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234화 (234/633)

0234 / 0633 ----------------------------------------------

[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점촌에서 병윤과 감연이 카페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코코아를 마실 시점, 길남효는 오랜만에 아내 김민숙과 함께 차량에 탑승하고, 점촌으로 향한다. 차량의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동협 그룹의 비서인 손채현의 할아버지 손본규였다. 그가 운전기사를 자청하자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하기 그지없는 얼굴표정을 짓는다.

길남효는 차창에서 쓰윽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지금 문경에서 동협 건설회사가 시작했던 임시도로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서 차를 굴리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그 때,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손본규가 정면을 보면서 뒤에 앉아서 멍하니 있는 두 사람에게 말한다.

“하하. 오늘 날씨가 좋지요?”

그 물음에 길남효는 조금 당황하더니 이내 대답한다.

“예. 예. 좋지요. 좋아요.”

손본규는 어색하고, 자신을 어려워하는 길남효의 대답에 한숨을 푹 쉰다. 아무래도 저 두 사람은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물론 권위와 권세를 부리지는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명성을 떨친 세 아들의 부모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에게도 바뀐 것은 많았다.

해방 후 바뀐 것들 중 하나는 바로 길남효와 김민숙은 소작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주 훌륭한 아들 셋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아니 셋째만 있는 것으로 해도, 돈 걱정은 없었다. 셋째 아들이 한반도에서 그 유명한 동협 그룹의 회장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소작이 아니라 간씨 집안에서 땅을 사서 지주로 행세하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 정도이다. 그러나 평생 소작노릇을 한 두 사람에게 지주의 역할은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의 의복은 자신의 집에서 입는 한복이었다. 자세히 보면 그 의복이 오랜 시간 입어서 헤어진 한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병윤이 부모님에게 의복을 사다드리기 하지만 그들은 한사코 사양한다. 왠지 익숙한 것이 좋다고 했다.

사실 두 사람이 차에 탑승하고, 점촌으로 가는 이유는 다른 것은 없었다. 병재의 동료의사 가족 분이 초청해서 점촌에 위치한 재생치료병원으로 가는 것이다. 병재의 동료의사가 정필중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가족의 집에서 병재의 동료의사 몇 명이 찾아왔고, 그래서 길남효와 김민숙에게 있어서 정필중은 구면과 다름없었다.

그 때, 길남효는 손본규를 잠시 바라본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은 양반이 운전기사 노릇을 하다니 조금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다. 말을 들어보면 셋째 아들의 집사 일을 했다고 하며 지금 문경으로 이주해서 살림을 꾸렸다고 들었다. 그 때, 길남효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갑작스럽게 그에게 묻는다.

“그런데 제 셋째 아들이 잘 해주긴 잘 해줘요?”

손본규는 그 물음에 생각을 하다가 이내 대답해준다.

“회장님은 잘 해줍니다. 아마도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명령하고, 윽박지르는 사람과는 틀립니다. 그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거대한 특징은 바로 끝을 알 수 없는 능력과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서 그의 이상과 힘에 끌려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지요.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습니까?”

길남효는 손본규의 과대한 칭찬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얼떨떨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의 셋째 아들이 그런 대단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 말이다. 길남효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의 아내 김민숙을 쳐다본다. 그가 바라보는 그녀는 입 꼬리가 하늘 위로 승천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고평가 해주는데 어느 부모님이 안 좋아할까? 거기다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다.

그나저나 길남효는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다. 사실 자신 역시 젊은 시절 결혼하고 나서 살림살이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돈 적이 있었고, 문경의 가장 번화한 곳인 점촌 역시 다녀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점촌을 매번 왔다 갔다 하지만 점촌 관광은 자세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길남효와 김민숙은 은근히 기대가 되는 시선이었다. 손본규가 운전대를 잡은 차량은 곧 점촌으로 향한다. 차량이 점촌에 가까워질수록 시골농가 분위기였던 시골농가 분위기였던 풍경들이 곧 바뀌기 시작한다. 공사를 시작하는 분위기에서 곧 우후죽순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 곳이 나온다. 길남효는 그 모습을 점촌에 다녀오면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점촌의 거리에는 기성복은 물론 한복을 입은 여성들과 양복, 한복을 입은 남성들이 눈에 보인다. 점촌에서 가장 큰 것이 있었으니 그 것은 차선이 생기고, 인도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도로에는 차들이 별로 없었다. 문경의 사람들이 부자라고 해봤자 차량은 아주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돌아다니는 차량은 미군부대 혹은 광복군부대의 차량이거나 아니면 동협그룹에서 나오는 차량이었다. 그런 차량들 속에서 길남효와 김민숙은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본다.

인도의 행인들은 차량에 대해 별반 신기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익숙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렇게 차량은 어느 한 곳 앞에 도착한다. 바로 목적지인 재생치료병원이었다. 재생치료병원은 오늘 휴일이라서 그런지 다른 날과 비해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길남효와 김민숙이 바라보는 광경은 그게 아니었다. 재생치료병원에 환자들이 빈번하게 들어가고, 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 때, 운전대를 잡았던 손본규가 차량을 가까운 곳으로 정차하고, 고개를 뒤로 돌려 말한다.

