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215화 (21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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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병주가 모는 차량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앞에 도착한다. 지붕에 며칠 전 상용화된 동협 태양-0 전지가 설치되어있지만 여전히 정겨운 초가집이었다. 병주와 병재는 차량에서 내리면서 기지개를 편다.

그 때, 집에서 한 여자아이가 달려나와 병재와 병주 두 사람을 반긴다.

“오... 오빠! 오... 오빠!”

병재와 병주는 여자아이의 외침에 싱긋 웃는다. 그리고 병재가 그 여자아이 자신의 막내 여동생 효혜를 하늘 위로 번쩍 들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

효혜는 그 말에 꺄르르 입이 열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병재는 얼른 효혜를 목마로 태우고는 얼른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집 안에서 두 사람이 효혜처럼 병재와 병주를 반기러 온다. 바로 이 집 삼남인 병윤과 장녀인 효순이었다. 효순은 병재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셨어요? 오라버니.”

병재는 효순의 말투에 조금 징그럽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그만해라. 으으 거북해 죽겠네.”

“끄응. 이거 참.”

병윤은 효순과 병재를 헤헤 웃으며 바라보고는 말한다.

“일단 급히 돌아온 이유가 아무래도 지금 TV에서 나오는 방송 때문에 온 것이지요?”

병주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그 방송을 지켜보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TV로 집중하고 있지. 반민특위를 생중계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윤은 그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병재와 병주에게 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을사람들이랑 같이 그 마을회관에 마련된 TV를 같이 보기로 하였나 봐요. 이런 것은 마을사람들과 같이 보는 것이 제 맛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병주는 그 말에 조금 그렇다는 시선을 내비치더니 이내 한 숨을 쉰다.

“에휴. 어쩔 수 없군. 우리도 그 반민특위에 대한 방송을 보자고.”

“예. 밥은 어떻게?”

병재가 그 물음에 가볍게 대답한다.

“거기서 먹고 왔다.”

병윤과 효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병재의 어깨에 목마자세로 태워진 효혜가 병재의 머리를 찰싹 찰싹거린다.

“오빠... 오빠! 마시는 거! 맛띳는 거!”

병재는 그 말에 에휴 한 숨을 쉬면서 이내 효혜를 마루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기더니 이내 안주머니 속에서 단 과자라고 불리는 초콜릿을 하나 효혜에게 건넨다. 효혜는 헤 하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표정을 짓는다. 병재는 효혜의 그 모습을 기분좋다는 듯 바라보고는 이내 병주에게 말한다.

“이번에 네가 효혜 이빨 닦일 차례다.”

병주는 그 말에 얼굴을 구기면서 나름대로 병재에게 항변한다.

“봐주십시오. 형님. 저 일 바쁜 것 잘 알잖아요?”

“흥. 난 뭐 일 안 바쁘냐? 매번 환자들 상대하고, 강의자료 준비하느라 바쁘다. 지금 짬을 내어서 효혜를 챙기기라도 하지.”

병주는 그 말에 할 수 없다는 듯 한 숨을 쉬고는 말한다.

“에휴. 알겠어요. 단 과자 먹이고 난후 효혜 양치질은 제가 할게요.”

병재는 병주의 항복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자식. 그렇게 할 것이지.”

“......”

그렇게 효혜, 병재, 병주, 세 남매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가족이 늘어나니까 방은 좁아보였지만 그래도 병재와 병주는 푸근하게 생각한다. 그 때, 병윤이 TV화면을 조절하더니 이내 그 반민특위 관련한 방송이 틀어진다. 병재와 병주는 방 안에 앉아서 TV화면에 집중한다. TV화면 속 마이크를 든 한 젊은 남성으로 보이는 보도자가 화면 정면을 향하고는 마치 시청자들에게 들으라는 듯 설명한다.

-지금 이 곳은 반민족특별행위재판소, 이른바 반민특위 재판이 열리는 재판소입니다. 이른바 반민특위 제 1차 공판이라고 말하는데. 반민특위의 법적 근거는 지난 달 20일, 김구 주석 각하께서 임시정부의 당면정책에 반민특위에 대해 처음으로 방향을 잡았고, 26일에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임시정부의 관계자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이 제 1차 공판의 법적인 주요 근거가 뭐 뭐 있는지 간단하게 말씀해주십시오.-

화면 속의 보도자는 옆에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입은 한 중년 남성에게 마이크를 댄다. 중년 남성은 아까의 보도자처럼 촬영장비에 집중하면서 보도자의 질문에 답변하기 시작한다.

