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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조금 시간이 지나니 노송규의 부부들이 참가해왔다. 노송규는 아이고 힘들다는 표정으로 상 주위에 앉아있는 모두들을 바라본다. 정필중이 노송규에게 피식 웃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어. 왔냐? 수고했다.”
노송규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툭 말을 던진다.
“말꼬라지 하고는. 휴일에 나가서 고생한 사람에게 할 말이냐?”
정필중은 그 말에 오히려 등을 쇼파에 기대면서 정필중에게 말한다.
“그거야 나도 하는 거니까 말이야.”
노송규는 ‘됐다. 됐어’라는 감정으로 정필중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들을 살펴본다. 이 집에서 익숙한 사람들이 눈에 보였지만 역시나 병재 옆에서 예전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길남효와 김민숙이 눈에 띈다.
노송규는 자신과 거의 비슷한 나이인 길남효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구면이었던 노송규입니다.”
그 말에 길남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노송규에게 천천히 말한다.
“아. 그 제 장남의 동료의사들 중 하나인?”
노송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예. 그렇습니다. 오늘은 제가 휴일근무라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늦게 들어왔습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노송규에게 말한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감히 일을 한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노송규는 길남효의 답변에 싱긋 미소를 짓고는 길남효의 옆에 있는 병재를 바라본다. 병재는 막걸리를 홀딱 마시면서 노송규를 반긴다.
“노 형도 오셨습니까?”
노송규는 병재의 물음에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한다.
“쯧. 남의 아비는 격식을 차리는데 반해 자네는 편한가 보군.”
병재는 그 말에 후후후 웃으며 말한다.
“2년 동안 이렇게 지내왔으면서 말투 바꾸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 것도 그렇지. 쯧. 나도 자리에 끼겠네.”
그 말에 정필중이 심드렁히 노송규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그러시던지.”
그 때, 길남효가 정필중을 보고 편하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필중아.”
“예 형님.”
정필중이 고개를 숙이면서 길남효에게 기자 노송규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본다. 언제 이렇게 말을 터놓았지 모르는 일이다. 사실 노송규가 오기 전, 정필중과 길남효가 서로 나이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길남효가 경인년(서력 1890년) 태생이고, 정필중이 을미년(서력 1895년) 태생이므로 이렇게 말을 트게 되었다.
사실 둘 사이에서도 정중한 말투가 오고 갔는데, 병재가 옆에서 말을 트라고 부추기자 길남효와 정필중은 부추김에 서로 말을 트게 되었는데, 결국 길남효가 5년 위인 것으로 밝혀지자 정필중이 얼른 길남효를 형님으로 모셨다.
노송규는 병재가 따라주는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서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이 집 보니까 꽤 상쾌하고 좋은 것 같다.”
정필중이 왠지 이 집을 두리번거리며 부러운 눈치를 하는 길남효를 바라보며 한 마디 툭 던진다.
“후. 형님도 참. 형님 아들 셋이 있는데, 그 아들 셋이 세계에서 쟁쟁하지 않소. 그 중 삼남은 엄청나게 돈을 벌고 있다고 하는데. 별 걱정을 다하십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술에 취한 얼굴을 하고선 딸꾹 거린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마름 밑에서 소작질을 한 인간이야. 내가 해방 전만 하더라도 이런 집은 꿈도 못 꿨어. 오히려 아들놈들 때문에 내가 왜놈들에게 불량선인 죄목으로 잡혀 들어갔어.”
정필중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길남효에게 말한다.
“왜놈들에게 잡혀 들어간 거 나중에 훈장 됩니다. 그거. 적어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소작질은 저도 많이 했습니다. 저 역시 징용 끌려가기 전에 저 녀석과 같이 소작질 한 인간입니다. 모르십니까?”
정필중의 말에서 길남효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정필중의 모습에서 노련한 의사의 모습이 엿보이고, 분위기 역시 만만치 않은데, 소작을 했다니. 길남효는 머릿속에서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정필중이 그런 길남효를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사실 이 내가 의사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것은 형님 옆에 있는 장남에게 배운 것들이오. 이제 연수로 2년이 조금 넘었소. 물론 다른 나라에서나 여기서나 노련한 의사 취급하지만 말이오. 형님 장남이 가르치는 것 하나만큼은 기가 막혀. 사실 병재가 의사 일을 하지 않고, 선생 일을 했어도 대성했을 사람이오.”
길남효는 그 말에 그런가?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그 때, 김강연과 채병호 역시 정필중의 말에 동조하면서 길남효에게 말한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이 형에게 배우는 현역의사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아십니까? 저 거대한 국가인 미국에서도 병재 형님 미국으로 정착시키려고 별 지랄을 다 떨었소.”
