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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6년 7월 3일, 경상북도 대구 인근에 위치한 구미군에 있는 한 집안에는 최주호와 군복을 벗은 최주평이 서로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그게 사실입니까? 그 좌우합작조직에 형님과 형님의 동료들을 초대한답니까?”
최주평의 물음에 최주호는 아직 결심을 내리지 않았는지 상당히 고심한 표정이었다. 최주호는 휴우 한숨을 쉬면서 최주평에게 한 가지 물었다.
“요즘 군 생활은 어떠냐?”
“지금 제 군 생활이 중요합니까? 지금 이 집안의 기둥은 형님이 아닙니까? 형님의 일이 곧 집안의 일입니다.”
“......”
“형님. 뭐 이렇게 고심하시고 그렇습니까?”
“좌우합작 위원회에 들어간다고 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최주평은 최주호의 우유부단함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한 마디 말한다.
“아니. 이건 기회입니다. 적어도 형님의 위상이 그 경성의 노인네들에게 들렸다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방이 되었으니 우리 집안도 한반도 정국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 소리를 하는 거냐?!”
최주호가 최주평에게 역정을 냈지만 최주평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최주호에게 할 말을 다 한다.
“물론 저는 형님께 조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기회가 여러 번 찾아오지만 그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형님의 뜻을 펼칠 좋은 기회이지 않습니까?”
최주호는 자신의 동생 최주평의 말 한 마디에 어렵다는 얼굴을 짓는다. 그러나 최주평의 말이 사실일지 몰랐다. 그렇게 최주호는 생각을 하다가 최주평에게 한 마디 말한다.
“요즘 네 의동생과는 어떻게 지내냐?”
“병주 말입니까?”
“그래. 그 길씨 형제들 말이야.”
최주평은 그 말에 복잡한 눈빛과 얼굴을 짓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최주호는 그런 최주평의 얼굴을 보고서는 한 마디 말한다.
“얼씨구. 기회, 기회 거리던 녀석이 이번에 자존심 때문인지 입을 열지 않는 것이냐?”
“형님! 병주와의 관계를 매도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왜 말을 못하는 거냐? 하지만 그게 사람으로써 당연한 감정이다.”
“예에? 형님 그게...”
최주평은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을 짓더니 눈동자를 굴린다. 최주호는 휴우 한숨을 쉬면서 최주평에게 한 마디 말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길씨 일가에 대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지.”
“......”
“사람은 항시 변하는 동물이다. 평생 빚을 지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귀족같이 역전하는 것이 당연한 삶이야.”
“으음. 그건...”
“주평아. 포기하지 마라. 적어도 너는 선택을 했고, 기회를 얻었다.”
“......”
“일단 나 역시 선택을 해야겠지.”
최주호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짓는다. 최주호가 느끼기에도 최주평에게 한 말이 자신에게 말한 말 같았다. 최주평은 그런 최주호의 말을 무언가 느끼는 듯 했다. 그러다가 최주호는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초대는 받아봐야지.”
최주평은 그 말에 잘 선택하였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최주호에게 말한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형님.”
“일단 시세를 살펴보고, 행동하는 것이 늦지 않아.”
최주평은 당연하다는 얼굴을 짓는다. 그러다가 최주호가 최주평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나저나 그 병주라는 친구는 열심히 활동을 하는 구나.”
“으음. 그건...”
“이해한다. 그 친구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여 능력을 증명했지. 너도 그런 기회가 올 것이다. 너는 그나마 가장 좋은 끈을 얻지 않았는가?”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주평은 상당히 복잡한 얼굴을 짓지만 최주호는 흠 하면서 결국 이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내기로 한다.
“좋아. 일단 내 동지들이랑 같이 서울로 상경해야겠지. 한 번 그 어른들도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
최주평은 대답대신 그저 자신의 우상인 최주호를 바라볼 뿐이다.
같은 시기, 전남 목포에서 유력자로 볼 수 있는 저택 안에서는 한 사람의 청년과 한 사람의 숙녀, 그리고 그 둘을 엄숙히 바라보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김필휴, 그리고 숙녀의 이름은 차지윤이었고, 그 둘은 부부 사이였다. 차지윤의 아버지이자 김필휴의 장인이기도 한 한민당 목포지부장 차영환은 이 곳 목포에서 거대한 인쇄소를 운영하는 목포의 재력가였다. 그는 자못 신중한 얼굴로 김필휴를 쳐다본다.
“왔는가?”
김필휴는 장인의 물음에 공손히 인사를 할 뿐이다. 차영환은 김필휴를 어느 슬쩍 보다가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지 얼굴을 찡그릴 뿐이다.
“그래. 이제 좌익에는 몸담을 생각이 없나 보군.”
