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195화 (19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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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효혜와 손잡고 병윤은 집을 나가 간씨 네로 가는데 가는 도중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평생 빌어먹을 친우인 송감연이었다. 송감연은 효혜와 병윤을 두 사람을 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너에게도 딸이 있었냐?”

송감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병윤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며 반문한다.

“뭔 개소리야?”

“네 옆에 있는 꼬마 아이는 누구인데?”

“내 여동생이다.”

감연은 효혜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병윤을 바라보며 비웃는 기색이다.

“너에게도 여동생이 있었다니. 그런데 나이 차이가 꼭 아버지와 딸 같네.”

결국 병윤은 감연에 대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감연에게 말한다.

“일이 있으니 비켜. 사람 놀리지 말고.”

“이 빌어먹을 자식이. 고향에서 보는 가장 친한 친우의 인사에 서운하게 그러기냐?”

“넌 너무 많이 봐서 고향이든 어디든 감흥이 없다. 그러니 비켜라.”

감연은 병윤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고 이제는 조금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그나저나 저 여동생을 붙잡고 어디 가냐?”

“간씨 네에서 볼 일이 있어서 말이지.”

“오늘 나랑 같이 일 있는 것 알고 있지?”

병윤은 그 말에 알겠다고 신경질 나는 얼굴을 짓는다.

“알고 있다. 걱정마라.”

송감연은 그 말을 듣고도 비킬 생각은 없고, 그저 머리만 긁적이더니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야 심심하다. 나도 같이 가자.”

“......”

결국 이렇게 될 줄 예상했던 병윤이었다. 병윤은 원 한심한 얼굴로 감연을 쳐다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짓 없냐?”

“요즘 아버지 대장간은 공출로 싹 다 거둬 들어서 도구도 소수만 있는 형편이다. 겨우겨우 설비들을 맞추기는 했지만 아버지 일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결론적으로 내가 아버지를 봉양하는 형편이다.”

“......”

“오늘 너랑 같이 다니면서 할 일을 해야겠지. 그런데 그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기는 뭐하다. 그래서 너랑 같이 가려고.”

“할 일 없는 새끼.”

송감연은 병연의 욕설에도 오히려 푸근한 미소를 짓는다. 결국 감연도 병윤을 따라 간씨 네로 향하게 되었다. 효혜는 옆의 감연의 얼굴을 살펴보며 호기심과 경계심이 공존되는 그런 상태였다. 감연은 걸으면서 효혜를 보더니 이내 병윤에게 한 마디 던진다.

“그나저나 이 아이를 보니까 나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병윤은 그 말에 콧웃음 치면서 한 마디 툭 던진다.

“잘 됐네. 너희 아버지가 요즘 너보고 결혼하라는 소리는 없다냐?”

“알아서 하란다.”

“부러운 새끼.”

그렇게 병윤은 효혜의 손을 꼭 잡고, 감연과 조잘거리며 간씨 네로 걸어간다. 가는 도중, 효혜가 발이 아파서 도중에 가지 못했을 때는 병윤이 효혜를 업으며 갔다. 어느새 감연과 대화를 하면서 걸으니, 간씨 네 대문에 도착했다. 병윤은 간씨 네 대문을 보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저 집안과는 인연이 꽤 복잡하지.’

병윤은 씁쓸한 얼굴로 대문을 바라보고는 이내 대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누른다.

-삑!-

초인종이 눌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밖에 누구인가? 이 집안과 약속을 하고 온 것인가?”

병윤은 안에 들리는 물음에 답한다.

“나는 길남효의 삼남 길병윤이라고 합니다. 그 쪽 가주께 말씀을 전해드리면 될 것입니다.”

“......”

감연은 대문 밖에서 병윤을 바라보며 간씨 네에 대해 한 마디 했다.

“가출하기 전만 하더라도 이 곳 땅주인이었던 간씨 네이었는데. 가출하고 여기에 돌아오니, 조금 감회가 그렇다. 우리의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진 것일까?”

“네 녀석 주제에 웬 감상이냐?”

“씨불놈.”

