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58화 (158/633)

0158 / 0633 ----------------------------------------------

[1부] 흩어진 가족들

1945년 6월 1일, 병윤은 오랜만에 자기 집 안의 방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바로 병윤의 작은 형인 병주였다. 병주는 광복군 정복을 입은 모습으로 병윤을 바라본다.

“하. 작은 형님. 그 옷 꼭 입으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그냥 편하게 평복이나 입어요. 제가 다 부담스럽네요.”

“뭘 그 유명한 중경공단 회장님의 댁으로 가는 건데 이 정도의 격식을 갖추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겠지? 안 그래?”

“그 놈의 예의는 그만하고.”

“쯧. 그나저나 너랑 감연이, 그 둘이 여기서 사는 거냐?”

“예. 원래 작은 형님도 여기서 사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물을 마시며 말한다.

“아서라. 이 호화로운 저택에서 지내다가 내 정신이 상한다.”

“허. 그렇게 따지면 저는 정신이 상해도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직업적인 차이겠지. 만약 내가 여기서 살아봐라. 사람들이 흉을 볼 거다. 그런데 너라면 다르겠지. 이 정도 수준의 집에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흉을 볼 거다.”

“끄응. 그냥 동생 집에 얹혀살기에는 자존심 상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것도 있겠지.”

병윤은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병주는 주위를 둘러본다. 병윤과 병주 둘이 있는 곳은 방 안이라고 했지만 방 안 주위에는 맑은 물들이 흐르고 있었다. 병윤과 병주 두 형제가 있는 곳은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섬과 비슷했다. 조금 더워지는 이 시기에 이 방 안은 물 때문에 시원했다.  그 것 뿐만이 아니라 방 전체에 에어컨을 틀어서 더 시원한 것도 있었다. 병주는 그런 시원한 공기와 기온을 느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때, 병윤은 병주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물어본다.

“그런데 작은 형님. 훈련은 잘 되어가고 있어요?”

“쯧. 태안과 비슷한 지형을 찾느라 고생 중이다.”

“아. 그 쪽에서는 태안으로 상륙작전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군요.”

“그렇지. 그 쪽이 원래 우리 임시정부 요원들이 침투한 곳이니 말이야. 정보도 그렇고, 적 배치도 그렇고, 다만 문제라면 태안이라는 지형이 상륙하기 좋지 않은 장소라는 것이겠지. 또 태안에는 항만시설이 없어서 배를 이용한 보급도 난항이겠지.”

“그 문제는 공중 보급으로 해결되지 않았어요?”

“공중 보급은 날씨에 따라서 보급량이 둘쑥날쑥 해. 거기다 수송기가 착륙할 지점도 만들어줘야 되고, 그 때문에 인천으로 상륙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야.”

“아무래도 거기가 경성과 가장 가까우니 말입니다.”

“그렇지. 대신 왜놈들도 그 곳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아마 군 병력을 거기에 배치하는 것이 옳겠지.”

“흐음. 난제로군요. 태안으로 상륙하자니 상륙작전의 문제는 없는데, 상륙 후 보급 때문에 그렇고, 그 보급 문제로 항만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자니 그 쪽에 적 병력들이 집중한 것처럼 보이고.”

“쯧. 나와 광복군 참모들은 최대한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요즘 내가 듣기로는 중국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것 같다는 말이 있다. 그 점에 대해서 뭔가 소식은 없냐?”

“아. 그거 말입니까? 쯧. 이거 비밀이기는 한데.”

“임시정부 측에서도 상당한 정보를 알고 있다. 아마 네가 비밀로 여기고 있는 정보쯤은 알고 있을 거다. 한반도에 중국군이 진주하며 주둔할 거라는 것을 말이지. 그런데 그 중국군이 어떤 중국군인지는 몰라서 묻는 말이야. 성향에 따라서 한반도 정세가 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음. 그렇게 알고 있다면 하나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한반도에 진주하는 중국군은 제 의형이 이끄는 12군으로 결정 났습니다.”

“12군이라... 장개석 총통께서는 한반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군. 사실 다른 부대가 오면 상당히 곤란하다고 생각했거든. 너의 의형이라면 너의 의견을 들어줄 것 같고, 임시정부 측에서도 협조를 잘 할 것 같아. 잘 됐네.”

“그래도 아무리 의형이라고 하여도 중국군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걸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하. 그렇게 여긴다니 다행입니다.”

그 때, 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병윤은 그 사람을 반기면서 말한다.

“아 집사 아저씨가 수고를 하시네요.”

이 집의 집사인 손본규는 원래 중국에서 살던 조선인이었는데 얼떨결에 이 집의 집사가 되었다. 여기서 일하게 된 것은 약 5년 정도 되었으니 병윤과의 관계도 꽤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손본규는 병윤과 병주 둘 사이에 있는 탁자 위로 그릇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놓고는 병윤에게 말한다.

