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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212화 (21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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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고향 마을의 선주 네 저택 안에서 김강연과 채병호는 서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강연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으로 채병호에게 말한다.

“이러다 늦게 돌아가게 생겼어요.”

채병호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원래라면 빚을 잡고, 난 못 주겠다고 난리쳐야 정상인데 말이야.”

“끄응.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놓고, 이제 관계 끊고, 서로 갈 길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저 선주 녀석이 손녀를 더 중시하니 말이에요. 아오. 내 가족들을 이런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든 것이 그 선주의 손녀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

하지만 채병호는 김강연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빚문서들을 태우기에는 부족할 거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감정이 다르다고 하지 않았냐?”

김강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는다.

“맞기는 한데. 흐음. 이러는 것은 어때요?”

“뭔데?”

김강연은 곧 채병호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고, 다 들은 채병호는 김강연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는다.

“하아. 네 생각 하고는 알겠다.”

“흥. 그 선주 녀석. 진심이 어떤지 한 번 보자고요.”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상석에 앉아있는 노인과 줄에 묶인 일본인 의사의 모습이 보인다. 노인은 눈을 부라리며 일본인 의사에게 말한다.

“흥. 그 돈 어디에 갔지?”

“끄응. 제 말대로 재생치료센터의 의사들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미친 놈. 지랄을 하는군. 운이 좋아서 나타난 것이지만. 네 놈이 그 재생치료센터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지 않은가?”

“으으으...”

노인은 하아 하고 한 숨을 쉬며 말한다.

“끝까지 입을 안 열겠다는 말이군. 오냐. 한 번 해보자.”

“그... 그게...”

“흥. 어디론가 유흥비로 탕진했다는 말은 못 들은 것으로 치겠다.”

결국 일본인 의사는 우악스러운 하인들의 손에 잡혀서 발길질을 당한다. 구타를 당하면서 지르는 일본인 의사의 비명에 노인은 오히려 싱긋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때, 김강연과 채병호가 다시 이곳에 나타난다. 노인은 순간 잔학했던 눈빛이 바뀌며 두 사람에게 달려든다.

“아니. 자네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김강연은 그런 노인의 표정과 모습에 속으로 매우 짜증이 났고, 엿이나 먹어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겉으로는 오히려 살살 웃으며 말한다.

“제 형님이랑 뭔가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원래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고 들었네.”

김강연은 노인의 말에 얼른 생각이 났다.

‘쯧. 내 여동생이 친구들에게 이사 간다고 말한 것 같군. 하지만 뭐 상관이 없나? 어차피 떠날 생각이니까 말이야.’

“일단 안채에 있는 손녀딸을 완치시킨 다음에 떠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솔직하게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화장실을 들어올 때와 나갈 때는 기분은 다르다고 말입니다.”

“......”

“완치는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르신께서도 저와의 약속을 지켰으면 합니다.”

“끄응... 어떻게 하기를 원하나? 하지만 지금 병을 치료하지 못한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어르신의 손녀의 치료에는 2일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바로 마을사람들의 빚 문서 3분의 1을 태워 주십시오.”

“......”

“그 것도 못하겠다고 한다면. 할 일 없으니 전 제 갈 길을 가겠습니다.”

“끄응. 알겠네.”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짓으로 구타당하는 일본인 의사를 지켜보는 한 하인에게 빚 문서들을 가져오라고 한다. 김강연은 이 모습에 속으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본인 의사의 구타도 끝났고, 마을사람들의 족쇄가 된 빚문서들이 노인의 손에 들렸다. 노인은 김강연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여기서 3분의 1을 태우라고?”

“예. 그 것이 가장 사랑스러운 손녀의 치료비가 될 것입니다.”

“쯧. 내 손녀의 생명을 이어줄 수 있다면 이깟 문서 따위는 얼마든지 태우지.”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빚문서들 중 3분의 1일을 선정한 뒤 하인보고 그 선정된 빚문서의 대상인 마을사람들을 불러 모으도록 한다. 노인이 그렇게 지시를 내리자 채병호는 김강연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아무래도 손녀딸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끄응. 어쩔 수 없네요.”

김강연은 다시 노인에게 다가가 말한다.

“그럼 저희는 혹시 모르니까 어르신의 손녀 곁에 있겠습니다.”

노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그러게나.”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노인의 손녀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노인은 일본인 의사에게 집중한다.

