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53화 (15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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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방 안으로 들어오는 와중에 고노에는 방문을 슬쩍 바라본다. 아까 그의 얼굴이 바로 그 소문으로 듣던 길씨 형제 중 첫째 인 것 같았다. 그러나 고노에는 다시 시선을 돌려 의자에 불편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보기 좋은 카이저 콧수염을 기른 스탈린이 원래 만나기로 약속했던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본다. 하지만 두 사람을 바라보는 스탈린의 시선은 냉정하고 무관심했다. 고노에와 사토 대사는 그런 스탈린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고노에는 먼저 스탈린에게 자신의 소개를 한다.

“약속된 시간에 만나 뵙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일본제국에서 특사로 파견된 고노에 후미마로라고 합니다.”

“......”

스탈린은 고노에를 한 번 쓰윽 보더니 서류 한 장을 처리한 후 다시 고노에와 사토를 쳐다본 뒤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앉으시게나.”

스탈린의 말에 고노에와 사토 대사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스탈린 맞은편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리고 고노에는 스탈린과 마주보게 되었는데 스탈린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와 압박감은 고노에에게 있어서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자신의 앞에 폭발시간이 가까워지는 시한폭탄을 앞에 둔 긴장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고노에는 스탈린의 기세와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고노에는 그렇게 스탈린을 마주 앉아보면서 서로 분위기를 탐색해 나갔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지나가자 스탈린은 고노에를 쓱 보더니 한 마디 한다.

“일본에서 파견된 특사라고 했소?”

스탈린을 보면서 한껏 긴장된 고노에는 자신에게 물어보는 스탈린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 벌벌 떨면서 말한다.

“예. 예. 그렇습니다.”

“외무장관에게 들으셨소? 나와의 시간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즉 다시 말해서 공적인 영역에서 처리하지 않는 일이지.”

그 말에 고노에는 긴장된 말을 다 잡고 눈을 바로하며 스탈린을 보고 말한다.

“서기장 각하께서 관심을 보일만한 제안입니다. 그 제안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둘지 공적인 영역으로 둘지는 마음대로입니다.”

스탈린은 고노에의 말에 제법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쪽 입 꼬리를 쓰윽 올리며 고노에를 바라보고 말한다.

“어디 이야기 해보시게. 일본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또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말이오.”

스탈린의 말에 고노에는 이제 시작이라고 속을 되뇌며 스탈린을 보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우리 일본제국이 원하는 제안은 간단합니다. 소련이 중국, 미국, 그리고 영국 간의 사이를 중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스탈린은 고노에의 제안과 의견을 듣자 또 그 소리인가? 라는 표정을 보인다. 고노에는 그 표정을 보면서 자신과 같은 제안을 했던 이들이 여러 명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일본제국은 이 중재를 소련이 공짜로 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소? 중재해주는 대가로 우리 소련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오?”

“남 사할린, 그리고 지시마 열도(쿠릴 열도), 마지막으로 만주를 소련에게 넘기겠습니다.”

“......”

스탈린은 고노에의 제안에 조금 흥미가 이는 표정이었다.

“중재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군. 남 사할린과 쿠릴 열도는 원래 우리 영토이니 반환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만주를 넘겨주겠다니.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중재하기에는 조건이 부족하군.”

스탈린이 고노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고노에는 조금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 때, 사토 대사가 스탈린에게 말한다.

“서기장 각하. 이건 기회입니다. 남 사할린과 지시마 열도(쿠릴 열도)는 그냥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주는 사실 연해주와 연동하는 천혜의 요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것을 외교관계를 조정해주는 대가로 만주를 얻는 것입니다. 만주에 주둔 중인 관동군 수십만 대군에게 방해받지 않고 말입니다.”

사토 대사가 스탈린에게 유혹하는 말투로 고노에의 제안을 도왔지만 스탈린의 반응은 오히려 피식 비웃는 모습이 보였다. 스탈린은 고노에에게 시선을 두며 말한다.

“솔직히 말하겠소. 우리 소련은 일본제국과 중립 관계를 거절하지. 만주가 우리 소련에게 탐나고, 피해 없이 접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소.”

고노에와 사토는 중립관계의 연장거절이라는 스탈린의 발언에 깜짝 놀랐고, 고노에는 스탈린을 보고 소리친다.

“가... 각하! 우리 일본제국은 소련과 독일이 전쟁 중일 때 우리는 관계를 성실히 유지하였습니다. 독일이 우리와 동맹관계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 일본제국은 소련에게 관계를 존중한 것입니다.”

“존중이라 달게는 받지. 사실 그 존중 때문에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이오. 관계의 존중이 없었다면 이렇게 만나 뵙지도 않는 것이오.”