감연이 병윤을 보고 투덜거릴 때, 대문이 끼익 활짝 열리고 병윤, 감연, 효혜 세 사람의 앞에 양복을 입은 한 사람과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 다수가 있었다. 병윤이 양복을 입은 이를 살펴보니,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이 저택의 작은 주인이라고 불리는 간성호였다. 병윤은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간성호는 병윤이 정중하게 인사하자 싱긋 미소를 짓는다.

“무슨 일로 저희 집을 찾아왔습니다.”

“조금 복잡한 일이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간성호는 그 말에 조금 생각하더니 뒤의 하인들에게 말한다.

“손님들이다. 안에 들여라.”

“예. 작은 주인님.”

순간 하인들은 각자 일하기 위해서 흩어지고, 간성호는 밝은 미소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한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간성호는 직접 세 사람을 안내하며, 사랑채로 향하는데. 효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 저택의 안을 살펴본다. 병윤은 그런 효혜를 피식 웃으며 바라본다. 어느정도 걷자, 사랑채에 당도하고는 이내 간성호와 세 사람은 디딤돌에서 신발을 벗고, 사랑채의 안방에 들어가 자리를 앉는다. 간성호는 이 저택 주인의 자격으로 병윤과 감연을 맞이하며 말한다.

“어제의 일 같은 경우는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박출환의 경우는 상당히 안타깝다고 여깁니다.”

병윤이 그렇게 말하자 간성호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흠흠 거리며 말한다.

“사실 박출환은... 그 놈은 솔직히 저로써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건에 대해서 제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 한 마디 한다.

“박출환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그 것보다 저의 경우는 이 집에 거래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거래라는 병윤의 말 한 마디에 간성호는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궁금증을 표시한다.

“흐음. 거래라고 한다면? 어떤 거래를 원하는 것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작은 가주께는 이 집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간성호는 조금 혹했다가 그걸 누가 모르는가? 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병윤은 그런 간성호의 얼굴에도 여유로웠다. 간성호는 졌다는 표정으로 병윤에게 털어 놓는다. 아무래도 병윤이 해방이 된 후, 임시정부의 관계자라는 정보를 알아차린 것도 있었고, 아무래도 문경의 광복군 연대장이 병주라는 사실도 한 몫 했다.

“해방이 되고, 뒷일은 안 봐도 예상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위정자들이 지주제를 손본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될지 몰라 땅을 팔 수도 없는 일이고 조금 곤란합니다.”

“어차피 농지개혁은 시간이 늦춰지던 빨라지던 몇 년 내로 실시될 예정이라는 것은 눈에 불 보듯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병윤의 확실한 말에 간성호는 조금 실망감 어린 기색이었지만 동시에 병윤을 보면서 조금 희망 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여기의 유력자는 당신 형제들과 일행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민중의 지지를 받는 세력이라고 하여도 실질적인 무력집단의 집행권을 지는 이가 당신의 작은 형이시니...”

그렇게 간성호가 말할 무렵, 하인이 상을 들고 방 안으로 찾아온다. 효혜는 상의 음식에 눈을 반짝인다. 병윤은 효혜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간성호는 병윤과 효혜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말이 끊어진다. 그 때, 상을 든 아주머니가 간성호에게 말한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일단 물러가 있게.”

“예.”

간성호는 다시 병윤에게 흠흠 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좋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당신이 말하는 거래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땅 중 조금 놀리는 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땅은 왜?”

병윤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간성호에게 말한다.

“조금 사업할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일단 저는 중국에서 사업 경험이 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공장부터 설립하고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 감연이 병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꼭 그 땅이어야만 하냐? 다른 땅에 필요한 공장은 세울 수 있지 않나? 넌 어째 이상한 제안을 한다.”

그 말에 간성호는 수상한 눈빛으로 병윤과 감연을 쳐다본다. 옆의 효혜는 상의 약과들을 집으면서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병윤이 간성호에게 한 마디 말한다.

“사실 저는 당신에게 한 가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원래 저와 이 감연이 녀석은 임시정부 측으로부터 불하 자유권을 거머쥐었습니다. 즉 사업하고 싶으면 행정적 절차, 법적 절차에 대해서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간성호는 그 말에 의심스러운 듯 병윤을 바라보다 이내 감연을 쳐다본다. 그 진신을 요구하는 시선에 감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의심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작은 주인께서 믿으실 일입니다.”

“으음...”

