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50화 (15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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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여운형, 엔도 류사쿠, 그리고 고노에 후미마로 셋이 있는 방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여운형과 엔도 류사쿠는 고노에 후미마로가 던진 폭탄같은 발언에 대한 진의를 알아보고자 연신 머리를 굴릴 뿐이다. 여운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노에 후미마로에게 물어본다.

“일제 측에서 싫어하던 조선의 독립을 꺼낸 저의가 궁금하오.”

“......”

고노에 후미마로는 여운형에게 일본의 사정을 알려주기는 싫었다. 어느 누가 자신이 망하게 생겼다고 생생하게 이야기하겠는가?

“말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소. 그럼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냈소?”

여운형이 말을 돌리자 고노에는 이제야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조선 독립을 원하는 이들 중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니 말이야. 또 자네가 조선인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네.”

“......”

한 마디로 이용가치가 있어 보여서 자신을 찾아왔다는 소리에 여운형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런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조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물론 이건 내 의견이야. 천황 폐하와 내각들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왜 이 의견을 내놓았냐면 시간이 늦어지든 빨라지든 조선의 독립은 이제 시간문제야.”

엔도는 슬그머니 고노에를 보더니 조용히 소곤거리며 말한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저 치가 독립한다고 알고 있다면 괜한 심술을 낼지 모르는 일입니다. 거기에 갑작스럽게 폭탄선언을 내던지면 우리는 어쩝니까?”

“그럼 공식적인 조선 독립의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감시하면 될 거 아닌가? 소련과 중재조건 중에서 조선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어.”

“......”

고노에는 어떻게든 조선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가진 것 같았다. 엔도는 그런 고노에에게 질색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여튼 우리 조선 총독부는 천황 폐하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 말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몽양. 자네가 또 독립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번에야말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린 자네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어.”

여운형은 엔도의 경고에도 얼굴에 별 이상은 없었다. 고노에는 그런 여운형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자네는 이미 조선의 독립을 예상한 것 같은 표정이군.”

“국제 정세를 읽어보면 적어도 일제가 얼마나 큰 곤경에 처해있는지 알 수 있소. 그에 따라 조선의 독립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지요.”

“으음. 그렇군. 좋아 내가 이 말을 꺼낸 용의를 말하지.”

“......”

“한 가지 약조는 해줄 수 있겠나?”

“무슨 약조를 말이오?”

“만약 조선이 독립하게 된다면 조선에 잔존해 있는 일본인들을 무사귀환을 보장해줄 수 있냐는 말이야.”

“그건... 생각해볼 용의는 있소. 단 생명만 보장하겠소. 일본인들이 여기서 일군 재산은 저를 비롯한 조선인 지식인들이 용의하지 않을 것 같소.”

“......”

고노에는 일본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여운형의 말에 동감했지만 재산까지는 허용하지 못한다는 말에는 조금 불쾌감이 일었다. 엔도는 여운형의 말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고 있었다. 그는 여운형을 보고 한탄조로 이렇게 말한다.

“허. 말세로군. 말세야.”

그러나 그런 엔도를 보고 여운형이 쏘아 붙이며 말한다.

“나는 약과이오. 지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시정부 쪽은 당신들을 상당히 벼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오.”

고노에와 엔도는 임시정부라는 말에 눈썹을 꿈틀거린다.

“벼른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발해만에서 습격당했다는 소식은 들었소?”

“......”

엔도와 고노에는 중국의 하북 평정에서 일본군 수송선단이 정체불명의 수상세력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 것을 여운형이 알고 있다는 소리는 한 마디로 뭔가 끈이 있다는 소리이고, 임시정부가 벼르고 있다는 말을 조합해보면 정체불명의 수상세력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고노에는 한탄조로 중얼거린다.

“언제 반란군 무리들이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군.”

“......”

여운형은 여기서 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고노에는 여운형에게 한 가지 더 물어본다.

“아까 벼르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나?”

