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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128화 (12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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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총격에 맞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이 멀쩡히 일어나는 광복군 병사의 모습에 이우 중좌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경악스러웠다.

‘왜 병사들이 사기가 떨어지는 줄 알겠어...’

이우 중좌는 침을 꿀꺽 삼키며 여기서 피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번 대대장처럼 죽임을 당한다면 이 대대를 지휘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광복군의 수색활동이 꽤나 철저했다. 그들은 먼저 막을 수 있는 퇴로를 살피고는 그래도 경계를 서면서 수색에 들어갔다.

‘이런.’

몸을 빠져나가려던 이우 중좌는 자신의 앞에 광복군 병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광복군 병사들이 이우 중좌의 모습을 발견한다. 광복군 병사 2명이 크게 외친다.

“지휘관이다! 계급은 중좌급!”

그 외침소리에 이우 중좌는 얼른 권총을 뽑아들었지만 쏠 수 없었다. 소총탄도 막히는 방탄복에 권총탄으로 막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더욱이 이우 중좌 주변에서 인기척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광복군 2명은 일본어로 말한다.

“이봐. 그 딴 권총으로 우리를 막을 수는 없어. 그냥 좋게 항복하라고.”

“......”

이우 중좌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조선어로 한다.

“나도 여기까지인가 보군.”

이우 중좌의 조선어에 광복군 2명이 꽤 놀란 눈치였지만 그 것뿐이다. 그들의 눈빛은 항복을 종용하라는 침착한 눈빛에서 꽤나 험악한 눈빛으로 바뀐다.

“조선인이었나? 허 그 개 같은 일본군에서 좌관급까지 오른 고위 장교라니. 꽤나 동포들을 팔아 넘겼거나 아니면 능력이 너무 특출 나서 오른 것이거나.”

광복군의 험악한 기세에 이우 중좌는 순간 권총을 바짝 들었다. 아무래도 잊혀진 조국의 군대는 일본군에서 출세한 조선인 장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때, 이우 중좌의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항복해라! 지금 당신의 주위는 포위되었다.”

이우 중좌가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맨 먼저 발견한 광복군 소대장의 모습이었다. 광복군 소대장은 이우 중좌를 보고 행운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지간히도 잘 생겼군. 그 괴물 같은 신병교육대대장님처럼 말이야. 어라? 조선어를 알아듣는 것 같군. 이봐. 당신이 무슨 능력을 지녀서 여기까지 승진했는지 모르겠지만 항복하라고. 당신 정도면 우리 쪽에서 귀하게 써줄 용의가 있어.”

“......”

이우 중좌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는 권총을 떨어뜨렸다. 여기서 저항해봤자 죽을 목숨이었다. 광복군 소대장은 이우 중좌의 항복에 그의 뒤에 있는 병사 두 명에게 눈짓을 해서 포박하라고 지시하였고, 두 명의 병사들은 그 걸 알아듣고 한 명은 소총을 들고, 한 명은 포승줄을 들어서 이우 중좌의 손목을 세게 묶는다. 결국 이우 중좌는 광복군의 포로가 되었다.

광복군 소대장은 자신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통신병이 멘 무전기의 송수화기를 잡은 뒤 상부에게 통화를 시도한다.

-어디야?! 지금 자네 소대는 어떻게 되었어?-

역시 소대장 자신의 예상대로 송수화기에서 자신의 상관인 중대장의 격한 목소리가 들린다. 소대장은 보고를 간략하게 한다.

“여기는 2소대장입니다. 현대 적 대대 본부를 습격하고, 적 포로 한 명을 붙잡았습니다.”

-일반 병사라면 굳이 보고할 이유는 없을 텐데 장교라도 붙잡았나?-

“예. 아주 큰 계급의 장교입니다. 계급이 중좌 급인 사람을 말이죠.”

-쳇. 공을 세운 모양이군. 알았어. 조심해서 복귀해.-

“알겠습니다. 그럼 건승을 빌겠습니다.”

-건승은 무슨. 무사히 복귀나 해.-

소대장은 손에 쥔 송수화기를 다시 무전기로 내려놓는다. 소대장은 휘하에 있는 병사들에게 외친다.

“철수해라. 얼른.”

그 말에 광복군 병사들의 고개가 끄덕하고는 수색을 종료한 후 어디론가 향한다. 포로로 잡힌 이우 중좌는 씁쓸한 미소를 하고는 소대장 뒤를 따라 병사들에게 끌려간다.

‘아버지가 이 꼴을 보신다면 호통을 치시겠군.’

이우 중좌는 조선에 계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될까? 라는 걱정도 들었다.

한편, 광복군을 막는 110연대의 나카무라 연대장은 자신의 연대를 공격하는 부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라고? 허. 요보놈들이 정규군을 꾸릴 줄은... 젠장 우리가 갈 때까지 간 건가?”

나카무라 연대장의 말에 사나다 작전참모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 가지 더 보고한다.

“현재 그 광복군이라고 불리는 적들은 지금 우리 연대 본부를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1대대, 2대대 지금 연락이 없습니다.”