채병호 역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길남효에게 한 마디 말한다.
“씨름이나 농사일밖에 할 일 없었던 내가 저 사람에게 배운 것이 수십 수만 가지요. 배운 것 없는 무지렁이였던 내가 다른 곳에서 제발 오십시오 라고 말한 것은 천지입니다. 저 사람은 진짜 대단한 사람입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조금 얼굴이 붉혀 있던 장남 병재를 바라보고 말을 한다.
“그랬냐?”
병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냥 전 같이 탈출하면서 지낸 것뿐입니다. 제가 가르쳐준 것을 잘 받은 것도 저 사람들의 능력입니다. 아버님도 한 번 가르칠까요?”
길남효는 그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병재에게 말한다.
“가르침은 무슨. 그냥 글자나 알려다오. 난 그거로 족하다.”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남효에게 말한다.
“저를 비롯한 병주와 병윤이에게도 말을 해놓을 게요. 아버지 글자 가르쳐주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 고맙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화기애애하면서 시간을 지내고 있을 때, 초인종이 삐이익 하고 울린다. 노송규의 아내 황필혜와 신기숙, 그리고 김민숙은 서로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신기숙은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일어서서 말한다.
“누가 왔나보다.”
황필혜는 앉는 상태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양 손으로 굽힌 무릎을 붙잡는 자세로 시선을 신기숙에게 두고 한 마디 말한다.
“갔다와.”
김민숙 역시 황필혜와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가 신기숙에게 말한다.
“갔다오세요. 언니.”
신기숙은 싱긋 둘에게 미소를 짓고는 현관에 다가가 문에 대고 묻는다.
“누구십니까?”
그 물음에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 예. 전 여기에 오기로 약속했던 병윤이라는 사람입니다.”
“병윤? 아!”
신기숙은 알았다는 표정을 하고, 얼른 현관문의 문고리를 붙잡고, 돌린다. 문이 열리고, 신기숙의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양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었다. 병윤이 고개를 숙이며 신기숙에게 인사한다.
“여기에 제 부모님과 큰 형님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그 치들. 따라오세요.”
신기숙은 병윤과 감연을 현관 안으로 들이고는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그 때, 김민숙이 병윤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어라. 내 셋째 아들이 왔네.”
황필혜가 어머 하는 목소리로 김민숙에게 말한다.
“저 헌칠해보이는 젊은 청년이 자네 셋째 아들이야?”
“예. 언니.”
노송규의 아내 황필혜와 진작 나이를 묻고 서로 호칭관계를 정한 두 사람이었다. 황필혜와 김민숙은 일어서서 현관에 들어온 두 사람을 맞이한다. 그 때, 병윤이 김민숙을 알아보고 한 마디 한다.
“어머니도 여기 계셨네요. 어때요?”
김민숙은 잘난 제 셋째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다들 여기에 있어. 그런데 옆에는 감연이구나.”
감연은 조금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김민숙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얼떨결에 저 녀석 따라온 감연입니다.”
김민숙은 감연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나도 초대받은 처지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너와 병윤이랑은 항상 같이 다니는 구나.”
감연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고는 김민숙에게 말한다.
“저 녀석과 관계는 징글징글하지만요.”
“끄응. 어련하시겠어.”
병윤은 김민숙과 감연의 대화를 듣고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어머니 셋과 재잘거리며 대화를 하는 병윤과 감연은 곧 거실에 당도해서 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정필중은 두 청년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김강연에게 말한다.
“너랑 비슷한 연배인 두 사람인 것 같은데.”
김강연은 조금 어색하다는 얼굴로 정필중에게 대답한다.
“저 중 한 사람이 병재 형님의 친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끄응 모습들을 보니까 역시 만만치가 않네요. 병재 형님 같은 존재들이 또 있다니.”
정필중이 그 말에 한숨을 쉬면서 김강연에게 말한다.
“그러게 말이야. 길 형님의 아들 셋 다 성공했다고 들었는데. 삼남이 그 동협그룹의 회장이라고 하더라.”
“아. 동협그룹이라고 한다면 태양 전지를 만드는?”
“그래.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단해. 나도 아들들이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못 키울 것 같은데 말이야.”
김강연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정필중에게 한 마디 말한다.
“어차피 저 사람들은 너무 높이 올라갔으니 원. 저희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쫓아갈 수가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정필중이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김강연에게 한 마디 말한다.