“지난 달 26일에 임시 회의에서 반민족 행위를 한 자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열리는 제 1차 공판의 경우는 한일합방 당시 서명하였던 매국노의 경우를 처리하고자 하였지만 그 당사자들은 죽고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 후손들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 난감한 사항입니다. 그래서 확실한 친일적 증거가 되는 조선귀족들을 대상으로 이번 공판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답변에 보도자가 다시 한 번 중년남성에게 질문한다.

-그런데 갑오개혁 이후로 연좌제는 폐지되지 않았습니까? 경술국치 당시 서명하였던 당사자들이 아니라서 상당히 논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솔직하게 매국한 죄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국한 대가로 받은 재산들을 이용하여 우리 민족들의 재산을 착취하게 만든 점을 주로 파거나 혹은 그 본인들이 아버지를 뒤따라서 일제관련 찬양한 죄의 대가는 마땅히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도자는 그 대답에 만족스럽다는 듯 얼굴을 짓고는 다시 촬영장비를 바라보고는 아까의 그 자세로 시청자들에게 설명한다.

-이번에 재판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이른바 조선귀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재판이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아. 지금 시작 시간이 되었군요.-

보도자를 가리키는 화면은 얼른 판사석, 검사석, 변호사석, 증인석이 있는 곳을 보여준다. 그 때, 판사석 뒤에 있는 문으로부터 판사 복을 입은 5명의 판사들이 입장해 들어오더니 이내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 때, 중심에 앉는 판사 한 명이 검사석, 변호사석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자신이 가져온 서류들을 자신 앞 탁자 위로 내려놓고는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때, 검사석 뒤에 있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양복을 입은 검사들 3명이 들어오고, 또 변호사석 뒤에 있는 문이 활짝 열리면서 양복을 입은 변호사 3명 및 이번 재판을 받게 되는 피고인들이 들어온다. 순간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재판할 준비가 끝나자 판사석 중앙에 앉아있는 장년 남성의 판사가 나무봉을 들고 나무판에 딱 딱 딱 세 번 두들기고는 곧 입을 연다.

-지금부터 반민특위 제 1차 공판을 시작합니다. 그러니 증인석에 계시는 분들은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술렁거리던 방청석의 사람들은 뚝 하고 침묵을 한다. 곧 이어 아까 사람들을 침묵시킨 판사가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현재 시각 오후 6시 30분. 지금부터 반민족특별행위재판소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검사부터 진행하도록 하십시오.-

그 말에 검사석에 앉아있는 검사 한 명이 벌떡 일어나고는 곧 방청석 및 모두를 향해 돌아보고는 이내 한 손으로 증거자료들을 들면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1910년 8월 29일,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경술국치, 정식 명칭으로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체결에 주동적으로 한 매국노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그 조약에 적극적으로 한 매국노 이완용의 손자가 지금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그러나 그 손자라 하여도 할아버지가 한 경술국치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가 없습니다. 허나 전 조선귀족 후작인 피고인 이병길은 해방 전 열렬히 일제에 대한 찬양 행사 및 국방 헌납에 대한 죄를 아니 물을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조부, 그리고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이용하여 같은 민족의 재산을 착취한 죄까지 더해서 무기징역을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 변호사석에 선 한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벌떡 일어나서 말한다.

-이의 있습니다. 여기 있는 피고인 이병길은 한일합방에 대한 죄목은 없고, 일제 찬양을 위한 단체를 결성했던 점이 있고, 또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기타 죄에 대한 사항들에 대해서 확연히 증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허나 피고인이 가정의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결정되게 된 사항을 참작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민족들의 재산을 착취하였다고 하는데. 그 저에 대해서 명백한 증거들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조부, 친부가 한일합방에 대한 죄의 대가로 받은 재산들을 몰수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재산을 불렸다고 같은 한민족의 재산을 착취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잔학한 통치 하에 그런 찬양을 하지 않으면 재산, 지위 모두를 잃게 된다는 사정을 헤아린다면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무기징역은 매우 잔혹한 처사가 됩니다.-

그렇게 검사와 판사는 곧바로 말다툼을 보이기 시작한다. 매번 이게 옳다. 아니다 저게 옳다. 이렇게 말싸움과 증거들의 싸움이 보이다가 이내 이병길에 대한 판결은 최종국면에 도달한다. 중앙에 앉은 판사가 피고인석에 앉은 이병길을 바라보며 말한다.