다시 백혈병의 증세가 있는 선주의 손녀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소녀의 편안한 모습을 살펴본다. 하지만 김강연은 소녀의 맥을 집더니 쯧 거리면서 채병호에게 말한다.

“에휴. 제길.”

“그렇게 억울한 것 같으냐?”

“안 억울하면 그게 사람입니까? 선주의 손녀 때문에 저의 가족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였는데 말입니다. 하아. 제길 의사가 뭐라고.”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이 자주 읊는 것이 있지 않나? 히포크라테스 선서 관련해서 말이다.”

“끄응. 병재 형님은 그 일을 당하고도 선서를 외칩니까?”

“뭐. 최소한 왜인들을 치료하지는 않겠지. 자신의 여동생이 그런 험한 꼴을 당했으니 말이야.”

“에휴. 그 형님은 정말로. 끄응. 내가 맞는 사정과 대비해서 엄청 불행한 거에요. 그건. 하기야 제 여동생들이 그런 꼴을 당한다고 상상을 하면 아무리 저라고 하여도 그런 증오심에 사로잡힐 걸요?”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선주가 저런 태도를 보이니 네 녀석도 여기와 관계 맺어진 응어리를 풀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요. 그래야죠. 하지만 짜증이 나고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김강연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 지금 곤히 자고 있는 선주의 손녀를 바라본다. 아마 저 소녀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선주가 치료비를 마련한다고 마을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노인이 선정한 빚문서들은 곧 불에 태워진다. 그에 따라 빚문서의 대상인 마을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다가 이내 만세를 연창 부르고 서로를 껴안는다. 지난 번에는 해방이 되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족쇄가 풀렸기 때문이다. 그 때, 마을사람들 중 한 사람이 노인에게 말한다.

“그런데 어째서 저희들의 빚문서들을 태우는 겁니까?”

노인은 그 말에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런 약속이 있다. 자세한 것은 묻지 마라. 확실한 것은 지금 있는 자네들의 빚문서는 불태워졌고, 앞으로 빚 때문에 살림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게 자네들에게 맞이하는 사실이지.”

“어르신의 은혜에 감읍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마을사람들 중 빚문서 3분의 1이 불태워졌다. 김강연의 마을은 그 일로 떠들썩하게 소문이 번진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선주의 손녀는 채병호가 살펴보기로 하고, 김강연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김환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강연에게 묻는다.

“허. 선주의 손녀딸이 불치병에 앓아서 돈이 필요했다고?”

“아주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요.”

“젠장. 그러면 내 빚은 어떻게 되었나?”

김강연은 그 물음에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해결했으니 말이에요. 어차피 그 선주의 손녀의 치료는 모레까지 걸리니까 그 때까지 이사할 준비를 하면...”

“으음. 꼭 떠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김환초의 말에 김강연은 당황하더니 이내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니. 아버지! 저 재생치료센터에 근무했던 의사입니다. 제가 가족들 먹여 살릴 능력도 없습니까?”

“으음. 내가 네 녀석의 침을 맞아보았고, 지금 그 불치병 걸린 선주의 손녀를 치료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꼭 이사를 가야겠나?”

김강연은 그 말에 하아하고 한 숨을 쉬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안 그러면 저는 그냥 병호 형과 문경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으음... 하아. 나와 네 어미는 여기에 남도록 하겠다. 하지만 데려가도 네 여동생들을 데리고 올라가라.”

김강연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김환초를 바라본다.

“그렇게 말을 하시니. 진심인 것 같네요.”

“그래. 여기서 내 딸들이 있어봤자. 바뀌는 것은 없어. 지금 네 녀석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 아비도 환희 작약하기 그지없구나. 그 곳에 학교가 있으면 그 곳으로 내 여동생들을 보낸 뒤 그 아이들의 생활과 교육을 네가 책임졌으면 좋겠구나.”

“아버지...”

“거기서 네가 많은 것을 공부한다고 들었다. 하여튼 거기서 웬만한 것들을 익히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금의환향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

김강연은 굳센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 김환초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김환초 역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두 부자의 다짐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다시 하루가 지나간다.

다음 날이 되자, 선주의 저택에서는 호사가 나타났다. 파리했던 선주의 손녀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죽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뿐인 손녀의 그나마 활기도는 모습에 노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손녀를 바라본다.

