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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6년 1월 1일, 새해가 되었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해방되고 나서 첫 해를 맞지만 새해를 기뻐함과 동시에 불타오르는 활화산이 되었다. 신탁통치의 반대라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성역, 양복과 중절모를 쓴 길남효는 영 어색한 눈빛이었다. 옆에 있는 병재와 병윤은 길남효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짓는다. 그들 옆에는 경호원들이 몇 명 있었다. 병윤이 아버지 길남효를 바라보며 말한다.
“여기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찾아간다고요?”
길남효는 그 물음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감옥에 있었을 때, 같이 지냈던 사람이다. 간간이 편지로 주고받았지. 너도 알 거다. 김절평이라고 말이지.”
병재와 병윤은 당연히 아는지 길남효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세 부자와 경호원들은 서서히 경성역 바깥으로 걷는다. 경성역 벽에서도 신탁통치 반대라는 표어들이 붙여 있었다. 그러나 경성역을 오고 가는 행인들은 그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갈 길을 간다.
세 부자와 경호원들이 경성역 건물 밖으로 나갈 때,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병윤의 친한 친우인 감연, 그리고 먼저 경성의학전문학교로 파견 간 정필중 외 일행들이 반겼다.
감연은 병윤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그에게 다가가 가슴을 툭툭 친다.
“잘 지냈냐? 친구 녀석 인천 조병창에 팔아먹고 말이야.”
병윤은 그 말에 오히려 키득 웃으며 대답한다.
“어. 네가 없으니 문경은 잘 돌아가는 것 같다. 너무 잘 먹고 잘 지내서 내 얼굴을 봐라. 어떠냐?”
“웬수같은 자식.”
그렇게 병윤과 감연은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병재 역시 자신을 맞이하러 온 정필중과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병원은 잘 돌아가는가?”
“잘 돌아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정 형의 빈자리가 큽니다.”
“쯧. 자네는 나 없어도 상관없잖아. 그래. 문경의 소식은 들었는데. 보험과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정필중의 말에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시렌 사무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병원 전속 변호사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일단 시범적으로 운영할 방침입니다.”
“그래. 사실 여기서도 자네의 명성은 대단하네. 그리고 백병원 및 내가 파견 간 학교에서도 그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가 돌아서 그렇다네.”
“그렇습니까? 하여튼 그렇군요.”
그 때, 정필중 옆에 있던 학생들 중 하나가 병재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길 선생님.”
자신에게 인사를 한 학생에게 병재는 시선을 돌린다. 정필중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사를 한 학생을 소개시켜준다.
“자 여기는 학생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설두연 군이야.”
병재는 설두연이라는 학생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리고 다시 정필중에게 시선을 돌려서 말한다.
“경성의학전문학교는 어떻습니까? 정 형.”
정필중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뭐. 문경의 재생치료병원보다 크다고 할 뿐. 똑같아. 다만 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환자들까지 치료를 해야 하니까 자네가 우리에게 한 행동들을 잘 알겠더군.”
“후후.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병재는 설두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설두연 군이라고 하셨습니까?”
설두연이라는 사람은 병재가 말을 걸자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의학의 선구자를 보아서 감격스럽습니다.”
선구자라는 말에 병재는 후후 웃는다. 그 때, 설두연이 병재를 바라보더니 이내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 재생치료라는 것을 정 교수님을 통해서 보았지만 정말 대단했습니다. 팔이 잘려진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재생치료를 발견한 선구자가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립니다.”
“......”
“원래 선생님이 경성에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 교수님만큼 능력 있는 교수님이 오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필중은 설구연의 말에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인다. 병재는 정필중을 바라보며 잘 되었다는 시선을 둔다.
“그리고 그 정필중 교수님을 가르치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와서 한 번이라도 강의하면 안 되겠습니까?”
병재는 그 말에 어렵다는 시선으로 설두연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일단 경성에 간 것은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것입니다. 그래도 학생 여러분들이 청하니 언제 날짜를 잡아서 한 번 강의하러 가겠습니다.”
그 말에 학생들은 우와 하는 환호성을 내비친다. 정필중은 그 학생들을 바라보고는 투덜거린다.
“쳇. 자네가 오니까 난 찬 밥 신세군.”
병재는 그 말에 키득 웃으며 정필중에게 말한다.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그래. 그래야지. 자네가 경성에 온 특별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 박사를 찾으러 온 건가?”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정필중은 그 모습에 자신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재에게 말한다.
