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346화 (346/633)

0346 / 0633 ----------------------------------------------

[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6년 12월 14일, 드디어 혹한기 훈련이 끝났다. 병사들은 주둔지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고, 병주 역시 자신의 집무실 안에서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아직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동상 환자가 100여명이라고?”

병주의 물음에 참모장 박현호 대령이 가볍게 한 마디 말한다.

“그 인원들 대다수는 심한 동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인원들은 따로 모아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으음. 거의 병력의 1%가 동상에 걸렸군. 쯧.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나?”

박현호 대령은 그 말에 흠흠 거리면서 대답한다.

“일단 병사들의 부주의가 조금 있었습니다. 지휘관의 말을 듣지 않고, 행동을 하다가 동상을 입은 사람이 반 정도 됩니다. 나머지는 지형이 나빠서 평상시 보다 더 추웠다거나 혹은 물에 잠깐 입수했다던가 하는 문제입니다.”

병주는 그 말에도 불구하고 텁텁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병주는 지금 자신의 사단 내에서 병사들이 훈련 도중에 동상을 걸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일단 동상 걸린 병사들을 우선적으로 치료하고, 훈련을 한 병사들은 재정비를 한 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겠군.”

“예. 아무래도 그래야겠습니다. 그런데 주둔지 부근 산골짜기도 이렇게 추워서 벌벌 떨었는데. 그 한반도 북부에서 혹한기 훈련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지금의 훈련 결과 정도를 기준으로 예상할 때, 아마 우리 사단이 한반도 북부에서 훈련을 한다면 반 이상이 동상에 걸릴 것이고, 그 반은 팔 다리를 절단해야겠지. 그리고 혹한으로 죽는 사람이 생기겠지.”

병주의 담담한 말투에 순간 참모들은 숙연해졌다. 지금 끝낸 혹한기 훈련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았다. 병주는 휴우 한숨을 쉬면서 참모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이번 훈련으로 혹한기 작전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을 할 수 있겠군. 뭘 하면 안 되는지 뭘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말이야.”

참모장 박현호 대령은 그 말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사단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들이 한 번 정리를 해놓자고. 다음번에 혹한기 훈련을 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켜야겠군.”

참모들은 병주의 혹한기 훈련 한 번 더 라는 말에 순간 얼굴이 핼쑥해진다. 그러나 그들의 상관은 병주였고, 병주가 이미 지시한 이상 따라야했다. 일단 참모들은 내년에 한 번 더 뛸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일단 병주의 지시에 따라서 차후 혹한기 훈련에 대비하여 준비할 것들을 토의하고 작성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병재 부부와 병윤은 자신들의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 보일러로 뜨끈하게 올라오는 바닥의 온기에 집 안의 사람들은 바깥의 추위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병재는 얼굴을 굳히고는 자신의 막내 남동생인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그 동북 청년단과는 어떻게 되었어?”

병윤은 큰 형님의 형수 메리가 깍은 사과 한 조각을 집어먹고는 대답한다.

“저를 습격한 녀석들은 지금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얼굴을 짓고는 말한다.

“하여튼 별꼴이야. 너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세력이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동북 청년단이라...”

병재가 말 끝을 어느 정도 흘리자 병윤이 한 마디 묻는다.

“큰 형님께서는 그들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니 자세히는 몰라. 나 역시 단편적인 것만 알고 있다. 이야기를 듣기로는 군경과 협력, 아니지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이권을 줍는 극우 단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저번에 그 매판 자본가 박흥식에게서 친일했다는 명목으로 재산을 뜯어갔다고 들었다.”

“으음.”

“아무튼 너를 습격한 사람들 역시 아무래도 박흥식에게서 자금을 쉽게 뜯어내자 다시금 목표를 너로 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말에 병윤은 살기를 띄운 미소를 지으며 병재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게 내 그룹이 약탈하기 좋은 그저 만만한 집단이라고 봤겠군요. 이거 조금 열이 받습니다.”

병재는 흠흠 기침을 하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일단 동북 청년단이 차후에 어떤 행동을 해올지에 따라서 결정을 해야지.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뭐. 그냥 네 마음대로 해라.”

“...... 형님의 눈빛에 조금 망설임이 보였습니다. 왠지 그들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병윤에게 말한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어느 세력에게 전문적으로 붙어서 활동한다는 단체라는 것이다.”

“그 세력이 혹시 이승만 박사의 세력이 아닙니까?”

병재는 그 말에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병윤에게 말한다.

