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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같은 시각, 산서성 전체를 공략하는 3군을 맡게 된 두율명 이급상장은 지도를 뚫어보라는 듯이 쳐다본다. 그가 특히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군 휘하가 점령한 빗금칠 지역이었다. 신유철이 담당하는 중국군 109군단의 여양시를 제외하고는 그의 휘하에 있는 군단들은 아직 전선에서 야금야금 먹어가는 형식이었다. 이런 형세에 두율명은 쯧 하며 마음에 차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제대로 된 장비만 갖춰져 있으면 뭐하나... 신유철이 맡고 있는 군단을 제외하면 다 개판인 것을...”
두율명은 신유철을 제외한 나머지 군단장을 맡은 인물들을 떠올릴 때마다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신유철의 능력은 연세가 젊다는 것만 제외하고 아주 출중했고, 또 이번 여양시 점령을 통해서 증명했다. 두율명이 신유철을 눈여겨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군단장들을 생각하면서 신유철의 반에 반을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때, 두율명 옆에서 한탄을 듣고 있던 부관 심진공이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여양시에 주둔한 109 군단은 어떻게 쓰실 생각입니까?”
심진공의 물음에 두율명은 잠시 고개를 들어 심진공을 바라본 뒤 이내 대답해준다.
“여양시는 산서성 서쪽의 입구다. 그 쪽에 철도가 모여있지. 함부로 지원하기는 힘들어.”
“그래도 휘하 사단 병력들을 파견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두율명은 심진공의 말에 납득이 가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렇지. 자네의 말이 맞아. 다만 산서성에 있는 적이 일본군만 있는 것이 아니니 문제인 거야.”
“......”
심진공은 두율명의 말에서 일본군 외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더 이상 두율명에게 말하지 않았다.
“거기다 공세 할 때는 병력이 별로 필요 없어. 단지 점령할 때, 엄청난 병력이 필요한 것뿐이야. 그 쪽의 여력은 지원이 들어오면 내가 결정할 것이야.”
심진공은 두율명의 말에 동감하는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역시 사령관님의 판단이 옳습니다.”
“자네 이의는 좋았어. 그렇게 궁금한 것 자기의 생각을 내뱉는 것이 좋아. 사람은 여러 부분을 보지 못하는 면이 있으니 말이야.”
두율명의 말에 심진공은 감격에 받은 얼굴을 짓는다.
“예!”
그렇게 대답한 심진공이 감격에 젖어있을 때였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책상 위에 전화기가 울리자 두율명은 호기심에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입에 입에 대며 말한다.
“여기는 3군 사령관 두율명 이급 상장이다. 무슨 일이지?”
-여기는 군 직할 통신부대입니다. 한 가지 보고 올릴 것이 있습니다.-
“보고라고? 말해봐.”
-지금 뭐라 말하기 뭐 하지만 사신이 왔습니다.-
“사신? 웬 엉뚱한 소리야? 사신이라니? 나 참 전근대적 시대도 아니고.”
두율명은 보고를 올리는 이의 사신이라는 단어에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이후 보고를 올리는 이의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으음. 그러니까 염석산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뭐? 염석산? 허. 그 박쥐같은 녀석이.”
-따로 사령관님을 뵙고 이야기를 하자고 합니다.-
그 말에 두율명은 피식 비웃는 얼굴을 짓고는 말한다.
“만나서 이야기한다고? 이렇게 전해. 일본군에게 짝짜꿍 붙어있으면서 뭘 또 빌어먹을 것이 있냐고.”
-그런데 만나주지 않는다면 일본군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합니다.-
“쳇 협조하라고 말하고 싶군. 일단 보내. 무슨 망언을 지껄이는지 궁금하군.”
-예.-
두율명은 신경질 나는 얼굴을 짓고는 송수화기를 전화기로 쾅하고 내려놓는다. 심공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조금 호기심을 느끼지만 말을 걸지는 못했다. 그렇게 두율명은 성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두율명이 있는 방 안으로 중국군과는 다른 색깔의 군복을 입은 사람이 병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다. 두율명은 그 사람의 얼굴을 째려보고는 말한다.
“염석산이 보낸 이라고?”
두율명의 거친 말투에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을 소개한다.
