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325화 (32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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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6년 10월 20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날이었다. 각자 일이 너무나 바빠서 그런지 며칠 씩 못 보고 지낸 적이 많았다. 병재는 오랜만에 잘 되었다 라는 심정으로 가족들을 바라본다.

현재 병재, 병주, 병윤, 효순은 생가에 머물지 않고, 새로 지은 저택에 머물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가족들이 생가에 머물게 생겼다. 바로 병재의 큰 일 덕분에 말이다.

길남효는 눈을 껌뻑이며 자기 주위에 앉아있는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흠흠 하면서 마주편에 앉아있는 병재를 향해 한 마디 말한다.

“그래. 우리 장남이 드디어 장가갈 날짜를 잡았다고?”

병재는 조금 부끄러운 얼굴이지만 이내 아버지 길남효를 향해서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한 마디 대답한다.

“예. 이제 그 배우자의 부모를 만나기로 협약했습니다.”

“흐음. 그걸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의사를 떠보는 것이지?”

병재는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 것 때문에 저는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길남효와 어머니 김민숙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병재를 바라본다. 그건 병재의 남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효혜 만이 방실방실 웃으면서 병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병재는 기어코 한 마디 말한다.

“저 장가가야겠습니다. 지금껏 키워주시고, 아껴준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말입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찾아 제 아내에게 충실하겠습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먹먹했지만 이내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병재에게 말한다.

“이미 너무 늦게 결심한 감이 있지만 축하한다. 아들아. 이제 넌 어른이 되었구나. 난 너의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끔 도와주겠다. 그리고...”

길남효는 병재 말고, 병주, 병윤을 바라본다. 바로 자신의 형처럼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병주와 병윤은 자신의 큰 형인 축하할 뿐 그런 아버지의 눈길을 은근슬쩍 피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대해 길남효는 속으로 ‘어쭈.’라는 괘씸한 감정이 생겼고, 결국 두 사람에게 한 소리 한다.

“야 이 자식들아! 너도 큰 형님보고 배워라! 이제 약관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배우자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 너희들이 뭐가 부족해서 여자를 안 만나는지 모르겠다. 그리도 연예결혼이 하고 싶더냐?! 결혼해라. 이 천하의 몹쓸 자식들아!”

병주와 병윤은 끄응 하고 아버지의 호통과 눈길을 피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령하고 외치며 지시를 내리는 두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의 말과 눈길은 대항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길남효 옆에서 어머니 김민숙이 맞장구를 친다.

“그래. 네 아비의 말이 맞다. 이 것들아. 너 네 형의 행동을 보고 행동해라. 요즘 주위 사람들부터 내 아들들이 고자니 뭐니 하면서 홀로 지내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때마다 내 속이 터져 죽겠다.”

병주와 병윤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그저 죄송하다는 얼굴일 뿐 굳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여자가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눈에 띄는 여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녀들을 바라보고 연예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 길남효는 크흠크흠 거리고는 병주와 병윤을 바라보며 결국 한 마디 말한다.

“너희들이 이립(30살)을 넘길 때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내 강제적으로 짝을 지어주겠다. 알았나?!”

그 말에 병주와 병윤은 속으로 다행이라는 감정이 생겨서 얼른 대답한다.

-옛! 아버지!-

길남효는 두 사람의 대답에 투덜거린다.

“쳇. 이럴 때는 대답을 엄청 잘 해요.”

그 때, 효혜가 병재를 바라보고, 방실방실 웃으면서 묻는다.

“그런데 큰 오빠. 헤헤. 우리 가족 모두 그. 미국 가는 거야?”

병재는 그 말에 으음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버지 길남효를 보고 더 말할 것이 있는지 입을 연다.

“그... 아버지.”

병주와 병윤을 한창 째려보고 있었던 길남효는 자신의 장남의 부름에 얼른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바로하면서 병재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왜 그러는가? 우리 병재.”

병재는 아버지의 과한 기쁜 표정에 조금 부담을 느꼈지만 이내 말할 것을 말해야 하는 심정이었다. 이내 한숨을 쉬고 한 마디 말한다.

“우리 가족 제 배우자 가족들을 만나러 미국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 아내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제 가족들이 미국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그 말에 길남효는 으음 하면서 병재에게 한 마디 묻는다.

“너 그 인종차별인가 뭔가 해서 여기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인종차별을 우리 가족들이 당하면 어떻게 될까?”

길남효가 불안한 의문을 말하자 그 의문을 풀어준 것은 병윤이었다.

“아버지. 저희들이 우리 가족을 지킬 힘이 없겠습니까? 저 역시 미국에 은근히 끈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도 여기보다는 덜하지만 인맥이 중요한 셈입니다. 인종차별은. 뭐.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절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길남효는 영 미덥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병재를 바라보니 병재의 얼굴은 병윤의 말이 전부 맞는 말이라는 그런 얼굴이었다. 길남효는 결국 병재를 봐서라도 한 마디 말한다.

