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6 / 0633 ----------------------------------------------
[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트렌치코트를 입은 고씨 남매, 그러니까 고경열과 고희수는 지금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내 부채를 든 사내가 얼른 품속에서 권총을 하나 꺼내더니 그 둘을 겨눈다.
“여기를 어떻게 찾아왔는지 잘 알겠지만 우리만 당할 수는 없지.”
소총을 든 고경열이 휘익 휘파람을 불며 부채를 든 사내를 조롱한다.
“히야. 권총이라. 준비 많이 했네. 이 걸로 쏘려고? 한 번 쏴보세요.”
부채를 든 사내는 그 말에 이익하며 고경열을 쳐다본다. 그 때, 고희수 역시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며 부채를 든 사내를 겨눈다. 고경열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역시 소규모의 조직이라 그런지 변변치가 않네. 그런 것으로 잘도 고용인의 집안을 노리려고 하다니. 너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 아니야? 이봐 왜노들. 이제 이 한반도가 일제의 지배에 해방된 지 년이 지났거든. 그런데 왜 설치고 난리일까?”
부채를 든 사내는 그 말에 얼굴을 구기며 고경열에게 대답한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패전했다고 하여도 일본은 일본이다. 너희들을 재정복할 힘이 없을까?”
“응 없어.”
“흥. 우리는 선발대다. 한반도에서 힘 좀 있다고 깝죽대는 너희들의 고용인과는 차원이 다른 몸이시다.”
“이야. 고마워. 그러니까 고기들이 또 있다는 거지?”
고경열의 말에 부채를 든 사내는 열불이 났다. 얼마나 자신들을 같잖은 녀석들이라고 보는가? 고경열은 소총을 슬그머니 들더니 이내 부채를 든 사내에게 조준하고 한 마디 말한다.
“이게 무슨 물건이지 아냐?”
그 말에 부채를 든 사내는 얼굴을 대차게 구기며 외친다.
“흥. 내 알 바 아니다!”
고경열은 휘익 휘파람을 불며 좋아한다.
“이야. 역시 대일본제국의 신민이야. 소총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
-뿌드득!-
부채를 든 사내는 고경열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빨이 갈렸다. 그 때, 순간 누군가 튀어나와 고경열 앞에 있는 고희수를 노린다. 하지만 고희수의 눈치도 보통은 아니었고, 그대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누군가를 향해 가진 권총을 쏜다.
-탕! 탕!-
달려드는 사내는 총을 맞아서 뒤로 쓰러졌고, 고희수가 살펴보니 입가에 화상이 있는 사내였다. 그 사내의 손에는 작은 단검으로 어떻게든 공격해보려고 한 것 같았다. 그 때, 고경열이 자신의 여동생 고희수를 향해 말한다.
“야. 안 죽었지?”
고희수는 그 말에 얼굴을 조금 구기고는 대답한다.
“안 죽었어요. 걱정 마세요.”
“생존자에 한해서 10만원이야. 잘 살려서 보내야돼.”
“알고 있어요.”
부채를 든 사내는 그 대화를 듣자마자 끄응 하고 두 사람을 노려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불구하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은 침착하게 권총을 들고, 대응하여 쏘았다. 그 것을 보면 훈련도 훈련이지만 이런 경험을 많이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경열은 부채를 든 사내에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카드는 더 없어? 이거 너무 시시하게 끝나니까 조금 그렇잖아.”
“크으으으...”
“너무 허술하잖아? 이거 참 보람이 없구만.”
그 때, 무감정해 보이는 여성이 앞에 나서서 고경열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제 조롱은 그만해두시지요.”
확연히 들려오는 한국어에 고경열은 조금 놀란 듯 말한다.
“흠. 한국어라. 약간 어눌하기는 하지만 배웠기는 배웠네. 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당신들을 보낸 사람들이 바로 길씨 일가입니까?”
고경열은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한다.
“흥. 고용인이 이 일을 두고,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라는 것 잘 알지? 그런데 왜 이런 일을 꾸몄는지 잘 모르겠어.”
무감정한 젊은 여성은 옆에 있는 부채를 든 사내를 보고 한 마디 말한다.
“항복하죠.”
그 말에 부채를 든 사내가 얼굴을 대차게 구기면서 여성에게 말한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그 외침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침착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지금 밖에 무장한 경찰들이 쫙 깔렸습니다. 이미 저들이 쳐들어 올 때쯤 그물망을 완성시켰던 것입니다.”
