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29화 (12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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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기무라 사단장은 여양시 북서쪽을 막고있던 110연대의 전멸에 씁쓸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10연대 쪽으로 급히 파견나간 사단 작전참모 사나다의 전사 소식은 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제 110연대와 163연대 쪽도 전멸한 것 같군.”

음울하기 그지없는 기무라 사단장의 말에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철도를 따라서 공격하는 부대와 또 북서쪽을 막을 수 있는 부대들이 있나?”

“......”

기무라 사단장의 말에 참모들은 할 말이 없었다. 가용할 수 있는 병력 전무, 있어봤자 사단 직할 병력이지만, 그 병력들은 보조하기 위한 역할을 할 뿐이다. 연대에 속한 보병처럼 적을 막을 수 있는 병력들이 아니다.

“전차나 야포도 없나? 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포병부대도?”

기무라 사단장의 목소리가 단어를 읊을 때마다 커져만 간다. 결국 침묵하고 있던 참모들 중 한 명이 일어서서 참혹스러운 말투로 대답한다.

“없습니다. 전무합니다. 사단에 소속된 포병부대는 참호선을 지원하기 위해 전부 다 가져갔습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절망적인 상황보고에 기무라 사단장의 얼굴은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지고는 한 마디 툭 뱉는다.

“빌어먹을...”

그 때, 사단본부 쪽으로 전령으로 보이는 병사 한 명이 들어와서 보고한다.

“여양 북동쪽에 출현한 적 공수사단의 공세를 수비하던 139연대의 전멸했다는 보고입니다.”

그 보고에 일그러지던 기무라 사단장의 표정은 한 층 더 일그러진다. 그는 엄한 전령에게 마치 죽일 듯 시선을 돌리면서 말한다.

“그 외에 새로운 보고는 없나?”

“저 그게... 적 쪽에서 항복을 권고했습니다.”

“항복? 허. 팔 다리 잘라놓고선 항복을 요구하다니.”

기무라 사단장은 작게 하하 웃더니 이내 웃음소리도 잦아지고는 체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눈가에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씩 흐른다.

“좋은 시절도 다 갔군. 난 할복하겠다. 항복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알아서 결정하라고 전해라. 난 이 책임을 지겠다.”

참모들은 확고한 결심이 느껴지는 기무라 사단장의 말에 자신들도 느끼는 것이 있었는지 숙연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기무라 사단장은 전령에게 말한다.

“적에게 항복하겠다고 전해라. 난 이만 책임을 져야겠다.”

전령은 굳은 얼굴을 하고선 곧 일어나서 기무라 사단장이 말한 대로 얼른 자리를 떴다. 기무라 사단장은 전령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참모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 마디 한다.

“할복하는 것에 도와다오.”

한 명이 일어서서 침을 꿀꺽 삼키며 일어난다. 기무라 사단장이 그를 살펴보니까 아까 절망적인 보고를 했던 참모였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요시. 부탁한다.”

결국 기무라 사단장은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할복하게 되었고, 곧 이어 여양을 수비하는 병력을 모두 잃어버린 일본군 110사단의 잔여 병력들은 신유철 군단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포로로 잡혀 들어갔다.

여양시를 순조롭게 점령하는 데 성공한 신유철 군단장은 곧 통신병에게 말해 자신의 상부에게 보고한다.

-여기는 군 본부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여기는 109 군단의 군단장 신유철이라고 한다.”

-아! 실례했습니다. 얼른 두율명 사령관을 데려 오겠습니다.-

곧 이어 통신장비 너머 분주한 발걸음들이 들렸고, 신유철은 조금 기다리다가 통신장비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신유철 중장.-

“현 시각부로 작전 목표를 점령하는데 완료했습니다.”

-작전 완료? 꽤 빠르군. 내 휘하에 있는 다른 군단들은 지금 임무를 하고 있는 중에 말이야. 그 쪽에 있는 일본군의 전력이 약했나 보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임무를 완수한 너의 군단은 여양시에서 점령을 완료하도록 하고 그 곳에 있는 시민들을 위무하도록 해. 나중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특별히 연락을 할테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직속상관 두율명 사령관과의 연락은 끊어졌다. 신유철 군단장은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그 때, 부관 천정호가 신유철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령관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특별한 지원은 없고, 여양시의 점령을 완료하고 시민들을 위무하라고 하라는군. 우선 포로들을 감시할 인원을 따로 빼놓고, 나머지는 경계를 서거나 군량미를 풀어서 굶주린 국민들을 먹여 살려.”