스탈린의 이런 부당함과 행패에 고노에는 속에서 울분이 흘렀다. 원래 독일의 히틀러가 일본제국에게 여러 번 소련의 극동을 찔러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지만 일본제국은 묵살했다. 육군 강경파들이 소련의 강력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문제는 그런 군부 강경파 세력들이 국력에 있어서 소련을 능가하는 미국을 건드렸다.) 스탈린은 얼이 빠진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는 시시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묻는다.

“제안은 그 것 뿐이오?”

그 말에 고노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정신을 바로 한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차선책을 쓸 수밖에. 제발 이거라도 흥미를 가져.’

고노에는 속으로 그렇게 빌며 스탈린을 향해 입을 서서히 열었다.

“아하하. 외교라는 것이 거래와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 제안이 그 쪽이 요구했던 값에 만족하지 않은 모양이신 것 같습니다.”

스탈린은 고노에의 말에 이제야 털어놓는다는 얼굴을 내보인다. 고노에는 그 가증스러운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디 이야기 해보시오.”

“아까의 제안에 더해서 조선, 그리고 오키나와를 더하고 그 쪽에 있는 우리 일본인들의 노동력까지 추가해서 중재를 요청합니다.”

사토 대사는 결국 저지른 고노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침울한 표정을 한다. 스탈린은 고노에의 제안에 참 흥미롭다고 표정을 지었다. 아마 얄타 회담 전이라면 그 제안에 홀라당 넘어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노에가 이 시기에 온 것이 안타까웠다.

“쯧쯧. 너무 늦게 오셨소.”

스탈린의 말에 고노에와 사토 대사는 에? 하고 할 말이 막혔다.

‘늦게 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기들이 우리들에게 2주를 기다리게 해놓고선. 이거마저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

스탈린은 고노에의 표정을 보면서 그의 생각이라도 파악하는 얼굴을 보이고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마 생각하고 있겠지. 욕심이 지나치다고, 그리고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 측의 잘못이라고 말이오. 그런데 늦었다는 것은 당신들보다 오기 훨씬 전의 일이오.”

사토 대사는 그 말을 듣고 스탈린에게 소리친다.

“어... 얼마나 늦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1달, 아니면 2달, 그 것도 아니면 3달 전입니까?”

스탈린은 사토 대사의 절박함을 느꼈는지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적어도 네 달 전이오.”

네 달 전이라는 말에 사토 대사는 허망한 얼굴을 하며 중얼거린다.

“허... 허... 네 달 전이라니.”

두 사람의 얼굴은 그야말로 절망감으로 가득했다. 스탈린은 그런 그들을 보고 한 가지 소식을 전해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우리는 만주와 쿠릴 열도, 남 사할린이 있으면 손해 볼 것 없소. 다만 당신들의 제안에 하나가 빠졌소.”

“그... 그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북해도와 혼슈의 도호쿠 지방을 말이오.”

“!!!!”

사토와 고노에는 스탈린의 발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완전 짐승과도 같은 발언이 아닌가? 어떻게 본토까지 가져갈 생각을 하다니. 어떤 후안무치한 인간이라도 그런 제안을 할 수 없는 법이다. 사토 대사는 스탈린의 발언을 참을 수 없는지 벌떡 일어나서 스탈린에게 소리친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우리 일본 본토를 요구하다니! 그저 전쟁을 멈추도록 중재하는 요구에 이런 조건은 상당히...”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스탈린의 물음에 사토 대사는 열불이 났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 않소?! 사실 지시마 열도, 그리고 남 사할린의 경우는 소련의 전신 러시아의 영토라는 것을 알겠소. 만주 역시 우리의 역사적 사실이 옅은 것을 인정하겠소. 그런데 혼슈의 도호쿠와 북해도라니!? 이건 명실상부한 우리 땅이오. 전쟁을 멈추는 중재안으로 두 지역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오!”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들이 주장하는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하겠소.”

스탈린은 그 것으로 이야기를 끝마치려 한다. 사토 대사는 스탈린에게 할 말이 많았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옆의 고노에가 옷을 붙잡아서 말한다.

“이제 그만하게. 소련 측은 우리 측 제안을 귓등으로 듣지 않는 것 같군.”

사토 대사는 그 말에 고노에를 보고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며 말한다.

“하... 하지만! 후지와라 당주! 이건.”

“그만하게.”

엄숙한 고노에의 말에 사토 대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고노에는 스탈린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한다.

“이번 제안에 대해서 생각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서로 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일본제국의 제안은 열려 있습니다. 서기장 각하를 피곤하게 하셨습니다. 이만 우리는 나가보겠습니다.”

스탈린은 그런 고노에의 말에 싱긋 웃으며 말한다.