“경호 부분에 있어서 병윤아. 네가 좀 책임 좀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병주야. 넌 군대에서 일이 있지 않겠냐? 그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는가?”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길남효를 바라보고는 말한다.

“군대에서 결혼 등 기타 이유로 청원휴가가 주어지는데. 거기에는 친족의 결혼식도 해당합니다. 군대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아요. 아버지. 그리고 제가 중요한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제가 부재할 동안 주위 사람들이 처리할 수 있게끔 어느 정도 제 일을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병주의 답변에 길남효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은 것은 효순과 자신의 아내 김민숙 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제가 장으로 있는 단체에 제 자매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분명 이해해줄 걸요.”

“저도 걱정하지 말아요. 뭐 한 번뿐인 내 장남의 결혼식인데. 참석 안 하면 그게 어머니로써 창피한 것 아니겠어요?”

모두의 의사를 확인한 길남효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재를 향해 말한다.

“좋아. 병재야. 우리 가족 모두 미국에 갈 생각이다. 다만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끔 그 때까지 일을 처리했으면 좋겠다.”

병재, 병주,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말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제 부하들도 분명히 이해가 갈 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없이도 돌아가지 않는 동협 그룹이 아닙니다. 제가 잠시 부재중일 때도 미리 비상시의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아버지.”

결국 병재의 결혼식을 위해 가족들 모두 다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길남효는 잠시 동안 가족들의 일원을 살피다가 이내 속으로 무언가 생각한다.

‘으음. 내 친우에게도 말하는 것이 나으려나.’

길남효는 자신의 가족이자 또 친우인 장 씨를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들끼리 모였으니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놀고 대화하고 즐겼다. 이미 형편은 나아질 대로 나아진 상황이라서 돈 걱정, 먹을 걱정은 없었다. 김민숙과 효순의 주도 하에 가족들끼리 먹을 수 있는 잔칫상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가족들끼리 신나게 하루를 즐긴다.

1946년 10월 21일, 병재는 한창 환자들에게 진료를 하고, 치료를 하고 있었고,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면 처방을 했다. 그렇게 환자들의 줄이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메리 간호사는 병재에게 한 마디 말한다.

“어제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봤어요?”

병재는 환자의 치료를 막 끝내고, 진료기록서를 쓰는 도중에 메리의 그 질문에 대답을 한다.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 전부 다 동의했어.”

“여기는 가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당신의 아버지는 다른 가 보네요. 좀 특이한 가족들이네.”

“가족들의 특색은 여기서도 다 달라. 내 부모님들은 정말 깨어있는 분들이지.”

메리 간호사는 그 말에 피식 한 번 웃는다.

“어제 제 부모에게서 편지가 도착했어요. 잘 있냐고 하더군요. 또 저번에 말한 당신 가족들이 제 부모의 집에 가도 되겠냐고 한 마디 말을 했거든요. 뭐 다행히 잘 되었네요.”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잘 되었다는 얼굴을 짓는다.

“25일에 찾아뵙겠다는 말을 했어?”

“그 것까지는 말 안했어요. 그냥 10월 말에 찾아가보겠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

“뭐 깜짝 선물 같은 것이에요.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이라면 제 가족들도 환영을 할 거에요.”

병재는 그 말에 진료기록서를 다 기입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알림종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땡 울린다.

“그래. 일단 일에 집중하자고. 결혼은 거기서 한 번, 여기서 한 번 이렇게 되는 건가?”

메리 간호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당신 가족들 다 여력이 있으니 말이에요.”

“......”

그 때, 환자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병재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병재는 환자에게 아픈 곳을 물었고, 환자는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준다. 병재는 환자의 모습을 관찰하다가 이내 원인을 찾았고, 치료해준다. 그런 식으로 병재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점심시간이 되었다.

병재는 병원에 마련된 전화기에 다가가 누군가에게 전화 연결을 시도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누구신가?-

“접니다. 박사님.”

-끄응. 이름을 대야지. 길병재 이 사람아.-

“하하. 죄송합니다.”

-그래. 무슨 일로 이렇게 나에게 전화를 내줬지?-

“저 25일에 미국에 한 번 방문할 일이 생겼습니다.”

병재의 그 말에 전화기 너머 상대의 반응은 놀라기 그지없었다.

-뭐? 미국으로의 방문? 잠시만 있어보게. 으음... 아. 그렇군. 축하하네.-

병재는 그 말에 싱긋 웃고는 기쁜 말투로 대답한다.