“그래. 이 박사님을 만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로 한 번 방문하게나.”
정필중의 말에 병재는 ‘끄응’ 침음성을 흘린다.
한편, 양복을 입은 길남효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본다. 길남효는 서대문 형무소의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키야. 형님은 언제 봐도 젊어 보이십니다.”
김절평이 그렇게 아부하자 길남효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하하. 얼굴을 보니까 잘 지낸 것 같군. 요즘은 도둑질을 하고 다니나?”
그 말에 김절평은 손사래를 치고는 말한다.
“그런 일은 더 이상 안 합니다. 그 것보다 저는 그 감옥에 갇혔던 두봉영 아시죠? 그 녀석 소개를 받아서 우미관의 반규영 형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절평의 말에 길남효는 아 그렇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뭐 반규영 형님도 형님은 물론 형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기야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이들을 꼽으라면 많겠지만 의사라면 길병재, 사업가라면 길병윤을 꼽을 수 있으니 말이죠.”
그 말에 길남효는 에휴 한숨을 쉬고는 김절평에게 말한다.
“그런데 죽산이 안 보이는데 어디로 갔나?”
김절평은 그 물음에 조금 얼굴을 찡그리고는 대답한다.
“그 사람은 되도록 찾아가보지 않는 것이 그와 형님에게 이롭습니다.”
김절평의 말에 길남효는 의아한 표정으로 김절평을 바라보자 김절평이 한 가지 알려준다.
“그 죽산이라는 사람 완전히 빨갱이가 되어서 괜히 그 사람과 만났다가는 형님 평판만 떨어뜨리고, 저기 두 사람의 앞날에 해가 끼칠까봐 그렇습니다.”
김절평의 설명에 길남효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때, 병재와 병윤이 길남효의 옆으로 가더니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여기에 계셨군요. 아버지.”
길남효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둘을 발견하자 그 둘에게 김절평을 소개시켜 주면서 말한다.
“인사해라. 이 쪽은 나와 같이 감옥에서 나를 돌봐준 사람이다.”
그 말에 병재와 병윤이 김절평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아버지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절평은 유명한 두 사람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자 조금 얼떨떨한 얼굴을 짓는다. 그리고는 길남효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휴우. 형님. 정말이지. 장성한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내 아들 셋 때문에 잘 사는 것 같아.”
“그런데 형님은 단순히 저를 만나러 경성에 온 것 같지 않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그 유명한 아들들과 같이 경성에 찾았답니까?”
“자네 만나러 찾아온 것 맞아. 내가 경성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사람들 밖에 더 있겠는가?”
길남효는 그렇게 말하자 김절평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조금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때, 길남효가 병재와 병윤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난 이 친우와 함께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너희들은 할 일을 했으면 좋겠구나.”
그 말에 병재와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살펴 가십시오. 아버지.”
“경호원을 붙여 주겠습니다. 아버지.”
길남효는 병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병윤의 눈치를 받은 사람 두 사람이 길남효를 호위하러 나선다. 바로 트렌치코트를 입은 고씨 남매가 길남효의 경호를 위해 나선 것이다. 병윤은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아버지의 호위에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고경열이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희들을 살펴주신 은혜로운 분인데. 어찌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고경열이 그렇게 말하자 병윤은 싱긋 웃는다. 그렇게 고경열과 고희수 두 남매가 길남효의 뒤에서 호위를 한다.
그렇게 길남효는 고씨 남매를 경호원으로 두고, 김절평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제 갈 길을 간다. 병재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선 미소를 지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아버지가 경성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저 사람이었네. 그런데 그 고씨 남매를 경호원으로 두다니 의외인데?”
병윤은 그 말에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병재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고씨 남매의 솜씨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뭣 모르는 병신들이 아버지를 노리다가는 그 놈들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가 말하는 고씨 남매라면 필시 그러겠지. 우선 우리들 역시 할 일을 하러 가봐야겠네.”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재에게 말한다.
“그럼 약속한 시간에 조선호텔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아버지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갈 것이니 너도 시간을 맞췄으면 한다.”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세 부자는 각자 목적을 위해 찢어졌다. 병윤과 감연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차량에 탑승한다. 차량의 뒷좌석에 등을 기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피식 웃더니 이내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래. 인천 부평에 있는 조병창은 어때?”