“나는 일본과 일본인에게 사적으로 원한은 없소. 그 것은 당신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믿고 있소. 하지만 임시정부는 상당히 다르오. 조선에서 평범하게 잘 지내며 산 일본인들은 그렇다 치고, 여기서 악행을 자행해 온 무리들에게는 생명의 보장은 못할 정도이오.”

“끄응.”

고노에는 침음성을 흘린다. 엔도 역시 고노에와 같은 감정이었다. 그나마 여운형을 대화의 상대로 선택한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그 때, 여운형이 진지한 얼굴로 한 가지 말한다.

“다만 이 부탁을 들어주면 임시정부에게 한 가지 끈을 놓겠소.”

임시정부의 끈이라? 고노에와 엔도는 그의 말에 조금 매력적인 것을 느꼈지만 공짜는 없었다. 그가 그런 제안을 하는 대신 뭘 내놓으라고 하는지 조금 걱정이었다. 여운형은 그런 둘의 얼굴을 보면서 부탁을 이야기한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있는 이가 있다고 하오. 물론 두 분이 생각하는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아니지.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을 풀어준다면 임시정부와 끈을 놓을 용의는 있소.”

한 사람을 풀어준다 라고? 고노에와 엔도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여운형을 바라본 뒤 고노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누군가?”

“그 사람의 이름은 길효남이라고 하는 이오. 원래 소작을 하다가 사정에 휘말려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갔소. 그 이를 풀어준다면...”

그 말에 고노에는 손을 번쩍 들고 제지한다.

“그만.”

“......”

“이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지.”

고노에는 일어날 준비를 하자, 여운형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운형이 고노에를 보고 이야기한다.

“아니? 왜. 나처럼 독립운동을 바라지 않고, 일제의 명에 고분고분 들은 이오. 그런데 왜?”

고노에는 그 물음에 여운형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 가지 대답해준다.

“자네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찌르는 능력이 있어.”

“그는 당신들에게 필요 없는 이가 아니오?”

“그래. 필요 없지. 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무척이나 필요해.”

“......”

여운형은 그들이 길씨 형제들의 가치를 꿰뚫었다는 표정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엔도는 그런 여운형을 비웃으며 한 가지 더 말한다.

“우리가 그 이를 풀어주면 자네는 그 이를 포섭할 생각인 거 다 알아. 차라리 다른 이를 풀어달라고 말하지? 어떤 악질도 풀어줄 용의는 있으니 말이야.”

“한 가지만 물어보겠소. 정말 그 이를 인질로 데리고 있는 다면 길씨 형제들을 회유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소?”

그 물음에 고노에가 피식 웃으며 한 가지 이야기한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그 형제들을 회유할 수는 없지. 하지만 적어도 그를 포섭해서 그 형제들을 포섭하려는 세력들을 막을 수는 있겠지. 자네처럼 말이지.”

“......”

“쯧. 성과는 이 정도인가? 아무튼 이야기는 잘 나눈 것 같아서 다행이야. 정무총감 가세나.”

“예! 후지와라 당주님!”

고노에와 엔도는 여운형이 있는 방 밖으로 나간다. 결국 방 안 혼자 남은 여운형은 떫은 감씹은 얼굴을 지으며 방문을 노려본다. 그리고 여운형은 엔도와 고노에에게 정보를 털어 넣는 것에 대해서 과연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 때, 문이 드르륵 열리며 아까 두 사람을 안내한 양복을 입은 이가 들어온다.

“몽양 선생님. 그 두 사람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여운형은 그 물음에 잠시 그를 보더니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한다.

“조문기인가? 서로 정보 거래를 한 것뿐이야.”

“정보 거래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조선 독립이 꽤 멀지 않은 듯싶어서 그래.”

“그거야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아니십니까?”

“일제 고위 정치인이 조선의 독립을 꺼내들면 이야기는 다를 걸?”

“......”

“그 놈들도 이제 제 운명을 톡톡히 알고 있는 모양이야. 자신의 일제들이 붕괴된다는 사실을 말이지.”

“으음. 하지만 선생님 그들이 이야기만 꺼낸 모양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야기만 꺼냈지. 하지만 그 것으로 알 수 있지 않나?”