“적어도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김필휴의 언뜻 당당해 보이는 말에 차영환은 어휴 하는 심정으로 김필휴를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높인다.
“쯧. 언제 빨갱이 사상에 물을 들여서 이런 고생인가?”
“......”
차영환은 김필휴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사실 너희들을 부른 것은 별다른 것이 없다. 이번에 좌우합작 운동에 대해서 들어는 봤겠지?”
김필휴와 그의 아내 차지윤은 그의 말에 동의하다시피 고개를 끄덕인다. 차영환은 그 둘의 반응에 한쪽 입 꼬리를 올리더니 한 마디 말한다.
“그래. 다행이군. 그나마 세상소식에 어둡지는 않아.”
김필휴는 그 말에 조용히 차지환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가볍게 한 마디 한다.
“지식인들과 재력가들에게는 세상 소식을 알 수 있는 TV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TV가 있는 한 세상소식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어둡지는 않게 되었지요.”
그 말에 차영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필휴를 바라보더니 말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나저나 이번에 네 녀석도 경성에 상경하는 것이 어떠냐? 이번에 경성에서 직접 네 눈으로 한번 살펴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지.”
“그 이승만 박사처럼 말입니까?”
차영환은 거북하다는 얼굴로 이승만을 까댔다.
“흥. 그 양반은 그저 사기꾼일 뿐이야. 미국에서 편하게 활동하다 정치 영향력을 얻은 인간 같으리라고. 흥. 그 길병재라는 끈이 없으면 금방 떨어질 양반이지.”
차영환의 거침없는 말에 김필휴는 으음 하면서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차영환은 김필휴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자네도 한 번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겠지?”
“그 길씨 일가들 말입니까?”
“그래.”
“그들을 모르는 인간들이 있겠습니까? 대단한 양반들이지요.”
차영환은 김필휴의 평가에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 말한다.
“족보 없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해방 후에 집안 상관없다. 이런 혼란시기에는 집안 보다는 능력이 가장 우선이지. 적어도 동협 그룹의 관계자와 어느정도 만나봤으면 좋겠지만...”
“동협 그룹을 말씀입니까?”
“그래. 내 예상으로는 미래 한반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은 길씨 일가로 생각한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예상을 하겠지. 경성의 정치 지도인들 역시 정쟁을 벌이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길씨 일가에 대한 소식들을 모아두고 있을 것이다.”
김필휴는 장인의 말에 자신 역시 이미 예상이라도 했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길씨 일가에 속한 형제들 중 막내인 병윤이 이끄는 동협 그룹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영역에서 벗어나 세계와 무역을 하는 실정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거대한 배포와 행동은 사람을 많이 만나봐서 사람들의 평가를 자주 했던 차영환 역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 뿐인가? 첫 째 병재는 이미 세계에서 정평이 난 재생치료의 선구자였고,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은 언제나 그를 중심으로 모였고, 또 둘 째 병주는 이미 전쟁에서 끼어들어 직접 전투를 치러보았고, 지금 차영환의 사위 김필휴와 동갑내기인데도 불구하고 무려 사단장에 취임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즉 어린 나이에도 이미 검증을 받아서 그 자리까지 올라선 것이다. 무력, 재력, 영예, 아마 길씨 일가에 대한 정보를 파고들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들 이야기는 그만두지. 일단 그들이 중요한 것이 아닐 테니까. 너에게 하나의 소식이 있을 것이다. 맞는가?”
김필휴는 장인 차영환의 말 한 마디에 뜨끔거리며 장인을 바라본다. 그러나 차영환은 이미 다 알고 있는 표정으로 김필휴를 바라본다.
“자네에게도 좌우합작 위원회에 초대장이 왔겠지?”
김필휴는 장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는지 한 마디 말한다.
“역시 장인어른의 눈을 속일 수는 없군요. 예. 저에게 한 가지 소식이 당도했습니다. 이번에 좌우합작 위원회에 참관할 생각이 없냐고 말입니다.”
차영환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김필휴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렇지. 그게 당연한 거겠지. 이번에 한 번 그 쪽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마 전국적으로 모이는 인재들이 그 쪽으로 갈 거다. 거기서 한 번 인재들과 어느 정도 만남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김필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영환을 바라보며 말한다.
“한 마디로 흙 속의 진주들을 한 번 관찰하고 그들과 면식관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적어도 경성에서 여운형의 이름값이 있으니 상당한 인재들이 그 쪽으로 모여들 것이다. 쯧. 그 쪽에서 길씨 형제들도 보이면 좋겠지만.”
“......”
“뭐 그 것은 희망사항이겠지.”
