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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1945년 4월 24일 오후 2시, 고노에 후미마로는 조선 경성에 도착했다. 미 해군들이 일본 본토를 봉쇄하는 바람에 고노에를 태운 배는 마치 도둑배처럼 밀항하듯이 조선에 갔다. 조선의 경성역에 도착하자마자 총독부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격식을 차린 양복을 입은 자와 그 자를 호위하는 병사들이 서 있었다. 고노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양복을 입은 자와 면식이 있었는지 반기는 기색으로 맞이한다.
“자네는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가 아닌가? 날 뵈러 이 자리에 왔나?”
정무총감 엔도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감히 후지와라의 당주를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군.”
“그나저나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 그건 여기서 말하기는 그렇네.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 말을 좀 해야겠네. 조용한 곳 있는가?”
비밀을 요구하는 고노에의 말에 엔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심정을 들어준다.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이야기하실까요?”
고노에는 그 말에 좋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노에의 긍정적인 반응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엔도가 고노에를 안내하며 자신을 호위하는 병사들과 같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차량은 어느 비밀 진 곳으로 도착했고, 고노에와 엔도는 겉모습이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고노에는 그 건물의 겉모습을 보면서 조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조용하고 은밀한 곳이니 겉모습은 이렇게 보여 지는 것이 정석이기도 했다.
건물 안은 건물 밖의 모습과 달리 고노에의 불쾌한 감정을 풀어준다. 정무총감 엔도가 건물 안에 있는 하인들을 불러 모아 말한다.
“중요한 손님이시다. 안으로 뫼셔라.”
“예! 나리.”
조선식 복장을 입은 하인들이 정무총감의 말을 듣고, 얼른 고개를 꾸벅거리며 엔도와 고노에를 방으로 안내한다. 하인의 안내를 받고, 어느 방 앞에 도착했다. 엔도는 자신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방문 앞에 세워두었고, 자신과 고노에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은 전형적인 한옥의 양식을 띈다. 일본 본토에서 생활하였던 고노에는 한옥의 문화에 조금 신선한 감정이 들었다. 엔도가 고노에를 보고 말한다.
“여기는 좌식으로 생활하니 일본처럼 무릎 꿇고 정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가?”
그 말에 고노에는 자기 편한 데로 바닥에 앉았다. 둘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되었다. 엔도는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을 고노에 앞으로 내려놓고, 차주전자를 들어 쪼르륵 차를 내렸고, 자신의 찻잔에 차를 내린다. 이제 어느정도 이야기할 준비는 갖춰진 것 같았다.
엔도는 단도직입적으로 고노에에게 묻는다.
“이제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조선으로 왜 왔는지 말인가?”
“예. 제가 알기로는 소련으로 특사로 파견나간다고 하였는데 도중 조선에 볼 일을 본다는 명령을 들어서 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지와라 당주에게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엔도의 말에 고노에는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고노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찻잔을 들고 한 잔 마신 뒤 슬슬 입을 열었다.
“스즈키 총독 각하께 한 가지 개인적인 부탁이 있었네.”
“그 것이 무엇입니까?”
“조선에 여운형이 있지 않은가? 그를 개인적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여운형이라는 인명에 엔도는 자신보다 높은 직위의 고노에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쾌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 헛소리하는 인간을 왜 만나시려는 것입니까?”
“그래도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지 않나?”
“......”
엔도는 잠시 자신의 말을 끊고, 생각한다. 고노에가 여운형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저번에 여운형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고노에는 여운형에게 중일전쟁의 중개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개인적으로 여운형이 거절하였지만 말이다. 그 후, 여운형은 조선으로 돌아와서 조선총독부의 감시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여운형을 또 만나려는 고노에의 생각에 엔도는 조금 이상한 감이 들었다. 중일전쟁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고노에의 행동에 조금 공감하는 편이었지만 굳이 그를 만날 필요라도 있나 싶었다. 하지만 엔도는 고노에에게 단 한 가지만 물어본다.
“굳이 저에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없습니까? 귀띔이라도 좋습니다.”
“귀띔이라? 좋아. 이 것 하나만 이야기하지. 약 이틀 전에 하북이 중국군에게 탈환한 것은 기억나는가?”
“그건...”
“지금 중국군의 기세는 이미 우리 일본군으로써 막을 수 없어. 그런 우리가 직접 중국으로 가서 화해를 요청하면 어떻게 될까?”
“......”
“물론 한 가지 희망을 가지고 고이소가 도고를 특사로 임명해 중국의 장개석과 만나는데 성공했지. 단 그 것뿐이야. 그야말로 문전박대 당했어. 우리가 하북, 만주를 포기한다고 애원했는데 말이야. 이것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머리 좋은 자네는 상상이 되지 않은가?”
