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55화 (15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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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흩어진 가족들

소련 주재 일본 대사관의 가장 중요해 보이는 방 안에는 적막감이 흐른다. 긴장한 얼굴의 고노에와 어버버하는 사토 대사, 분노를 억지로 삼키려는 표정의 병재, 그 셋을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트루먼, 마지막으로 병재와 트루먼을 호위하기 위해서 조용히 주위를 경계하는 경호원 네 명까지 각 자에게서 풍기는 감정들이 방 안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혼돈을 이룬다.

그런 혼돈의 분위기 속에서 분노를 겨우 삼키고 인내를 한 병재가 고노에에게 스산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말한다.

“왠지 저와 제 여동생을 귀찮아하시는 경향이 있군요. 예. 예. 귀찮은 조선인이 이야기를 퍼부어서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고노에는 비아냥거리는 병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씩 구겨진다. 이상을 유지한 채로 극도로 화가 나면 나타나는 병재의 성격이 드러난다. 병재는 고노에를 보고 콧웃음을 치더니 이내 말한다.

“그 귀찮은 조선인 노예 새끼가 나리께 이야기를 듣지요. 나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가축우리로 들어가 자라는 명령? 아니면 살이 다 찌웠다고 고기로 만들겠다는 유언이라도 남겨 드릴까요?”

고노에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침음성을 흘린다.

“제 말을 곡해해서 듣는 것 같습니다.”

“하하. 곡해라고요? 아아. 곡해일 수도 있겠네요. 곡해일 수도 있어. 당신의 눈에는 조선인 노예가 얼마인지 중요하니 그 노예 새끼가 어떤 삶, 어떤 괴로움, 어떤 경험을 가지는 것은 별반 필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토 대사는 그 말을 번역하기가 조금 괴로워 보였다. 아까부터 병재는 비아냥거리며 말하는 대신 그에게서 풍기는 눈빛과 살기들이 병재에게 말하는 고노에와 사토 대사에게 괴롭히고 있었다.

“......”

“이봐요. 일본인 나리. 아니 일본인 귀족 나으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그 말에 잠시 고노에는 사토에게 곁눈질을 한다. 그러자 사토는 트루먼에게 설명하여 잠시 통역을 멈추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트루먼은 뭔가 중요한 거래를 병재에게 말하는 것 같아서 관심이 있었지만 더 이상 밝힐 수 없어서 아쉬운 눈치였다. 고노에는 사토가 통역을 멈추자 마음을 가다듬고 병재를 쳐다본 뒤 말을 천천히 꺼냈다.

“사실 우리 일본제국에게 본국의 신민인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 두 가지만 약조하면 어떤 보답을 해드리도록 약조하겠습니다. 아까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당신이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병재는 고노에의 말에 더 이상의 비아냥을 멈춘다. 원래 병재는 사실 독립 투쟁이니 민족이라니 그런 것은 별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과 가까워지던 것은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구출하고 돌봐주었기 때문이고, 또 때때로 상담도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요구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당신이 미국에 큰 영향력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정계, 시민, 그리고 군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그들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설득을 시켰으면 합니다. 지금의 전쟁을 정전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는 당신의 징용기간은 끝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일본제국으로 귀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제국의 내지, 만주, 아니면 당신의 고향인 조선이든 마음대로 가도 상관없습니다. 총독부를 위시한 관리들은 당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병신같은 작자가 당신을 핍박한다면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그 놈을 찢어발기겠습니다. 저는 이래 보여도 일본제국에서 상당한 권위와 권세를 지닌 사람이거든요. 법으로 사람 망가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거기다 당신의 재능이라면 엄청난 부가 쏟아지겠죠. 돈은 많은데 불치병을 치료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부자들이 당신에게 몰리지요. 당신은 그들에게서 돈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세금문제 관련해서는 당신도 법을 지켜야 하지만 당신의 명성을 생각하면 절세해드리겠습니다. 천황폐하도 허가해주실 것입니다. 아니 허가해줍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아버지도 만나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억울한 누명이라고 항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제안입니다.”