“예. 염석산의 심복인 왕정균이라고 합니다.”
“쯧. 이 시간에 개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군. 용건이나 꺼내.”
왕정균은 두율명의 기세에 고개를 숙이며 약한 목소리로 말한다.
“염석산님의 세력은 지금 바로 중화민국에 투신하고 싶다고 합니다.”
“염석산님?”
“......”
두율명이 왕정균의 호칭을 꼬투리 잡자 왕정균은 아무런 말도 못한다. 두율명은 구긴 얼굴로 왕정균을 쳐다보며 말한다.
“계속해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염석산의 군대는 태원을 빠져나오는 중이며 전선을 유지하는 일본군의 뒤를 치겠다고 약조하겠습니다.”
“뒤를? 흥. 그냥 시간만 지나면 짜부라지는 일본군 따위를 두고 그냥 공을 세운 뒤 보호해 주십사 하고 입을 씻으려고?”
“......”
왕정균은 두율명의 비아냥거림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어느 정도 머리를 굴린 뒤 두율명에게 다시 말한다.
“물론 우리 쪽이 일본군에게 협조한 이유도 있었지만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염석산은 태원에서의 세력만 보장해준다면 총통 각하의 명령에 개처럼 짓고 살겠다고 합니다.”
“호오? 개처럼 지낸다고?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좋아. 총통 각하께 보고할 가치는 있겠어. 부관.”
“예!”
자신을 부르는 두율명의 목소리에 바짝 고개를 든 심진공이 대답한다. 두율명은 그에게 시선을 돌린 후 엄지로 왕정균을 가리키고는 말한다.
“이 녀석에게 쉴 곳 좀 안내해줘.”
“예. 사령관님!”
심진공은 왕정균을 데리고 방 밖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두율명은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며 어디론가 연락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철컥!-
-여기는 총통실입니다.-
“비서실장입니까? 저 3군을 담당하는 두율명입니다.”
-아?! 두장군 아닌가? 무슨 일이야?-
비서실장의 자신을 반기는 목소리에 두율명은 굳은 얼굴로 말한다.
“혹시 총통 각하께서는 자리에 계십니까?”
-총통 각하께는 왜? 무슨 일 있나?-
두율명은 그 말에 잠시 송수화기에서 송신부분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생각한다.
‘말해도 되려나? 으음. 일단 찔러보자.’
“급한 보고입니다.”
-허. 나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중요한 보고이군. 총통 각하는 자리에 계시니 건네주겠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수신 부분에서 비서실장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흐른다.
-뭐야? 무슨 일이기에 나에게 전화를 했지?-
“저 3군을 담당하고 있는 두율명 이급상장입니다. 각하.”
-두율명이군. 좋아 왜 전화했지?-
“지금 염석산이 개인적으로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사신? 염석산이? 흥. 그 박쥐같은 녀석이 보금자리를 바꾸려고 하는군.-
“저도 쓸어내려고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들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아서 일단 제의는 들었습니다.”
-그 자식이 뭐라고 하디?-
“태원에서의 세력만 보존해달라고 합니다.”
-태원에서만? 태원을 제외한 부분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포기할 것 같습니다.”
-포기라. 조금 구미가 당기는 군. 그 사신이라는 녀석 나에게 보내줘.-
“예. 각하!”
그렇게 해서 두율명은 염석산의 사신인 왕정균을 장개석에게 보낸다.
한편, 태원에 위치한 일본군 1군의 사령부는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된다. 스미타 사령관은 짜증나는 얼굴을 지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쯧. 여양에 주둔한 110사단은 전멸했군.”
“산서성 서쪽이 뚫린 것을 제외하고 전선이 밀리고 있습니다.”
“여양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은 어떻게 하고 있나?”
스미타 사령관에 물음에 야마오카 참모장이 답한다.
“현재 여양시를 점령하고는 안정화시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전선의 축소는 계획대로 잘 가고 있나?”
“계획적으로 하기는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적의 화력에 큰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태원을 지키기에는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
야마오카 참모장의 의견에 스미타 사령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마오카 참모장의 말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산서성에 가까운 산동성에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쪽에도 모든 중국군이 총공세를 펼친다고 답장을 했습니다.”
“끄응.”
