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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126화 (12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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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산서성 중심 도시 태원시에 위치해 있는 일본군 제 1 군의 사령관 스미타 라이 시로 중장은 이를 뿌드득 갈면서 왼쪽 발을 까딱까딱 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헉! 헉!”

그 때, 일본군의 누런 군복을 입은 누군가 스미타 사령관에게 전력질주를 했는지 무척이나 힘든 호흡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스미타 사령관은 다가오는 이를 보고 수고했다는 말과 표정보다는 왜 늦었냐는 질책의 시선을 쏘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예?”

“왜 이렇게 늦었냐고?!”

참모장 야마오카 도타케시 소장은 스미타 사령관의 질책에 당황스러운 나머지 쩔쩔 매는 얼굴을 하고 빨리 변명거리를 생각한 뒤 내놓는다.

“상황. 좀 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상황이라. 무슨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늦는 거지?”

“지금 태원시에 주둔한 염석산 개인의 군대가 사라졌습니다. 그 상황을 자세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조금 늦었습니다.”

스미타 사령관은 한쪽 눈꼬리가 올라가 야마오카 참모장을 마치 장난하자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유를 알아내?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 거지? 염석산이 어떤 인간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참모장?”

“하지만. 염석산이 단순하게 중국군이 쳐들어왔다고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인간이 얼마나 신중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신중? 그래. 너의 말대로 박쥐 그 자체의 인물이야. 그런 인간이 확실한 판단을 내릴만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바로 편을 갈아치운다고. 그런 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늦었다니 말이 되는가?”

“......”

결국 야마오카 참모장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런 모습의 참모장이 짜증나는지 스미타 사령관은 까닥거리는 왼쪽 발을 무릎 위로 올리더니 이내 바닥을 쿵쾅하고 계속 밟아댄다. 스미타 사령관의 화가 끝까지 난 모양이다.

“지금 적들의 공세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하고 있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흥 뚫릴 것이나 분명한 수단 따위.”

“......”

야마오카 참모장의 말을 무시하는 스미타 사령관의 말에 야마오카 참모장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북지나 방면군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있어?”

“현재 지원 요청을 했지만 가용병력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제길...”

“염석산의 개인 군대도 빠져나갔으니 가용할 수 있는 병력들도 없습니다. 어디를 버리고 어디를 집중하겠습니까?”

야마오카 참모장의 말에 스미타 사령관은 결정을 못하겠는지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지금의 상황은 난국이나 다름없는 상황, 장기에 비유하자면 차, 포, 마, 상, 졸이 다 먹히고, 이제 왕과 사만 남은 실정이다. 항우가 느꼈던 사면초가라는 것이 이 것이었나? 생각했다.

“일단 북경 쪽의 통로와 태원시로 병력들을 밀집시키고, 나머지는 전부 후퇴해.”

스미타 사령관의 명령에 야마오카 참모장은 얼른 경례를 취하고 대답한다.

“하잇!”

야마오카 참모장은 아까처럼 전력질주를 하며 스미타 사령관의 말을 전달하러 간다. 스미타 사령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암울한 표정을 짓는다.

“젠장 왜 하필 내가 사령관일 때 이런 일이 나오냐고...”

스미타 사령관의 체념과 절규가 그의 사방을 향해 울려 퍼지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 여양시에서 주둔하여 신유철 군단의 공세에 힘겹게 맞이하는 일본군 제 110사단의 사단장 기무라 헤히로 중장은 자신의 상관인 스미타 사령관보다 더욱 암울한 표정이었다.

원래 일본군 110사단은 제 12 군에 소속된 부대였지만 12군 자체가 중국군의 하남성 공세에 못 이겨 박살이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2군의 잔여 부대들이 1군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하아... 이거 미치겠군.”

사단 작전참모 사나다 유키나가 중좌를 비롯한 모든 참모들은 할 말이 없었다. 자신들도 지금 저 기무라 사단장과 같은 심정이었다.

“하필이면 상대가 신유철 군단이야.”

기무라 사단장의 말에 앉아있는 참모들도 동의한다. 중국군 중에서 해볼 만한 상대는 많았지만 절대 붙고 싶지 않은 상대들이 간혹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신유철 군단이었다. 장개석의 직속 군단장 중 하나인 그는 다른 군벌들의 지휘관, 장개석의 다른 직속 군단장의 능력보다 월등히 나았다.

44년 초에 계획한 태륙타통작전이 당시 사단장인 신유철의 계획에 휘말려 패퇴한 것은 중국군과 일본군 모두 알고 있는 사항들이었다. 그런 신유철의 군단이 자신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힘이 없었다.