“가주께서 오랜만에 집을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조금 쑥스럽다는 듯 손본규를 쳐다보며 말한다.

“요즘 일이 바쁘잖아요.”

“회장님의 능력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런데 그 옆의 사람은 회장님의 작은 형이라고 들었습니다.”

병윤은 손본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예. 제 작은 형입니다. 지금은 광복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병윤은 손본규에게 병주를 소개하자 병주는 목례를 하고는 말한다.

“이 녀석 두 살배기 위의 형이자 광복군 연대장직을 맡고 있는 길병주라고 합니다. 이 저택의 집사라고 들었는데 이 녀석을 잘 돌봐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손본규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병주의 말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하하. 나이 차이로는 할아버지와 손주 같은 사이일 것입니다. 허나 돌봐주는 것은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 저희들을 돌봐주시는 것이겠지요. 이 저택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시는 분이 회장님이니까 말이죠.”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한다. 그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동안 병윤은 어느새 그릇에 놓인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 떠서 먹고 있었다. 그 때, 손본규가 다시 병윤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 가지 묻는다.

“그나저나 감연 가주는 그 곳에서 계속 지내고 있습니까?”

그 물음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한다.

“그 녀석 일 바쁜 것은 집사 아저씨도 아시는 일이잖습니까?”

“아 그렇지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손본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쟁반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병주와 병윤 둘은 손본규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감연 그 녀석 매번 유학 가겠다고 노래를 불러서 에휴.”

병주는 그 말에 이채를 띠며 병윤에게 물어본다.

“유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중국 기술 연구원의 총괄장인 전학삼 아저씨가 그 녀석에게 바람을 넣었나 봐요. 여학우와의 달콤한 낭만의 대학 생활이라고 말이죠. 뭐 핑계로는 외국의 우수한 학문을 견학하고 배운다는 취지이겠지만.”

“그 녀석 쉬고 싶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거 아니야?”

“뭐 그 것도 있겠지요. 어두침침한 작업장에서 계속 일하기에는 자신의 청춘이 아깝다고 하니까 말이죠. 그 녀석 분명 유학가면 농땡이를 치면서 놀 걸요.”

“흐음.”

“거기다 총통 각하께서 그 녀석을 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은 없는 것 같구요.”

“응? 그건 왜지?”

“기술유출이나 포섭될 까봐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중국 기술 연구원에 그 녀석은 빠질 수 없는 핵심인력이거든요.”

“그렇군. 송씨 아저씨가 그 소식을 들으면 기쁘겠어.”

“엥? 송씨 아저씨가요?”

“그래. 그 녀석의 소식을 목 빼놓고 기다리는 아저씨라면 분명 그 녀석의 활동을 보면 목 내놓고 기뻐할 거다. 물론 소식이 없던 것과 가출했던 것에 대해선 벌을 받아야겠지만 말이야.”

“끄응. 이거 그 녀석에게 상당히 난제인 거 같습니다.”

“뭐 대학 문제라면 꼭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있겠어? 차라리 고향에서 대학 하나 세워봐. 너와 감연 그 녀석의 이름으로 말이야. 그 녀석은 대학생활을 즐기니까 좋고, 너도 원래 야학 때문에 학교생활을 그리워했잖아.”

“......”

“그리고 미국에 계시는 형님도 고향으로 돌아온다면 대학 병원을 세울 계획이 있으니 형님과 너희들이 세우는 대학을 통합하면 딱 이겠군.”

“으음. 작은 형님 말씀을 들으니 왠지 고향에 가면 일거리가 생기겠군요.”

“글쎄. 너의 일거리는 고향에 돌아간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이 많아질 걸? 임시정부 측에서 광복이 된다면 한반도 각지에 있는 공장들의 운영에 대해서 너에게 떠맡길 것 같은데. 그 엄청난 규모의 중경공단을 운영하는 너로써는 맞는 일거리가 아니겠냐?”

그 말에 병윤은 조금 얼굴이 일그러진다.

“원래 고향에 돌아가면 그냥 그 곳에서 공장 세운다음에 지내려고 했는데.”

“뭐 그 것도 좋겠지. 거기다 공장이라는 것 자체가 조선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너의 능력이라면 고향에서도 중경공단만큼은 아니겠지만 굴지의 공업단지를 건설할 거다.”

“으음.”

병윤은 병주의 말에 조금씩 생각했다. 과연 고향에 간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도 모르게 상상이 갔다.

“뭐 임시정부 측에서는 네가 고향에서 활동하기 보다는 경성에서 활동하는 것을 바라겠지만 말이야. 그 쪽은 내가 알아서 해볼 게.”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병윤은 이제 화제를 바꾼다.

“그나저나 고향 이야기를 하니까 마을사람들의 소식도 궁금해지네요.”

“고향에 두고 온 친구들 때문에 그러는 것이야?”

“그 곳에 있는 연형칠을 비롯한 친구들은 잘 있겠지요?”

