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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1월 23일, 조선 서대문형무소 안에 순사들에게 질질 끌리는 이가 있었다. 순사들은 어느 방 앞에 도착하더니 이내 그를 방 안으로 마치 물건 던지는 듯 집어넣었다.
-퍼억! 쿠다탕!-
순사들은 뒹굴 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은 뒤 목봉을 철창에 두들긴다.
-철렁! 철렁!-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장이 바로 순사 앞으로 달려 나왔다.
“방장 김절평입니다!”
바로 앞으로 튀어 나와 자신들을 우러러보는 김절평의 눈빛에 순사들이 험악한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신입이다. 잘 가르쳐줘.”
“예!”
순사들은 방 안에 있는 죄수들을 비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렇게 방 안에는 새로운 죄수 한 명이 들어온다. 방장 김절평은 쓰러진 그를 간신히 일으켜 앉게 한 뒤 말한다.
“에구구구...”
여기로 오는 도중 맞았는지 그는 앓는 소리를 한다. 김절평은 그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말한다.
“당신은 누구요?”
김절평의 물음에 말끔하게 생긴 중년남성인 그는 앉은 채로 말한다.
“내 이름은 조봉암이오. 당신은 방장이오?”
그 물음에 김절평은 한 쪽 눈초리가 올라가면서 말한다.
“꽤 눈치가 빠르군. 혹시 여러 번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소?”
“이제 3번째요. 3번 째...”
조봉암이라고 불리는 이는 3번째를 되새기면서 말한다. 김절평은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무슨 악랄한 짓을 했기에 3번째로 갇혔소?”
조봉암은 하아 하고 한숨을 지으면서 말해준다.
“불령선인의 죄목. 노동단체에 가입한 후 활동했다는 것이 죄목이지요.”
“혹시 독립운동 관련하는 것도 포함되는 일이오?”
조봉암은 그 물음에 잠시 말을 못하다가 이내 그렇다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김절평은 그 모습을 보더니 에휴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여기에도 그런 과가 있는데...”
“그런 과?”
조봉암이 김절평에게 궁금하다는 듯 되묻자 김절평이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외친다.
“어이 길 형! 일로 와봐!”
그 말에 누군가가 후다닥 달려와서 김절평에게 가까이 오면서 말한다.
“방장. 무슨 일이야?”
“인사해. 길 형. 조봉암이라고 불령선인으로 잡힌 똑같은 사람이야. 어느 정도 경력은 있으니까 가오 잡을 생각은 말고.”
김절평의 말에 길 형이라고 불리는 중장년남성은 기분 좋았다가 말았다. 조봉암이 김절평에게 눈짓으로 설명을 요구한다.
“그 이는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아들 녀석들 덕분에 연좌제로 끌려가서 이 고생 다하고 있는 사람이오. 쯧쯧 재수도 없지.”
“연좌제?”
“그 말을 듣다보면 그렇다고 하오. 아참. 이름을 소개해줘야겠지. 이쪽은 길 형이라고 불리는 만큼 이 방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오. 이름은 길남효.”
그 말에 길남효가 조봉암에게 인사한다.
“반갑소. 나보다 나이어린 친구인데 말 놔도 되겠지?”
길남효라는 이름에 조봉암의 눈이 급격하게 커진다. 그리고 조봉암은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길남효에게 무언가 묻는다.
“호... 혹시. 그 당신의 아들들의 이름이 길병재, 길병주, 길병윤이 아니오?”
“그렇소만. 왜 물으시오? 내 아들들이 뭐 잘났기가 하겠소?”
“잘 났다 말고. 허허. 세계가 주목하는 이들의 아버지가 당신이라는 소리이군. 그 아들들의 아버지니까 가둘 필요가 있겠지.”
조봉암은 마치 그 아들들을 잘 안다는 표정에 길남효는 순간 표정을 바꾼다. 그는 호들갑을 떨면서 조봉암에게 물어본다.
“내 아들들... 내 아들들은 어디에 있소? 내 아들들은...”
조봉암은 갑작스러운 길남효의 반응에 당황하다가 김절평에게 눈짓을 한다. 김절평은 에휴 한 숨을 쉬고는 길남효를 붙잡아서 진정시킨다.
“기다려! 길 형. 이러면 저 사람도 대답 못하는 것 알잖아?”
“......”
길남효는 그 말에 조봉암에게 묻는 것을 그만하고 고개를 숙인채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김절평은 조봉암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후 말한다.
“하여튼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오. 그 다음은. 어이 진산호! 나와.”
진산호라고 불리는 중년 남성이 투덜거리며 김절평에게 말한다.
“아 또 왜 부릅니까?”
진산호의 투덜거림에 김절평은 피식 웃고는 다시 시선을 조봉암에게 둔 채로 엄지로 진산호를 가리키며 설명해준다.
“저 녀석은 간통죄로 붙잡힌 인간이오.”