기무라 사단장은 암울한 표정 속에서도 제 할 일을 다한다. 그는 사나다 작전참모를 바라보며 말한다.

“포병 부대가 짠 계획은 어떻게 되었어?”

“소식이... 없습니다. 보고에는 적이 제 3 참호선에 머무르면서 제 4 참호선을 포격과 폭격으로 응수한다고 합니다.”

“쯧.”

기무라 사단장은 사나다 작전참모의 보고를 ‘듣지 말을 걸’이라는 후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 속에는 모든 절망과 체념이 담겼다.

“제 4 참호선을 담당하고 있는 163연대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금 최대한 버티고 있을 때까지 버텨보겠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는군.”

기무라 사단장은 163연대의 의지를 간단한 객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이 순서대로 가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돼지가 난동을 피워서 시간을 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무라 사단장의 그런 평가와 생각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상황이 암울한 것이다.

“110연대와 139연대는 어떻게 하고 있나?”

“110연대와 139연대는 현재 공산군 게릴라들이 난리를 피울 때를 대비해서 순찰 중입니다.”

“공산당군...”

중국군이 총 공세에 들어가기 직전, 산서성에 주둔 중인 일본군을 괴롭히는 부대들이 있었는데, 그 부대들이 바로 중국 공산당 부대들이었다. 여양시는 서쪽이 산맥으로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군이 활약하기 좋은 무대들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한 개 연대를 철도를 통해 대비하고 있었지. 나머지 연대들은 공산당군을 대비하기 위해서 여양시 내부로 주둔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상부에서의 통신은 어떻게 되었나?”

“지금 현시각부로 총퇴각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태원과 북경을 연결하는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군대는 전부 철수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랜만에 상부에서 바른 판단을 하는군.”

사나다 작전참모가 기무라 사단장에게 재차 묻는다.

“지금 바로 사단의 병력들에게 총 후퇴 명령을 내립니까?”

“아니. 조금 더 시일을 들여 버텨보다가 총 후퇴 하자고.”

“예.”

사나다 작전참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무라 사단장의 결정에 동의했다.

1945년 1월 3일, 지금까지 여양시에서 버티는 일본군 110사단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을 시점이었다. 여양시 서쪽의 철도에서 신유철 군단의 공세에 일본군 163연대가 제 4 참호선에서 처절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복군 제 1 사단은 약속한대로 여양산맥을 통과했다. 광복군 제 1 사단장 김홍일은 감회가 새롭다는 눈빛으로 망원경을 통해 전방을 바라본다. 전방에는 여양의 시가지가 보인다.

“이제 우리가 활약할 차례이군. 부관!”

“부관 남준호! 부르셨습니까?!”

김홍일 사단장의 부관인 남준호 대위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지금 야포와 전차들의 조립 현황은?”

“대략 80%입니다.”

“상부로의 보고는?”

“지금 사단이 산맥을 관통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했고, 모든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공격 개시시점을 알리겠다고 보고했습니다.”

김홍일 사단장은 남준호의 대답에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원래 남준호 대위는 일본군에 탈출할 당시 병주 휘하에 소속된 병사출신이었다. 이번에 남경 탈환 작전에 참여해 활약을 했고, 지금에 와서는 대위 직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신병교육대대장 밑에 있는 녀석들은 상당히 똘똘해.’

신병교육대대장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 역시 김홍일의 마음에 들었다. 강덕재 중령, 김도진 소령도 그렇고, 고호윤 대위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광복군에 투신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 밑으로 배분받은 것이지. 능력으로 따지자면 원래 그 이들이 연대장, 사단장 할 감으로 김홍일 사단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모든 조립과 준비가 끝마치면 나에게 최종 보고를 해.”

“예. 모든 조립과 준비가 끝마치면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남준호 대위는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현황을 살피기 위해 발걸음을 뜬다. 김홍일 사단장은 남준호 대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도 망원경을 통해 전방을 바라본다.

‘자 우리를 막는 적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라나.’

한편, 철도를 통해 공격하고 있던 신유철은 부관 천정호에게 하나의 보고를 받았다.

“지금 30분 전에 광복군 제 1 사단이 여양산맥을 통과하는데 성공했다는 보고입니다.”

신유철은 조금 반색을 하고는 부관 천정호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군. 이제 슬슬 시점이 된 것 같은데.”

“예. 지금 2시간 뒤에는 공수사단의 공격이 들어갈 시점입니다.”