“중국 측은 우리를 가볍게 압살하는 국력의 기틀을 갖췄다는 이야기입니까?”
“분하지만 말이지. 중일전쟁을 열게 만든 나의 선택과 행동에는 솔직히 반성하고 싶어. 다만 반성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일단 일본이 파국을 막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엔도는 그 말에 조금 음울한 표정을 짓는다. 정계에 있는 사람들과 정보에 밝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나라 일본이 망하고 있는 와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일본이 몇 달 만에 망할까? 라는 내기를 거는 인간들도 보았다.
그런 이들 중 엔도는 설마 하는 심정이기는 했지만 아직 일본이 망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고노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조금 엔도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엔도는 심각하고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노에에게 한 가지 물어본다.
“후지와라 당주께서는 조선의 독립도 염려해두고 있습니까?”
“...... 내가 충고하고 싶은 것은 만약 내가 조선에서 일군 재산이 있다면 그 재산을 갖고 일본 본토로 튈 거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귀띔은 여기까지 인 것 같군. 여운형과의 만남 가능한가?”
엔도는 아까의 충격이 컸는지 고노에의 말을 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런 엔도의 모습에 고노에는 짜증이 났는지 탁자를 탕 친다. 엔도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고노에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고노에는 그를 보고 쯧쯧 거리며 말한다.
“정신 차리게!”
“아. 실례하였습니다. 여운형과의 만남은. 휴우. 알겠습니다. 만남을 주선하겠습니다. 다만 그 인물은 감시 중에 있으니 후지와라 당주께서 그가 감시당한 곳으로 직접 가야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엔도의 그 물음에 고노에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엔도는 고노에의 모습에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엔도는 고노에가 엔도에게 무례하다고 역정을 내 여운형과 만나지 않기를 빌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엔도와의 대화가 끝나자 고노에는 곧장 일어서서 방문 밖을 나간다. 엔도는 고노에의 급한 행동에 조금 당황해서 그를 붙잡는다.
“벌써 그를 만나시려고 합니까?”
“그럼. 지금 만나야지. 내일 격식 차리고 방문해야겠는가?”
“......”
엔도는 그 말에 말이 없었고, 결국 문 밖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고노에는 나가는 길에 조선식 의복을 입은 하인들을 보면서 엔도에게 묻는다.
“그런데 저 조선인들은 안전한 건가?”
“걱정 마십시오.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조선인 의원들이 가려서 뽑은 이들입니다. 그들의 일제에 대한 충성심은 믿을만합니다.”
“자네가 그렇다니 그렇게 알고 있겠네.”
고노에는 조선인 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떨떠름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고노에와 엔도의 일행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차량은 여운형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고노에는 차량 창문 너머 경성의 거리들을 살펴보면서 시간을 죽인다. 엔도 연시 고노에 옆자리에 탑승했지만 서로 할 말은 하지 않았다. 엔도는 고노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더 이상 말하기에는 실례로 인식했고, 고노에 역시 엔도에게 알려줄 것은 다 알려주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둘의 침묵에 앞좌석에 운전 중인 운전기사만이 집중을 하면서 운전대를 돌릴 뿐이다.
그렇게 차량은 어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엔도와 고노에는 곧 차량에서 내려서 여운형이 있다는 건물의 겉모습을 살펴본다.
“여기가 여운형이 살고 있는 건물이군. 쯧. 일제에게 협력해야할 인물이 왜 아직까지 헛된 희망을 품는지 모르겠어.”
그 말에 엔도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동조한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조선인 의원들과 관료들을 동원해 설복시키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버티고 있습니다. 고래 심줄처럼 질긴 인간입니다.”
“그래도 그의 능력과 모습은 꽤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 뭐 두 사람만 못해도 말이지.”
“두 사람이라면?”
“중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형제들.”
그 말에 엔도는 아! 하고 고노에가 말하는 인간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린다. 사실 고이소가 내각을 사퇴하게 된 이유도 그가 총독을 재직할 당시 길재를 놓치게 만든 당사자라는 것도 한 몫 한다. 물론 고이소는 그 이유에 대해 그 당시 그가 그런 능력을 보유했는가에 대해 상당히 억울해 했지만 말이다.
“요즘 조선에 활동하고 있는 유력자들 중 그 형제들의 아버지를 포섭하려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계속 형무소에 있는 중입니다.”
“흐음. 사실 그 것도 상당히 헛짓인데 말이야.”
“그래도 고문은 안하고 있으니 상관은 없습니다.”
“그 인간도 불쌍한 인간이군. 아들들이 그런 쟁쟁한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갇히게 되다니 말이야. 그의 자식농사 실력만큼은 인정해줘야겠지?”