나카무라 연대장은 사나다 작전참모의 보고에 ‘끄응’하고 침음성을 낸다.

“반란군도 정규 사단을 꾸리고 전차와 야포를 앞세울 줄이야.”

나카무라 연대장이 반란군이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하는 모습에 사나다 작전참모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심정이 확 들었고, 결국 그에게 소리친다.

“연대장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 지금 옥쇄하지 않았어? 1대대, 2대대 연락이 없다면 전멸한 거지. 뭐. 여기서 퇴로는 없어. 각자 저항하고 죽자고.”

“......”

나카무라 연대장의 체념 어린 말을 들은 사나다 작전참모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입에서 결코 항복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상부에게 연락해. 우리는 전멸 했다고. 그 쪽은 못 막아서 죄송하다고.”

“예...”

사나다 작전참모는 나카무라 연대장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자신도 천천히 일어나서 우울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절망적인 발걸음으로 통신장비를 운영하는 통신병에게 다가가 말한다.

“사단 본부 쪽으로 연결해.”

통신병은 그 음울한 말투의 사나다 작전참모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단본부에 연결을 시도한다.

-여기는 사단본부입니다. 어쩐 일입니까?-

사단본부와 연결이 되자 사나다 작전참모는 연대장이 말한 그대로 읊었다.

“여기는 110연대, 지금 우리 부대는 전멸했다. 이쪽을 못 막는다. 적의 공세가 너무 거세다. 지금 적들을 향해 우리는 옥쇄 중이지만 시간 벌이일 뿐이다. 미안하다. 우리는 전멸했다.”

-......-

“이 통신이 마지막이다. 건투를 빈다.”

-예.-

사나다 작전참모는 사단 본부의 대답을 들은 뒤 연결을 끊고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다시 절망스러운 발걸음으로 되돌아가 나카무라 연대장에게 한 마디 말한다.

“보고했습니다. 연대장님.”

“그래. 그 거면 된 거야.”

“항복은... 생각 안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군대다. 적에게 항복은 하지 않는다.”

나카무라 연대장의 확고한 결정에 사나다 작전참모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 때, 이쪽으로 피칠갑의 모습인 병사 한 명이 급히 달려 나와 큰 목소리로 모두 들으라는 듯 외친다.

“지금 이 쪽으로 병력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카무라 연대장은 그 병사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제 때가 되었나?”

사나다 작전참모를 비롯한 참모들은 그의 말에 굳은 결심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자신들도 결정할 시간이었다.

그런 절망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군대가 있었으니 바로 병주가 이끄는 신병교육대대였다. 병주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부대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한다.

“여기가 우리를 막는 적 연대의 본부인 것 같군. 우리를 봤다는 소식에 급히 준비한 것으로 보이네.”

그 한 마디를 조용히 듣고 있던 고호윤이 응수한다.

“그래봤자 우리 대대의 진격을 막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냥 빨리 항복하면 될 것을 굳이 병사들을 옥쇄하면서 항복을 거부하는 저들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병주는 고호윤의 그 말에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저렇게 행동해봤자 개죽음일 텐데 말이지. 만약 적의 침략에 고향을 지키겠다고 필사적으로 싸우면 이해는 되지만 저들은 침략군이잖아. 이해가 안 돼.”

“그런데 웃기는 것은 우리가 저런 군대 밑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진짜 대대장님 따라서 탈영한 것은 천 번 만 번 잘한 일이었습니다.”

고호윤의 말에 병주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처음 강덕재의 말을 듣고 입대하다가 탈영할 계획이라는 것을 고호윤은 모르고 있을 거다. 병주는 고호윤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말한다.

“진격을 시작하자고.”

고호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하하! 당연한 일입니다.”

고호윤은 주위 병사들에게 모두 들리게끔 큰 소리로 외치며 말한다.

“저 앞이 우리를 가로막는 적의 본부이다. 진격해라!”

-와아아아아!-

광복군 병사들은 고호윤의 말을 듣고 함성을 외치며 순간적으로 돌격을 시도했다. 먼저 장갑차들이 진격을 시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적의 반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

기관총을 잡은 적 병사들은 다가오는 장갑차들의 모습을 보고는 하얀 얼굴로 장갑차를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들이 장갑차 표면에 닿았지만 장갑차는 기관총의 총알에 끄떡없었고, 장갑차 표면은 불꽃만 튀길 뿐이었다. 곧 이어서 장갑차에 달린 기관총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두두두!-

기관총을 잡은 일본군 병사들은 자신의 피부가 장갑차의 방호능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총알에 찢겨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적들은 그런 잔혹한 모습에도 최선을 다했다.

-삑! 삑! 삑!-

일본군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가 연신 호루라기를 불면서 지시를 내린다. 일본군 병사들은 수류탄들을 손에 들면서 장갑차에게 던지기 시작했고, 손에서 떠난 수류탄은 곧 포물선을 그리며 장갑차 위로 떨어진다.