부채를 든 사내는 그 말에 끄으으 하면서 외친다.
“이런 빌어먹을. 으으으.”
고경열은 너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제길. 반항하는 맛이 있어야 재밌는데. 이거 김샜네.”
그 때, 무감정해보이는 여성이 고경열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시군요. 과연 그 여유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보겠습니다.”
고경열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여성에게 말한다.
“설마 우리 고용인이 보이는 것만으로 끝일 것이라고 생각해?”
“......”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지.”
고경열은 소총을 거두고는 곧 뒤에서 오는 경찰 무리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다친 사람들 치료해주고, 알아서 심문하쇼.”
문경경찰서장 박달수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경열에게 말한다.
“협조에 감사합니다. 심문해서 얻은 정보는 제가 알아서 회장님께 보내겠습니다.”
“후후후. 그렇게 한다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
무감정한 젊은 여성은 박달수 경찰서장과 고씨 남매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렇게 길씨 일가의 장남 병재 부부와 이승만을 독살시키려던 독살 미수 사태는 범인들의 체포로 막을 내린다.
11월 12일, 사현리의 형제들의 집인 우리 집 안에서 병재는 병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범인이 그딴 녀석들인가?”
병재가 병윤의 말을 듣고 한 마디 대답한 것이 그러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지요. 뭐 이 것으로 다시 한반도를 침략하려는 일본인 무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심문을 해보니 일본에 어르신이라는 사람이 우리들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어르신?”
“예.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이렇게 한반도에 세력을 소규모로 구축한 것을 보면 한반도에서 꽤 잘 나가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병윤의 말에 병재는 쯧쯧 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흥. 주제에 어르신이라니. 일제가 패가망신했으면 일본 본토에 뒷방 늙은이처럼 살 것이지. 어떻게 보복할 생각이냐?”
“일단 일본의 어르신이라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야 합니다.”
“......”
“뭐 정보들을 조합해보면 일단 구체적인 인물이 나올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병재는 병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이미 한 번 선물을 받았으니 잘 선물해줘야 하는 것이 예의겠지.”
병윤은 그 말에 후후후 웃으면서 말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선물을 해줄 자신이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그 어르신이라는 녀석의 한반도에 심어둔 세력은 그게 끝인가?”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린다.
“물론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을 매수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일본인이 한반도에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저희들을 노릴만한 사람들 역시 적습니다. 거기다 어떤 단체가 그들과 협력하면 아무래도 매국노라는 인식이 덮어질 것이기에 그런 방법은 적습니다.”
“하기야 그런 쪽으로 매수되다가 밝혀지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 사회적 위치까지 통째로 잘려나가니 말이야. 그렇다면 일본 본토에서 사람을 보내는 일인데.”
“그래 보았자 어차피 잡혀들 처지입니다. 제가 가진 정보망은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그리고 작은 형님의 정보망 역시 허수아비가 아니죠.”
“그렇군. 일단 그 어르신이라는 녀석은 한반도에 있는 세력이 소멸되었다고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지금은 그렇습니다. 지금은. 일단 알지 못하는 단체가 있을 지도 모르지요. 정보망을 최대한 가동해서 고구마 캐듯이 엮어내야 하지요.”
“알겠다. 일단 너의 행동을 지켜보마. 휴우. 남의 결혼식에 이렇게 대담하게 행동을 하다니. 만약 그 어르신이라는 녀석이 밝혀진다면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테다.”
병재의 눈빛은 어느새 박출환을 바라보는 것처럼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병윤은 그런 큰 형의 눈빛을 보면서 무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그 어르신에 대해서 파헤치고, 박살내자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병재와 병윤은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를 돌린다.
“그래. 이번에 의료기기를 생산해볼 지침이라고?”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재에게 말한다.
“의료기기는 꽤나 고부가가치적인 물건입니다. 뭐 그걸 생산해서 의사들에게 팔아넘겨야겠지요. 형님이 필요한 의료기기가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얼마든지 적절한 가격에 넘기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너 돈이 궁하냐? 내가 쌓아둔 돈까지 내놓으라고 말하게.”
“하하하. 저는 그냥 큰 형님을 돕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흥. 네 눈빛에는 내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의지가 보이는데 뭘?”
“그 대신 저는 형님이 필요하신 물품을 드리지 않습니까? 그 것으로 손해는 없지 않나요?”
