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1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1945년 2월 25일, 병윤이 오랜만에 감연이랑 같이 휴가를 가게 되었다. 차 안, 감연과 병윤은 좌석에 기댄 채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병윤이 먼저 말을 꺼낸다.
“요즘 일 어떠냐?”
“뭐? 지금 내 일?”
“그래. 네 일.”
“나야 별 거 없어. 좆 빠지게 바쁜 것을 제외하면 말이지.”
“저번에 내가 조직운영 면에서 손봐주었잖아. 그런데도 바빠?”
“전보다 나아졌지. 그래 전보다는. 바쁜 것은 변하지 않았지.”
“요즘 하고 있는 일이 뭔데?”
그 물음에 감연은 하아 하고 한 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아니. 뭐에 그리 빠졌는지 모르겠어. 그 육상전함 때문에 말도 마라.”
“육상전함?”
“아니 미친. 이번에 대양함대를 구성하게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미국이나 영국에서 배를 사서 구성하면 될 일을. 우리보고 군함들을 일일이 설계하고 제작하란다. 나 원 참.”
“......”
감연은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열불이 난 모습으로 말한다.
“거기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 수륙양용으로 하라고 하더라고. 젠장. 요즘 장개석 총통이 히틀러를 따라하고 있어서 미치겠다. 아니 말이 되냐? 전함에 산을 기어 다닐 수 있게 만드는 수륙양용이 되는 것이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어?”
“몰라. 아직 설계 단계인데. 감도 못 잡고 있다. 지금 구축함도 3000톤 급 이상 되지 않나? 일단 구축함에 수륙양용이 되도록 어떻게든 시도를 하고 있다. 그 것을 살펴보고 어떻게든 해봐야지.”
“수륙양용 구축함이라. 쩝.”
“하아. 지면으로 잘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무게 분산 기술, 그리고 그만한 무게를 움직일 수 있는 마력의 엔진. 일단 기동이 되는 것부터 먼저할 생각이다.”
“전학삼 그 양반 그 쪽은 뭐라고 하는데?”
그 물음에 감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손 놨어. 난 모르니까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고. 자기 전문 분야 아니기 때문에 내가 끼어도 별반 도움 될 것은 없다고 말이야.”
“그런데 되면 재밌겠네. 수륙양용 구축함이라니.”
“친구. 꿈과 이상은 높은 되 현실은 시궁창이야.”
감연의 그 말에 병윤은 키득키득 웃고는 말한다.
“그래. 내가 시궁창을 헤치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너만 개고생 하는 거지.”
그 말에 감연은 열이 조금 받았는지 병윤의 멱살을 잡으면서 말한다.
“아오 이 자식은 내 괴로움을 들어줄 생각은 안하고 놀리냐? 어 놀리냐고?!”
“어. 야 남의 불행은 자신에게 행복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거야.”
“아오. 이 자식을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 까?!”
결국 둘은 서로 몸다툼으로 난리가 난다. 그 때, 차가 끼익 정지하고는 운전기사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는 병윤과 감연에게 말한다.
“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병윤과 감연은 싸움을 하다말고 운전기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병윤과 감연은 운전기사가 차문을 열게 하자 내리면서 주위 풍경을 살펴본다. 병윤은 그 분위기에 취하며 한 마디 한다.
“역시. 음 군인 냄새들이 나는군.”
“쳇. 너희 형은 왜 찾는데?”
“넌 전쟁 통인데 이 와중에 휴가를 꼭 찾아야겠냐? 그냥 내 형 찾아서 같이 놀다가자고.”
감연은 그 말에 혼잣말로 투덜투덜 거린다. 감연의 그 모습을 보고 병윤은 피식 웃고는 다시 시선을 운전기사에게 돌리고 그에게 돈을 쥐어주면서 말한다.
“한동안 여기서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간단한 요기나 하십시오.”
운전기사가 병윤에게 돈을 받아보니 눈이 휘둥그러지게 커질 만큼의 액수였다. 운전기사는 헤벌쭉하게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저기서 얼마든지 볼 일을 보고 오십시오.”
돈을 좋아한다는 중국인들처럼 운전기사 역시 돈을 받자마자 희희낙락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감연과 병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제 갈 길을 갔다. 어느 정도 걷다가 군부대 초소가 보인다. 초소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총을 들고 둘을 조준했고, 그 중 사수로 보이는 이가 다가가며 말한다.
“어떤 용무이십니까?”
그 말에 병윤과 감연은 품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며 사수에게 전달한다. 사수는 무슨 종이이기에 궁금해 하면서 종이의 내용을 살펴보다가 당혹감으로 둘의 모습을 살펴본다. 이윽고 밝은 미소를 보이며 둘에게 말한다.
“통과해도 좋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초소의 경계병들의 총들이 걷어지고, 병윤과 감연은 경계병들에게 돈을 조금씩 쥐어주면서 요기 거리나 하라고 했다. 병사들은 왠 떡이냐는 표정으로 돈을 챙기며 희희낙락거린다.