“그래. 어떠냐? 몸은 어떠냐?”

“예전보다 아프지가... 않아요. 할아버지.”

“그래. 넌 나을 수 있어. 나을 수 있다고. 이 할비만 믿어라.”

“......”

노인의 손녀의 옆에 있는 채병호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노인에게 시선을 두고 말한다.

“일단 이 환자분의 혈액 속에 돌아다니는 혈액 암들을 걸러냈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그 암들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치료할 생각입니다.”

노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채병호를 바라본다.

“그러게나. 이제 그 재생치료센터라는 것도 믿을 수 있겠네. 그런데 물어볼 것이 있는데. 거기에 정말로 사람의 팔과 다리를 재생시켜주는 것이 사실인가?”

그 물음에 채병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노인은 채병호의 반응을 보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채병호에게 묻는다.

“하아. 그런 곳이 있었다니 사실이구나.”

“전 그곳에서 중견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재생치료를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다만 그 것도 꽤나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게 뭔가?”

“그 재생치료라는 것이 여분의 살들을 팔과 다리에 재생시키도록 유도하는 거라서 그 때 동안 사람의 몸속에 있는 영양분이 급격하게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엄청나게 허기가 진다는 것이 있지요.”

“으음. 그 말을 들으니까. 역시 대가 없는 치료는 없군.”

“예. 일단 재생치료의 설명은 여기서 끝마치겠습니다. 그런데 그 왜인 의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자네가 알 길이 없네. 왜 궁금한가?”

“그가 재생치료센터를 아는 것도 그렇지만. 그 곳과 관계가 있다는 것에 조금 흥미가 돌아서 그렇습니다.”

노인은 그 말에 얼굴을 구기고는 채병호에게 말한다.

“흥. 그 녀석이 나를 봉으로 보고,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인 것이 분명한 거야. 자네들의 존재로 그 재생치료센터가 있다는 사실은 맞았지만 그 것으로 나를 속이려고 하다니 괘씸해.”

“......”

“하여튼 그 왜인 의사와의 관계는 내가 처리해야할 문제야.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을 그만 두었으면 좋겠네.”

채병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해해줘서 고맙군.”

그렇게 채병호는 다시 노인의 손녀에게 집중한다. 상체만 일으킨 소녀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옆에 있는 체구가 큰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시간이 지나, 김강연이 다시 채병호가 있는 방 안으로 찾아온다. 채병호는 이제 왔냐는 표정으로 김강연을 쳐다본다. 김강연은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채병호에게 변명을 한다.

“쩝. 마을사람들이 병을 치료해달라고 성화라서 늦었습니다.”

“흥. 그 놈의 오지랖은.”

그 말에 김강연은 한 숨을 쉬면서 채병호에게 말한다.

“에휴. 아버지가 저에 대해 방방곡곡 떠드는 바람에. 마을의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전부 치료하게 되었어요. 뭐 간단한 조치만 하면 되는 병들이었지만 말이에요.”

김강연이 그렇게 말하자 채병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결국 이해해줄 수밖에 없었다. 채병호는 자신의 자리를 김강연에게 양보하자 김강연은 선주의 손녀 옆에 앉는다. 그리고 채병호는 지금까지의 소녀의 병세를 김강연에게 설명한다.

“일단 조치는 취해 놓았다. 그리고 약에 관련해서는 근처 읍에 있는 약재상에서 사올 생각이다. 그러니 너는 이 환자를 돌보고 있어라. 일단 이 혈액암을 일으켰던 원인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을 너에게 맡기마.”

김강연은 그 말에 네네 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채병호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짓고는 다시 방 밖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게 김강연과 방 안에 있는 소녀 둘이 남자, 소녀는 붉은 얼굴을 하고는 김강연에게 말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누구에요?”

“말하는 모습을 보니까 건강하네요. 그냥 의사입니다. 의사.”

“의사치고는 상당히 젊네요.”

“......”

김강연은 침묵을 하고, 소녀의 병세에 집중을 하자 소녀는 한 숨을 쉬면서 김강연의 치료에 몸을 맡긴다. 김강연의 침을 맞을 때마다 소녀는 몸이 편안해지면서 그렇게 노곤하게 잠이 스르르 온다. 그리고 활기찬 내일을 기대하며 소녀는 다시 꿈을 꾼다.

============================ 작품 후기 ============================

트롤링을 위해서 난 관심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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