“쯧. 여러 번 말하지 마시오. 하여튼 나가기만 해봐.”
“나를 포함해서 이 세 사람들이 이 방에 있소. 원래 두 명이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은 나이 된다고 징병에 끌려갔고, 한 사람은 자기 형님의 부름에 따라서 나갔소.”
조봉암은 김절평의 소개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까지 포함해서 네 사람이군요.”
“그렇지. 그렇고말고. 하아. 인원들이 빠져서 조금 심심했는데. 그 것보다 저 길형의 이름 보고 놀란 눈치인 것 같은데 왜 그렇소?”
조봉암은 생각하다가 김절평에게 말한다.
“저 길남효라는 사람을 불러주시오. 아무래도 긴 이야기가 할 필요가 있겠소.”
조봉암의 진지한 표정에 진산호, 김절평은 침을 꿀꺽 삼켰다. 김절평은 고개를 돌리고 길남효에게 시선을 둔 뒤 외친다.
“길 형. 일로 와봐. 아무래도 당신 이야기와 관련된 거 같아.”
그 말에 길남효는 얼른 후다닥 달려와서 조봉암에게 가까이 온다. 순간 자신에게 집중하는 세 사람의 시선에 조봉암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말이지. 내가 듣기로는...”
조봉암의 설명은 첫째 아들 길병재부터 시작해서 셋째 아들 길병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독립군에 몸을 담고 있는 둘째 아들 길병주의 이야기까지 조봉암의 이야기에 김절평, 진산호, 그리고 길남효까지 얼굴이 점차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한 동안 이야기하다가 이제 조봉암은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저 사람의 아들들의 이야기이오.”
“허. 첫째는 미국에서 사람의 팔 다리를 재생시킬 수 있는 신의이고, 둘째는 중국에서 독립군에 몸담아 싸우고 있고, 셋째는 중국에서 비행기, 군화, 소총 군수물자는 물론 모든 물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단지의 회장이라.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김절평이 경악한 표정으로 조봉암을 살펴본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은 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별나라 이야기를 듣는 표정을 지었다. 그 것은 진산호도 마찬가지였다. 길남효는 그런 대단한 아들들은 둘째 치고 살아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린다.
조봉암은 그들 셋의 표정들을 살펴보면서 괜히 이 이야기를 꺼냈는가? 생각한다. 그 때, 김절평이 조봉암에게 한 가지 물어봤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 진실이오? 난 도저히 못 믿겠소.”
“보통 사람들에게 황당한 이야기임은 분명하오. 하지만 지식인들이라면 그 세 사람 중 첫째와 셋째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것도 진실로 말이오.”
“......”
김절평은 길남효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런 대단한 아들들의 아버지가 자신이 친근하게 길 형이라고 불리는 길남효라니 그로서는 아무래도 믿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조봉암은 한 가지 덧붙여서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총독부에서 왜 저 사람을 잡아갔냐면, 그 아들들 중 한 사람이라도 회유하려고 가둬 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있소. 한 마디로 인질로 붙잡았다는 소리지.”
그 말에 김절평은 길남효에게 놀란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노역 생활 중 자신들의 일행은 순사들에게 그다지 건드림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때가 아무래도 저 길 형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다.
“한 마디로 조선이 독립하게 된다면 살림 피게 되는 것은 저 길 형이라는 소리이겠군.”
“그렇소. 지금 세계의 눈이 그들 형제들에게 쏠리고 있소. 일제도 그렇고, 서구 유럽들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조봉암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1945년 2월 4일, 소련 크림 반도에 위치한 작은 휴양 도시 얄타의 한 회담장 안에는 꽤 대단한 사람들이 모였다. 미국의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수상, 마지막으로 중국의 장개석 총통까지 이 네 사람이 회담장 안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휴양도시라고 하더니만 정말 그렇군.”
장개석 총통은 숙소 안을 살펴보면서 꽤나 감탄한 얼굴이었다. 그 말에 수행원들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 중 한 명이 말한다.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각하.”
장개석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시선을 창문 밖을 향해 보았다. 창문 밖의 시선에는 흑해의 파도가 철썩철썩 거린다. 장개석이 그 광경을 눈에 박히듯 쳐다보고 있을 때, 수행원 중 한 명이 장개석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저 총독 각하. 회담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말에 장개석은 손목에 찬 명품시계의 시간을 확인하면서 말한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
장개석은 바깥의 풍경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시선을 방문에 고정하고는 일어나서 수행원들을 데리고 문밖으로 걸어나간다.
이번 회담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회담실 안에는 동서남북 네 사람이 앉는 원형 탁자의 의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아무래도 장개석이 먼저 도착한 모양이다. 장개석은 먼저 China라고 명패가 붙은 자리에 살포시 앉는다. 곧 이어서 영국의 처칠 수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처칠 수상은 먼저 앉은 장개석에게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당신이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오?”