“부럽다. 처다 보지 말고, 우리들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처지를 보면 부러워서 욕을 할 거다. 그런데 사실 길 형님의 아들 길렀던 솜씨가 부럽기는 해. 아니 한반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일걸.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세 아들을 길렀으니 오죽 하겠냐고? 그 세 아들 덕택에 형님 감옥 간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말이야.”
“예. 그렇지요.”
그러면서 정필중과 김강연은 조용히 병윤과 감연이 병재와 길남효가 서로 대화하는 모습들을 바라본다. 길남효가 먼저 병윤을 바라보고 한 마디 말한다.
“병윤아.”
“예. 아버지.”
“집을 하나 지어주면 안 되겠어?”
아버지 길남효의 말에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는 병윤이 길남효에게 말한다.
“저번에 집을 다시 짓겠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때는 그 때이고, 생가였던 우리 집을 허물고, 기와집으로 번뜻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병윤은 길남효의 간절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아버지가 원하시면 당연히 해드려야죠.”
“고맙다. 병윤아.”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길남효에게 말한다.
“뭘요. 제가 부모님께 불효한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역시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일인데 말이에요.”
그 때, 병재가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이번에 동협그룹 직원들을 위해 대단지 주택을 만들 생각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병윤은 그 물음에 간단하게 답해준다.
“예. 원래 구상했던 것이 총 층수 40층, 그리고 3층은 상점으로 입주하는 주상복합식 건물이에요. 1층 당 가구의 수는 40평짜리 10개니까 한 건물 당 가구의 총 수는 총 370가구, 그 건물이 40개 지어지니까 148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네요.”
병재는 병윤의 대답에 입이 벌어지면서 묻는다.
“그렇게 많이 산다는 말이냐? 한 가구당 4명이 살면 1480명을 수용할 수 있겠네. 허참. 건축기술이 그렇게 발달되었나? 그런데 그런 것을 짓다가는 돈이 남아돌지 않겠는데. 괜찮겠어?”
병윤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병재에게 대답한다.
“어차피 지어봤자 6개월 정도 걸리나? 아마 그럴걸요. 전기는 태양광으로 사용하고, 물은 관수회사와 계약해서 쓰니까 아무래도 본전을 뽑고도 남을 걸요. 일용자의 월급이 한 500원 정도 되고 기술자는 1000원이니까, 한 채 짓는데 기술자 및 일용자들을 합해서 400명이니까 인건비가 135만원이 들고, 각종 비용까지 합하면 150만원이네요. 거기다 한 가구당 가격 원가가 거의 4천원 집주인의 권리는 대략 만 원정도 잡으면 되겠네요.”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끄응. 그러면 거기에 들어간 돈은 대략 6000만원이 들어가겠네. 허참 노동자 기숙사들을 그렇게 돈을 투자하는 녀석들은 너밖에 없다.”
병윤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한다.
“그러면서 돈을 버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의 복지를 잡고 말이죠. 아마 월급 500원을 받는 일용자가 자신이 입주한 집의 주인이 되려면 한 달에 100원씩만 납부해도 8년하고도 4개월이면 집주인이 되겠네요.”
“그렇게 되면 본전치기나 다름없네. 8년하고도 4개월이라.”
병윤은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어차피 인건비 관련해서는 더 떨어질 수도 있죠. 지금은 400명으로 그 주상복합건물 한 채 짓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400명이 300명, 200명 줄어들 수 있어요.”
“그래.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들은 발전하니까.”
김강연과 정필중은 병재와 병윤의 대화를 들으면서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끄응. 동협그룹이 근로자들을 위한 저택을 짓는데 6000만원이나 들다니. 허참. 규모 하나는 어마어마하네.”
정필중은 김강연의 감탄아닌 감탄에 한 마디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정말 엄청나게 돈을 잡아먹는군. 그런데 6개월에 건물 한 채면 허. 거기도 그 건물을 하나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40여개를 만들다니. 이거 참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내가 여기서 버는 돈이 월로 대략 50000원 정도이니까 100년은 일해야 하는군. 엄청 어마어마하네.”
“끄응. 그런 돈을 통 크게 쓰는 사람은 정말이지.”
정필중과 김강연은 부러운 표정으로 저렇게 대단지 주택을 만드는 병윤의 계획에 얼이 빠진다. 그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거기에 병재와 길남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감연은 병윤의 그 허무맹랑한 건설계획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 작품 후기 ============================
제가 건알못인데 병윤이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인가요? 그냥 자료 수집하지 않고, 막 지어서 말했는데 말이에요.
많은 지적들을 예상하고 올립니다. 얼른 댓글들을 달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