천정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경례하고 소리친다.

“예! 알겠습니다.”

천정호는 신유철이 지시한 사항들을 수행하기 위해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신유철은 그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린다.

“자식...”

같은 시각, 110연대 중 광복군에게 유일하게 포로로 잡혀 들어간 일본군 고위 장교였던 이우 중좌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이의 얼굴을 보고 심문을 받고 있었다.

“이름이 이우라고 하셨습니까? 거기다 의친왕의 둘 째 아들이라...”

김홍일 사단장은 눈앞에 있는 이우의 정체를 확인하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자신들이 포로로 잡은 고위 장교가 우연치 않게 조선인이었고, 또 잃어버린 조국의 왕족이었다니.

이우 중좌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김홍일 사단장에게 말한다.

“이제 멸망해버린 국가는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우 중좌의 서글프고 씁쓸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김홍일을 비롯한 주위 심문관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것보다 포로들 중에는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잘 대우해주었으면 합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려야겠지만 대체적으로 받아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것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김홍일의 말에 이우 중좌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이내 대답한다.

“알고는 있겠지만 전 민족 반역자입니다. 우리 왕족의 잘못으로 일제의 수탈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민초들의 생활도 뿌리가 뽑히는 와중에 그저 그의 앞잡이로 살아온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당신들의 전력을 보니 저도 희망이 한 가닥 생깁니다. 또 일제도 멸망해나갈 것도 예상이 됩니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나서는 당신들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초석이 되십시오. 전 잔제라고 여기시고 말이죠.”

“으음.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홍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우 중좌에 대한 심문을 그만두었다. 곧 이어서 다른 심문관들은 이우 중좌가 알고 있는 정보들에 대해서 심문하기 시작한다. 지금 적의 주력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으며 작전은 어떻게 결정되었고, 병력의 배치, 그 외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다 물어봤다.

다행히 이우 중좌는 협조할 마음을 가졌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모두 털어놓는다. 그 때문에 자신의 상부 부대인 신유철 군단에게 보고할 사항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이우 중좌에 대한 심문이 계속될 시각, 광복군은 현재 여양시를 순조롭게 접수하고 정비를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고호윤이 수통의 물을 마시고 있는 병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휴우. 이번에도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그 말에 병주는 수통의 물을 마저 마시고는 고호윤에게 시선을 돌려 응수한다.

“그거 참 다행이군.”

“대대장님과는 작년부터 몇 번이나 전투를 같이 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군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겪을 전투는 수 만 가지는 된다고 생각하면 돼. 왜 전투를 치르면서 회의감이 들어?”

병주의 물음에 고호윤은 작게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고는 대답한다.

“회의감이 들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전투를 겪으니 몸 고생 마음고생이 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병주는 고호윤의 말에 동감하는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맞는 말이야. 전쟁은 지옥이야. 우리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죄인들이지.”

그 말에 고호윤은 조금 오글거린다는 표정을 짓고는 병주에게 말한다.

“그 말 안 창피하십니까?”

“뭐. 맞는 말인데. 안 그러냐?”

“......”

뻔뻔하게 말하는 병주의 모습에 고호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병주는 고호윤의 모습을 보고 툭 지나가는 말투로 말한다.

“그 것보다 휘하에 있는 병사들은 상태가 어때?”

“우울증 걸린 녀석들과 그 외 부상을 입은 녀석들 말입니까?”

“그래. 특히 우울증 걸린 녀석들을 잘 대처해야돼.”

“맞는 말입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무부대에 속한 군의관들이 잘 치료하고 있습니다. 저번처럼 겁쟁이 취급을 하는 정신 나간 인간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고호윤은 자신이 말하고도 우울증 걸린 녀석을 겁쟁이 취급하는 경우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병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 마디 툭 말한다.