“나가보게. 늦게 와서 상당히 안타깝군. 네 달 전에 왔다면 자네의 제안을 들어줄 수 있었는데 말이오.”

고노에는 그 말에 결국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일어서려던 찰나 어떤 생각이 들었다. 고노에는 스탈린을 보고 한 가지 물어본다.

“저 서기장 각하. 아까 서기장 각하를 만나기 전 동양인과 백인남성을 만났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혹시 그 둘의 정체를 아십니까?”

스탈린은 그 말에 고노에에게 간단히 대답한다.

“미국에서 온 손님들이오. 동양인 한 명은 외무장관에게 들었을 것이고, 나머지 백인남성은 힌트를 주자면 미국에서 높은 직위인데 권력은 없다고 말해주겠소.”

“...... 알겠습니다.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고노에는 그 말을 하고 난 뒤 스탈린에게 꾸벅 인사하고 사토 대사와 함께 병사의 안내를 받아 방을 나간다. 스탈린은 둘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책상 위의 서류들을 보면서 일을 처리한다.

방 밖에는 소련 외무대신 몰로토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방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환영해준다.

“어떻게 이야기는 잘 되셨습니까?”

고노에는 그 말에 뼈가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정중하게 말했다.

“예.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서기장 각하의 지혜와 지식은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고노에는 몰로토프의 정중하게 말하는 말투가 자신을 놀리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그는 소련의 냉대에도 싱긋 웃었다.

“예. 그럼 다음에 만날 때도 있겠습니다.”

몰로토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하하.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몰로토프의 인사를 뒤로 하고, 고노에와 사토는 크렘린 궁의 복도를 걸으면서 빠져나간다. 사토 대사는 급한 발걸음을 내딛는 고노에에게 말한다.

“상당히 급한 발걸음인 것 같습니다. 후지와라 당주.”

그 말에 고노에는 빠르게 걸으면서 사토대사의 질문에 대답한다.

“저들이 우리말을 안 들으니 다른 상대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른 상대라면?”

“미국.”

“설마...”

“스탈린이 상당히 귀중한 조언을 줬어. 물어보기 잘했군.”

“하... 하지만 그들이 우리말을 듣겠습니까?”

“내가 노리는 사람은 스탈린이 말한 미국의 정계인사가 아니야.”

“그... 그러면...”

“길씨 형제들 중 첫째인 길병재.”

그 말에 사토 대사는 걷는 와중에도 깜짝 놀라며 고노에에게 되묻는다.

“...... 그. 그가 우리말을 듣겠습니까?”

“가능성이 보이면 거기를 뚫어야 하지 않겠나? 아까 보니까 길병재와 같이 온 백인남성이 미국에서 상당히 정계 쪽 고위층이라고 한다면 그 길병재는 미국에서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고 보면 돼.”

미국내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고노에의 말에 사토 대사는 믿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있었다. 하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으음. 그런데 우리가 징용으로 그를 내쳤는데. 그가 우리말을 들어주는 것도 상당히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이상할 수 있겠지. 하지만 걱정하게 말게. 패가 있으니까 말이지.”

“패라뇨?”

“쯧.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의 아버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헉! 그를 협박할 생각입니까?”

“협박이든 설득이든 그를 움직여야 되는 일이야. 얼른 가세나.”

“끄응.”

사토 대사는 침음성을 흘리고, 고노에를 급히 따라갔다. 두 사람은 크렘린 궁을 빠져나가고 자신들이 탔던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고노에는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소련주재 미국대사관으로 말했다.

-부르릉! 부르릉!-

차량은 기세 좋게 시동을 울리며 바퀴를 굴렸고, 이내 미국 대사관을 향해 급히 방향을 돌렸다.

약 몇 십 분을 소모하여 차량은 미국 대사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대사관 정문에 있는 경비병들이 검문했다.

“정지하시오. 무슨 일로 이 미국 대사관을 찾는 일이오.”

그 말에 뒤의 창문이 열렸고, 경비병은 그 창문너머 인원인 사토 대사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구긴다.

“돌아가시오. 우리는 당신들과 대화할 생각이 없소.”

그 말에 사토 대사는 급하게 말하며 소리친다.

“그렇다면 이 쪽지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줄 수 있겠나?”

고노에가 쓴 쪽지들을 사토 대사는 받고 그걸 다시 경비병에게 넘기면서 말한다. 경비병은 그 부탁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했지만 이내 말한다.

“누구에게 건네주면 좋겠소?”

“그 쪽에 당신들 말로는 미스터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 말에 경비병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쪽지들을 수거한다. 그리고 끝끝내 사토 대사와 고노에를 대사관 안으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고노에는 포기하면 편한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민폐끼치는 것들의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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