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84화 (18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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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경성에서 한창 기간시설을 접수하던 시간, 문경의 사현리 안에서는 이미 잔칫판이 열려져 있었다. 광복이 되었다는 소식이 문경읍을 갔다 온 사람에게 전해지면서 있는 것 없는 것을 꺼내들면서 잔치를 한다.

하지만 너무 수탈당해서 그런지 잔칫상은 조촐했다. 하지만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술 한 잔 마신 마을 장년남성 한 명이 너무나 기쁜 듯 외친다.

“캬아! 내가 살다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오는군.”

그 말에 술잔을 탁 놓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게. 너무 기뻐서 눈물이 흐른다.”

바로 연형칠의 아버지이자 길남효의 친우인 연씨 아저씨였다. 지금까지의 생활, 어떻게 버텼는지 꿈에도 모를 지경이다. 그 생존의 투쟁 속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방씨의 딸 방완서를 자기 둘 째 아들의 아내로 맞이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름 방씨가 자기 집안을 많이 돌봐주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소작료를 줄여준다는 지 그런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 때, 연씨 아저씨 맞은편에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에 화가 나는지 한 번 소리친다.

“그나저나 그 개자식의 박출환은 어디로 갔어? 그 놈만 만나면 멱살을 잡아다 멍석말이로 패 죽여야 되는데 말이야.”

“그 놈의 꼬붕 이봉호는 지금 간씨 네 저택에서 보호받고 있잖아.”

“에라! 씨발. 해방이 되었어도 지주 눈치를 봐야 돼? 그 놈을 끌고 와서 패서라도 그 씨발 놈의 위치를 불게 만들어야지.”

“......”

“그리고 간씨 네는 지금 문경 읍을 접수한 건국동맹에 기웃기웃 거린다며?”

“소식으로는 그렇지. 그러나 쉽지는 않을 거다.”

그 말에 연씨 아저씨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묻는다.

“어? 쉽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같으면 친일파 매국노 새끼가 세상 바뀌었다고 기웃기웃 거리는 것을 참을 수 있겠냐?”

“아. 하기야 그렇겠다.”

“거기다 임시정부가 오늘 부로 경성에 입성하였다고 소식이 전해지더라.”

“허. 임시정부는 또 뭐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세력이었는데. 지금 그들이 군대를 이끌고 경성을 접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군대라면 건국동맹도 생각보다 힘을 못 쓰겠는데?”

“그렇지. 뭐 그 쪽에서 말을 들어보니까 대략 5개 사단, 한 마디로 5만 명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5만...”

“난 여기밖에 알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실체도 밝혀지겠지.”

그렇게 연씨 아저씨의 말에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편, 송감연의 아버지 송씨 아저씨와 길남효의 가장 큰 친우인 장씨 아저씨는 둘이서 술을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해방이 되었는데 아들 소식은 없는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죽었다는 소식이 없으니 살아 있는 것이겠지.”

“나라를 되찾고 해방이 되었어도 우리 둘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네.”

송씨 아저씨는 그 말에 가슴이 시린 듯 술잔을 들고 한 번 마신다.

“애 잘 키워. 나처럼 애를 잃어버리지 말고.”

“......”

“8년 동안 소식이 없던 자식이야. 솔직히 살아있다고 믿고 싶네. 가출할 때 12살인 녀석이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자식이라고.”

송씨 아저씨는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뚝 뚝 흘린다. 이제 세상에 자신 혼자 남았다. 아내는 감연이를 낳다가 하늘로 돌아가고, 이제 남긴 씨앗은 그 하나 밖에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그런 자식이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것에 매우 상심했다.

“내 명심하겠네. 반드시 말이야.”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야.”

“자네 설마...”

“휴우 1개월 동안 버티다가 이제 소식이 없으면...”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죽었다는 소식이 없다고. 정신 차리게나.”

“8년이야. 8년이라고.”

그 말에 장씨 아저씨는 숙연한 표정을 짓는다. 8년의 기다림, 장씨 아저씨가 바라보는 송씨 아저씨는 세상살이에 지친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아내를 잃은 지 오래되었고, 이제 남은 피붙이는 자신의 어린 아들 하나밖에 없었다. 장씨 아저씨는 갑작스럽게 길남효가 보고 싶어진다.

‘그 자식은 잘 있을까? 해방이 되었다고 하니까. 감옥에서 나갔겠지.’

그런 생각을 한 장씨 아저씨는 이내 쓰디쓴 마음을 술로 달랜다.

