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23화 (12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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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VIP실 밖에서는 한창 난리가 일어난 모양이다. 지배인은 곤란한 표정으로 난동을 부리는 이를 말리고 있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기는 뭐가 안 되는데. 나 광주의 당태용이야!”

그 때, 문이 끼익 열리면서 방 안에 있던 쏘이든 사장이 지배인에게 굳은 얼굴로 묻는다.

“무슨 일인가?”

지배인은 쏘이든 사장의 굳은 얼굴과 말투에 큰 일 났다는 감정이 얼굴에 확 드러났다. 지배인은 얼른 쏘이든 사장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죄... 죄송합니다. 저 그게...”

그 때, 당태용이라는 난동을 부리는 이가 쏘이든 사장의 얼굴을 같잖게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뭐야? 이 양키 새끼는. 이봐. 당신이 이 VIP실을 차지했나?”

당태용의 반말 짓거리에 쏘이든 사장의 굳어짐은 더해간다. 그러나 당태용은 쏘이든 사장의 얼굴에 알 바 아니라는 표정을 한 뒤 검지로 쏘이든 사장의 몸을 툭툭 치면서 말한다.

“당신이 이 VIP실을 사용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거 어쩌려나? 나 광주의 당태용이야.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광주에서 실질적인 유지 중 하나라고. 내 아버지 명만 있으면 당신 거래 못하게 만들 수 있어.”

쏘이든 사장은 당태용의 말에 피식 하고 비웃는다. 당태용의 말을 들어보니 화가 난다기 보다는 저 철없는 아이가 어찌할꼬 라는 표정이었다.

“어? 웃어. 내 아버지 당준치야. 당준치라고 내 말 알고 있어?”

당준치라. 광주의 항구를 이용할 때마다 듣는 소리 중 이름 중 하나였다. 쏘이든 사장이 광주 항구를 여러 번 이용하기 때문에 광주에서 기거하는 지역유지들을 잘 알고 있었다.

“오? 그런가? 그 당준치의 아들인가 보군. 하.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난 미리 이 자리를 찜해두었거든.”

“미리 자리를 찜해둬? 허. 이 아저씨 상황 파악을 못 하시는군. 나 당준치의 아들 당태용이야. 여기서는 내가 광주의 왕자나 다름없다고. 광주에 사는 사람들이 내 아버지의 녹을 먹고 있지.”

“꽤 잘나셨군. 지배인.”

쏘이든 사장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지배인은 깜짝 놀라며 쏘이든 사장에게 다가온다.

“예. 부르셨습니까?”

“저 애송이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군. 잘 좀 설명해줘.”

“예. 알겠습니다.”

당태용은 순순히 말을 듣는 지배인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쏘이든 사장에게 으르렁 거린다.

“이봐! 내 말을 무시하나? 빨리 내 VIP실 내놓으라고!”

“저 도련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배인들과 경비원들이 당태용을 제지하자 당태용은 끝까지 화가 난 모양이었다. 당태용은 제지를 뿌리치며 외친다.

“허. 저 새끼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저 새끼의 말을 듣는다 이거지? 내 아버지의 녹을 받고 있는 이 버러지 자식들이. 감히 나를 제지해?”

지배인은 당태용의 말에 참으로 주먹이 울었다. 결국 지배인은 한 소리 하고야 만다.

“도련님. 잘 들으십시오.”

“뭐? 갑자기 분위기 왜 이래?”

“지금 이 방안에 누가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하? 그게 누군데 그 건방진 양키 새끼 말고 또 누가 있는데?”

“당신 아버지가 당준치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VIP실 안에 있는 분들을 거슬리면 당신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습니다.”

“......”

자신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는 상대가 저 안에 있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당태용은 지배인의 돌변한 말투에 이해가 안 갔다.

“기어코 이 방을 이용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에게 일러도 상관은 없습니다.”

“뭐? 내 아버지에게 일러도 상관없다고? 여기 장사 그만두고 싶구나?”

“VIP실 안에 트라이트 해운 상사의 사장, 그리고 중경공단의 회장님이 안에 있다고 꼭 전달해주십시오.”

“트라이트 해운 상사, 그리고 중경공단...”

당태용은 지배인의 말을 듣자마자 이 VIP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평소에 자신의 아버지인 당준치가 말하는 것이 있었다. 자신들 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자신은 광주 안에서만 유지이지. 중국 대륙에서 널리고 널린 인간이라고.

