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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길씨 가족의 집의 마당, 병윤의 앞에는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옛날 신여성 그대로의 모습이 보이는 여성이었다. 매번 이 집안의 여성들이 입는 한복 대신에 서구적인 옷을 입은 여성은 한 눈에 봐도 부유해 보이는 그런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마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처럼 기품이 있어 보였다. 즉 한 마디로 겉보기에는 자기 주도적이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보인다. 거기다 외모 역시 나쁘지 않았다. 뭇 여자 생각나는 남성들이라면 이런 여성과 한 번 연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드는 미모였다.
그러나 병윤은 그런 여성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반문한다.
“아니. 그러니까 왜 저랑 결혼해야 합니까?”
젊은 여성은 그 물음에 조금씩 당황하더니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그 때, 집 안에서 길남효와 김민숙이 나타나더니 젊은 여성을 발견하고는 병윤에게 묻는다.
“바깥에서 무슨 소란이야? 그리고 이 여성은 누구고?”
병윤은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길남효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니. 아버지. 저 몰래 정략결혼한 것은 아니죠?”
길남효는 병윤의 물음에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답한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언제 네 말을 안 들어준 적이 있는가?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젊은 처자는 누구이고?”
길남효의 그 말에 병윤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낸다. 자신의 아버지의 반응을 볼 때, 길남효는 이런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 집 안에는 병윤과 길남효, 김민숙이 남아 있었고, 그 외 가족들은 할 일을 하러갔다. 우선 큰형 병재의 경우는 효혜, 효순과 같이 저번에 구상했던 여성단체의 창설에 나섰고, 작은 형 병주는 여전히 문경에 위치한 군부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산단 확장으로 인해서 일들이 바쁘다고 한다. 광복군 내부의 말들을 들어보면 아마 3개월 뒤에 문경에 하나의 사단이 창설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단장의 취임은 병주가 맡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형제자매들이 일을 하러 나가고, 오늘은 병윤 혼자 쉬는 날이라서 집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데. 저 젊은 처자가 갑작스럽게 집으로 찾아오더니 하는 소리가 당신이 제 서방이냐는 소리였다.
길남효는 조금 황당한 눈빛으로 젊은 처자를 쳐다 보더니 말한다.
“아가씨. 주소를 잘못 찾아온 것 아니오?”
젊은 여성은 그 말에 우물쭈물 대기 시작한다. 저들의 반응을 보니,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 때, 젊은 여성의 뒤에서 한 중년 남성이 걸어오더니 그 젊은 여성에게 말한다.
“이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가 그 길남효 씨의 저택이 아니오?”
길남효는 중년 남성의 물음에 얼떨결에 대답한다.
“제가 길남효이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 삼남과 결혼이라니 잘못 찾아왔소.”
중년 남성은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이내 길남효에게 말한다.
“으음. 조금 설명이 필요한 것 같군요.”
중년 남성이 진지한 얼굴로 길남효에게 말하자 사태 파악이 안 된 길남효와 김민숙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길남효는 중년 남성에게 나직하게 말한다.
“방으로 들어오시오.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겠소.”
중년 남성은 그 말에 잠시 말을 말다가 이내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성에게 톡톡 하면서 작게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 돌아가는 것 같다. 저들은 모르고 있어. 이 일을.”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에게 조금 울먹이며 말한다.
“어떻게 되는 거죠? 저는? 여기가 혼처라고 들었는데.”
“이 애비가 한 번 알아보겠다. 에휴. 네 혼인상대가 그 유명한 동협 그룹의 회장이라고 들었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어.”
젊은 여성은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아버지인 중년 남성만을 믿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병윤은 그런 부녀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황당한 표정을 유지한 채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길남효의 방 안에는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중년 남성은 길남효의 집 안을 살펴보니까 으음 거리면서 뭔가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길남효는 그런 중년남성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귀한 딸을 데리고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그 물음에 중년 남성은 집을 둘러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고 대답한다.
