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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정필중이 안내한 곳은 점촌역 근처에 있는 한 일본인 마을의 거리에 위치한 근대식 건물이었다. 원래 이 건물은 일본인 의사가 개업한 한 개인 병원이었는데, 해방 후 그 일본인 의사는 추방당하고, 건물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그 건물을 미국이 약속한 종합대학병원이 건설되기 전까지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김병효와 김병희는 ‘우와’ 감탄사를 내뱉으며 재생치료병원이라는 영어와 한글로 된 간판이 걸린 건물을 살펴본다. 자신들 역시 이런 근사한 건물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문 앞에는 광복군 병사들이 호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정필중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돌아오셨습니까? 선생님.”
정필중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노송규를 제외한 네 명을 가리키면서 그 병사에게 소개해준다.
“그래. 잘 있군. 그나저나 이 청년 두 명은 나와 같이 일했던 동료야. 그래서 이번에 의사 직에 정식으로 근무하게 되는 사람이지. 그리고 이 소녀 둘은 여기 있는 훤칠한 청년의 여동생들이지. 이번에 같이 이 청년이랑 올라오게 되었네.”
그 말에 정필중에게 말을 들은 광복군 병사는 수첩에 그 말들을 적어 놓는다. 그리고 다시 정필중을 쳐다보며 말한다.
“흠. 저 두 사람의 이름은?”
그 말에 김강연과 채병호가 앞장서서 아까 검문 때처럼 지갑에서 증을 내놓는다. 그 증을 살펴보는 광복군 병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사람의 처리는 복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소녀 두 사람은 재생치료병원에 근무하는 가족들의 경우처럼 저 두 사람의 기숙사에 들어가도록 행정 처리를 하게끔 보고하겠습니다.”
정필중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짓고는 그 병사에게 말한다.
“그래. 잘 되었네. 그럼 난 들어가 보겠네.”
“살펴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도 들어가십시오.”
그 말에 김강연, 채병효, 김병효, 김병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필중을 따라서 재생치료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간간히 미군 병사들과 조선인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난다. 김강연과 채병호는 그런 모습의 분위기에 익숙해 보였지만 김병효와 김병희는 토끼 같은 눈빛으로 반짝이며 건물 안을 두리번거린다. 그 때, 두 사람 중 한 풍채가 있는 한 중년 백인 남성이 나오면서 영어로 말하면서 김강연과 채병호를 반긴다.
“휴가는 잘 갔다 왔는가?”
그 물음에 김강연 역시 영어로 대답을 한다.
“예. 덕분에 가족들과 많은 해후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두 여자아이는 제 여동생들이고요.”
김병효와 김병희는 영어로 멋있게 대답을 하는 김강연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 모습으로 멋있다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 때, 그 풍채 좋은 백인 남성이 두 소녀에게 시선을 두자 김강연이 두 여동생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인사해라. 여기 재생치료병원의 사무소장 에드워드 시렌 이라는 분이다.”
그 말에 김병효, 김병희 두 여자아이는 꾸벅 시렌에게 인사를 한다. 시렌은 그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짓더니 이내 김강연에게 시선을 두고 말한다.
“그래. 가족들을 데려온 것 같군. 휴우. 다행이야. 건물에 부속된 기숙사 자리가 두 개가 남았는데. 그 각 방 하나씩에 배정하면 되겠군.”
김강연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시렌에게 말한다.
“하하. 배려에 감사합니다. 사무소장님.”
“흥. 배려는 무슨. 이제부터 욕이 나올 정도로 일을 시킬 건데.”
“......”
“일단 저 여자아이 두 사람을 기숙사로 안내해주고, 너랑 그리고 미스터 채, 두 사람이 근무할 곳을 안내해주지. 또 닥터 정과 닥터 노는 근무지로 돌아가시오.”
김강연은 그 말에 ‘이제 좋은 시절 다 갔구나’라는 암담한 표정을 지었고, 채병호는 묵묵부답 고개를 끄덕였고, 정필중과 노송규는 김강연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어대면서 시렌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김강연과 채병호에게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그럼 이따가 보세. 난 먼저 근무지로 돌아가야겠네.”
“휴우. 이거 또 환자들이 밀려날 것 같네.”
김강연은 그 두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살펴 가십시오. 저도 뒤 따라 고생 좀 하게 생겼네요.”
정필중이 그 말에 키득키득 웃으며 김강연에게 말한다.
“넌 이 자식아. 고생 좀 더 해야 돼.”
“아오. 맨날 저보고 고생을 하랍니까?!”
그렇게 김강연이 성질을 뻗대자 정필중과 노송규는 그런 모습을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김강연은 저 두 사람의 뒷모습에 눈빛이 이글이글 거린다.
“끄응. 앓으니 말지.”