고노에는 그렇게 병재에게 할 말을 끝냈다. 그리고 병재는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속으로 결정을 마쳤는지 눈을 뜨고 고노에를 쳐다본다.

“당신은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노에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린다.

‘착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이지?’

고노에는 병재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병재의 말을 기다린다. 병재는 고노에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한다.

“당신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미국에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당신이 생각한 대로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입니다. 저의 치료를 받고 고마워하는 이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그 뿐입니다. 미국에서 저는 치료 잘 하는 동양인 의사. 국입니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알려졌다고 할 뿐 정말 그뿐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저의 존재는 어떤지 아십니까? 그저 기술을 빼올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인간 자원,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자원. 그런 제가 미국에 있는 정치인들로부터 제발 일본제국과의 전쟁을 멈춰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당신 말대로 요청은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진지하게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오히려 비웃음 당할 것입니다. 그런 쓸 데 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자기 일이나 하라고 말입니다.”

병재의 말은 거기서 끝이 났다. 고노에는 병재의 말을 듣고 사실 관계에 들어갔다. 분명 그의 능력이라면 엄청난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쪽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설득력이 있었다. 고노에는 병재의 말에 혼동이 일어났다. 고노에는 병재가 말한 것처럼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잠깐 그런데. 그런 이가 과연 스탈린을 만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단순히 군의관들을 부르고 외교의 인사들에게 말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저 옆에 있는 사람은 아까 스탈린이 말한 그 백인남성 같은데. 그가 고위 정치인이라고 했다고 말했지. 그의 말대로 과연 미국 정치인이 단순하게 그를 생각할까? 겨우 쓰고 버릴 수 있다는 의사 나부랭이라면 말이 되지 않잖아? 그저 경호원을 붙이고 끝이면 되지 않나? 그의 말에는 허점이 있어. 모순점이 있어.’

고노에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빙긋 웃으면서 병재에게 입을 연다.

“착각이라 하셨습니까? 길상. 당신도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

고노에가 병재 자신을 보고 착각이라고 말을 하자 병재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당신은 당신의 위치를 생각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자신을 여기고 있다면 왜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앉아있는지 말입니다. 당신의 일을 소련에게 협조한다면 당신 말처럼 당신 뒤의 경호원들을 붙이고 그냥 당신만 보내면 될 일입니다. 허나 미국 정계에서는 당신의 말처럼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신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두려움에 당신 옆에 고위 정치인을 붙였으니 말입니다. 즉 당신은 당신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당신은 상당히 중요한 보물입니다. 그저 치료나 하는 의사 나부랭이였으면 미국 측에서 당신을 다른 나라에게 귀화시키지 않도록 감시하지 않겠지요.”

“...... 세상은 그렇게 원만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가 겪어온 현실은 상당히 시궁창다웠거든요. 전 느꼈습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필요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제가 타라와에서 생활했을 때만 하여도 그 것은 적중하였습니다. 과연 내가 일본 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당신 말처럼 그렇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저 능력 있는 의사 나부랭이로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니지. 얼마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조선인 의사로 취급하지 않겠습니까?”

고노에는 병재를 보고 속으로 짜증이 난다.

‘제길. 완전히 꼬여있어. 타라와에서 겪은 일 때문에 저렇게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이 단계로 들어간다.’

고노에는 사토에게 곁눈질로 무언가 지시한다. 사토는 긴장해 있다가 고노에의 지시에 얼른 반응하여 고개를 끄덕이더니 트루먼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통역할 의사를 내비친다. 대화 속에서 귀머거리였던 트루먼은 밝은 미소를 짓는다. 병재와 고노에가 아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상당히 궁금하지만 말이다.

고노에는 다시 시선을 병재에게 두고 말한다.