감연은 군부대 안으로 걸어가면서 병윤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한다.
“너 돈 얼마나 있냐?”
“알아서 뭐하게?”
“아 쫌. 그 중경공단에 내 지분도 있잖아. 알면 안 되냐?”
“왜 돈이 급해? 얼마정도 급하냐?”
“에휴. 말을 말자. 말을. 그런데 미국의 국채를 계속 구입하는 이유가 뭐야?”
“내 고향에서 회사 지어서 벌어먹고 살려고 그런다. 왜?”
“하기야 전쟁 국채다 뭐다해서 돈 급한 나라들이 많으니까 말이니. 요즘 중국의 국채가격은 계속 향상되고 있는데. 넌 거기에 잘 투자하지 않는 것 같은데.”
“거기는 조금 불안해. 뭐 말은 못하겠지만 일단 일정액수까지는 보유해 두려고 그런다. 그 이외에는 미국의 국채 사는 것에 손을 쓰고 있다.”
“거기에는 내 지분과 유철이 형님의 지분도 들어있냐?”
“왜? 불안하냐? 나에게 돈 맡긴 것이?”
“어. 불안해. 돈 줘.”
“꺼져. 나중에 줄 거야.”
“아오! 이 횡령범 자식이! 내 돈 줘!”
병윤은 그 말을 듣고 지갑에서 수표 하나 꺼내며 말한다.
“자 이 것으로 과자나 사먹어라.”
“이 자식이! 지금 놀리냐?!”
“왜. 네 월급보다 많을 걸?”
“흥. 내 월급 무시 하냐? 이래보여도 나 중국 기술 연구원의 부총괄장에 앉아 있어. 거기에 돈을 얼마나 받는다고 생각하냐?”
“야 그래봤자 작은 공장 하나 운영하면서 얻는 순이익보다 많겠냐?”
감연은 그 말에 말을 못 하다가 이내 기가 팍 죽었다. 병윤은 그 것 보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너도 팔자다. 팔자야. 송씨 아저씨의 뒤를 따라가고 있네. 매번 대장장이 노릇하기 싫다고 하더니 그 것보다 더 한 연구원의 길을 가고 있네.”
“흥. 고향에 돌아간다면 난 네 녀석에게 받은 돈으로 일 안하고 집에서 농땡이나 피울 거다.”
“농땡이 피울 거라고? 불가능해. 내 장담하는데 김구 할아버지와 이승만 할아버지에게 잡혀서 거기에 평생 동안 연구원장으로 일할 걸? 내 손목을 걸어도 좋아.”
감연은 그 말에 이빨을 으드득 갈면서 말한다.
“웃기는 소리. 야. 솔직히 내가 여기서 개 같이 일했는데. 집에서 놀고먹으면 안 되겠냐?”
병윤은 감연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키득거리며 말한다.
“뭐. 1년 정도는 먹고 놀겠지. 그러다가 두 사람에게 끌려가 유학 명목으로 보내고, 그 다음에는 지금의 경우처럼 개 같이 굴려지겠지.”
“으으으...”
감연은 병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박을 하고 싶은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두 사람은 군부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의 병사들은 병윤과 감연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인지 궁금해 하다가 이내 제 갈 길을 갔고, 건물 여기저기에는 중경공단에 속한 건설 회사들의 직원들이 발걸음을 움직이며 상하수도, 배전망들을 건설하고 있었다.
병윤은 그런 직원들의 환영을 일일이 받으면서 치하해준다. 그러다 이내 병윤과 감연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적지인 어느 방 앞으로 도착한다. 방 앞에는 병사 두 명이 서 있었는데 두 사람은 병윤을 알아보는 얼굴을 한다. 병윤은 그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안에 연락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병사 한 명이 바짝 얼어붙은 얼굴로 대답한다.
“예! 예!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그 대답을 한 뒤 그 한 명은 얼른 안으로 들어간다. 그 동안 나머지 병사 한 명은 병윤과 감연의 시선을 받고 온 몸이 긴장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후, 안에 연락한 병사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병윤에게 말한다.
“들어가십시오. 연대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수고하십시오.”
병윤은 병사들에게 손으로 인사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제 3 연대장으로 임명된 병윤의 작은 형 병주와 이번에 3연대장 연대 작전참모로 임명된 신영규 소령이었다. 두 사람은 병윤과 감연의 얼굴을 보고 반갑다는 얼굴을 지었고, 병주가 병윤과 감연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어쩐 일이냐?”
그 말에 병윤과 감연이 쇼파에 털썩 앉으면서 병윤이 말한다.
“이 녀석과 나랑 휴가를 받아서 시간 나던 참에 작은 형님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왔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허. 거 참 할 일 없는 녀석들이군. 신소령. 여기.”
병주는 신영규 소령에게 결제한 서류를 건네주었고, 신영규 소령은 그 서류를 받고 난 뒤, 병윤과 감연의 얼굴을 보고는 얼른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병주는 몸을 일으키면서 병윤과 감연의 맞은편 쇼파 자리에 앉고는 말을 꺼냈다.