조문기는 그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조금 활동을 잠잠하게 해야지.”

“잠잠하게라니?”

“독립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놓고 우리를 잡으려는 함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네.”

조문기는 그 말에 상당히 동의했다. 왜놈들이 어떤 놈들인가? 여운형의 말대로 독립이라는 미끼를 던져주고, 자신들을 잡아갈지 모른다.

“일단 세력을 확장하면서 조심히 다니게. 나랑 대화한 두 사람은 내가 총독부에게 비협조적인 것을 알지.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럼 선생님도 조심하십시오.”

“그러게.”

그 것으로 조문기와 여운형의 대화는 끝이 났다.

한편 여운형이 있는 건물 밖으로 나서는 고노에와 엔도는 병사들의 호위와 함께 나가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쯧. 안타깝게 되었어. 괜히 독립 이야기를 꺼낸 것 같군.”

“그런데 후지와라 당주께서는 식민지를 포기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 말에 고노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네. 일본 본토라도 건사한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전 아직 우리 제국이 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 아직까지 전쟁을 부르는 미치광이들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면 말이지.”

군부 강경파에 대한 이야기를 고노에가 꺼내자 엔도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엔도는 고노에를 보고 말한다.

“이 일 총독에게 전해도 상관없습니까?”

그 말에 고노에는 엔도를 살펴보다가 이내 말한다.

“난 되도록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자네 마음이겠지.”

엔도는 고노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시면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것보다 우리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의 입을 막아야되지 않겠나?”

그 말에 엔도는 호위하는 병사들을 쓱 보면서 말한다.

“밝히고 싶은 사람은 밝혀라. 다만 자네들 뒷일에 대해선...”

엔도의 경고에 병사들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두 분께서 안가에 이야기를 하고 끝났다고 기억하겠습니다.”

엔도는 병사의 답변에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씩 웃으며 말한다.

“좋아. 그렇게 기억해.”

그렇게 엔도는 병사들의 입을 봉한다.

1945년 4월 25일 오전 8시,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일행들을 이끌고 직접 고노에를 배웅한다. 고노에는 군부 강경파에 속한 그가 자신을 배웅해준다는 생각에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도 배웅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소련에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아베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한다.

“조선은 걱정하지 마시고 특사께서는 일을 마치길 기원합니다.”

“그래. 알겠네.”

그렇게 해서 고노에는 기차를 타고 경성을 빠져나간다. 아베는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를 보고 말한다.

“정말 그 분이랑 이야기하다 왔나?”

“예. 그는 저와 소련의 중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엔도는 고노에와 같이 여운형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아베에게 털어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베는 그런 엔도에 대해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이내 그 눈빛을 접어둔다.

“그 것뿐이라면 시시하군.”

아베는 그 말을 하면서 경성을 빠져나가는 기차를 바라본다.

1945년 4월 27일, 고노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의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소련주재 일본대사인 사토를 만난 고노에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고 말한다.

“소련이 중립협정을 폐기하겠다고?!”

“예. 중립협정에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길.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후지와라 당주, 거기에 독일에 대해서 말입니다.”

“독일이 또 뭐?”

“독일이 지금 망하기 일보직전이라고 합니다.”

“...... 히틀러는 아직 있나?”

“잘 모릅니다. 지금 독일 본토까지 연합군들에게 점령당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으음. 독일이 망한다면 소련의 창끝을 우리 일제에게 돌릴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망합니다. 가뜩이나 중일전쟁에서 강력해진 중국군의 공세와 미군의 압도적인 공세에 절망적인데 거기에 소련의 공세가 더해지면...”

“자네 말대로 정말 절망적이지. 난 그 사태를 막기 위해서 특사로 온 것이고.”

“후지와라 당주님만 믿겠습니다.”

고노에는 그 말에 부담감을 느낀다. 과연 소련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지.

============================ 작품 후기 ============================

휴우 겨우 올리네요. 전 이 것만 올리고 예비군으로 가겠습니다. 1부 끝내고 한번 퇴고를 해봐야 겠네요.

댓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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