-쿠콰앙! 콰앙!-

수류탄의 폭발은 역시 장난이 아니라는 듯 폭음소리가 크게 났다. 그러나 수류탄에 직격당한 장갑차는 피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생생한 모습으로 전진을 계속하면서 기관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두두두! 두두두!-

어느 정도 엄폐하는 일본군 병사들을 제외하고는 몸을 노출시킨 병사들은 그대로 기관총 총알에 몸이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장갑차 뒤에 붙어서 몸을 보호한 광복군 병사들이 장갑차를 엄폐물 삼아서 총격전을 개시한다.

-타앙! 탕! 탕! 타앙!-

38식 보총은 역시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장갑차의 화력과 더불어 광복군 병사들의 화력에 임시로 만든 모래주머니를 이용해 방어하고 있던 연대 본부의 일본군 병사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국 모래주머니 진지들은 광복군 병사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점령당했고, 병사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항복하거나 아니면 처절하게 저항하면서 사살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본부 안으로 진격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광복군 앞을 가로막던 110연대의 운명도 끝을 향해 달려나갔다.

-타앙! 탕탕! 탕탕탕! 콰앙!-

나카무라 연대장은 자신의 귀에 총음과 수류탄이 터지는 폭음소리가 들리면서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을 깨달았다. 나카무라 연대장은 사나다 작전참모를 비롯한 주위의 참모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이제 우리 차례다. 먼저 생령을 보낸 병사들 뒤를 따라 가자고.”

-꿀꺽-

사나다 작전참모를 비롯한 참모들은 나카무라 연대장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들에게 지급된 권총을 뽑아서 이 곳 안에 엄폐하기 좋은 곳으로 몸을 숨긴다. 시간이 지나 총격음들과 폭음들이 가까이서 들리더니 이제 광복군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탕! 탕탕!-

먼저 사나다 작전참모가 엄폐한 채로 권총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온 광복군 병사의 몸통을 향해 쏜다. 그러나 뒤로 잠깐 쓰러지는 것을 뒤로 하고는 권총탄을 맞은 광복군 병사는 다시 일어나서 반격을 개시한다.

-타탕! 탕탕! 타타탕!-

죽지 않는 광복군 병사들의 모습에 사나다 작전참모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한다.

‘이게 그 유명한 적들의 방탄장비인가? 한낱 반란군도 이런 장비들을 착용한단 말인가? 이제 우리 대일본제국도 끝이 나는구나.’

사나다 작전참모가 그런 생각을 할 때쯤 광복군 병사들이 방 밖으로 잠시 후퇴하더니 이번에는 어느 누군가를 앞세운다. 나카무라 연대장은 방 안으로 자신 있게 들어오는 병사의 모습을 관찰한다.

-화르륵! 화르르르르!-

일본군 병사들에게 악명이 높다는 화염방사병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마력이 느껴지는 화염의 이글거림에 나카무라 연대장은 순간 긴장했다.

‘저들에게 기관총탄도 먹히지 않는다고 했는데. 제길. 이렇게 된 이상.’

나카무라 연대장은 권총을 버리고 자신에게 지급된 일본도를 조심히 뽑은 뒤 순간 튀어나와 화염방사병에게 돌진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미리 경험했는지 화염방사병은 화염이 뿜어지는 노즐을 나카무라 연대장에게 조준하고는 노즐을 확 열었다.

-푸화아아악! 푸화악!-

“끄아아아악! 끄아악!”

온 몸이 불로 뒤덮인 나카무라 연대장은 온 몸에서 느껴지는 화염의 고통에 일본도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온몸을 뒹굴 거리며 불을 끄려고 했지만 그를 이렇게 만든 화염방사병은 자비가 없다는 듯 노즐을 나카무라 연대장에게 조준하고는 다시 확 열었다.

-푸화아악! 푸화악!-

나카무라 연대장은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정신이라기 보다는 주마등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 어린 시절의 꿈, 그리고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자신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들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카무라 연대장은 이제 고통이 없어진다. 그리고 정신이 점차 사라진다. 나카무라 연대장은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인가? 허무하구나.’

나카무라 연대장은 그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곧 이어서 사나다 작전참모와 참모들이 온 힘을 다해서 반격을 시도했지만 광복군 병사들의 총탄에 죽거나 아니면 나카무라 연대장의 뒤를 따라 불 타 죽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저항한다는 의기조차도 광복군 병사들에게 남기지 못한 채 나카무라 연대장 이하 참모들은 개죽음을 당했다. 아니 자신들이 결정했으니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죽음일 것이다.

하여튼 110연대의 연대본부의 점령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광복군은 남은 적들을 포로로 잡거나 아니면 사살했다. 그리고 사단장 김홍일은 여양시 북서쪽에 저항 중인 적의 격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자신들을 지휘하는 군단본부에 있는 신유철 군단장에게 보고했다.

당랑거철, 사마귀가 철제수레를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자성어는 광복군을 상대하는 일본군 110연대의 상황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 작품 후기 ============================

결국 이우 중좌는 포로로 잡히게 되었고, 여양 시 함락도 눈 앞에 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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