-피고인은 최후 변론을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굳은 표정의 이병길은 벌떡 일어서더니 이내 자기 할 말을 한다.

-비록 이 죄 값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연좌제는 구한말 갑오개혁 당시 폐지 당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본제국을 위해 찬양했던 점에 대해서 할 말은 없지만 그 것이 일제의 포악한 통치를 유화시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 말을 들은 중앙의 판사는 얼굴을 굳히면서 자신의 판결을 내린다.

-피고인 이병길은 경술국치를 초래한 이완용의 손자인 것은 확실하다. 허나 그 손자는 경술국치 당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조부의 죄과를 연좌 받지 아니한다. 허나 조부, 부친의 뒤를 따라 일제에 대한 찬양, 포악한 통치에 대한 동조, 일제에 대한 열렬한 충성을 보여주었던 증거들을 확인할 때, 이에 피고인 이병길은 징역 20년, 일가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도록 판결한다.-

판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얼른 나무봉을 땅! 땅! 땅! 두들긴다. 피고인 이병길은 이 판결에 눈을 감고는 허망한 얼굴을 짓는다. 그 후로도 송병준의 후손에 대한 재판, 고영희의 후손에 대한 재판 및 조선귀족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판결한다.

그리고 모든 재판이 끝나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촬영장비의 초점은 다시 보도자에게 향한다. 보도자는 재판의 모습에 할 말이 없다가 촬영장비가 자신을 향하자 얼른 긴장한 얼굴을 하고는 마이크를 들고 촬영장비를 바라보며 자신의 할 일을 다 한다.

-예. 지금 제 1차 공판이 끝이 났습니다. 일본제국에 대해 찬양하고, 동조했던 사람들에게 적절한 처벌이 되도록 바랍니다. 이만 오늘 특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그 뒤에 삐이이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슨 이상한 모양의 도형들과 현재 날짜, 시간들을 보여준다. 시간은 이제 오후 9시 55분을 가리킨다. 병윤은 그 것을 보고 얼른 TV를 끈다. 병재와 병주, 그리고 효순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건 TV를 껐던 병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어린 효혜 한 명이 효순의 무릎에 베고 곤히 자고 있을 뿐이다.

병재는 침묵을 하다가 먼저 자신의 동생들에게 말을 꺼낸다.

“으음. 이거 상당히... 그래도 적절하게 처벌 받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것만으로도 모자르다고 시위가 벌어질까 걱정이군.”

병주는 병재의 염려에 피식 웃고는 말한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친일파들의 처리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에게 숙명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병윤이 네가 그 조선귀족에 관련된 처리를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하던데 정말이냐?”

병윤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그냥. 몽양 선생님이 저에게 질문을 던지시기에 적절하게 답변한 것뿐입니다. 일단 조선귀족들을 재판하였으니 아무래도 다음은 기존 경찰세력들에 대한 처리일 것입니다.”

그 말에 병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흠. 경찰 세력이라. 이거 만만치가 않은데. 아직 네가 있는 군부에서 친일파 관련하는 말들은 없나?”

병주는 그 물음에 자신이 아는 바를 답한다.

“일단 해방 전에 광복군에 귀순했던 군인들에 대해서 제외시키기로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귀순하지 않았던 구 일본군 군인들에 대해서 일 것입니다. 이번 광복군 참모총장 이범석 장군은 아무래도 그들을 숙청시킬 생각입니다. 일단 웬만한 조직들을 갖췄으니 말입니다.”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그래. 아무래도 군부는 그렇게 처리할 것 같고. 그렇다면 일제에 복무했던 경찰 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 거냐?”

“으음. 그 부분에 있어서 죄의 경중을 따져서 봐줄 수 있다면 그대로 경찰 인력에 복속시키고, 중하면 재판에 세우겠지요. 경찰의 부족한 인력에 관해서는 기존의 광복군에서 활용될 것 같고요.”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번에는 병윤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번 경성에 있는 중국군 사령관의 소견은 어떠한 것 같냐?”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병재의 질문에 답변한다.