한편, 마을 유일의 지주 간씨네 저택에서는 안절부절 못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창백하게 질린 간병철의 얼굴이 가장 눈에 띄었다. 간성호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다는 얼굴이었다.

“아버지 이제 일제는 끝이 났습니다. 빨리 편을 갈아타야 합니다.”

그 말에 간성호는 충격에 빠진 모습으로 중얼거린다.

“세상은 끝났어. 세상은 끝났다고.”

“아버지!!!”

“......”

간병철의 모습에 화가 난 간성호는 에잇 하고 방을 나간다. 방문을 여니,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성호는 그 여인을 쳐다보고 말한다.

“너는 어떻게 된 일이냐?”

간성호의 여동생인 간성은이 자신을 절박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안은 채 한 가지 묻는다.

“저 제 지아비는 언제?”

그 물음에 오히려 간성호는 열이 뻗친다.

“지금 우리 집안이 살 길을 찾아야 할 때, 그 놈의 양아치는 왜 찾는거냐?!”

간성은은 그 말에 겁을 먹었는지 고개를 숙인다. 간성호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오히려 짜증이 난다.

“네가 안고 있는 녀석, 되도록 빨리 처리해라. 아이라도 지키고 싶으면 지아비와 관계를 끊던가. 그 양아치 녀석은 다른 사람과 크나큰 마찰을 빚었어. 그 녀석이 우리와 연관이 되었다는 소식이 도는 순간 우리 집안은 끝장이야.”

“......”

“에효. 작년에 그딴 자식과 연을 맺어가지고, 이게 웬 개고생이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그 말에 간성은은 악에 바치는 듯 소리를 친다.

“제 지아비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제 지아비는 비록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랄하다고 하지만 이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지아비의 업보가 그러해도 그 것이 이 아이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간성호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분명 아이에게 잘못은 없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인가? 그 양아치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악마의 씨앗을 죽이자고 선동할 것이 뻔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과연 이 아이는 죄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간성은은 간성호의 잔혹한 말에 맥이 풀린다. 그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간성호는 간성은의 반응에 조금 난처했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다 잡았다.

“하여튼 그 양아치와 너와의 결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하. 작년에 아버님이 판단을 잘못 해가지고.”

간성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급히 외출 준비에 나섰다. 문경읍에 있는 건국동맹에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살 길은 여기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간성은은 마루에 앉아서 부들부들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는 모성애를 느낀다.

1945년 8월 16일 밤, 경성의 거리에는 오전 오후를 통틀어서 축제의 분위기였다. 각 국밥집에는 손님들로 넘쳐났고, 아이들은 기쁜 듯 거리를 활보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광복군 군복을 입은 병주와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끼가 느껴진다.

“저 사람 참 헌앙하게 생겼어.”

“그러게. 결혼은 했을지 몰라.”

“그런데 저 사람 광복군에서 높은 지위라고 하던데.”

“젊은 나이에 그런 지위를 설마.”

병주는 자신을 두고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조금 민망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이 그나마 여유로울 시간이었다. 병주는 빠른 발걸음으로 여운형의 집으로 향한다.

약 몇 분 동안 걷자, 병주는 여운형의 집 앞에 도착했다. 병주는 흠흠 거리면서 자신을 따라온 병사들에게 말한다.

“너희 둘은 여기서 경계를 서라. 그리고 미안하다. 내 개인적인 일로 이렇게 끌려가다니.”

그 말에 병사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광복군에 가장 큰 업적을 이루신 장군인데. 그 부탁을 못 들어드리겠습니까? 저희들을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그 말에 병주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병주는 부관 한 명을 대동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계단을 걸어, 여운형 집의 문에 도착한 병주는 초인종을 누른다.

-삐익!-

그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십니까?”

“아. 아. 난 광복군 제 5 보병사단 연대장 길병주라고 합니다. 안에서 미리 약속을 잡아놓았는데. 괜찮겠소?”

그 말에 바로 문이 열린다. 그리고 문을 연 청년 한 사람이 길병주에게 목례를 하고 인사한다.

“들어오십시오. 선생님께서 많이 기다리십니다.”

