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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6년 10월 25일, 대구 비행장에서는 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병재의 결혼식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길씨 가족들이었다. 마치 촌놈처럼 둘러보는 길남효의 시선에 미군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이 비행기에 타는 것이냐?”
길남효는 옆에 있는 병재에게 한 마디 묻는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루나 이틀 뒤에 금방 그 미국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 때까지는 지루하기 그지없지만 말이죠.”
“......”
병재의 말에 길남효와 김민숙은 조금 꺼림칙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이 비행기 안에 탑승하여 날아가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을 여기서 살아왔는데, 외국으로의 여행 못 가보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길남효는 가까스로 떨리는 것을 진정시킨다.
결국 길씨 가족들은 하나 둘씩 비행기 안으로 탑승하기 시작했다. 병주야 미리 말을 해서 그런지 배웅하러 가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병윤은 지금 이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만 하여도 휘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잠시 부재 중에 있습니다.”
손채현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는 얼굴로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회장님이 떠나시면 비서도 같이 떠나는게...”
“그냥 휴일이라고 치십시오.”
손채현 비서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긴급한 상황에 대해서 곽 상무에게 일임하였으니 그에게 말하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손채현 비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며칠 뒤에 여기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까?”
“11월 1일에 여기로 올 것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으음...”
“그럼 그 때 봅시다.”
병윤은 결국 손채현 비서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 안에 탑승한다. 비행기 안에 의자에 앉은 병주가 병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뭐 이렇게 사람들이 너를 찾아 오냐?”
병윤은 피식 웃으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원래 이게 정상입니다. 작은 형님.”
“쯧쯧. 괜한 배웅은 필요없는 법이다. 그 때까지 알리고 처리해야지.”
“뭐 정도 있고 좋지 않습니까?”
“......”
그 때, 효혜가 비행기 안을 방방 뛰어다녀서 효순이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때, 병윤이 그 효혜를 잡아서 그냥 안는다. 효순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병윤과 효혜를 바라본다.
“여기서는 이렇게 뛰어다니면 안 돼.”
“히잉.”
결국 효혜는 병윤의 손에 잡혀 얌전히 있었다. 그렇게 출발 준비가 갖춰지자 길씨 가족을 태운 비행기는 활주로를 타더니 이내 씌웅 하고 이륙한다.
효혜는 옆 창문을 바라보며 하늘 구름이 보여 지는 것에 신기해한다. 그러다가 이내 귀가 먹먹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얌전한 감이 있었다. 한편 길남효와 김민숙 역시 신기한 눈빛으로 옆 창문을 바라본다. 비행기에 탄 것은 이번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마을에서도 문경에서도 또 한반도에서도 비행기를 접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마 그 별로 없는 사람들 중에 자신들이 속한 모습에 길남효는 조금 긴장된다.
그런 길남효의 모습에 김민숙이 꼬옥 손을 잡고, 한 마디 말한다.
“이제 그 미국이라는 곳에 가보는 것이네요.”
“어. 어. 그렇지.”
아직도 길남효는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다. 손은 자동적으로 떨려오고, 몸도 자동적으로 떨린다. 그리고 귀가 먹먹해진다.
한편, 두 부부의 뒷좌석에는 병재와 메리 헤임질이 앉아서 서로를 향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병재가 메리에게 한 마디 묻는다.
“흐음. 비행기는 여러 번 타보았지만 역시나.”
메리는 그 말에 풋 하고 웃으며 병재에게 한 마디 말한다.
“뭘요. 당신은 미국에서도 여러 번 비행기를 타보았으니 이제 익숙해질 시기가 아닌가요? 저도 간간이 살이 떨리는데요.”
“이 곳은 군용 비행기라서 그런지 어쩔 수 없는 감이 있나봐.”
메리는 그 말에 처음 미국에서 한국으로 갈 때 이런 비행기를 이용한 기억이 떠오르자 자동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끄응. 어쩔 수 없잖아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민항기는 없으니 결국 군항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죠.”
“그렇기는 하지. 비행기 이야기는 그만두고, 메리 당신 가족들 이야기나 해봐. 여기까지 탑승한 이상 이야기를 해봐야지.”
메리는 그 말에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병재를 바라보고 말한다.
“슬슬 말을 해줘야겠지요. 제 가족은 우선 부모님과 제 남동생 하나가 있어요. 남동생은 아직 고등학교에 있으니 아직 학생이에요. 대학생각은 없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인데?”
“제 아버지는 신발공장에서 사무직을 하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어머니는 집에서 주부 직을 하고 계시죠.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분들이에요.”
“그래?”