야마오카 참모장의 시궁창 같은 보고에 스미타 사령관은 침음성을 냈다. 스미타 사령관은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안 나는지 하늘 꺼지게 한숨을 푹 쉬면서 말한다.
“하북에 주둔해 있는 병력들과 몽강에 있는 병력들은 지원을 타진해봤나?”
“하북에 주둔한 북지나방면군에서는 산서성을 포기하고 하북으로 총후퇴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몽강에 주둔한 병력들은 소련을 대비해야한다고 그대로 있는답니다.”
스미타 사령관은 그 말에 짜증나는지 한 마디 내뱉는다.
“병신들. 우리에게 관심 없는 소련이 그 쪽에 신경 쓰겠나? 그저 목숨이 아까우니 그 곳에서 틀어박히는 거지. 우리가 당하면 다음 차례가 그 쪽인 것을 왜 몰라?!”
스미타 사령관은 결국 자기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고, 야마오카 참모장과 기타 참모들은 스미타 사령관의 고함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스미타 사령관은 기분 풀릴 때까지 고함을 내질렀고, 다시 잠잠해지면서 암울하게 말한다.
“우리 이제 어떡하지?”
“......”
야마오카 참모장을 비롯한 참모들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저 분위기에 따라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방법이 없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북지나방면군의 명을 들으면서 화북성으로 안전하게 병력들을 철수시킬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게 일본군 제 1군의 우울한 회의는 끝났다.
시일이 지나면서 산서성에서의 일본군의 점유영역도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병력들과 그리고 무장들의 힘을 입어 중국군의 공세는 날로 거세졌고, 그만큼 일본군은 후퇴에 후퇴를 반복했다.
다만 산서성을 완전히 점령하기로 목표를 잡은 두율명의 중국 3군은 후퇴하는 일본군을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산서성의 영역을 온전하게 접수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중국군의 산서성의 점령은 새로운 갈등을 예고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 본부 연안시에 자리잡은 비밀스러운 석굴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붉은 별이 그려진 빵모자를 쓰고, 황색의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다른 사람이 흉내 내기 힘들었다. 그의 기세에 앞에 서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세를 뿜어내는 이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휘자라 할 수 있는 모택동이었다. 모택동은 분기가 탱천한 얼굴을 지으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게 정말이냐?!”
모택동의 물음에 중앙당학교의 교장을 맡은 임표가 대답한다.
“예. 해방구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개인적 선택의 이유라며 반환을 거절하였습니다.”
모택동은 임표의 말을 듣자 얼굴이 구겨진다.
“빌어먹을... 이제 우리의 뿌리를 뽑아내려고 하는군.”
“지금 산서에 있는 일본군은 철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국부군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건을 위해서 모든 물자들을 민간인들에게 뿌리고 있습니다. 그 탓에 해방구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산서성의 도시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콰앙!-
모택동은 분노를 이기지 못했는지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흥. 그 쪽이 그럴 생각이라면 다 생각이 있지.”
마치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택동의 모습에 임표가 반색하며 물어본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나셨습니까?”
“그들이 물자로 우리들을 약화시키겠다고 한다면 우리도 나름대로 대처를 해야겠지. 순조롭게 점령하는 것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아는가?”
“한간을 고용했겠지요. 행정 쪽 도움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점령 후 활동에 대해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합니다.”
“소문을 내게.”
모택동의 소문이라는 말에 임표는 호기심을 가지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소문의 내용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국부군이 수탈하기 위해서 한간과 손을 잡는다고 말이야. 그리고 이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 한간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모으면 더 효과적일 거야.”
“으음. 그래도 소문의 효과는 있을까요? 지금 국부군이 물자를 뿌리는데.”
“물론 순조롭게 물자 배분하는데 방해해야지. 정보원들을 동원해서 그 쪽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민심을 최대한 떨어뜨려야지.”
임표는 모택동의 말에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면 효과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부정부패가 적은 국부군이 있을텐데. 예를 들면 여양에 주둔한 109군단의 신유철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 쪽은 나둬. 그 쪽은 정보를 모으는데 주력하고, 어떤 행동도 하지마.”
임표는 모택동의 말이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국부군은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한 곳이었고, 모택동의 계획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예외가 있다면 신유철이 지휘하는 109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