“하아.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겠군요. 다만 관점을 돌려서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이 일만 들어준다면 우리 일본제국은 당신의 아버지를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병재는 눈을 감고 속으로 누군가를 대화하듯 말한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불효막심한 아들 녀석을 원망하십시오.’

일단 들어보고 청한 일이다. 병재는 눈을 뜨고 고노에를 다시 본다.

“무슨 일입니까?”

“외교적 권한이 있는 미국, 중국의 정계 인사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소련주재 미국 대사도 좋습니다. 중국 대사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당신이 의사 나부랭이라고 하지만 그 일 정도는 할 역량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물음에 병재는 슬며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트루먼을 바라보고 말한다.

“아무래도 당신의 차례인 것 같습니다.”

트루먼은 병재가 자신을 보고 말하자 조금 굳은 얼굴로 묻는다.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군.”

“제가 할 수 없는 정치 외교적인 일입니다. 그나마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쯧. 이 일이 내 정치생명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는지 알고 있는가? 비밀리에 소련에서 잽의 특사를 만나 정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공화당 측에서 좋아라 하겠군.”

“이 일만 해주시면 제가 알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부탁이라도 하겠습니다.”

“......”

트루먼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병재의 말에 고민을 한다. 그의 속에서 이해득실을 비교하면서 병재의 영향력을 생각한다. 아마 그에게서 불치병을 치료받은 고위층과 유력자들이 많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들이라면 병재의 말을 듣고 트루먼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아. 다만 이 일에 대해서 자네의 의사에 내가 동의하는 것으로 처리하지. 이 일로 곤란하게 된다면. 자네는 알지?”

“변호사 협회에 찾아가서 이 일에 대해 지장이라도 찍을까요?”

“그 놈의 변호사 이야기는 그만두게. 자네가 알고 지내는 변호사야 있겠지만  자네는 그들을 찾아가지도 않잖아?”

“...... 감사합니다.”

“쯧. 아까 한 이야기 꼭 들어주게.”

병재는 마땅히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트루먼에게 있어서 손해볼 일은 아니었다. 그저 소련에 가다가 우연히 일본의 특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고 하면 될 일이다. 그걸 가지고 공화당 측에서 스캔들을 만들겠지만 병재의 부탁을 받고 한 일이다 라고 이야기한다면 스캔들도 시들어지겠지. 아니면 병재가 그들 때문에 곤란하던 찰나에 내가 나서서 해결하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를 꾸민다면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거기다 병재가 이 일로 자신에게 고마워한다면 금상첨화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약을 부술 수는 없겠지. 쯧. 안타깝군. 안타까워.’

트루먼은 그렇게 생각하고 이내 사토와 고노에 둘의 모습을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사토에게 말한다.

“아까 제 소개가 늦은 것 같습니다. 전 미국 부통령직을 맡고 있는 해리 S. 트루먼이라고 합니다. 당신들이라면 미국의 부통직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영어를 알고 있는 사토 대사와 고노에는 트루먼의 소개에 입이 빠진다. 부통령이라니. 이거 생각보다 상당한 거물이었다. 고노에는 스탈린에게서 트루먼에 대해 직위는 높으나 실권이 없다는 말을 기억해낸다.

‘그렇군. 하지만 그 정도의 직위를 가진 자가 과연 권한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과연 단순히 길병재와 동행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군. 즉 그를 따라다니는 동시에 무언가 권한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고노에는 자신의 생각을 마치고 트루먼을 달리 보았다. 트루먼은 자신을 보는 고노에의 눈빛이 변하자 조금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노에는 트루먼을 보고 싱긋 웃으면서 영어로 말한다.

“당신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난 저 옆자리에 있는 이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오.”

“하하. 그렇습니까?”

“아까 당신과 미스터 길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들을 수 없을 정도라면 나와 미국에게 있어서 상당히 곤란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겠군.”

“물론 국익을 추구하는 자라면 그런 자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국익을 추구하는 자라? 정치인으로서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 무슨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오?”