“쯧. 지금도 우리 광복군 내에서도 우울증 걸리는 병사들을 겁쟁이 취급하는 인간들이 꽤 있더라고. 하아...”

병주는 한숨을 쉬면서 일본군보다 낫지만 그래도 광복군 내에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해서 조금 어두운 얼굴을 짓는다.

그 때, 병주와 고호윤, 그리고 둘을 호위하는 병사들에게 다가오는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온다. 병주가 얼핏 드는 인기척에 시선을 돌리자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군인들을 바라보며 겁에 질린 듯 쳐다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면서 다가오는 아이들이 인기척의 정체였다. 아이들의 모습은 거지꼴이나 다름없었고,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심한 몰꼴이었다. 거기에 병주는 아이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었으며 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지 알 수 있었다.

‘굶주렸군.’

그 말 그대로다. 아이들은 병주에게 다가오면서 혹시 모를 군인들의 위협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병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고, 고호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어디에나 저런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군.”

고호윤 역시 병주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응대한다.

“저 녀석들을 보니 왠지 제 옛날 생각이 나는대요.”

“너 부모님 있었잖아?”

“그렇다고 배는 안 곯은 것은 아닙니다. 배고플 때마다 주위 사람에게 동냥을 했으니 말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벌어오는 돈은 얼마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아이들 중 여자아이 한 명이 용기를 내고 조심스럽게 병주에게 다가가 말한다.

“아저씨. 죄송한데. 우리들이 배고파서 그런데 먹다 남은 음식 없나요?”

병주가 용감하게 자신에게 다가온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조금 측은지심이 들었다. 병주는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초콜릿을 꺼내며 그 아이에게 건네준다.

“일단 이거라도 먹어라. 그리고 너희들 중 가지고 있는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나눠줘.”

고호윤과 호위 병사들은 병주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음식들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네준다. 병주에게 다가온 여자아이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오빠. 죽는 줄 알았어요.”

여자아이의 오빠라는 말에 병주는 조금 기분이 좋았다. 고호윤이 병주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병주는 밝은 미소로 여자아이에게 한 가지 물어본다.

“너의 이름은 뭐니?”

“제 이름은 전명명이에요.”

“전명명이라 좋은 이름 같네. 일단 배고픔을 해결하고 어디론가 갈 건가?”

“예. 그건 왜?”

“쯧 아이들을 이끄는 건 너인 것 같은데. 너의 판단으로 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어때?”

“......”

“조금 기다려봐. 너희들을 상부에게 보고해야하니까.”

병주는 대대 통신병이 메고 있는 무전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무전기의 버튼을 누르며 연결을 시도한다.

-여기는 사단 본부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신병교육대대장 길병주다. 보고할 게 있어서 연락했다.”

-무슨 보고입니까?-

“지금 우리 쪽으로 굶주린 아이들이 다가왔는데 혹시 상부에서 따로 민간인들을 보살피라는 명령은 없었나?”

-아!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혹시 민간인들을 발견하고 여력이 있다면 민간인들을 최대한 보살피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병주는 다시 송수화기를 무전기로 내려놓고 전명명이라는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다른 데로 가봤자 위험하니 여기에 있어.”

병주의 그 말에 전명명은 병주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본다. 마치 그 아이의 모습은 병주를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인 것을 눈빛으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병주의 말이 진심인 것을 깨닫고 전명명의 얼굴에 경계가 옅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곧 이어 전명명은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아이들 무리로 되돌아가서 병주가 말한 바를 전해준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전명명을 잘 따르는 모양이었다.

고호윤이 전명명의 뒷모습을 보면서 병주에게 묻는다.

“아이에게 관심 있나 봅니다?”

“관심이야 있지.”

“호오? 대대장님 그런 취향이었습니까?”

고호윤의 말투에 언뜻 재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자 병주는 눈썹 한 쪽을 위로 올리며 반문한다.

“그런 취향이라니? 무슨?”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그런...”

“...... 하아. 호윤아? 너 맞을래?”

“아니면 무슨 의도로 그런 친절하게.”

“이 자식이 너 그럴래!?”

============================ 작품 후기 ============================

절대 병주는 페도필리아 같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댓글이야말로 당신의 용기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당신의 용기 증명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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