“쯧. 거창한 의료기기는 필요 없고, 붕대나 소독제, 그리고 메스나 기타 의료 물품들이나 잘 공급해줘라. 난 그런 것이 많이 필요해.”
병재가 그렇게 말하자 병윤은 아쉽다는 얼굴로 한 마디 말한다.
“그거 이미 충분히 전달해드렸잖아요.”
“그건 창고 째로 만들어야 내가 마음이 편해.”
“에효.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형제의 이야기는 그 이후로도 계속 되었다.
같은 시각, 일본 본토 어딘가에 위치한 전통 일본식 저택 안의 다다미가 바닥에 깔려있는 방에서 노인이 한 사람이 정좌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방문이 열리면서 조용히 정좌하는 노인의 앞에 가서 한 마디 말한다.
“저... 어르신...”
노인은 그 말에 눈을 조용히 뜨고는 앞의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당히 긴장한 정장의 사내를 보며 말한다.
“무슨 일인가?”
정장을 입은 사내는 노인에게 한 마디 대답한다.
“한반도에 있는 소규모 조직은 붕괴되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벌써?”
“예. 결코 만만치가 않은 상대입니다.”
노인은 그 말에 이빨을 뿌드득 갈고는 말한다.
“일을 치르면 잠적하라고 말을 했을 텐데? 왜 일이 그렇게 되었지?”
그 말에 정장의 사내는 상당히 긴장한 말투로 대답한다.
“이미 어르신의 말대로 잠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알고 덮친 것 같습니다. 지금 한반도에 있는 어르신의 아이들은 죄다 붙잡혀서 고문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조용했던 노인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노인의 얼굴에 아랑곳 않고, 정장의 사내는 노인에게 계속 이야기를 한다.
“현재 한반도에 남은 조직들은 2개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떻게 합니까?”
노인은 그 말에 평정을 되찾고는 한 마디 대답한다.
“괜히 그들을 건드렸나 싶군.”
“그들이라면 누구를 말씀입니까?”
“길씨 일가들 말이야.”
정장의 사내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일을 치르던 조직이 붕괴한 것도 조직이 일을 벌였던 대상자들인 길씨 일가들이 보복하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보복을 해서 붕괴시키다니 의외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럼 그들에 대해서 유보를 합니까?”
“그들에 대해서 조사를 더 해봐야겠군. 건드리는 것은 조사가 끝난 다음이다. 일단 다시 우리가 한반도로 점거할 때, 위협적인 세력들은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 세력들인가?”
“예. 아무래도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까요.”
노인은 그 말에 얼굴을 대차게 구기면서 한 마디 말한다.
“흥. 외국에서 반란군을 꾸미다가 운 좋게 정권을 차지한 승냥이 같은 놈들. 내가 이룬 모든 것을 훔친 개자식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도 분노가 이는군.”
“......”
“그런 승냥이 같은 작자들에게 매가 약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매가 약하니 짜증이 나는군. 내 사업을 접수한 이들은 누구인가?”
그 말에 정장을 입은 사내가 휴우 한숨을 쉬며 말한다.
“어르신을 따르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뒤바뀌니 전부 배신하고, 어르신이 구축한 것들을 모조리 훔쳐갔습니다.”
노인은 그 말에 주먹을 꽉 잡고는 바닥으로 내려친다.
-쿵!-
“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자식들. 그래 어디 조용히 사치와 향락을 즐기도록 해라. 배신한 녀석들에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것이 답이겠지.”
정장을 입은 사내는 노인의 분노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지켜본다. 그러다가 노인은 휴우 한숨을 쉬고는 정장을 입은 사내에게 말한다.
“그래. 일단은 두 조직을 보고 자중하고 있으라고 말해.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지원해주도록 하고.”
정장을 입은 사내는 노인의 그 말에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방에서 나간다. 노인은 그 사내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 조용히 정좌한다.
============================ 작품 후기 ============================
흠흠. 일본의 어르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까 한반도에 세력을 구축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 어르신이 이룩한 것도 세상이 바뀌니 친일파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뭐 이런 것을 두고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사실 어르신과 병재, 병주, 병윤과의 접점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먼저 어르신이 선빵을 갈긴 것에 불과합니다. 병윤의 동협 그룹은 알다시피 불하는 별로 받지 않고, 새롭게 사업을 꾸몄거든요.
혹여 질문들이 있으면 댓글로 보내주십시오. 성실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