그렇게 김강연은 시렌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시렌이 발걸음을 따라간 곳은 병원부지 안이기 하지만 조금 동 떨어진 곳이었다. 그런 곳에 번뜻한 건물 하나가 있었다. 시렌은 그 건물을 가리키면서 김강연과 채병호에게 설명한다.
“아직까지 쓸 수는 있는 건물이야. 전기와 물이 나오는 곳이지. 그 TV라는 물건이 있으니 심심할 때, 보도록 해. 미국 본토에서도 TV가 흑백으로 나오는데. 여기서 이상하게 컬러 TV가 나온단 말이야. 이거 하나만큼은 부럽기 그지없네. 하여튼 자네들의 호실은 김강연 자네와 여동생 둘은 201호, 채병호 자네는 202호야. 기억해 둬. 자 이건 그 호실에 대한 열쇠야. 만약 잃어버리면 나에게 찾아오게나.”
시렌은 주머니 속에서 201호, 202호에 해당되는 열쇠를 각각 김강연과 채병호에게 건네주면서 다시 할 말을 한다.
“김강연, 그리고 채병호 자네는 짐을 정리한 뒤, 곧장 내 방으로 오게나.”
김강연은 그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 그럼 이따가 또 뵙겠습니다.”
“그래. 그 지겨운 얼굴을 팍팍 보게 생겼군.”
“하하. 그 지겨운 얼굴을 수십 년 더 봐야 될 것입니다.”
“징그러운 녀석.”
그렇게 시렌은 다시 자신의 일을 하러 발걸음을 옮긴다. 시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던 김강연은 자신의 옷을 당기는 손에 고개를 돌린다. 자신의 여동생 중 언니에 속하는 김병효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의 오라바니에게 말한다.
“빨리 구경하자. 빨리.”
김강연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김병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곧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201호, 202호에 다가갔을 때쯤 203호 대문 앞에서 예의 한복을 차려입은 아주머니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김강연과 채병호를 보더니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어머. 자네들이 그 김강연과 채병호라는 아이야?”
김강연은 그 말에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자, 아주머니는 호호 거리며 자신을 소개한다.
“난 이 203호에 사는 신기숙이라는 아주머니야. 얼굴을 보니까 내 남편이랑 만난 것 같은데. 호호호.”
김강연은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신기숙에게 묻는다.
“남편이라고 한다면? 누구...?”
“아 남편? 남편은 닥터 정이라고 이야기해. 호호호.”
그 말에 김강연과 채병호는 얼른 신기숙에게 인사를 한다. 신기숙은 그 두 사람의 인사에 호호 웃으며 말한다.
“어머. 도련님들은. 참. 하여튼 이번에 이웃집이니까 잘 지내보자고.”
김강연은 그 말에 헤실헤실 웃으며 신기숙에게 말한다.
“하하. 예. 이웃집이자 닥터 정의 동료로써 잘 지내겠습니다.”
“호호. 닥터 정이라니. 꽤 웃기지 않니? 그러고 보니. 의사치고는 상당히 어린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바로 너구나.”
김강연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게 바로 접니다.”
“맨날 남편이 애송이 녀석 애송이 녀석 하던.”
김강연은 그 말에 순간 얼굴이 구겨진다. ‘보자보자 하니까 정필중 이 사람이’라는 말이 속으로 울려 퍼진다. 신기숙은 그런 김강연의 얼굴을 보고 호호 웃으면서 말한다.
“이런 내가 너무 오래 붙들었나? 내가 짐 정리하는 것을 도와줄까?”
김강연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하하. 아닙니다. 굳이 형수님이 수고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아쉽게 되었네.”
신기숙은 그 말을 하고난 뒤 다시 203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김강연에게 얼굴을 보이며 마지막 한 마디를 한다.
“그럼 오늘 일이 끝나고, 환영식을 할테니까 기대해.”
김강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기숙에게 말한다.
“예. 예. 살펴 들어가십시오.”
신기숙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짓더니 이내 자기 가족의 집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다. 그 때, 채병호도 시렌이 건네준 집 열쇠로 202호를 열더니 자신 역시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김강연에게 말한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예. 형님.”
김강연은 복도에 홀로 남자, 얼른 자신 역시 201호 문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 돌린다.
-끼이익!-
문이 활짝 열리고, 보이는 201호실 안의 풍경은 꽤나 놀라웠다. 다만 일본인 가정을 위한 집이라서 그런지 조금 안 맞는 부분이 있지만 김강연, 그리고 김병효와 김병희가 꽤 놀란 부분이 있었다. 바로 2개의 방과 거실에 떡하니 마련된 TV와 쇼파, 그리고 베란다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김병효와 김병희는 ‘우와’ 소리 지르면서 얼른 집 곳곳을 살핀다. 김병효는 그런 여동생들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자신 역시 짐들을 풀고자 준비를 한다. 그렇게 김병효와 김병희, 그리고 김강연은 자신의 짐들을 풀고, 그 유명한 TV를 킨다. TV는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졌고, 김병효와 김병희는 눈빛을 반짝이며 그 TV의 화면에 빠진다.