병윤은 그런 간성호의 표정에 한 마디 쐐기를 박는다.

“정 의심스럽다면 유보를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원래 큰일이라는 것은 잘 알아보고 판단하는 일이잖습니까?”

간성호는 그 말에 조금 의심을 거두면서 병윤에게 한 마디 질문한다.

“내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 땅 위에 어느 공장을 신설하실 생각이십니까?”

“흐음. 일단 정밀기계 생산 가공 산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공장에 돌릴 모든 기계들을 생산할 수 있는 업종으로 아시면 됩니다.”

간성호는 그 말에 조금 매혹적인 표정이었다. 사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기계 도입은 조선인 자본가들이 많이 하는 일이었지만 기계 생산 및 가공 부분에 있어서 일본인들의 독차지였다. 즉 조선인들에게는 기계의 생산 및 가공에 관한 기술이 없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중요한 설비 생산 공장을 자신의 땅 위에 설립한다는 말에 조금 혹 했다.

사실 그 땅은 농사짓기에는 상당히 척박해서 소작농들도 그 땅을 피해 다닐 정도였다. 그저 묵혀두는 땅, 아니면 간씨 일가의 묘지 터에 적합할 땅이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병윤의 한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간성호는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아무래도 이 제안은 시간을 두고 결정해야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제안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일단 의례적인 거래는 여기서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의례적인 거래라고 한다면?”

“구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제가 건네 드린 정보의 가치는 잘 알지 않습니까?

병윤의 말에 간성호는 조금 아리송한 눈빛이었다. 물론 병윤이 말한 제안과 정보들의 가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간성호에게 빛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흐음. 그 가치에 합당한 거래를 하자는 것입니까?”

“조금 곤란한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최소한 1달 간의 식량을 건네받을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성호는 그 말에 더욱 아리송한 눈빛으로 병윤을 바라본다.

“식자재 문제에 대해서 문경의 연대장에 있는 당신의 작은 형에게 부탁해도 될 일 아니겠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물론 그런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형께는 그런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집안의 사정으로 보급품을 착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는 작은 주인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간성호는 잠시 침묵하고는 병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흐음. 왜 이런 제안을 덜커덕 내려놓았을까? 사실 저 이의 제안은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 안이다. 끄응. 알겠군. 지금 그는 나에게 빚을 지어놓을 생각인가 보군. 이건 상당한 기회다.’

간성호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는 하하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이번 거래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의례적인 거래에 대해선 조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다.

“작은 주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병윤은 간성호에게서 가족이 1달 간 먹을 수 있는 식자재를 구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자 간성호는 둘을 대문 밖으로 배웅하기까지 했다.

간씨 네에 있었던 모든 일이 끝나고, 길을 걷고 있던 감연은 옆의 병윤에게 고개를 돌려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왜 아까 그런 제안을 한 거야?”

“간성호에게 말한 공장 신설에 대해서 말이야?”

감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가지 않는 심정으로 병윤에게 묻는다.

“그래. 그 쪽에만 땅이 있냐? 공장 지을 부지는 얼마든지 있을 걸?”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뭔 생각으로 저 지주 일가의 배를 불러줄 생각을 하냐?”

“뭐 조금 빚이 있어서 말이야.”

“빚이라. 그 전문서적들을 너희 형제들에게 건네준 것 말이냐?”

“그래. 아마 그 것이 조금 컸지.”

“흐음. 그 것 말고도 그 곳에 지을 이유는 또 있을 거 아니야?”

병윤은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감연에게 답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일하는 곳이 집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 좋잖아. 통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짜증이 나.”

“역시 그게 제일 크군. 결국 집과 가까운 부지를 탐색하다가 간씨 네의 놀린 땅을 노리는 것이냐?”

“순순히 돈을 주고 사면 될 일이지만. 저 쪽에도 숨통을 열어주어야지. 조금 있다가 찾아올 농지개혁에 대비해서 말이지.”

“아. 그런 측면도 있었군.”

병윤과 감연은 서로 대화하면서 걸어 나간다. 그 사이에 효혜가 배부르다는 표정으로 뒤뚱뒤뚱 병윤의 옆을 따라간다.

============================ 작품 후기 ============================

귀찮다고 집과 가까운 곳에서 공장을 신설하려는 병윤의 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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