“아무래도 친일파들을 제거하는 데는 열렬히 찬성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임시정부 세력들이 한반도에 정권을 잡아야 편해지니까 아무래도 민심을 해칠 수 있는 악질 친일파들에 대한 처벌은 멈추지 않을 것 같네요.”

“으음.”

그 때, 문이 끼익 열리더니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다섯 남매의 아버지인 길남효와 어머니인 김민숙이었다. 순간 세 형제는 벌떡 일어서서 부모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다.

“들어오셨어요?”

길남효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앉으면서 세 아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곧 병재에게 시선을 두면서 할 말을 한다.

“으음. 병재야.”

왠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는 길남효의 모습에 병재는 순간 긴장하면서 말대답한다.

“예. 아버지.”

“아무래도 네 결혼에 대해서 말인데.”

“......”

병재는 그 말에 침묵을 하고, 순간 병주와 병윤, 그리고 효순의 얼굴이 변한다. 그리고 효혜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의 시선이 병재에게 향한다. 길남효는 크흠 크흠 거리며 헛기침을 하더니 병재에게 말한다.

“이제 네 녀석 나이가 몇이냐?”

병재는 그 말에 잘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제가 1919년 태생이니까 올해 27살이 됩니다. 아버지.”

“휴우. 그러냐? 이제 노총각 다 되었구나. 병주와 병윤도 새겨 듣거라.”

병주와 병윤은 그 말에 길남효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길남효는 품속에서 종이들을 꺼내더니 병재를 포함한 세 형제에게 내놓는다. 길남효는 그 종이들을 검지로 가리키면서 설명한다.

“이 종이들이 뭔지 알고 있는가?”

“......”

세 형제들이 순간 침묵하자 길남효는 다시 입을 연다.

“전부 다 자신의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자는 종이들이다. 수 십, 수 백의 가문들이 우리 집의 아들들과 결혼을 하겠다고 난리다. 이거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

병주는 그 물음에 하아. 하고 한 숨을 짓는다. 이제 자신의 나이 27살이다. 언제까지 결혼을 미룰 수가 없었다. 징용 전만 하더라도 자신은 스승 심의호 밑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지금은 댈 수 없었다. 길남효는 병재를 바라보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집을 이을 아들은 셋이 있지만 손주가 없구나. 이 애비는 너희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고, 세상을 명성을 떨치게 만들어서 더 이상 뭐라 할 말은 없겠지만 부디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귀여운 손주 녀석을 한 번 안아보고 싶구나.”

병재는 아버지의 구구절절한 감정에 자동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자신과 혼인할 여자라. 찾아보면 있겠지만 마음에 와 닿는 사람은 없었다. 이럴 때는 병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침묵한다. 그 때, 어머니 김민숙이 병재에게 애걸하는 말투로 말한다.

“내 아비의 말이 맞다. 병재야. 이제 혼인은 미뤄둘 수 없어. 그러니 병재야. 혼인해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 네가 부족할 것이 무엇이 있겠어. 재산도 지위도 얼굴도 되는데. 네가 외롭게 지내지 않았으면 한다.”

병재는 그 말에 더더욱 고개를 숙이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부모님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겠습니까? 올해 내에 결정하겠습니다.”

병재의 답변에 길남효와 김민숙은 실망감이 드는 표정으로 병재를 바라본다. 부모님의 시선이 그럴수록 병재는 죄송스러운 만큼 고개가 숙여진다.

============================ 작품 후기 ============================

이제 세 사람의 결혼도 정해지겠죠. 원래 시대상 병재의 경우는 만혼 혹은 노총각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시대와 완전히 다르죠. 거기에 결혼에 부모님 끼리 결정하는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인지 저 시대가 부럽습니다. ㅠㅠ 나도 모태솔로에서 벗어나고 싶어.

휴우. 일단 350화부터는 6.25 전쟁이 터지도록 이야기가 되겠네요. 그렇게 되면 예정되었던 1000화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네요. 끄응. 6.25에 관련해서는 나중에 320화 될 때쯤 설문을 해야겠습니다. 그럼 이 관심종자에게 댓글들을 던져주십시오. 아 관심과 댓글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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