그리고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류가 바로 군벌, 그리고 중경공단이라고 말이다. 그 것 뿐만이 아니다. 지금 광주에는 재건의 분위기가 일어나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었다. 요즘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이 광주의 신도시 계획을 수행한다고 주택들을 건설하고 있는데, 그 건설 회사들이 중경공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당준치도 이 분위기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투자하고 있었다. 이때가 바로 기다려온 노다지의 때라고. 그런데 당태용 자신이 이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꿀꺽-

당태용은 자신이 얼마나 경솔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당태용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는지 그 생각들이 얼굴에 들어난다. 지배인은 그런 당태용을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

“여기서 제가 할 말은 다 끝났습니다.”

지배인은 그 말을 하고 당태용의 반응을 기다린다. 당태용은 하아 하고 한숨을 크게 내지른 뒤 지배인에게 작게 말한다.

“하아. 다른 방으로 안내해주게.”

지배인은 당태용의 항복 선언과도 같은 말투를 듣자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 도련님이 어떤 분인데 소홀히 하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지배인은 당태용을 다른 방으로 직접 안내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당태용은 가는 와중에도 곁눈질로 뒤를 돌아보며 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고 침을 꿀꺽 삼킨다.

한편, 쏘이든 사장이 이마에 잠시 난 땀들을 닦아내면서 병윤에게 사과의 말을 올렸다. 그리고 병윤 옆에 앉아있던 진세연이 쏘이든 사장에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았다.

“하하. 미안합니다. 이게 웬 소란인지 모르겠군요.”

“소란을 피운 작자는 누구입니까?”

“아. 광주에 살고 있는 유지 중 하나인 당준치의 아들인데. 망나니로 소문났습니다. 그에게 별 관심을 쏟지 않으셔도 됩니다.”

쏘이든 사장의 말에 진세연은 병윤에게 추가 설명을 해줬다.

“당준치라면 광주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사업은 요식업, 유통업, 그 외 세세한 사업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동 군벌에 자금을 대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병윤은 진세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쏘이든 사장에게 돌리며 간단하게 말한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이야기는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쏘이든 사장의 질문에 진세연은 또 무슨 질문 하냐는 눈치였지만 병윤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얼마든지 질문해보십시오.”

“이번 계약을 맺는 것은 둘째 치고 제가 취급하는 철광석이 함철량이 적은 빈광인 것인데 이 걸 알고 계약하는 것입니까?”

쏘이든 사장이 말한 철광석의 품질 중 부광과 빈광이 있었다. 여기서 부광은 함철량이 60%이상인 것을 말하고, 빈광은 40%이하인 것을 뜻한다. 보통 제철용으로 사용할 때는 부광을 주로 쓰이며 빈광은 부광과 같이 넣을 때 사용하지 따로 사용하기에는 경제성이 없었다.

쏘이든 사장은 그런 점을 병윤에게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병윤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질문에 답했다.

“우리 중경공단의 제철시설은 철의 품질과는 상관없이 제철할 수 있습니다. 부광이 경제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빈광도 가격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빈광을 경제성 있게 처리하는 기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는데 그 쪽에서 개발한 모양이군요.”

쏘이든 사장의 말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대단하군요. 저번에 중경에 방문할 때, 집집마다 유리 같은 것이 설치되고 있었는데. 물어보니 태양광 발전시설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그 것도 그 쪽에서 생산하고 계십니까?”

“으음. 간단하게 대답해드리면 그렇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거. 우리 쪽에서 수입하면 안 되겠습니까?”

마치 황금이라도 눈앞에 둔 사람처럼 욕망에 번쩍이는 쏘이든 사장의 말에 병윤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지금 가정용 태양광 발전시설은 중국내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총통각하께서 이 물품에 대해 수출을 허가할지 의문입니다. 만약 정식으로 수출허락이 떨어지면 당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병윤의 말에 쏘이든 사장은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거 대사관에 알아봐야겠습니다. 안 그러면 중국정부의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는 방법도 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 방법들이야 사장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들입니다.”

“으음. 회장님 쪽에서 아직 수출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군요.”

그 때, 진세연이 쏘이든 사장을 제지하면서 말한다.

“죄송하지만 태양발전 시설의 수출은 아직까지 정부 측에서 허가가 없습니다. 당신 외에도 그런 계약을 따내려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아직까지 수출허가는 없었습니다. 그 점 유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쏘이든 사장은 진세연의 말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의 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 외에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 때, 때마침 방의 문이 벌컥 열리고 웨이터복을 차려입은 청년이 철제수레를 들고 음식들을 탁자 위로 내려놓는다. 요리는 고급스러운 중화요리와 서양요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청년은 마치 할 일을 다 한 듯 인사를 한 후 빈 철제수레를 방 밖으로 나간다.