“일단 우리들부터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설편현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제 딸 설주희라고 하고요. 저는 제 아버지에게 가문끼리 정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곳으로 제 딸을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제 딸의 혼인상대가 그 유명한 동협 그룹의 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길병윤 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집을 바라보니 제가 주소를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설편현에게 말한다.
“가문끼리 허락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요?”
“그. 충청도 금산의 길함주 씨의 아들 되시지 않습니까?”
길함주 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길남효는 얼굴을 팍 찡그린다. 그리고 이빨을 뿌드득 갈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저번에 찾아온 본가의 두 사람이 찾아온 것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아들들을 노린다는 병윤의 말이 확 생각났다.
“그런 가문과 난 연을 끊었소! 그 쓰레기들이 감히!”
설편현은 길남효의 반응을 보니 상당히 일이 잘못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그 때, 김민숙이 길남효의 등을 토닥거리며 진정시킨다.
“손님들이 제대로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조금 진정하세요.”
길남효는 그 말에 끄응 앓는 소리를 하더니 간신히 마음속을 진정시킨다. 그 때, 병윤이 설편현과 설주희를 바라보더니 조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일단 주소는 맞는 것 같은데. 아마 당신들은 속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편현은 병윤의 그 말에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병윤에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런데 내 눈앞에 있는 자네가 그 동협 그룹의 회장인 길병윤 군인가? 매번 신문이나 TV에서 보는 그 얼굴과 상당히 똑같군.”
병윤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설편현에게 말한다.
“정 못미더우시면 명함이라도 드릴까요?”
설편현은 그 말에 비로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청년이 그 동협 그룹의 회장 길병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병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를 보니까 역시 여러 기업체들을 운영하는 회장다웠다. 길남효는 설편현을 바라보며 외친다.
“그 썩을 가문의 이야기를 듣고 여기를 찾아온 것이라면 안타깝게 되었소. 이런 일에 당신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은데. 휴우. 미안하게 됐소.”
설편현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길남효에게 말한다.
“끄응. 그런데 이렇게 나가게 된다면 제 딸이 상대방 집안에서 쫓겨났다는 소리가 나올까봐 걱정입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더더욱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한다.
“잘못 저지른 본가에게 따지시오. 난 모르는 일이외다.”
“......”
설주희는 그 말에 울상이 되었고, 설편현은 할 말이 없다는 듯 크게 한숨을 쉰다. 병윤 역시 당연하다는 얼굴이었고, 유일하게 김민숙만이 안절부절이었다. 병윤은 두 부녀를 바라보며 한 가지 말한다.
“아무래도 제가 그 본가와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표해야 되겠군요. 이래야 이런 어이없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죠.”
설편현은 그 말에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한다. 설주희는 설편현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아버지 저 어떻게 되는 거죠?”
“기다려봐라. 이 아비가 멋진 신랑감을 가져다 줄테니까. 그런데 이 집을 살펴보니 네 할아버지가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여긴 아무래도 그 상대방의 가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인 것 같다. 휴우.”
병윤은 그 말에 생각에 잠기면서 속으로 말한다.
‘상관이라. 옛날에 상관은 있었어도 연은 끊긴 지 오래. 그러나 저 쪽에서 이렇게 행동한다면 우리 가족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겠다.’
결국 설편현과 설주희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집에서 떠난다. 그리고 길남효는 분을 삭인 표정을 하며 병윤에게 큰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런 어이없는 사태가 일어나더니 그 놈들을 그냥!”
아마 길남효의 앞에 그 모든 일을 저지른 본가의 사람들이 있다면 낫을 들고, 해칠지 모를 정도로 길남효는 분노했다. 김민숙이 조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길남효를 쳐다보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이 참에 그 여자와 결혼하면 좋았을 것을.”
병윤은 그 말에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니. 그 여자와 왜 결혼합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솔직히 짝을 이어서 결혼했습니까? 그저 좋아서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김민숙은 그 말에 한숨을 쉬면서 병윤에게 타박한다.