“마음대로 생각해. 나도 정말 거기까지는 모르니까. 정 꺼림칙하다면 병윤이 네가 따로 인원들을 만들어서 조사를 하면 되지 않아?”

“으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보니까... 휴우 알겠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조금 싱겁다는 얼굴로 피식 웃을 뿐이다.

“이제 조금 화제를 바꿔보지. 혹시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들에 대해서 밝혀진 것이 있었냐?”

병윤은 그 말에 미묘한 얼굴을 하고는 큰 형 병재에게 말한다.

“워낙 점조직이고, 또 잠적해서 조금 정보가 찾기가 힘듭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알기는 했습니다. 일단 그들은 해방 전 한반도에서 권세를 누렸던 일본인 가문의 부하들이었습니다.”

“부하?”

“예. 심문의 결과, 자신들이 모시는 사람은 해방 전 상당한 권세를 누렸다고 하더군요. 다만 정치, 관료, 군 쪽은 아니라고 한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아무래도 재계이겠군.”

병재의 말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입으로는 그를 가리켜 어르신이라고 부르는데. 당연히 그 어르신이라는 존재는 한반도에 없습니다.”

“어르신이라. 이거 참 재밌네. 우리들에게도 어르신들이 있지 않은가?”

병윤은 그 말에 알 수 없는 미소로 병재의 질문에 대답할 뿐이었다.

“뭐 계속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일단 그들 역시 어르신의 전령에게 직접 명령을 받을 뿐. 그 외에는 자율적인 활동을 한답니다. 정보들을 수집하거나 아니면 위장으로 한 직업에 종사를 한다거나 말입니다.”

“으음. 그 외의 정보들은 없어?”

병윤은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선 병재에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저들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지만 저들은 우리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얼굴을 구기고는 한 마디 말한다.

“이리저리 팔려갔으니 얼굴 모를 리가 없겠지. 하여튼 정신 못 차린 왜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가?”

그렇게 말하는 병재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거린다. 비록 미수에 그쳤고, 일단 이 일을 직접적으로 실행한 사람들을 붙잡았지만 정작 이 일을 지시한 그 어르신이라는 녀석은 잡지 못했다. 병재는 병윤에게 고개를 홱 하고 돌리더니 한 마디 말한다.

“혹여 그 어르신과 연결된 조직들을 찾을 수 없나?”

“일단 인종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비슷합니다. 문제점은 언어와 억양의 차이인데. 그 것도 이 곳 한반도에 오래 머무르고, 말을 배운다면 전부 다 해결이 되는 문제입니다. 결국 특정 위치를 찾고, 그 곳을 기준으로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이도록 함정을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병재는 함정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보이고 병윤에게 되묻는다.

“함정?”

“예. 함정입니다. 아무래도 경계성이 강한 녀석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그 녀석들을 꾀어내고 유혹할 방법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병재는 그 설명에 잠시 생각을 한다. 병윤이 제시한 함정에 대해서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지만 문제는 바로 시간이었다. 일본의 어르신과 연관된 그들은 언제나 잠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재는 자신이 생각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병윤에게 물었다.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라도 있어?”

병윤은 그 말에 후후 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어르신이 일본에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어르신이 일본에 있는 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점이라. 그렇군. 그 조직과 연락할 수단이 있어야 하겠군.’

병재는 어느 정도 생각을 마치자 이내 병윤에게 사실을 말하며 묻는다.

“아무래도 그 조직들과 어르신이 이야기하는 통로를 끊어놓겠다는 거냐?”

“끊어놓는 방법은 하수에 속합니다. 오히려 그 통로를 입수하여 그들 간에 오고간 정보들을 획득한 뒤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고, 이제는 이 쪽이 그 어르신을 사칭해서 그들을 함정 속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 일본의 어르신에게 일이 잘 되어간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병재는 병윤의 설명에 흥미가 도는 얼굴이었다. 그 조직들과 어르신간의 통로를 접수해서 역이용하겠다는 병윤의 발상에 병재는 조금 감탄했다.

“적절한 방법이야. 한 마디로 어르신과 그 조직들 간의 연락수단을 통째로 훔쳐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큰 형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솔직히 그냥 수단을 끊어버리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편하게 대해주시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겠지...”

병재의 말에 병윤은 흠흠 거리면서 말한다.