“말씀하신 목적지인 재생치료병원에 다 도착했습니다.”

손본규의 친절한 말투에 길남효와 김민숙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창 문을 열고, 내린다. 그와 동시에 운전석에 앉았던 손본규 역시 차에서 내린다. 손본규는 공손하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말한다.

“저는 그럼 다른 곳으로 있다가 가겠습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그러십시오. 그런데 몇 시에 여기로 다시오면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손본규는 생각하다가 이내 그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그 쪽으로 연락이 갈 것입니다. 그 건에 대해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갈 때는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같이 오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고요.”

손본규의 말에 길남효와 김민숙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손본규는 두 사람을 배웅해주었고, 길남효와 김민숙은 곧 재생치료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입구에서는 광복군 병사 둘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병사 둘은 직원을 제외한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길남효와 김민숙은 그 사람들의 줄에 끼어서 기다리다가 자신들의 차례가 되었다. 광복군 병사가 두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습니까?”

그 물음에 길남효는 당황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한다.

“병원에 제 장남의 동료분 가족들에게 초대를 받아서 왔습니다.”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길남효입니다.”

“길남효라 알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길남효의 이름을 적고 있었던 광복군 병사는 기록들을 작성하고, 출입증을 두 사람에게 건네고는 말한다.

“이건 재생치료병원에 있는 통행증입니다. 이렇게 검문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한산해서 다행입니다. 들어가십시오.”

병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길남효와 김민숙을 통과시킨다. 두 사람은 병원의 정원을 걷다가 이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은 꽤 거대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거리고 있었다. 길남효와 김민숙은 서로 팔짱을 껴앉은 채 신기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솔직히 두 사람이 병원에 가본 지는 꽤 오래되었다. 두 사람은 마치 시골사람처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걸어 다니는 한 직원을 붙잡고, 묻는다.

“혹시. 정필중이라는 사람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직원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고는 길남효에게 말한다.

“무슨 일로 그를 찾으십니까? 오늘은 휴일입니다. 그에게서 진료를 받으시려면 내일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때, 길남효는 간신히 직원을 붙잡고 또 묻는다.

“아니. 그 진찰 건이 아니라 사실 그의 가족들에게 초대를 받아서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딘지 찾아볼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직원은 그 말에 짜증이 난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에휴. 당신들이 그 정필중 의사에게 초청을 받았다니. 하늘이 곡할 노릇이군. 저기에 안내 데스크가 있으니 저기서 물어보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직원은 바로 제 갈 길을 간다. 길남효는 그런 직원의 뒷모습에 머리를 긁적이고는 아내 김민숙과 함께 이내 직원이 가리킨 안내 데스크로 향한다. 안내 데스크에서 저기압 상태로 보이는 백인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길남효는 외국인 젊은 여성의 모습에 잠시 머뭇거린다. 그 때, 백인 아가씨가 길남효에게 심드렁한 말투로 말한다.

“저 한국말을 아니까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에 길남효는 휴우 하고 한숨을 짓고는 이내 그 젊은 아가씨에게 묻는다.

“저와 제 아내가 이곳에 근무하는 정필중이라는 의사에게 초청을 받아서 그러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 말에 젊은 아가씨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길남효를 톡 쏘아보고는 말을 툭 내뱉는다.

“닥터 정에게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면. 혹시 출입증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길함효는 그 말에 아까 광복군 병사가 쥐어준 출입증을 그 젊은 여성에게 건네준다. 젊은 여성은 길남효의 얼굴을 바라보고, 출입증을 바라보다가 이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으음. 얼굴을 보면 환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럼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길남효는 순순히 대답한다.

“전 길남효라고 합니다.”

“......”

순간 젊은 아가씨의 얼굴이 확 변했다. 그리고 설마 하는 얼굴로 길남효에게 물어본다.

“혹시 그 닥터 길을 아십니까?”

“제 장남이 여기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젊은 아가씨는 아무래도 약속했던 사람이 도착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번에 정필중과 병재가 오늘 병재의 부모님이 오시니 잘 좀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 아가씨, 휴일에도 근무를 나가야하는 불쌍한 처지였던 루시 시리언은 잠시동안 멍해 있다가 길남효를 바라보고는 얼굴을 고치고 말한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인데. 그 여기에서 근무하는 길병재의 아버님이 되십니까?”

그 물음에 길남효는 시리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렇습니다.”

“휴우. 실례했습니다. 조금 모습을 뵌 것이 틀려서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그 닥터 정이 사는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시리언 안내 사무원의 과한 친절에 길남효와 김민숙은 조금 놀란다. 그리고 얼떨결에 시리언을 따라 걸어간다. 시리언이 걸어가면서 두 사람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 미스터 길의 여자친구는 만나 보셨습니까?”

길남효는 그 말에 걸어가면서 그 물음에 대답한다.

“예. 뭐. 일단 저번에 제 장남이 결혼할 처자라고 떡하니 데려왔습니다.”