감연은 그 물음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한다.
“흥. 별 거 없다. 그저 무기를 생산하는 기계가 덜렁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 기계 역시 조악해서 빨리 기계공장이 완공되고 기계를 이 쪽으로 보내줬으면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주는 것은 좋은데. 나 다시 문경으로 가면 안 될까?”
그 말에 병윤은 휘파람을 불면서 감연에게 말한다.
“글쎄다. 철기 아저씨가 순순히 너를 문경으로 보낼까 싶은데?”
감연은 이범석을 생각하자 얼굴이 자동적으로 구겨지고는 이내 병윤의 멱살을 잡더니 흔들어댄다.
“야 이 자식아! 나를 왜 그 곳으로 보냈냐?! 제길. 나도 집, 직장, 집, 직장 가고 싶단 말이야. 네가 내 늙은 아버지 책임질래?”
병윤은 자신의 멱살을 잡은 감연의 손을 치우고는 단답한다.
“흥. 네 아버지는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네가 문경으로 가봤자 결혼하게 될 거다. 그래도 좋겠냐?”
“뭐? 결혼? 그건 무슨 소리야?!”
감연은 깜짝 놀라 병윤에게 외쳤고, 병윤은 귀를 후비면서 간단하게 대답한다.
“너나 나나 나이가 몇이냐? 이제 21살이야. 그런데 아직도 노총각이라고 마을사람들이 뭐라고 하고, 또 네 아버지가 혼처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감연은 병윤의 말에 ‘끄응’ 침음성을 흘린다. 감연은 갑작스러운 결혼이라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진다. 그 것도 사귀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정한 혼처에 강제로 결혼이라고 생각하니. 병윤은 그런 감연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알겠냐?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을 해주고 있는지?”
당당한 병윤의 말에 감연은 순간 얼굴을 구기며 외친다.
“지랄한다. 이 자식아! 네가 그렇게 배려가 넘치는 놈이라는 것에 하늘이 벼락을 떨어뜨리겠다.”
“이 자식은 배려해주는 것도 의심하는 녀석일세.”
그렇게 병윤과 감연은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앞좌석에 앉은 경호원과 운전기사는 피식 웃으며 또 시작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차량은 중앙청으로 향한다.
전 조선총독부, 현재는 중앙청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차량이 도착했다. 중앙청에 경비를 서고 있던 광복군 병사와 중국군 병사가 이 곳으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당연히 병윤과 감연을 태운 차량은 검문에 통과하고도 남았고, 차량은 중앙청에 마련된 주차장에 내렸다.
그리고 감연과 병윤은 차량에 내려 서로 대화하면서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건물 안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 때, 한 양복을 입은 이가 감연과 병윤을 발견하고는 말을 건다.
“혹시 이 곳에 초청받은 사람이 두 분입니까?”
그 말에 감연과 병윤은 자신들에게 말을 걸은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병윤과 감연은 그 사람의 얼굴이 익숙한 것을 기억한다.
“아.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병윤과 감연에게 말을 건 이는 바로 김구의 비서 선우진이었다. 선우진은 병윤과 감연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한다.
“선생님께 두 분을 안내해드리고자 합니다. 어떻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 오십시오.”
병윤과 감연, 그리고 그 둘을 보호하는 경호원들은 곧 발걸음을 옮기는 선우진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복도를 따라 걸어가던 선우진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어디 방의 문 앞이었다. 선우진은 문에 똑똑 문을 두들기고는 말한다.
“선생님. 말씀하신 두 사람을 데리러 왔습니다.”
선우진의 말에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어온다.
“들어오게나.”
그 말에 선우진은 곧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비켜 병윤과 감연을 안으로 들이고자 했고, 경호원들은 문 밖에서 대기를 했다. 병윤과 감연은 방 안 분위기를 살펴본다. 임시정부 청사에서 봤던 김구의 서재와 비슷했다. 병윤과 감연은 자리에 앉은 백범 김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잘 지냈습니까? 각하.”
김구는 병윤과 감연을 바라보고는 씁쓸한 얼굴을 하고는 말한다.
“각하는 무슨 각하. 각하라는 호칭은 예전부터 지웠어. 그냥 나를 한독당 당수라고 부르게나.”
============================ 작품 후기 ============================
새해를 맞아 경성에 찾아온 세 부자이네요.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우선적으로 대한민국 정통정부는 아무래도 1948년에 설립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