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2 / 0633 ----------------------------------------------
[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같은 시각, 병주는 지금 주 연대가 대항군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잠결에 깬다. 병주는 긴장한 얼굴로 자신의 전속부관 이단일 중위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지금 주 연대는 어떻게 하고 있는데?”
이단일 중위가 그 말에 병주에게 한 마디 대답한다.
“일단 주 연대는 경계를 세워 두어서 잘 습격에 대비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 주 연대의 피해는?”
“대략 1개 소대 정도의 피해를 보았습니다.”
“죽었다고 표시되는 병사들은 전부 예비 연대로 보내서 지내게 해둬.”
이단일 중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나?”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상 걸렸다거나 혹여 문제가 생긴 부분은 없나?”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알아봅니까?”
“아니다.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나에게 보고가 올라와있겠지.”
병주는 그런 말을 하고나서 자신의 방탄헬멧을 쓰고, 방탄복장을 갖춰 입은 뒤에 이단일 중위를 데리고, 사단 본부 천막인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잠자는 천막에서 문을 여니까 순간 한기가 확 들어오지만 병주는 별 감흥없이 성큼성큼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아 사단 본부 회의장 천막으로 도착을 했다. 천막을 경계하는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병주는 병사들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이런 추운 날씨에 상당히 고생하는군. 힘든 점은 없나?”
그 말에 경계병이 작게 병주에게 말한다.
-없습니다.-
“그래. 앞으로 수고하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의무대에서 치료 받아.”
-사단장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천막 안에는 아직 참모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당직사령으로 나와 있는 사단 군수참모 윤호준 중령만이 눈에 띌 뿐이다. 윤호준 중령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다가 병주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경례를 한다.
“충성! 현재 여기는 이상 없습니다.”
병주는 윤호준 중령의 경례를 받고는 말한다.
“일단 대항군이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에 찾아왔네.”
“그 일이라면 전부 전파했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자신의 자리에 앉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흠. 현재 주 연대는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군.”
“예. 그렇습니다. 주 연대의 연대장 심지척 대령이 미리 상황을 파악하여 경계를 서둔 덕분에 대항군의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잘 대처를 해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하기야 경계를 잘못 하다가 전멸당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윤호준 중령은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경계를 잘 안 서는 바람에 패배하는 전투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 때문에 훈련이나 전쟁 중에 경계를 소홀히 하는 짓은 바로 나를 비롯한 모두를 죽이겠다고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윤호준 중령은 병주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잠을 잘 못 잔 것 같은데. 다시 가서 주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고는 윤호준 중령에게 말한다.
“그건 아니지. 이제 잠이 다 깼고, 또 중요한 사태가 일어났잖아. 지금 이런 상황에서 편하게 자는 지휘관이 어디에 있겠나? 일단 내가 깨어난 이상 자네는 당직을 그만하고, 자도 되네.”
윤호준 중령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병주에게 묻는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으음.”
“내가 보증하니까 잠을 자서 체력 보충해두게. 피로가 누적되면 판단이 힘들어져. 나야 체질이라서 그런지 피로를 못 느끼는 성격이니까 걱정 말라고.”
윤호준 중령은 그 말에 휴우 한숨을 쉬면서 오히려 병주에게 미안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자보겠습니다. 그런데 사단장님 두고 홀로 잠을 잔다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해볼까?”
윤호준 중령은 그 말에 흐익 하고는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자겠습니다. 인수인계할 사항으로는...”
윤호준 중령은 병주에게 얼른 인수인계할 사항들을 설명하고는 결국 병주의 압박으로 당직사령을 도중에 그만하고, 잠에 들기로 한다. 윤호준 중령이 잠을 자러 다시 들어가자 병주는 회의장 책상 위에 있는 지도 위에 전투 장기의 말들을 점검한다. 그리고 병주는 곧 통신병으로 근무하는 병사에게 주 연대와 예비 연대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을 들으면서 일일이 지시한다.