“너희 의형에게는 안 가냐?”
병주의 그 물음에 감연이 대답한다.
“의형 유철이 형님은 신혼으로 바쁜 것 아시잖아요? 그 사람만큼 바쁜 인간이 없을 걸요. 마누라 돌봐야하지. 군사령관으로써 일도 해야 하지.”
“휴가라며? 그런데 이 쪽이 휴가지는 아니 잖아?”
감연은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중국 온통이 재건하는 분위기인데 우리가 희희낙락거리며 휴가를 떠나도 될까요? 가뜩이나 정신 못 차린 인간들이라고 욕을 듣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나에게 찾아왔잖아. 이 욕을 처먹을 동생들아.”
병주의 농담에 감연과 병윤은 키득키득 웃었다. 병주는 그 둘의 모습을 보면서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그나저나 그냥 심심해서 나를 찾아온 거야?”
감연이 그 물음에 대답한다.
“그냥 집에 콕 틀어박혀 있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이왕에 형님 찾아온 김에 줄 선물도 있고해서 찾아왔습니다.”
병윤은 줄 선물이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알아차리고 병윤을 쳐다본다.
“세탁기, 비누를 포함한 생필품이야?”
그 말을 받고 병윤이 대답한다.
“거기에 텔레비전도 가져왔습니다.”
“허. 텔레비전까지. 그거 상당히 비싼 거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이번 기회에 중국군 부대를 중심으로 텔레비전을 뿌리기로 하였어요. 요즘 장개석 총통이 민심을 잡기위한 일환이라고 국부군에 텔레비전을 배치했습니다.”
“그렇군. 군부대에 배치된 텔레비전을 군부대 주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일환이라는 소리인가?”
“예. 그래서 요즘 방송사 설립이다 뭐다해서 바쁩니다.”
“허. 중국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하는군. 서구권에서 보는 텔레비전이 여기서도 나오다니.”
“거기다 화질 좋고, 색깔 있는 텔레비전입니다.”
“그 것도 그 쪽이 개발해서 만든 거냐?”
병윤과 감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한다.
“예. 그렇죠. 색깔 있는 텔레비전의 이론은 이미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중국어라서 병사들 보기에는 조금 그럴 듯 싶은데.”
“그래서 임정에서 자체적으로 중국 정부와 협상하는 모양입니다. 자신도 조선인들을 위한 방송을 하게 해달라고 말이죠.”
“그렇군. 방송사를 운영하면서 광복 후에 방송사를 설립하기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인가?”
“뭐 그런 것도 있죠. 요즘 텔레비전이 중국 전역에서 유행이잖아요. 요즘 중국인 부자들 사이에서 텔레비전 하나 없으면 거기는 거지와 다름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죠.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텔레비전의 가격도 꽤 싸서 부자들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돈을 만지는 중국인들도 많이 구입합니다.”
“그런 텔레비전은 우리 부대에게 배치한다고?”
“예. 분대 생활관마다 4개씩 배치할 생각입니다.”
병주는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한다.
“아니 얼마나 많이 생산했기에 그 정도 배치하는 거야?”
“돈 될 거 같아서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라디오 듣는 세대가 아니라 텔레비전 보는 세대가 되겠군.”
“요즘 전력 쓸 데가 없잖아요. 세탁기 돌리고, 냉장고 돌리고, 그 외 더우면 에어컨 선풍기 트는 것, 정수시설을 돌린다거나 난방을 돌리는 것 외에는 없잖아요.”
“그 태양광 발전방식 때문에 그래. 전력이 남고 돌고 있어.”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말 한 마디 한다.
“뭐 고향에 돌아가면 중국에서 개발했던 모든 기술들을 쏟아 부을 것이에요. 이왕이면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려고 생각 중이니 말이죠.”
“하아. 그런데 텔레비전이라니 진짜 시대가 휙휙 바뀌는 것이 눈에 보이는군.”
그 말에 병윤과 감연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연대장 당번병이 커피 하나와 코코아 두 개를 쇼파 사이에 있는 탁자위로 올려 놓았다.
병윤과 감연은 잔을 들고 코코아를 조금씩 마셨고, 병주는 그 둘의 모습을 보면서 한 마디 했다.
“너희들은 커피보다 코코아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우리들은 이거에 딱 맞는 것 같아서 말이죠.”
“하여튼 이번 텔레비전을 포함한 생필품 보내는 건 고맙다. 아마 유럽, 미국에 있는 군부대들도 이렇게 보급받는 것은 상상도 못할 거다.”
병주와 감연은 그 말에 씨익 웃을 뿐이다.
============================ 작품 후기 ============================
수륙양용 전함 하니까 메탈슬러그2에 나오는 4판 보스 빅 시이가 생각납니다. 과연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네요. 텔레비전 관련해서는 원 역사보다 기술적인 부분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으로 갈게요.
댓글 하나 하나가 작가를 즐겁게 합니다. 댓글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