“그 점에 대해서 상당히 부럽기도 합니다. 제 아이들도 그만큼 직위와 능력을 보유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바라는 것은 좋으니까. 일단 들어가지.”
그 말에 엔도와 고노에는 여운형이 있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둘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뒤를 따라 여운형이 살고 있다는 집 앞에 도착하자 문을 두들긴다.
-텅! 텅! 텅!-
“누구십니까?”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엔도가 외친다.
“난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이다. 안에 여운형 있는가?”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 물음에 잠시 잠잠해지다가 이내 대답한다.
“지금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 고귀한 직책으로 우리 몽양 선생을 찾으십니까?”
“난 할 말이 없고, 다른 인물이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곧 이어 문이 열리고,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고노에와 엔도, 그리고 그 둘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맞이한다. 엔도는 양복을 입은 사람에게 말한다.
“이 쪽 분이 그 쪽의 몽양에게 할 말이 있어서 방문하는 것이니 그리 경계할 생각은 말게나.”
그 말에 양복을 입은 사람은 그 뒤에 있는 병사들을 경계어린 눈초리로 쳐다본다. 마치 저들을 이끌고 이러고도 말인가? 라는 표정이었다. 엔도는 그런 눈초리에 자신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에게 손으로 휘휘 거리며 말한다.
“너희들은 문을 지켜.”
“예!”
병사들은 문 밖으로 호위를 세워두었고, 양복을 입은 사람은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엔도와 고노에를 마지못해 안으로 맞이한다. 그리고 어느 방 앞에 둘을 안내하다가 이내 문을 두들기며 말한다.
“지금 손님들이 왔습니다.”
그 말에 안에서 여운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시게나.”
그 말을 듣고 양복을 입은 이는 곧 바로 문을 열었고, 고노에와 엔도는 그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 여운형이 정좌를 하면서 둘을 맞이한다. 고노에와 엔도가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여운형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하자 엔도는 쯧쯧거리며 불쾌한 말투로 쏘아붙인다.
“쯧. 손님 맞는 태도는 여전하군.”
그러나 여운형은 눈도 깜짝 안하고 엔도에게 대꾸한다.
“우리 사이가 손님 하면서 맞을 사이는 아니지 않소?”
“자네의 말은 우리들이 불청객이다. 이건가?”
“긴 말은 하지 않겠소.”
그 말에 엔도는 에휴하고 한숨을 쉬면서 고노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여운형은 이런 작자입니다. 그런데도 만나실 의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나랑 만났을 때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였는데 뭘. 일단 우리가 불청객이니 우리가 앉지.”
고노에와 엔도는 여운형 앞에 털썩 앉는다. 여운형이 둘의 이런 태도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그 둘을 안내하는 양복 입은 이에게 시선을 돌려 말한다.
“자네는 나가보게.”
“조심하십시오. 선생님.”
양복을 입은 이는 다시 문을 닫으면서 자리를 뜬다. 고노에는 여운형에게 시선을 두며 말을 꺼낸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소.”
“나도 오랜만에 뵙는 것 같소. 후지와라 당주.”
“자네의 일전의 거절은 조금 안타까웠네.”
고노에가 여운형이 일본 방문 와중에 중일전쟁의 중재에 거절했던 일을 상기시키자 여운형은 침묵한다. 여운형은 잠시 고노에의 시선을 마주치다가 말한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이 자리에 온 것 같지는 않고, 어쩐 일로 왔소?”
“뭐 할 이야기야 많지. 많아.”
고노에가 조금 음울한 표정을 짓자 여운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고노에의 의사를 재차 물을 뿐이다.
“할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좋아. 할 이야기가 있지. 자네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말이지.”
“......”
여운형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라는 고노에의 말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고노에는 그런 여운형의 표정을 보며 말한다.
“바로 조선의 독립을 말이야.”
“!!!”
여운형과 엔도는 고노에의 말에 동시에 놀란다. 조선의 독립이라니?! 갑작스럽게 폭탄선언을 하는 고노에의 말에 순간 엔도가 말한다.
“조선의 독립이라니?! 후지와라 당주님! 이건!”
엔도가 고노에에게 대답을 요구하자, 고노에는 엔도의 말을 무시하고 여운형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채 조용히 여운형을 관찰할 뿐이다.
============================ 작품 후기 ============================
원역사에서 고노에는 소련을 중재하는 대가로 모든 식민지들을 반환할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노에를 좋게 봐서는 안 됩니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거든요. 한 마디로 전쟁 일으키고 이제와서 평화주의자 코스프레 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독자님들 댓글 좀 주세요. 아. 그리고 저 내일 예비군이 있어서 오후 늦게 한 편 올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