“내 결혼할 때의 나이가 몇 인지 아느냐? 그 때가 15살 이었다. 한창 어릴 시적의 일이었다. 물론 내 지아비의 나이가 25살이었지만 지금 너를 봐라. 네 친구들 다 결혼을 했다. 대표적으로 연형칠도 결혼했어. 지금 나의 바람은 손주를 보는 것인데. 이리도 어머니 속을 썩이느냐? 아까 온 여자도 상당히 기품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러다 30대 40대 되어서 결혼할 거냐?!”
병윤은 그 말에 끄응 앓는 소리를 하더니 이내 씩 씩 거리면서 방 밖으로 나간다. 김민숙은 그런 병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쯧쯧 거리고 말한다.
“에효. 이러다 대가 끊길지 모르겠네.”
길남효는 그 말에 김민숙에게 버럭 소리 지른다.
“아. 내 아이들에게 결혼하라고 타박 주지마. 저 녀석들이 다른 일로 제 부모들을 속 썩인 경우가 있어? 지금 병재도 외국 처자라고 하지만 곧 결혼한다고 하지 않겠어? 내 자식들의 결혼에 조급해 하지마. 시간 되면 다 결혼하게 되어 있어.”
김민숙은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길남효에게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둔다. 하기야 자기 부모들 속은커녕 너무 잘 되어서 걱정일 정도이다. 큰 아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의사, 둘째 아들은 사단장을 노리는 고위 장교, 셋째 아들은 한반도는 물론 중국, 세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기업집단의 회장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다른 부모가 그런 아들들을 두었다면 행복에 눈 겨워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김민숙은 여전히 자신의 아들들의 결혼이 걱정이기는 했다. 아마 그녀는 병주와 병윤이 여전히 노총각으로 지낼지 걱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병재, 병주, 효순, 그리고 그냥 도시로 가고 싶어서 제 오빠, 언니를 따라간 효혜가 집에 돌아왔고, 길남효와 김민숙에게 오늘 있었던 황당한 일을 들었다.
병재와 병주는 그 일들에 대해서 듣자마자 얼굴부터 찡그렸고, 효순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병재는 길남효에게 말한다.
“그 본가라는 곳 우리 가족들에게 상당한 민폐를 끼치는 군요. 아버지가 왜 그 가문을 싫어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래. 내가 역겨워서 가문이 있는 방향에 오줌도 누지 않는 곳이지. 그런데 그들이 이런 어이없는 일을 꾸밀 줄은 몰랐다. 개자식들. 나를 종으로 부리고, 내 어머니를 그 지경으로 만든 자식들이 이런 미친 짓거리를 꾸밀 줄은 몰랐다.”
그 때, 병주가 길남효를 쳐다보며 한 마디 말한다.
“아마. 그대로 계속 있는 다면 병윤만 이런 경우를 겪지만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아마 그들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아예 그들의 본가에 찾아가서 확실히 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희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들의 장단에 놀아야 합니까? 우리는 저번의 소작농 가문이 아닙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주에게 말한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이번 참에 저 쪽에 확실히 해야겠다. 한 번 너희들이 힘을 써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런 어이없는 수작을 부린다면 우리 역시 참지 않고 나서는 것이 좋겠지.”
병재, 병주, 병윤은 그 말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김민숙이 길남효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여보와 아들들만 갈 거요?”
길남효는 그 말에 잠시 찡그리다가 이내 김민숙에게 말한다.
“왜? 그딴 곳에 가고 싶어?”
“아니... 그냥. 여보가 태어난 곳을 한 번 구경하고 싶어서.”
“속 편한 소리를 하는군. 어디 놀러가는 줄 아는가?”
“......”
길남효는 그렇게 김민숙에게 둔 시선을 다시 자신의 아들들에게 돌린 뒤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언제 찾아가는 것이 좋겠나?”
병재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좋은 날을 떠올린다.
“모레가 마침 설날입니다. 아마 그 때가 제 형제들이 쉴 수 있는 날들입니다. 즉 그 때 찾아가는 것이 좋겠죠. 거기다 설이니 그 쪽 본가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을 것이고 딱입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조금 놀라워하며 병재에게 말한다.