시리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쁜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그 결혼할 처자의 친구가 저라서 그래요. 휴우. 그나저나 그 미스터 길의 부모님을 오늘 처음 뵙네요. 호호호.”

그렇게 시리언 안내 사무원과 길남효, 김민숙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 안에 있는 기숙사로 향한다. 기숙사 앞에서 몇 몇 사람들이 있었다. 기성복을 입은 몇몇 동양인과 서양인들이 눈에 띄었다. 서양인들은 기본적으로 재생치료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인 것 같았다.

시리언은 앉아서 쉬고 있었던 동양인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시리언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던 길남효와 김민숙은 그 동양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들의 사람을 발견한다. 지난 번 집으로 찾아온 동료의사들의 얼굴들과 벤치에서 쉬고 있었던 자신의 장남인 병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병재는 부모님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길남효와 김민숙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길남효는 그런 병재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할 만해?”

병재는 아버지의 정다운 물음에 미소를 짓고 대답한다.

“예. 아주 할 만합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소일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남는 것이 시간이지 않으냐. 그래서 찾아왔다.”

그 말에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시선을 시리언에게 돌리며 말한다.

“감사드립니다. 시리언씨. 사실 제 부모님의 얼굴을 모르시는 분이 당신이고, 또 제 부모님이 약속시간과 다르게 찾아와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에요. 호호. 일단 분위기가 상당히 닮았어요. 역시 부자지간이네요.”

시리언 안내 사무원의 말에 병재는 미소를 짓는다. 그 때, 병재 뒤에서 정필중이 나타나더니 이내 길남효와 김민숙에게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그 정필중입니다. 하하. 서로 구면이지 않습니까?”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과 비슷한 동갑으로 보이는 정필중을 바라본다. 처음 바라보았던 정필중은 뭐라고 해야 할까? 딱 보아도 배운 사람처럼 보였다. 대학 교수에서 강의하는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 아주 유식한 모습이었다.

‘끄응. 나랑은 상당히 틀리구나. 거의 비슷한 나이인데 불구하고. 저 사람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대학 교수 같고, 난 소작 일만 주구장창 했으니 말이야.’

그러나 길남효는 정필중의 자세한 사정에 대해선 몰랐다. 아니 오히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지식인 계층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진실은 같은 처지였다가 병재를 만나 의사가 되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보이는 겉모습에서는 아주 노련하기 그지없는 의사로 보인다.

결국 정필중에게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길남효였다.

“예. 저번 귀국할 때, 뵈었지요.”

“모습을 보니 상당히 건강하시군요. 하기야 그 유명한 병재 군의 부모님이시니 매번 장남이 확인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동감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매번 병재과 출근 전, 퇴근 전에 자신의 가족들의 건강을 확인했다. 그리고 특별한 징후가 보이면 치료하고 그랬다. 그래서 길남효와 김민숙은 동년배의 사람에 비해 건강했다.

그 때, 시리언 안내 사무원은 다시 자신의 근무 자리로 돌아가고, 병재가 고개를 돌려 길남효와 정필중을 바라본다. 그 때, 정필중이 병재와 길남효, 김민숙 부부를 보고는 말한다.

“이럴 때가 아니지요. 우선 제 집 안으로 들어갈까요?”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예.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정필중의 뒤를 따라 길남효와 김민숙, 병재가 따라가기 시작한다. 도중에 만나는 동료의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받으면서 걷다가 곧 203호 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정필중은 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누른다.

-삐이이익!-

그러자 문 안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정필중은 그 물음에 익숙한 얼굴을 하고는 대답한다.

“나야. 약속했던 손님들이 찾아왔어.”

“예? 벌써요?”

“빨리 문이나 열어.”

“알았어요. 재촉하지 말아요!”

그러더니 곧 문이 열리고, 기성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여성은 익숙한 자기 남편과 남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병재와 그의 부모님인 길남효, 김민숙의 얼굴을 보고는 호호 웃는다.

“어서 들어와요. 그리고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

그 말에 길남효와 김민숙은 자신이 신고 있었던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온다. 두 사람은 집 안을 두리번거린다. 이 집은 자신이 살고 있는 초가집보다 상당히 넓어보였다. 대충 눈으로 잡았을 때, 대략 30평으로 보이는 집이었다. 길남효는 집 안 분위기에 감탄을 하면서 부러움을 느낀다. 집 안에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는 물론이고, 청소기와 마지막으로 TV까지 있었다. 물론 그 전자제품 같은 경우는 자신들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편리하기는 하지만 가장 부러웠던 점은 바로 이 한 가지, 콸콸 쏟아지는 물이었다. 김민숙은 싱크대를 써보면서 자신의 남편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이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아니면 병윤에게 집을 하나 새로 지워달라고 할까요?”

그 말에 길남효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생각한다. 이 집이 왠지 부러웠고, 자신의 집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사를 갈까? 생각을 하지만 이내 그만두고는 병윤에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길남효였다. 그런 고민에 빠지는 길남효의 모습에 병재는 그의 속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집 바꾸고 싶은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일단 이야기 진행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공장들은 1946년에서 47년에 속속 완공될 것 같습니다. 그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