“흐흠. 글쎄다. 아마 그 곳에서 박출환 그 개자식이 있는 한 최대한 다 끌려가고 없을 것 같은데.”

“......”

“요즘 고향에서도 공출이다 뭐다 해서 물자들을 다 거두는 와중이야. 1년 전만 해도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심하겠어?”

“으음. 방완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방완서? 아. 그 마름 방씨 아저씨의 딸내미 말이야?”

병윤은 그 물음에 크게 끄덕거린다. 병주는 병윤의 왠지 불안한 표정을 보고 말해줄까? 말까? 생각하다 이내 말해준다.

“걔. 결혼했어.”

“......”

“쯧. 그 아이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결혼했어. 요즘 그 곳에서 처녀라고 한다면 전부 다 위안부로 거둬들이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방씨 아저씨가 박출환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급히 결혼시켰다.”

“하아.”

병윤은 그 말을 듣고 아련한 눈빛을 짓는다. 병주는 병윤의 얼굴을 보고서는 조금 아리송한 눈빛으로 묻는다.

“너 그 아이 좋아했었어?”

“어릴 때의 일이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방완서 걔는 네 친구 연형칠과 결혼한 것 같더라고.”

“!!!!”

병윤은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연형칠과 방완서의 결혼이라니? 상상이 안 갔다. 병윤은 너무 놀라서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었다. 병주는 병윤의 반응을 보고 씁쓸한 얼굴을 짓는다.

‘내가 괜히 알려준 것 같은데. 어쩌지?’

병윤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련한 추억 속에서 잠겨있는 듯 보였다. 병윤은 그렇게 짝사랑의 기억을 날려 보낸다. 병주는 그런 병윤을 보고 자신도 여자에 대해 생각한다.

‘흐음. 저 녀석 의외로 순정파이군. 그러고 보니 형님, 나, 병윤, 셋 다 결혼하지 않은 것 같은데. 쯧. 저 녀석 얼굴을 보니 짝사랑 같군.’

그 후로 병윤은 방완서에 대한 기억을 날리면서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다.

1945년 6월 2일, 병주는 병윤과 감연의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병주는 각 손님방마다 있는 화장실 안 샤워장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다. 그 후, 이 저택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져다 온 식사로 아침을 먹었다. 그 후, 병주는 정복을 입은 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 너머의 공간은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는 정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정원에서 하나의 냇가가 졸졸 흐르며, 그 냇가 주위의 나무 위에서 새들의 기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 병주의 귀에서 하나의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바로 방문 밖의 문 두들기는 소리였다. 병주는 방문에 시선과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예. 누구십니까?”

“이 저택의 집사인 손본규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어제의 그 분이신 것 같습니다. 예. 들어오십시오.”

-끼익.-

예의 손본규가 병주에게 인사를 하고 다가온다. 병주는 손본규가 자신을 찾아오자 조금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아. 그게 말입니다. 어제 가주께서 무슨 일이 생기셨습니까?”

손본규의 다급함에 병주는 아차 했다. 아마 손본규가 원래대로 병윤을 찾다가 생소한 병윤의 반응에 자신을 찾아온 듯 싶었다.

“그건 말이죠. 저 녀석 짝사랑을 했거든요.”

“예에? 가주님께서 짝사랑을? 허. 정말 믿기 힘든 일입니다.”

“고향에서 같이 지내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어제 부로 그 여자아이의 소식을 전해주니 아마 그렇게 반응을 하는군요. 쯧.”

“그나저나 가주님께서 이런 상태이시면...”

“뭐 놔두세요. 저 녀석은 한 단계 위로 성숙하는 것 같으니 말이죠.”

“으음. 이 저택에 있는 젊은 여성분들에 대해 정중하게 대하시는 것 이외에는 사적으로 다가가지 않는 성격이 있었는데. 그런 점 때문에 그렇습니까?”

병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뭐. 저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그 녀석이 그렇게 순정적인 녀석인 것을 말입니다. 아마 저 녀석은 고향에서 금의환향한 후에 당당하게 청혼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손본규는 피식 웃는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정말 회장님께서는 남녀 간의 사랑 측면에서 순수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제 손녀딸에게도 기회가...”

“하하. 뭐 지금은 한동안 이대로 기회를 떠나보내세요. 아무래도 저 녀석은 그 여자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할 것 같으니 말이에요.”

손본규는 그 말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야 사람이라는 것은 사랑으로 식음을 전폐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회장님이라면 잘 극복하실 것 같습니다.”

“뭐. 그 다음 그와 진실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있겠지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것인가? 말이죠.”

“그렇습니까? 회장님과 사랑을 나누는 여성분은 참으로 좋아할 것 같습니다.”

손본규는 그 말을 하고 눈가가 조금 촉촉해진다.

============================ 작품 후기 ============================

아아 병윤의 사랑은 깨졌습니다. ㅠㅠ

댓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재하겠습니다. 댓글을 올려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