김필휴는 장인의 말에 한 마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적어도 큰 손과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것 같았다. 김필휴 역시 장인의 말에 동의했다. 아마 그 정도의 세력을 일구고도 적극적으로 정치에 끼어들지 않는 사람들은 길씨 일가가 처음일 것이다. 그 때, 김필휴는 언뜻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흠.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는 그림자 정부 관련한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그 것일까?’
아직 그들에 대해서 만나보지 않았는데 속단하는 것은 무리일 지도 모른다.
1946년 7월 6일, 오랜만에 고호윤은 자신의 마음 속 영원한 상관이기도 한 병주를 만났다. 그는 한 사람의 청년을 대동하고는 병주를 만났는데. 과연 병주는 고호윤 옆에 있는 청년에 대해 호기심을 표했다.
“자네 옆에 있는 이 친구는 누군가?”
그 말에 고호윤 옆에 있는 청년은 자신과 비슷한 청년으로 보이는 병주가 고호윤에게 하대를 하자 속으로 놀란다. 그러나 고호윤은 익숙한 표정으로 병주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아. 저 친구는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는 친구입니다. 꽤나 똘똘해 보여서 이번에 한번 참관을 시켰습니다.”
“그렇군.”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호윤 옆에 있는 청년을 응시한다. 청년은 병주의 눈빛에 당혹한 얼굴을 짓는다. 그 때, 고호윤이 병주를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쯧. 햇병아리를 너무 놀리지 마십시오.”
“햇병아리라...”
고호윤에게 햇병아리 취급을 받은 청년은 끄응 하더니 둘을 바라본다. 그러나 청년은 병주의 기세에 속으로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데도 이만한 분위기와 기세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났다. 자신이 졸졸 따라다니는 상관인 고호윤이 괜히 병주를 따르는 것이 당연해보일 정도였다.
그 때, 고호윤이 옆의 청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어이. 장표 소개를 해야지.”
그 말에 청년은 벌떡 일어서며 병주에게 경례를 한다.
“이번에 신임 소위로 발탁이 된 김장표라고 합니다.”
병주는 꽤 패기 넘치는 김장표의 소개에 고개를 끄덕인다.
“꽤나 나랑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데.”
김장표는 그 말에 으음 하더니 침묵을 하고 만다. 그 때, 고호윤이 병주를 보고 한 마디 말한다.
“뭘 그리 놀리고 있습니까? 사단장님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괴물이지 않습니까? 요즘 산골지역에 돌아다니면서 매번 대민지원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병주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고호윤을 쳐다본다.
“지금 행정력이 부족하니 헬기들을 이용하여 오지 마을을 방문하면서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대민지원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고호윤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병주에게 말한다.
“그거야 사단장님의 부대가 부유해서 그렇고요. 요즘 부대 꼴을 보면 말이 아닙니다. 에휴. 돈은 없지. 일은 힘들지. 사단장님처럼 연배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 말에 병주는 피식 웃으면서 고호윤에게 대답한다.
“그 돈 다 내 빚이야. 물론 갚을 방법이 다 있지만 말이지.”
고호윤은 그 말에 조금 놀란 얼굴로 병주에게 말한다.
“허. 그거 개인적인 사비로 들였습니까?”
“그래. 당연하지. 상층부에서 그렇게 해줄 것 같아? 그 쪽에서도 돈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데.”
고호윤은 그 말에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김장표가 병주를 보더니 한 가지 의문이 든 표정이었다.
“그 말씀은 개인적인 돈으로 장비들을 도입한다는 말씀입니까? 원래 나라에서 돈을 내줘서 지원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고호윤은 그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김장표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과연 각 군정에서 그런 일을 할까 싶네. 일단 군복이라든지 소총은 위에서 맞춰주겠지. 다만 중장비 같은 것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 힘들 것으로 보이군.”
김장표는 고호윤이 말한 현실에 아연실색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고호윤은 희망이 담긴 말투로 김장표에게 한 마디 말한다.
“뭐 그 것도 금방이야. 어차피 대전은 끝났고, 지금은 나라 건설에 주력해야할 시기지. 지금 한반도는 요즘 수해로 거지꼴이 되지 않았나?”
김장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야 나라꼴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혼란이 심해서 한심한 현실들도 눈에 보인다. 그러나 이런 한반도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바로 동협 그룹이라는 존재가 그나마 한반도를 살리겠다고 온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김장표는 병주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 유명한 길씨 일가 중에서도 둘째인 길병주. 대단한 사람이야. 그나저나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도 나와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구나.’
============================ 작품 후기 ============================
이 편에서는 차후 활약할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뭐 김필휴, 김장표 누군지는 대충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나머지 한 사람은 이야기 속 시간으로 내년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아직 결혼 관련해서 말들이 많은데. 아직 병재의 결혼을 하지 않는 형편입니다. 우선 병재부터 결혼시키고, 나머지도 결정해야 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