“사실 제가 당신 따라서 한국에 간다고 하자 많이 걱정들 했어요. 제 남동생 케빈이야 그런 곳을 왜 가냐고 거의 따지듯 말했어요. 물론 당신 이야기를 듣고, 조금 안심하는 눈초리에요. 그리고 케빈 역시 당신 이름을 들으니 아는 눈치인 것 같더라구요.”
“흐음.”
“제 부모님도 많이 기대를 하고 있어요. 저를 보는 것도 있지만 당신 얼굴을 보는 것도 있어요.”
“그런가?”
“그리고 당신 가족들도 쟁쟁한 사람들이잖아요. 제 부모님도 당신 동생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있어요. 따로 챙겨주더군요.”
“아 그 병윤이가 말이야?”
“예. 그 도련님? 도련님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미국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선물을 부모님께 드렸다고 했어요. 그 태양 전지를 비롯한 각종 물품들을 보냈다고 했어요.”
“재밌는 짓을 하네. 우리 병윤이가.”
메리는 그 말에 키득키득 웃고는 병재를 다시 바라보고 말한다.
“당신들 가족만큼 유별난 사람들은 없을 것이에요. 나중에 그 동생을 통해서 공항이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항?”
“예. 그래야 이렇게 군항기를 이용하지 않고, 외국으로 갈 수 있지 않나요?”
“흐음. 인공 활주로와 비행기야 동생의 손길이 있으면 가능이야 하겠지. 다만 착륙 문제라든지 국적 문제 등 국가 간의 문제가 있어서 아무래도 그건 조금 힘들겠지. 과도정부라고 하지만 정식정부가 아니니까.”
“하기야 그렇겠죠. 그런데 한국은 으음. 참으로 신기한 곳이에요.”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냥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촌구석이라고 말을 해. 솔직히 당신의 눈길에서 신기한 것이 당연하겠지.”
“그러나 거기서도 희망이 있잖아요.”
“희망이라. 맞는 말이기도 하지.”
“비록 당신과 겪은 시간에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많았어요. 시체가 된 사람들, 전염병에 우왕자왕하는 사람들. 보기 힘들고 견디기 힘든 부조리의 모습들까지 많이 봐왔지만 거기서는 그나마 희망이 존재해요.”
“......”
“이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에요.”
병재는 메리의 그 말에 싱긋 웃는다. 희망이라.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만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이야 가난하고 아주 힘든 나라의 사람들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거고,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가 되요.”
“흠흠. 창피하게 당신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라는 말을 하지마.”
메리는 그 말에 귀엽게 혀를 내밀고 한 마디 말한다.
“어머. 들켰네요.”
“고향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단순히 고향의 사람들이 행복하고 잘 사려고 하는 것이야. 민족이니 국가이니 그런 위대한 의지에 동참할 생각은 없어.”
“피... 전염병이 터지자마자 얼른 달려갔으면서 그런 소리에요.”
“흥. 그 전염병에 내 아는 사람이 걸리지 않을까? 라는 걱정 때문에 그래.”
“핑계도 좋아요. 하지만 그런 당신이 정말 좋아요. 당신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감이 있어요.”
“흐흠.”
병재는 부끄럽다는 얼굴로 메리를 바라본다. 메리와는 2년 같이 일을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고, 맺어질 관계였다. 병재에게 있어서 메리는 어느새 깊숙이 들어온 사이였다.
길씨 가족들을 태운 비행기는 하와이에서 잠시 급유를 하다가 다시 미본토로 간다. 재밌는 것은 비행기가 미연방 수도인 워싱턴 DC 지역으로 간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사실들에 대해서 병재와 병주, 병윤은 미리 예상을 했었다.
미 본토로 날아갈 동안 길남효가 병윤 옆에 앉아서 조금 지친 얼굴로 바라보고는 한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으음. 이 비행기라는 물건은 지겹네.”
병윤은 그 말에 길남효에게 한 마디 말한다.
“남는 시간동안 주무시는 것이 어때요?”
“잠시 땅을 밟은 그 하와이에서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휴. 다시는 이용 못할 물건인 것 같다. 이 비행기라는 물건은 말이지.”
“군용 항공기이니까 조금 불편한 감이 있지요.”
“하여튼 미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병윤아.”
병윤은 그 말에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이내 자신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해준다.
“미국이라는 곳은 정말 대단한 곳이지요. 그냥 크다라는 말이 부족할 지경이에요. 사실 저도 미국이라는 곳은 처음이에요. 다만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알고는 있지요. 미국은 저보다 제 큰 형님이 잘 알아요. 큰 형님이 미국에 거주했잖아요.”