하지만 장개석은 영어에 대해서 잘 몰랐기에 수행원 중 통역관으로 따라 나온 이가 처칠 수상의 말을 번역해준다. 장개석은 그 말을 듣고 대답한다.
“그렇소. 당신은 영국의 처칠 수상이시오?”
“맞소. 먼저 와 있었소?”
“아무래도 회담시간이 다가오니 먼저 자리라도 앉자고 생각한 것뿐이오.”
처칠은 장개석의 말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처칠 역시 자신의 나라에 해당되는 명패가 붙은 자리로 살포시 앉는다. 그런데 자리가 서로 마주보는 자리인지라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그 때, 소련의 스탈린 서기관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회담실 안으로 들어선다. 스탈린과 루스벨트는 회담실 안에 있는 인원들을 살펴보고는 자신들도 준비된 명패의 자리로 앉는다.
아직 회담이 정식으로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네 거두들은 서로 잡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때 동안 바빠진 것은 그들을 따라온 수행원들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소련의 스탈린 서기관이 일어서서 말한다.
“이제 회담을 시작하겠소.”
그의 엄숙하고도 권위가 느껴지는 말투에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이제 시작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스탈린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오. 저 무도한 나치는 패망 직전의 상황에 온 것 같소. 이 회담은 그 이후를 대비하고자 온 것이오. 기탄없이 의견을 내주었으면 하오.”
그 말에 영국의 수상 처칠이 말한다.
“아무래도 전쟁 후 독일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에 대해서 문제겠지요.”
스탈린과 루스벨트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장개석은 유럽의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그저 그들을 관망하는 자세로 바라보았다. 스탈린이 처칠과 루스벨트를 쳐다보며 말한다.
“지난 1차 세계 대전 때, 유럽의 거대한 제국이 민족별로 산산이 흩어졌소. 하지만 독일은 배상금의 책임만 지고, 별 피해는 없었소. 그러나 그들은 그 죄를 망각하고 다시 한 번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죄를 짓고 있소. 이제야말로 그들을 찢어나야 되오.”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묻는다.
“찢어놓는다면 어떻게 찢어놓겠소?”
“내 생각은 이렇소. 독일을 4개국으로 분할합시다. 영국, 프랑스, 미국, 그리고 우리 소련이 담당하는 것으로 말이오.”
루스벨트와 처칠은 그 말에 예상이라도 한 표정을 짓는다. 처칠은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는지 스탈린을 보고 묻는다.
“분할 영역은 어떻게 정하는 것이오?”
스탈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수행원보고 말한다.
“독일에 대한 지도를 올려놔.”
“옛! 서기장 동무!”
스탈린의 수행원은 빠릿빠릿한 동작으로 원형 탁자 위로 지도를 떡하니 내려놓고 펼친 후 고정시킨다. 지도상에는 독일에 대한 자세한 지도가 있었다. 지도상에는 각 색깔의 색칠이 된 부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4개국이 분할하는 영역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 영역을 어느 정도 살펴보다가 처칠이 조금 항의한다.
“이거! 우리 쪽으로 가져가는 영역이 적소!”
스탈린은 처칠의 항의에 진정하라고 손짓을 한다.
“우선 우리 쪽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은 이 것이오. 왜 이 지도를 꺼내놨냐면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스탈린의 말에 처칠과 루스벨트는 관심을 표한다. 하기야 소련의 일방적인 주장대로 독일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고 결정한다면 상관없었다.
곧 이어서 벌어진 장면은 각축장이었다. 양보와 고집, 그리고 타협, 그 모든 모습들이 장개석의 눈앞에 펼쳐졌다. 장개석은 유럽 문제에 대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셋의 모습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관망했다.
그들은 이 땅은 영국 꺼, 이 땅은 미국 꺼, 이 땅은 소련 꺼, 이 땅은 프랑스 땅으로 두자고 매번 협의하고 합의한다. 그리고 땅을 가지고 타협점이 틀어지면 왜 이 땅을 자기가 차지해야하는지 구구절절한 이유와 명분 등이 쏟아진다.
그 때, 스탈린이 크게 외친다.
“잠시! 휴식을! 합시다! 머리를 조금! 식힙시다!”
그 말에 열기를 띠는 처칠과 루스벨트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문다. 그 뒤 열띤 분위기는 잠잠해지고, 각자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다. 장개석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관망할 뿐이다. 그렇게 독일 처리문제를 두고 회담 하루가 지났다.
============================ 작품 후기 ============================
수행원 "총통 각하, 유럽도 아닌 우린 뭘 할 수 있죠?"
장개석 "유럽이 아닌 우린 병풍이 될 뿐이야. 팝콘이나 가져와라."
독자 "작가님, 작가가 아닌 우린 뭘 할 수 있죠?"
작가 "댓글이나 달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