김강연은 그 두 소녀를 바라보며 이내 말한다.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하였으니 난 가볼게. 그럼 너희들은 TV를 보면서 얌전하게 있어야 한다. 알았지?”
김병효는 그 말에 소리 높여 대답한다.
“네에~~!”
그렇게 김병효와 김병희는 TV에 집중하자 김강연은 마음을 놓으면서 재생치료병원으로 출근할 옷차림을 갖춘다. 그리고 다시 집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녁 6시가 되면서 재생치료병원의 하루도 끝이 났다. 병재는 타와라에 쭈욱 있었던 자신의 동료 네 사람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전 이만 돌아 가볼게요. 그럼 내일 봅시다.”
정필중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말한다.
“쩝. 자네 고향이라서 집이 가까우니 부럽군.”
“하하. 그렇습니까?”
그 때, 노송규가 병재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강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병재는 그 말에 고민을 하더니 이내 생각을 마치고 대답한다.
“아마 10일 정도 준비기간을 마친 후, 하게 될 것입니다. 뭐 그 때까지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알겠네. 그럼 내일 보세.”
“예.”
그렇게 병재는 자신의 동료 네 명과 헤어지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재생치료병원의 대문 앞에서 경계를 서던 광복군 병사들이 병재를 보고 반갑게 말을 건다.
“오늘도 퇴근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차는?”
“원래 이 시간에 차가 도착하는데. 오늘은 늦는 모양입니다.”
“휴우. 이거 동생 녀석에게 매번 신세를 지니까 좀 그렇습니다.”
광복군 병사는 그 말에 얼굴이 굳더니 이내 얼굴을 풀고 하하 웃는다.
“그런 농담 마십시오. 저희들은 매번 연대장님의 얼굴을 보니 죽겠습니다.”
병사 둘의 수척한 모습에 병재는 쯧쯧 거린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차가 한 대 병재 앞으로 도착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이는 광복군 군복을 입은 병주였다. 대문을 지키는 병사 둘은 얼른 병주에게 경례를 한다.
-충성~!-
병주는 대충 병사 둘에게 경례를 하고, 말한다.
“자네들도 고생이군. 난 형님을 데리고 나가보겠네. 수고하게나.”
“예! 연대장님.”
그렇게 병주는 병재를 차 안으로 데리고, 다시 모습을 사라지게 한다. 광복군 병사 둘은 병주가 차 안에 탑승하자 휴우 한 숨을 내뱉고 한 마디 한다.
“매번 연대장님이 찾아오니까 좀 그렇네.”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병사 역시 그 병사의 말에 동조한다.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신세를 한탄하는 광복군 병사 둘은 근무교대를 기다린다.
한편, 병주가 운전대를 잡고, 옆에 앉아있는 병재에게 말을 한다.
“형님. 요즘 병원 생활을 어떻습니까? 할 만합니까?”
병재는 그 말에 아무런 표정도 하지 않고, 병주에게 말한다.
“뭐. 매번 똑같은 일상이지. 그래도 집에 출퇴근하니까 기분은 좋다.”
“그렇습니까? 하아. 아 맞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 그 제 1차 반민특위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병재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내 병주에게 묻는다.
“그 친일파 처리를 위한 반민특위 제 1차 공판 말인가?”
“예. 이번에 합일합방 관련된 조선귀족들이 우선으로 처리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처리되든 안 되든 난 별로 상관이 없다.”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자신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사실 우리 가족이 노리는 사람은 그 박출환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 놈을 그 재판 위에 세우지 못해서 불만입니다.”
“쯧. 그 자식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찾아보고 있나?”
“일단 흥신소에 연락해서 위치를 파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오리무중인 것 같습니다. 휴우. 함경도로 빠져 나갔으면 큰 일인데 말입니다.”
“제길. 그 자식을 그냥.”
병재는 머릿속에 희희낙락거리는 박출환의 모습이 상상된다. 아직도 자신과 가족들을 비웃는 그의 모습에 병재는 절로 이가 갈린다. 병주는 그런 병재의 모습에 진정하라는 말투로 대답한다.
“그래도 함경도에 들어갔다고 치더라도 일단 위치가 밝혀지면 제 인맥과 돈,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서든 그 녀석을 납치해서 정당한 죄 값을 치르게 만들 것입니다.”
“흥. 반드시 그래야 해. 그 자식이 숨을 쉬게 만드는 공기조차 아까워.”
반민특위에 박출환을 자리에 내세우지 못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은 곧 사현리를 향해 바퀴를 굴린다. 그리고 병재는 옆 창문에 비치는 노을과 그 노을에 비쳐서 아름답게 눈을 정화시켜주는 고향의 풍경을 지켜보았지만 박출환에 대한 증오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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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원역사와 달리 반민특위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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