트루먼은 바로 본론에 들어가자 고노에는 갑작스럽게 변한 트루먼의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켜 긴장한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제가 소련에 참가하게 된 일이 정전을 위한 중재를 맡아달라고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일은 잘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 길상을 이용하여 당신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합니다. 우리 일본제국은 당신과의 전쟁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참으로 곤란한 제안을 하는군.”

“물론 맨입으로 정전요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트루먼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이 누구인데? 전쟁을 끝내겠다고? 트루먼은 정말 고노에의 얼굴을 보고 가증스러웠다. 지금 미국 국내의 시민들은 일본에 대해 상당한 적개심을 내뿜고 있었다. 고노에는 그런 분위기를 알까 싶을 정도였다.

“흠. 우리와의 전쟁을 멈추고 싶다면 저번에 우리가 보낸 제안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소?”

“......”

트루먼이 저번에 보낸 제안이라는 것은 미국이 일본에게 전한 항복 같은 것이다. 모든 식민지의 포기, 일본 본토 점령,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황제 포기가 내용으로 들어있다.

고노에를 비롯한 관료세력과 육군 강경파에게는 첫 번째를 왈가불가하는 입장이었지. 둘째, 셋째 관련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셋째였다. 단순히 천황에 대한 충성심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기반들이 천황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만약 천황제가 붕괴한다면 자신들의 위치들이 다 추락하는 것이다. 그 것은 절대적으로 막아야하는 일이었다. 고노에는 트루먼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린다.

“그런 제안이라면 하하. 이거 만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그 말은 거절한다고 봐도 무방하오?”

“천황제 유지를 빼고 다른 사항이라면 이야기할 생각은 있습니다. 식민지 포기든 일본본토의 점령이든 이야기하겠습니다.”

트루먼은 고노에의 얼굴을 보고는 속으로 그를 향해 말한다.

‘미친놈들. 아직도 현실을 모르는군. 본토가 폭격으로 당하고, 중국에게 패배하고, 식민지들이 빼앗길 위험인데도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쯧쯧.’

“그렇게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소. 이만 가보겠소.”

“......”

고노에와 사토 대사는 결국 트루먼의 반응을 보고 실패했다는 것에 직감했다. 트루먼은 병재의 어깨를 두들기며 나가자고 손짓을 했고, 병재는 천천히 일어섰다. 고노에와 사토 대사는 그 둘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얼굴이 점차적으로 굳어간다.

사토 대사가 작은 말로 고노에에게 말한다.

“정말 이대로 보내실 작정입니까?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저 길상의 아버지를 언급한다거나.”

고노에는 절망과 체념적인 얼굴을 하고 사토 대사에게 시선을 돌려 말한다.

“이만 포기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야.”

“......”

“하하.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지만 역시 현실이란 만만치가 않군.”

고노에는 그러면서 얼굴에 눈물이 조금씩 뚝뚝 흐른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파멸뿐이다. 이대로 일본에 돌아간다면 자신의 동료들과 그 미친 군부 강경파들에게 실패를 근거로 피난을 받을 것이다. 아니 비난을 받는다면 상관없고, 2.26사건처럼 암살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노에는 결국 깊은 절망감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결국 사토 대사 역시 고노에처럼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병재는 그 둘의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본다. 그 둘의 모습에서 절망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병재는 피식 웃는다.

‘웃기는군. 그깟 일로 절망과 체념을 하다니. 나와 내 동생, 그리고 가족에게 피해를 줬던 것에 비하면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군.’

병재는 오히려 둘을 욕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트루먼과 병재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했던 이야기는 뭔가?”

“저보고 정전 협정을 해달라고 한 것과 또 조선으로 귀국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지켜질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쯧. 큰일 날 뻔 했군. 대놓고 자네를 빼 갈 생각을 하다니.”

트루먼은 병재가 고노에의 제안을 거절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사이다 없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솔직히 저 곳에서 난리 깽판 친다면 이야기 진행이 안되서요.

여러분의 댓글 하나 하나가 저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댓글. 댓글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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