 사장은 싱긋 웃고는 자신이 앞장섰다.
차를 타고 몇 분 뒤, 쏘이든 사장이 말한 레스토랑은 꽤나 근사한 곳이었다. 서양식으로 된 레스토랑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사장과 요리사들이 중국인이 아니라 서양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내부 안은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었고, 부유한 중국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지배인이 안으로 들어온 쏘이든 사장을 발견하고는 얼른 다가오며 친근한 말투로 말한다.
“쏘이든 사장님이시군요. 그런데 옆에 분은...”
“이 분은 현재 중경공단의 회장직을 맡은 길병윤이라고 하네. 자네도 그 명성을 잘 알고 있지?”
쏘이든 사장의 말에 지배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길병윤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다시 얼굴을 고친 후 영광이라는 말투로 말한다.
“이 광주의 재건에 투자하고 계시는 회장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께서 이곳에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쏘이든 사장님이 이곳의 맛이 좋다고 추천해서 따라왔습니다.”
그 때, 쏘이든 사장이 지배인에게 한 가지 말한다.
“혹시 비어있는 VIP실은 있는가?”
“예. 당연히 있습니다.”
“그 쪽으로 안내해주게. 이 분이랑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지배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 그럼 주위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이 먼저 앞장서자 쏘이든 사장과 병윤이 뒤를 따라갔다. 어느 정도 발걸음을 옮기자 지배인이 말한 VIP실에 도착했다. 지배인은 VIP실의 문을 열면서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여기에서 편한 식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쏘이든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VIP실 안으로 들어가자, 병윤과 비서실장 진세연도 따라서 들어갔다. VIP실 안은 꽤 넓었고, 호화스러웠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었다. 쏘이든 사장과 병윤, 진세연은 서로 마주보도록 자리에 앉았다.
쏘이든 사장이 먼저 병윤을 바라보면서 말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중경공단 덕분에 제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사장님의 정직과 신뢰를 알아보고 계약했으니 그리 마음을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쏘이든 사장은 병윤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그 후로 둘은 서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쏘이든 사장이 먼저 본론을 꺼내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이번 계약을 좀 더 확대 및 연장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쪽에서 그런 의사가 있다면 저야 좋습니다.”
“철광석 매달 철광석 100만 톤의 거래를 추가로 하고 싶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100만 톤이라. 그 정도의 양이라면 그 쪽 정부에서 신경쓸만한 양인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요즘 전쟁 분위기 속에서 철광석 수요가 폭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철광석들이 매우 많이 채굴되었던지라 처치가 곤란한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으음. 그렇게 말씀하시니 곤란한 상황을 잘 알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하도록 합시다.”
쏘이든 사장은 미리 준비해놓은 것처럼 계약서를 탁자 위로 턱하고 올려놓았다. 병윤은 그 계약서의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혹시나 틀린 사항들이 없는지 살펴본다. 계약내용은 장난치지 않는 것 같았고, 둘 다 공평한 입장인 것 같았다. 병윤은 얼른 서명한 뒤 정장 안에서 인주와 도장을 꺼내고 계약서에 찍었다.
쏘이든 사장은 계약서에 병윤의 서명과 도장이 찍히자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병윤을 쳐다보며 싱긋 웃는다. 바로 그 때, VIP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자식들아! 내가 누군지 알고 있어?! 나 광주의 당태용이야! 감히 나를 두고 이곳을 이용하려고 하다니.”
쏘이든 사장은 밖의 소란에 얼굴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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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