몽양 여운형은 자신들이 이 시간에 올지 알고 있는 듯했다. 병주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군화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 때, 두 사람이 나타나 병주를 바라본다.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과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인 길남효였다. 길병주는 순간 뛰어들어 자신의 아버지 품안에 안기면서 말한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제 한 몸을 보신하고자 아버지를 고초에 빠지게 만들다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그 말에 길남효는 눈물이 흐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아니다. 아니야. 내 아들들이 그토록 위대한 발걸음을 했다는 것에 이 아비는 기쁘기 한량없구나. 그 옛날 이토를 사살한 도마 안중근 선생처럼 난 그런 위대한 발걸음을 한 아들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전 세계로 이름을 떨친 아들들이 난 자랑스럽다. 그리고 많이 컸구나. 아들아.”

“아버지... 아버지...”

병주는 눈물을 계속해서 흘린다. 이 모습을 보는 여운형과 병주의 부관은 코끝이 찡했다. 자신들도 감동적인 이산가족의 상봉을 보니까 마음이 울리는 듯 싶었다.

결국 한창 울었던 병주는 그렇게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고, 아버지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둘째 아들 병주를 용서했다.

그렇게 신파극이 끝나고, 병주는 아버지와 함께 방 안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서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 몽양 여운형은 그 둘이 서로 이야기 편하도록 한 방에 들어가게 하고는 자신들은 다른 방으로 갔다.

길남효가 꽤 호사스러운 군복을 입은 길병주를 보고 묻는다.

“아들아. 너도 많이 출세했구나.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놈이 독립군에 들어가게 될지는 몰랐다.”

“아는 형님이 사정이 생겨서 같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에 지원했다고 그 사람과 탈영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에게 미리 말을 해놓지 않고,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그런 일, 미리 알렸다면 나는 걱정이 없지만 네가 잘못되어서 걱정이었다. 지금 이렇게 몸 성히 있으니 걱정이 없다.”

“아버지에게 이런 소식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전해드릴 것이 있습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미리 예상했다는 듯 말한다.

“그래. 내 아들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삼남이 살아 있고, 장남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식을 말인가?”

길남효의 말에 병주는 조금 놀라면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잘 알고 계셨군요.”

그 말에 길남효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감옥 안이라고 하여도 소식은 없는 것이 아니다. 내 아들들이 위대한 발걸음으로 내가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그 고초 받을 수 있다.”

“......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나저나 소식은 그 것뿐이냐?”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말 한마디 한다.

“아닙니다. 그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소식이 들렸습니다. 미국에 제 큰 형이 활동하고 계시는 것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큰 형 곁에 제 누님도 같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말에 길남효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병주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한다.

“그... 그게 사실인가!? 내 딸 효순이가 살아 있었어?!”

길남효의 반응에 병주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닦고 설명한다.

“예. 하늘이 우리를 돌보는 것처럼 다행히 큰 형이 누님을 구출하였습니다. 지금 둘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복이 되었으니 곧 이 곳으로 오겠지요.”

“하하하. 그거 참 다행이다. 다행이야.”

길남효는 털썩 주저앉으며 다행이라고 연신 외친다. 그리고 병주는 한 마디 말을 더 한다.

“그리고 제 어머니 말입니다. 지금 문경 한 시내의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게 무슨 일인가?!”

그 말에 병주는 이빨을 깨부수듯 갈고는 아버지에게 고한다.

“아버지가 감옥에 잡혀 있는 동안 그 박출환 자식이 제 어머니와 제 여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큰 형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다행히 큰 형이 사람을 동원하여 제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출했습니다.”

“......”

길남효는 그 말에 침묵에 빠지며 몸이 축 처진다. 자신의 아내가 그런 고초를 겪다니. 비록 살고 있지만 그런 고초를 겪다니. 그 잘못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길남효는 고개를 들더니 굳은 얼굴로 병주를 쳐다보며 분노의 말투로 말한다.

“그 개자식. 박출환 그 씹어 먹을 자식. 어딨냐! 우리 가족을 그렇게 괴롭힌 녀석의 멱을 따야겠다.”

그 말에 병주는 자신의 아버지를 진정시키며 말한다.

“아버지. 아버지. 진정하세요. 아버지만 아니더라도 우리 형제들은 그 자식을 곱게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 사는 것이 얼마나 지옥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세요. 여기서의 일이 끝나면 제 상부에게 말하고, 저의 연대는 급히 문경으로 내려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그를 보호해줄 세력이 있더라도 깨부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세요.”

길남효는 복수하겠다는 병주의 말에 진정은 되었지만 계속 씩씩 거린다.

============================ 작품 후기 ============================

경성의 일만 끝나고, 바로 문경으로 내려가겠네요.

댓글들을 풍족하게 내리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의문사항들이 많이 보내셨는데 그렇게 제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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