“좋아. 광복군은 언제 공격에 들어간다고 하지?”

“그 쪽 말로는 지금 80%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공격 개시에만 20분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쪽이 공격개시를 선언할 시각이 되면 우리 쪽도 총 공세를 시작해.”

“예!”

천정호는 자신있게 대답하고는 광복군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통신병에게 발걸음을 돌린다. 신유철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조금 여유를 줘야겠군.”

한편 신유철 군단의 공세를 막고 있던 163연대의 연대장 코우노 마타시로 대좌는 적의 공세가 갑작스럽게 끝이 나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참호 속에서 힘겹게 항전하고 있던 병사들은 이제야 수습할 시간이 되어서 시체들을 치우고, 부상병들을 의무대로 보낸다. 그러나 코우노 연대장은 이런 상황이 매우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기 전과 같은 상황이군.”

그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느껴진다. 돌연 적의 공세가 뚝하고 끊기다니? 비유하자면 고양이가 사냥감을 가지고 놀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옆에 코우노 연대장의 부관이 이해 못한 표정으로 묻는다.

“태풍이 몰아치지 전의 상황이라니...”

“포격과 폭격을 비처럼 쏟아 붓던 상대가 갑작스럽게 공격을 뚝 끊는다면 무슨 이유이겠나?”

코우노 연대장의 말에 옆에 있던 부관은 설마 하는 얼굴이었다.

“제대로 대비해야 돼. 이제 포격과 폭격이 아니라 제 1,2,3 참호선의 경우처럼 병사들과 전차들이 전진할 거야.”

“......”

부관은 그의 말을 듣고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한편, 모든 준비를 끝마친 광복군 제 1 사단은 김홍일 사단장의 명령에 의해 전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진격의 보고는 즉시 여양시에 경계를 서고 있던 110연대로 알려진다.

110연대의 연대장 나카무라 다케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대들의 진격 보고에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지휘봉을 떨어뜨린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양시의 북서쪽 산맥에서 적 하나의 정규 사단이 출몰하다니...”

여양시에서 중국인 시민들이 동요하는 것을 막고 혹시 모를 공산당군을 경계하던 나카무라 다케오 대좌는 자신에게 보고를 올리는 상대를 보고 경악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적은 한 개 규모의 사단입니다. 그리고 44식 중전차를 이끌고 진격 중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나카무라 연대장은 말을 잃었다. 너무 경악스럽게 다가오는 보고라서 그런지 나카무라 연대장은 얼어붙은 것 같았다. 나카무라 연대장에게 보고를 올리는 연대 참모인 이우 중좌는 쯧 하고는 자신이 따로 상부에게 보고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친왕의 둘 째 아들인 이우 중좌는 지금 제 1군 참모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지금 여양시에 주둔 중인 일본군 부대를 시찰하다가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아. 이런 시점에 적의 총공세가 시작되다니.”

적 한 개 규모의 정규사단의 출몰은 그에게 있어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여양 산맥은 보병을 제외하고 지극히 통과하기 어려운 곳인데 그들은 전차와 야포를 앞세우고 돌진 중이란다.

그 때, 이우 중좌의 귀에서 거대한 폭음 소리가 들린다.

-쿠쿵! 쿠콰아앙! 콰앙!-

이쪽으로 다가오는 적의 사단의 공격이 시작되었나 보다. 이우 중좌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우 중좌는 얼른 통신장비를 운영하는 통신병에게 말한다.

“얼른 사단의 통신부대에게 연결해.”

통신병은 갑작스러운 이우 중좌의 출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통신장비를 조정했다.

-여기는 사단 본부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현재 여양 북서쪽으로부터 적 정규 사단 하나가 110연대로 접근 중이다.”

-네에?! 여양 북서쪽은 산맥일 텐데. 공산당 녀석들이 쳐들어온 것입니까?-

“말하지 않았나?! 지금 적 정규 사단이 쳐들어 왔다고. 전차와 야포를 앞세우며 전진 중이다. 최대한 보고를 올려. 난 연대장을 보좌하면서 적의 진격을 막을테니.”

-하... 하잇!-

통신병의 허둥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고, 이우 중좌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산맥을 전차와 야포를 동원해서 통과하다니. 상대는 아무래도 우리들을 포위 섬멸할 작정이군.”

이우 중좌는 지금 이 시점에서 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 작품 후기 ============================

의친왕의 둘째 아들 이우는 이 시점에서 중국 태원에서 근무중이라고 해서 출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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