“흐음.”
“모든 면에서 풍족하다고 보면 되요. 그 초콜릿이라든지 각종 맛있는 것들, 즐길 것들, 모든 것이 천지에요.”
“그렇게 말하니 상상이 가지 않는구나.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굶는 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하아.”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 그럴 사람이 적어질 것이니 걱정 마세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아버지께 말씀 안 드렸어요? 그 건물 내에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게 뭐냐?”
“......”
병윤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신의 기업들이 연구하는 것들을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길남효는 상상이상의 병윤의 말에 허어 하면서 점점 입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허어. 너의 기업들이 매번 TV에서 나오고 그래서 대단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것도 생각하고 연구를 하는 거냐?”
“다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면 너무 위선적이네요.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면 보면 되요.”
“끄응. 내 후세의 사람들은 적어도 내 아들 덕택에 굶주리지는 않겠구나.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면 아사라는 단어가 없어지겠군. 역시 내 아들들이야.”
병윤과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병주 역시 미소를 짓는다.
1946년 10월 27일, 아침이 되자 길씨 가족들을 태운 비행기는 워싱턴 DC 지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착륙을 했고, 곧 이 비행기를 몰았던 기장에게 길씨 가족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비행기에서 내린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햇빛들이 눈에 부셨고, 길남효와 김민숙에게 있어서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가 확 느껴졌다. 두 사람의 복장은 되도록 차려입은 것이라서 별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길에는 공항 밖 무수히 많은 건물들이 눈에 보여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놀라워하지는 않았다. 저 것보다 더 높은 고층 건물을 한 번 발견했으니 말이다. 바로 자신의 아들 병윤이 건설한 40층짜리 건물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 때, 길씨 가족들을 향해 다가서는 이들이 있었다. 양복들을 입은 사람들과 분위기 있는 사람들이 다가오자 길남효는 순간 긴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들은 길씨 가족들의 일면을 살펴보다가 이내 병재가 앞장서서 그 사람들을 반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반가워하는 얼굴로 병재를 바라보며 말한다.
“오랜만이군.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고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을 하는데. 잘 지냈는가? 미스터 길?”
그 말에 병재는 읍소하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이렇게 마중나올 지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병재의 말에 가족들은 헉하고 놀랐다. 영어에 대해서 병재, 병주, 병윤이 번갈아가면서 가르쳤기 때문에 가족들은 영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즉 루스벨트 대통령이 병재를 바라보다가 이내 병재 뒤에 있는 동양인들을 바라보고 한 마디 말한다.
“저 사람들이 전부 다 자네의 가족들인가?”
“예. 이번에 제 결혼을 위해 한 걸음에 달려나온 고마운 가족들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병재의 가족들의 얼굴들을 살펴본다. 병재와 같은 분위기를 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이나 있었다. 바로 병재의 친형제들인 병주와 병윤이었다.
‘저 두 사람이 바로 미스터 길의 동생들이군. 저기서 한 사람은 군에. 한 사람은 사업가라고 들었는데. 그 사업가가 바로 만고초려이자 억생재라고 불리는 인물인가? 하여튼 저 가족들도 대단하군. 앞으로 그 한국이라는 나라는 저 가족들이 암중에 지배할 것 같군. 흐음. 하지만 아직은 그 가치가 없는 셈이지. 그래도 저 가족들은 상당한 가치가 있으니 마땅히 대우를 해줘야지.’
“미스터 길. 선약이 없으면 한 번 백악관에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병재는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간 크게 대통령 각하의 말을 거역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땅히 따르겠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까 다들 영어를 알아듣는 것 같군. 굳이 통역이 필요 없겠어. 그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지.”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말을 하고난 뒤 옆의 보좌관에게 눈길을 준다. 그러자 보좌관이 상자를 꺼내더니 이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건네준다. 병재는 궁금한 얼굴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건...”
“아아. 너무 늦은 감이 있어서 그렇지. 사실 자네가 우리 미국에서 해준 업적을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무심한 감이 있어서 그렇지. 이건 미국 시민권이야. 언제든 여기서 자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어. 그건 자네뿐만 아니라 저기 있는 자네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이지. 나중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부가 세워지면 이중국적도 가능해. 자네의 미래와 능력, 그리고 업적에 대한 보상이야.”
루스벨트 대통령은 결국 길씨 가족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증여했다.
============================ 작품 후기 ============================
대통령이 미리 마중나오고, 시민권을 투척하는 병윤의 업적과 패기. 그런데 병재같은 사람이 이중 국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흐음. 왠지 결혼 편이 질질 끄는 느낌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될 대로 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