밤중에 윤호준 중령이 아니라 병주가 지시를 내리자 주 연대 즉 34연대의 연대장 심지척 대령과 예비 연대 35연대의 연대장 임삼길 대령이 놀란다. 그러나 그들의 놀라움과는 관계없이 병주는 그들에게 적절한 명령을 내렸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니까 어느새 날은 밝아오기 시작했다. 기상시간이 다가오면서 참모들이 회의장 안으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회의장에 병주가 있어서 참모들이 안에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면서 긴장한 얼굴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병주는 그런 참모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무슨 죄라도 지었어? 당직 사령은 내가 특별히 잠을 자게 해두었으니까 그에게 뭐라 하지 말고.”
그 말에 참모장 박현호 대령이 병주에게 말한다.
“으음. 사단장님이 피로에 대해서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금 몸 걱정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박현호 대령에게 말한다.
“대항군 습격 사실 때문에 일찍 일어난 것이니 걱정 말게나. 혹여 마음이 불편한 것이 있나?”
박현호 대령은 그 말에 흠흠 거리면서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사실 상관이 먼저 일어나서 준비하는데 그 밑의 사람들이 상관보다 더 늦게 나타나면 조금 눈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거 애초부터 버리라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그리고 이건 훈련 도중에 일어나는 예외사항이니 마음을 쓸 필요가 없을 텐데?”
그 말에 박현호 대령은 끄응 하고 고개를 숙인다. 참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병주는 자신이 일찍 와서 일을 하는데 부하들보고 늦게 왔다고 타박을 주는 일은 없었다. 다만 지각을 조금 하거나 하면 그 때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참모들은 겉으로는 죄송스러운 얼굴을 짓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병주에게 고마워했다.
“일단 출근 가지고 따지는 것은 그만두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니 말이야.”
참모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참모장 박현호 대령 역시 그 말에 공감을 하는지 결국 화제를 돌리고 만다. 그렇게 병주와 참모들은 각자 맡은 영역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문경 사현리 생가에서 병재와 메리 부부가 효혜랑 놀아주고 있었다. 효혜의 재롱에 병재와 메리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 병재는 효혜를 안으면서 메리에게 말한다.
“효혜를 보니까 얼른 애를 키우고 싶네.”
메리는 그 말에 얼굴이 부끄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 말에 가만히 병재 곁에 있던 효혜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우와 큰 오빠 부부에서 애가 나오는 거야?”
“그렇겠지.”
“애는 어떻게 나와?”
효혜의 질문에 병재와 메리의 얼굴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 것을 어떻게 답해야 할까? 하지만 병재는 미리 생각한 바를 효혜에게 말한다.
“그건 하늘에서 황새가 날아와서 아기를 내려줘. 됐지?”
효혜는 그 말에 조금 실망한 얼굴로 자신의 큰 오빠에게 말한다.
“정말로?”
“그래. 정말이지.”
“그런데 애가 태어났다는 곳에는 황새가 안 보이는데.”
“어린아이들에게 볼 수 없도록 몰래 가져다주는 거야. 아기는 사랑하는 남녀에게만 축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존재이거든. 황새도 그걸 알고 배려를 하는 거지.”
“거짓말 같아. 엄마 아빠한테 물어볼래.”
“그래라.”
효혜는 병재의 품에서 벗어나 졸래졸래 달려 나가 방 안으로 들어간다. 마루에 앉은 병재와 메리는 싱긋 웃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메리는 병재에게 감탄했다는 듯 말을 해준다.
“저렇게 속여도 괜찮을까요?”
“어린아이에게 그런 속된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
메리는 그 말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제 자신의 남편인 병재에게 말한다.
“사실 성에 관한 것은 옛날 서커스에서 들었는데. 정말 충격이었어요.”
“정말로?”
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한다.
“예. 정말로요. 하여튼 미국 본토에서는 그런 교육을 일찍 하는 편이에요.”
“으음. 그렇군.”
“하여튼 우리 둘 사이에 난 자식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요?”
병재는 싱긋 웃으면서 메리에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충격 받지 않도록 이야기를 돌려 말 할 자신은 있어.”
“호호호. 그래요?”
그렇게 병재와 메리가 알콩달콩 지내고 있을 때, 방 안으로 들어간 효혜가 다시 쪼르르 달려 나와 병재에게 말한다.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니까 정말이라던데.”
병재는 효혜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한다.
“그래? 내 말이 맞지?”