“박사님은 알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장난은 치지 말게나. 하여튼 자네의 결혼은 축하한다네. 나 역시 다른 인종, 다른 국적의 사람과 만나서 결혼했지. 내가 그러면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선배가 되는 셈인가?-

“하하. 어찌 박사님을 보고 선배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기야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데. 그럴 수가 없지. 하여튼 자네의 결혼 생활에 있어서 내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을 거야.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 그런 부분이 혼재되거든. 하지만 병재군.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결되지 않아. 그저 이해하고, 행동하게나. 그 것이 자네의 결혼 생활에 대한 팁 같은 거야. 뭐 이 말하면 알아들었겠지?-

“예. 예.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미국으로 갈 이유가 있기는 한데 영 시간이 맞지 않아서 조금 곤란하군. 하지만 자네 부부가 국내로 돌아오면 아마 성대한 결혼식이 있을 거야.-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박사님.”

-그래. 축하한다네. 병재군.-

그 것으로 전화는 툭 끊겼다. 병재는 휴우 한 숨을 내쉬고 송수화기를 제 자리로 내려놓는다. 그 때, 병재 옆에서 한 목소리가 흐른다.

“누구에게 그렇게 전화를 하십니까? 형님?”

병재는 그 말에 잠시 깜짝 놀랐지만 이만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청년이 한 명 서 있었다. 바로 청년 의사 김강연이었다.

“강연인가?”

“강연인가 하는 말씀 말고. 으음. 아무래도 형님의 은인에게 전화를 준 것입니까? 하여튼 유별해요. 유별해. 하여튼 형님 결혼식에 저를 비롯한 동료들 역시 참석해 주십시오.”

병재는 그 말에 김강연의 어깨를 두들기고 한 마디 대답한다.

“그건 걱정 말아라. 내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냐?”

“매정할 때도 가끔 있지요.”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김강연을 바라본다. 김강연은 이내 병재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나저나 형님이 결혼한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 평생 총각으로 살 사람으로 보였는데 말이에요.”

병재는 그 말에 키득키득 웃으며 김강연에게 말한다.

“너나 잘해라. 임마. 네 또래 녀석들은 다 결혼하고도 남았다는 말이 있다.”

“헷. 그런 자식들과 비교를 하지 말라고요. 형님 동생들 역시 결혼하지 않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는데 말이죠. 그 쪽과 저를 비교하라고요.”

“에휴. 알겠다. 알겠어.”

“뭐 미국까지 갈 생각은 없고, 만약 형님이 여기로 돌아오시고, 다시 결혼식을 한다면 그 때 한 번 제가 참석을 할게요. 그러면 되겠지요?”

병재는 그 말에 싱긋 웃고는 김강연에게 어깨를 두들긴다.

“그래. 참석해라. 그리고 내 뒤를 따라라.”

그렇게 병재와 김강연은 즐겁게 대화를 하다가 이내 각자 일을 위해 헤어진다. 그러다가 이내 직원의 호출을 받고, 사무소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시렌 사무소장이 병재를 반긴다.

“이제야 오는가? 새신랑?”

“하하. 시렌도 그렇게 반겨주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축복해야지.”

병재는 시렌의 환영에 히히 웃는다.

“물론 축하할 것은 축하할 것이고, 자네를 부른 것은 별다른 것이 없다네. 일단 한 번 전화를 받아보게나.”

병재는 그 말에 잠시 의아해하다가 이내 시렌이 건네준 전화를 받는다.

“저를 찾았다고 하던데. 누구십니까?”

-아. 미스터 길. 난 미군정의 사령관 앨버트 웨드마이어라고 한다네. 뭐 자네랑 자주 만났으니 겉치레 같은 소개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인사는 됐고, 뭐 여기는 일을 뒤처리하기가 급급해. 하지만 자네의 경우는 소홀히 할 수 없지. 일단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준비를 해뒀네. 아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네 가족들이랑 전부 미국으로 가겠다고?-

“예. 그렇습니다. 한 번 양가의 사람들이 만나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 좋겠군. 어차피 자네의 가족들이라면 미 정부에서 관심이 지대하니까 말이야. 뭐 준비는 이미 끝났어. 약속한 시간까지 대구로 내려오면 얼른 비행기를 준비해두겠네. 우선 하와이를 경유한 뒤 미 본토로 날아가는 경로야.-

“사령관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원래 당연한 거야. 미스터 길이라면 말이지. 그나저나 그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거 같군. 이거 만만치 않겠어.-

“하하. 미국에서의 결혼식과 이 곳 한국에서의 결혼식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한국에서의 결혼식에서 다시 한 번 만나는 것이 좋겠지.-

“예. 이렇게 전화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것으로 병재와 웨드마이어 사령관과의 전화가 끊어졌다.

============================ 작품 후기 ============================

휴우 병재의 결혼준비 때문에 이야기가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늘어지겠습니다. 히히히 될 대로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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