“허. 모레가 설인가? 하기야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음력 설날에 대한 금기가 풀려 있을 것이 분명하니 상관이 없겠군.”
해방 전만 하더라도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음력설을 지내는 것을 금지했다. 설을 계기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음력설이 조선인의 관습, 즉 민족풍습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일제가 물러났으니 이제는 설날을 지내는 것에 대해서 제한이 없었다.
병윤이 운영하는 동협 그룹의 경우, 아예 음력 설날을 쉬는 날로 규정해놓았다. 그리고 병재는 시렌 사무소장의 협의를 통해 음력 설날을 조선인들의 민족풍습이라는 이유로 쉬는 날로 지정했다. 물론 그 쉬는 기간 동안 쌓일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했지만 말이다. 병주 역시 광복군 상층부에게 음력 설날에 대해서 전 병력 쉬기로 명이 내려 있었다.
즉 설날이 형제들에게 있어서 운신의 폭이 자유로운 날이었다. 길남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아들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휴우. 원래 설날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세배도 줘야할 지언데. 오히려 그 본가를 찾아오게 되었으니. 하여튼 이런 일을 꾸민 것에 대해서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다.”
결국 모레 설날에 본가로 찾아가기로 집 안의 가족들 전원 합의했다.
1946년 1월 31일, 설을 이틀 앞둔 날, 길남효는 방 안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바로 예전 마름이었던 방씨였다. 길남효는 조금 당당한 태도로 방씨를 바라본다. 물론 방씨 역시 자기 처지를 알고 있기에 길남효에게 무례하다느니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현재 사현리의 촌장을 맡은 이는 방씨였다. 방씨는 간씨 집안에게 마름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이 마을의 촌장까지 맡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을의 주도권은 이미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길남효에게 있었다. 이미 마을은 길남효의 아들들에게 혜택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마을의 수도꼭지와 가로등, 그리고 후에 운행될 노면전차가 이 곳을 지나게 만든 것이 저 길남효의 셋째 아들 병윤이 행한 일이었다. 그래서 방씨는 예전 해방 전처럼 길남효를 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방씨는 비굴하게 굴지는 않았다. 대등한 관계로 길남효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내 사위의 일에 대해서 도와준 것은 고맙네.”
방씨가 아무래도 길남효보다 나이가 윗줄이니 자연적으로 길남효에게 하대가 나왔다. 길남효는 당당한 태도로 방씨에게 말한다.
“제 셋째 아들의 친구가 도전해보고 싶다고 하니. 병윤이는 그 일에 대해 거들 뿐입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래. 그래도 상당히 고마워. 요즘 농지 개혁 어쩌구저쩌구 하는 바람에 마름의 지위가 위태하거든. 이렇게 내 집안은 물론 내 사위의 집안에 살 길을 열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 그런데 내일 설에는 어떻게 할 건가?”
그 말에 길남효는 분노 가득한 얼굴을 하며 방씨에게 말한다.
“그 때는 마을에 몸을 붙이기가 어렵겠습니다.”
“무슨 일 있는가?”
“아무래도 제 본가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 있어서 제 가족들을 이끌고 한 번 그 쪽으로 따져야겠습니다.”
방씨는 그 말에 조금 염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그래. 하기야 자네는 그 쪽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지. 옛말에 집안이 빈한하면 친구가 돌아서고, 집안이 부유하면 먼 친척들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지. 자네의 경우가 그 경우이군. 그래. 알았네. 그럼 자네의 가족들은 마을 축제에서 불참하게 되는 것이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 가족 역시 축제에 참가해야 하는데. 사정이 생겼습니다. 대신 제 셋째 아들놈에게 말하겠습니다.”
방씨는 그 말에 조금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길남효를 바라본다.
============================ 작품 후기 ============================
결국 설에 길남효의 가족들이 본가에 레이드를 뛰게 생겼네요.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그 마름이 촌장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습니까? 일단 제가 방씨의 설정을 그렇게 잡았는데. 고증에 맞나요? 댓글로 한 번 대답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