“힝.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비밀은 무슨. 그게 사실이야.”
“에이 몰라.”
효혜는 그 말을 하고 병재에게 안긴다. 효혜의 행동에 병재가 효혜의 머리를 강아지처럼 쓰다듬는다. 그러다가 이내 효혜가 병재에게 말한다.
“큰 오빠. 나 토끼 키우면 안 돼?”
병재는 뜬금없는 효혜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한다.
“그건 왜?”
“힝. 그냥 키우고 싶어. 토끼. 귀엽고 깡충깡충 뛰는 것이 보고 싶어.”
“키우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단다.”
“그래도 토끼랑 같이 있고 싶어.”
병재는 효혜가 토끼를 키우고 싶다고 떼를 부리자 휴우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좋아. 한 마디 말을 해줄게. 토끼라는 동물은 말이지.”
병재는 토끼에 대한 동물을 자세하게 말을 해준다. 토끼가 보기에는 상당히 귀여워 보여도 무는 동물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온순해 보여도 사람으로 치면 다혈질이라는 것을 잘 설명했고, 너무 겁이 많아서 그냥 쓰다듬는 것도 엄청 경계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줬다.
효혜는 그런 이야기를 병재에게 듣고는 실망한 얼굴이었다.
“정말 토끼가 그런 동물이야?”
병재는 효혜의 물음에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우리 예쁜 효혜 토끼에게 물려서 아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
“으음.”
“그래도 토끼를 키우고 싶다면 책임감이 있어야 돼.”
“책임감이 뭐야?”
병주는 그 말에 흠흠 거리면서 효혜에게 말을 해준다.
“책임감이라는 것은 네가 그림 공부를 하잖아?”
“응. 그 오빠들이 사준 거 말이야.”
“그래. 너 도중에 싫증나서 그림 칠을 안 한 것 기억 나?”
효혜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응. 도중에 안 했어.”
“책임감이라는 것은 네가 그 그림 칠을 끝까지 하는 마음이라는 것이지. 도중에 싫증나도 안 하고 싶어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야.”
효혜는 그 말에 아리송하는 얼굴로 병재를 바라본다. 병재는 피식 웃으면서 효혜에게 고개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만약 네가 토끼를 키운다고 치자. 토끼가 갑자기 밥을 먹기 싫다거나 계속 툭툭 발버둥을 쳐도 너는 잘 키울 자신이 있어?”
“으음.”
효혜는 그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순간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오빠들과 언니는 자신의 거짓말을 잘 알아챘다. 그 때문에 효혜는 솔직한 아이였다.
“아니 못 키울 거 같아.”
효혜가 조금 울먹거리며 이야기를 하자 병재는 효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해준다.
“아직 효혜에게 토끼를 키울 마음이 부족한 거야. 단순히 토끼가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이는 마음과 그 토끼를 책임질 마음은 다른 거지. 만약 토끼를 키우고 싶다면 책임질 마음부터 길러.”
효혜는 그 말에 밝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응.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효혜는 총총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간다. 병재의 아이 다루는 모습에 메리는 싱긋 웃으면서 말을 해준다.
“아이가 떼를 쓰는 것도 잘 넘겨주네요.”
“원래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잖아. 떼라는 것이 당연한 거야. 사람은 이기적이거든. 다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니까 그래. 그래서 서로 조심하고 배려를 하는 거지.”
“으음.”
병재는 후후 웃으면서 메리에게 말을 해준다.
“사람이라는 것은 전부 다 다른 특색을 띄고 있어. 사람마다 잘 듣는 약과 잘 걸리는 병이 다 다르잖아. 그래도 난 효혜가 바르게 컸으면 해.”
메리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병재를 바라보고는 말한다.
“당신과 내 사이의 자식들에게 그렇게 할 건가요?”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당연하지. 내 자식들에게도 그럴 거야. 안심이 돼?”
메리는 그 말에 다행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당신이 효혜에게 대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어요.
병재는 피식 웃으면서 메리에게 말을 해준다.
“그래? 그거 잘 됐네.”
============================ 작품 후기 ============================
혹한기에 고생하는 병주와 알콩달콩한 병재 부부의 이야기를 한 번 꾸며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