“먼저 식사하십시오.”

쏘이든 사장이 그 말을 하면서 병윤과 진세연에게 먼저 식사하라고 손짓한다. 병윤은 그의 말과 행동에 수저를 들고 천천히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곧 이어서 진세연이 마지막으로 쏘이든 사장도 요리를 먹기 시작한다.

여러 번 서양인과의 식사에서 예절을 익혔던 병윤과 진세연은 천천히 식사를 했고, 쏘이든 사장 역시 익숙한 자기나라의 예절로 식사를 했다. 어느새 비어진 그릇들이 옆으로 천천히 쌓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요리들을 내왔던 웨이터가 또 철제수레를 이끌고 VIP실 안으로 들어왔다. 철제수레 위에는 아이스크림들을 포함한 후식들이 있었는데 그 후식들을 내려놓고 빈 그릇들을 차례차례 치운다.

방 안에 있는 세 명은 천천히 후식을 즐기면서 대화한다. 쏘이든 사장이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요즘 들어서 중국이 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전역에 활성화되고 있는 재건 분위기와 더불어 물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을 다시 찾으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내 미국 정계 쪽에서 소식을 듣기로는 이번에 랜드리스 법에 의해 중국에 대출했던 물자들을 중국 쪽에서 전부 갚았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 덕분에 미국 정계에서는 중국 쪽으로 많은 자금들을 투자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으음.”

“요즘 윌 스트리트에서 투자전문가들이 중국 쪽으로 어떻게 안 되겠냐고 저에게 많이들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그 쪽 전문가에서 회장님은 역시 인기대상이겠지요. 마이다스의 손 그 것이 그 쪽에서 떠도는 별명입니다.”

병윤은 쏘이든 사장의 아부에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은 안 합니다.”

“아마 그 말을 들으면 윌 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이 회장님의 바지 끝을 붙잡으며 제발 투자를 하게 허락해달라고 말할 지경입니다.”

“......”

그렇게 병윤은 쏘이든 사장의 아부 아닌 아부를 들으면서 쏘이든 사장과의 계약과 식사를 끝마친다. 그 후 쏘이든 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차 안에 들어간 병윤과 진세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태양광 시설이 인기가 많은 모양입니다.”

“화력발전은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자구책의 발전방식을 개발했는데 그게 경제성이 있네요.”

“날씨에 따라 발전효율과 규모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밝은 날에 많은 발전량을 보이니 그만큼 경제성도 있습니다. 거기에 낮에 발전한 잉여 전력들을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든 장비들을 개발한 것이 태양광 발전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주죠.”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재건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시멘트와 철근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역시 증산하도록 말할까요?”

“수요 맞추면서 증산을 서서히 시작하세요. 무작정 많이 만든다면 경기가 끝날 때 재고만 쌓입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재고가 쌓이지 않게끔 수요량을 정확히 예측하면서 생산하시니 꽤 놀라운 것 같습니다. 역시 사업가의 안목이라는 것이 타고난 것일까요?”

“......”

그 말에 병윤은 더 이상 진세연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차량은 어딘가로 계속 향한다.

한편, 당태용은 집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당준치에게 레스토랑에 있었던 일을 말한다.

“저 아버지. 레스토랑의 VIP실에서...”

당준치는 당태용의 VIP실이라는 말에 한심하게 그를 쳐다본다.

“또 그 VIP실 안에서 여자 끼고 놀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VIP실에서...”

“그게 아니면 뭐? 네 놈이 그 쪽에 가서 여자 끼고 돈만 축 내는 것밖에 더 있겠냐? 아들아. 나 요즘 바쁘단다. 재건 분위기와 더불어서 사업을 확장해야해.”

“그 사업관련해서 말씀드리는 거 입니다!”

당태용이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며 말한다. 당준치는 당태용의 고함에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어? 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사업 관련해서 뭐? 유흥업이라고 일으키자고?”

“그게 아니라. VIP실에서 두 사람을 봤습니다.”

당태용의 두 사람이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긴장한 얼굴에 당준치는 조금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리 교만하기 그지없는 자식이지만 그 아들이 긴장하면서 말하다니 조금 신기한 일이었다.

“어떤 두 사람인데? 누구인데?”

“트라이트 해운 상사의 사장과 그리고 중경공단의 회장 말입니다.”

“......”

당태용의 말에 당준치는 폭탄이라도 맞은 듯 경악한 얼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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