“일단 부산이나 혹은 해안가에 일본인들이 내려오는 지 안 오는지 살펴보고, 또 한반도 내부의 접선 자들을 파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그 어르신에 대해서 알 수가 있겠지요.”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병재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일본의 어르신에 대해 조용한 분노와 투기를 발산했다. 아마 그 일본의 어르신이라는 사람이 병재 앞에서 있었으면 그 두 가지 감정이 그에게 쏟아질 것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죽음이지만 말이다. 병윤은 그런 병재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

병윤은 조금 송구스럽다는 얼굴을 하며 병재에게 말한다.

“일이 계속 늦어져서 큰 형님께 결례를 벌였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병재는 그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흥 결례는 무슨.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하여튼 난 내 동생들만 믿어. 나 역시 따로 정보들을 모을 테니 말이야.”

병재와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를 보았다. 그 때, 쇼파에 앉아있는 병재와 병주 두 형제에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병재가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병재의 아내인 메리 헤임질이 서 있었다. 메리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한 마디 말한다.

“제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괜히 낀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병재는 그 말에 조금 당황하면서 답변을 한다.

“끼기는 무슨. 그리고 이제 이야기 다 끝났으니 아쉬워할 것 없어.”

메리는 병재의 그 말에 싱긋 웃더니 말한다.

“그래요? 잘 되었네요.”

메리의 말에 병재는 조금 느낌이 오는지 한 마디 말한다.

“혹시 무슨 일 있어?”

메리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남편에게 말한다.

“사실 우리 재생치료병원의 사무소장 시렌이 파티를 연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병재는 그 말에 조금 놀란 얼굴로 메리에게 되묻는다.

“파티를?”

“예. 저보고 당신의 의사를 물어봤어요.”

병재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더니 메리에게 말한다.

“뭐해? 얼른 준비해서 참가해야지.”

메리는 순간 빙긋 웃고는 병재에게 말한다.

“후후후. 알겠어요.”

병재 부부는 시렌의 파티에 갈 생각에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병윤은 조금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겉 표정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병재에게 말한다.

“일단 이야기는 다 끝난 거죠?”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급하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오늘 조금 바쁘니까 다음에 한 번 또 물어볼게.”

“예...”

병재와 메리는 얼른 외출복장을 갖추고는 곧 집을 나갔다. 병윤은 그 둘을 배웅해주다가 이내 집 안에 들어가서 한 마디 중얼거린다.

“쩝 TV나 봐야겠다.”

병윤은 TV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TV에서 화면이 떴고, 소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도 별다른 소식들이 없었다. 그냥 미곡 수집률에 대해서 알려주고, 소식 방송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모여서 간단한 토의를 하는 정도였다.

병윤은 왠지 신경질이 났다. 바로 그 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병윤이 고개를 홱 하고 돌리자 그 곳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바로 이 집에 살게 된 병윤의 누나인 효순이었다. 병윤은 효순을 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어때? 일은 잘 됐어?”

효순은 그 말에 병윤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한다.

“일단 무리 없이 있어. 휴우.”

효순이 깊은 한숨을 쉬자 병윤이 조금 걱정이 되는지 물어본다.

“누님 무슨 일이라도 있어?”

효순은 그 말에 끄응 하더니 이내 병윤에게 속내를 조금 털어놓는다.

“원래 단체에서 대학을 가려는 내 자매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다 거절을 해서 말이야. 절개 문제도 있지만 여성이 교육을 받으려면 이화에 가라고 말을 하고는 문전박대를 당해서 말이지.”

병윤은 그 말에 금세 낌새를 눈치 챘다.

“아무래도 이화여대는 조금 꺼림칙하겠군.”

“난 솔직히 상관없는데. 이화여대에 있었던 자매들 중에는 이화여대의 교수들이나 선배들에게 일본군에게 팔린 기억이 있어서 그래.”

그 말에 병윤은 생각을 하다가 효순에게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으음. 그 문제는 조금 시간이 걸려.”

효순은 그 순간 눈치를 채고 한 마디 말한다.

“아. 맞다. 오빠랑 너랑 같이 대학을 짓는다고 했지?”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말한다.

“응. 만약 대학이 완공된다면 대학 갈 걱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걱정 말고, 누님께서 그녀들에게 안심을 시켰으면 해.”

“휴우. 다행이다. 알겠어. 시간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괜히 고민이었네.”

병윤은 누나의 고민에 대해서 풀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 작품 후기 ============================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원래 해방 직후 여대말고는 여성들이 대학 가는 것에 대해서 제한이 없었습니까? 만약 없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