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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집 안에서 병주는 자신의 동생인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가능은 하다는 거지?”
“예. 작은 형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런 것들 아닙니까?”
“그렇지. 또 나뿐만 아니라 광복군 전군에 적용될 군용품들이야.”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병주가 한 말을 생각한다. 처음 집으로 들어왔을 때, 먼저 작은 형 병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 일로 매번 늦은 시간에 오던 작은 형 병주가 웬일로 일찍 퇴근을 했다. 그러나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번 달 초에 있는 혹한기 훈련으로 인해 많은 대비를 해야 하는 병주의 입장으로써는 실질적으로 물건을 만드는 병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화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병윤은 병주가 가져온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일단 이 자료들은 바로 요구사항이었다. 영하 30도에서도 버틸 수 있는 군복을 만들라는 소리에 병윤은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이미 생각한 바는 있었다. 병주는 병윤의 얼굴을 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너무 어려운 조건이야?”
“잠시 생각해볼 문제에요. 일단 요구조건을 맞추면 맞출수록 비용이 올라가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병윤에게 말한다.
“야. 이거 너무 비싸면 안 된다. 적어도 무리 없이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싸야해.”
“휴우. 저도 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분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일단 동상은 손과 발부터 온다고 하였으니 동계용 장갑과 군화를 차분히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윤에게 말한다.
“그래. 일단 차근차근히 시작해볼 문제겠지. 그런데 제질은 뭐로 할 꺼냐?”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병주에게 말한다.
“인조 가죽으로 만든 방한성 장갑과 군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조 가죽? 흐음. 천연 가죽은 아무래도 한반도 형편상 쉬이 수급 못할 것이 뻔하지. 그런데 인조 가죽으로 방한성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라나 모르겠다.”
병윤은 그 말에 잠시 동안 턱을 잡고, 생각을 한다. 가성비를 만족시키면서 방한성이 우수한 섬유 소재 때문에 병윤은 생각을 거듭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물질들 중에서 그나마 적절한 것이 없을까? 생각을 하다가 이내 하나를 알아차린다.
“으음. 규소 연료를 소모한 뒤의 부산물이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휴우. 형님. 일단 걱정하실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병윤의 말에 병주는 화색이 밝아오며 말한다.
“오오. 생각이 난 거냐?”
“예. 보통은 석유 화학으로 생각을 했지만 그 쪽에서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규소 화학으로 갈려고 합니다.”
“규소 화학이라면? 그 규소 연료처럼 규소계열 물질을 이야기하는 거냐?”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주에게 말한다.
“예. 규소화합물들 역시 탄소화합물처럼 상당한 많은 범용성을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소 연료를 태운 후에 생기는 물질들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규소 연료의 부산물들을 말하는 것이냐?”
병주는 신기해하며 병윤에게 묻자 병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형님. 보통은 규소 비료로 쓰이고 있는데. 이 것을 토대로 각종 규소 화합물을 생각할 계기가 되었네요.”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거 잘 됐네. 수요가 결국 연구에 도움이 되게 만든 거네.”
병윤은 그 말에 후후 웃으면서 병주에게 말한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방한 물품들에 대해서 기대해도 좋습니다.”
병주는 병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래. 잘 했어. 그런데 언제 제품을 개발할 생각이냐?”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작은 형 병주에게 말한다.
“급할 것 있겠습니까? 다만 겨울이라는 환경은 2개월 정도 남지 않았으니 일단 10일 내로 시제품들을 생산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품을 시험해보고, 또 광복군 상층부로 이야기를 하고 결정하면 제품 양산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알겠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다.”
“흐흐. 솔직히 형님에게 고마운 심정입니다. 적어도 방한성 소재와 규소 화합물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습니다.”
“흥. 알면 돈을 나에게 주던가?”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투덜거리며 병윤에게 말한다.
“이런 장사치 같은 녀석.”
병주의 투덜거림에 병윤은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1946년 12월 23일, 오랜만에 연형칠이 병윤을 찾았다. 병윤은 자신 앞에 있는 연형칠을 보고 툭 한 마디 쏟아낸다.
“네가 여기에 웬일이냐?”
연형칠은 그 말 한 마디에 한 마디 툭 대답한다.
“난 여기에 오면 안 되냐?”
병윤은 그 말에 연형칠을 조금 한심해하며 말한다.
“네가 이러고 있으면 완서가 뭐라 하지 않을까?”
“흥. 완서 이야기는 그만해라. 사실 여기에 온 것은 그냥 단순히 놀러온 것이 아니라서 그래.”
“호오? 놀러온 것이 아니다 라고?”
연형칠은 투덜거리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래. 그 공윤기 기획자가 나를 여기에 보냈어.”
“흐음. 공 기획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그래 무슨 지원을 받고 싶은데.”
“이번에 한반도에 대한 실생활을 촬영하기 위해서 만든 기획이야. 해방 후 1년 뒤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지. 지금 해방 전과 후에는 어떤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는 다큐멘터리 방송이야.”
“아 그런 것을 찍겠다는 소리야? 그런데 경성의 어르신들이 좋아하지 않겠지. 만약 방송 내용이 해방 전보다 못하다고 결론이 나오면 어르신들이 엄청 싫어하실 텐데.”
연형칠은 그 말에 투덜거리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지금이라고 해방 전과 별 다를 것 없잖아. 일단 그 부분에 있어서는 모조리 다 모리배 때문이라고 내용을 덧붙일 것이니 걱정 말고. 지원해 줄 거냐? 말 거냐?”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연형칠에게 말한다.
“지원 해줘야지. 지원 해주고말고. 그 것 말고는 뭐 다른 것은 없어?”
연형칠은 그 말에 생각을 하다가 휴우 한숨을 내쉬고 말한다.
“흐음. 다른 것 역시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일단 내 빚에 대해서 말이야.”
“빚이 뭐?”
“빚에 대한 유예 시간을 좀 줬으면 해.”
“유예 시간? 그게 무슨 뜻이야?”
연형칠은 곤란한 얼굴을 하며 병윤에게 한 마디 이야기를 한다.
“사실은 말이지. 이번에 방송 영역을 넓히기로 하였거든. 그런데 영역을 넓히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서 말이지. 지금 번 돈 다 까먹게 생겼다.”
병윤은 그 말에 연형칠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휴우. 어쩔 수 없지. 1년 정도 유예 시간을 줄게. 그 정도면 되겠지?”
연형칠은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오오! 넌 역시 대인이야! 친구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하는 대인!”
병윤은 그 말을 듣고, 연형칠에게 이죽거리고는 말한다.
“그런데 왜 난 그 말이 호구 자식아 고맙다라는 말로 들릴까?”
연형칠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어. 그렇게 들리는 것 맞아.”
“맞아? 그럼 빚의 유예시간은 반년으로 줄일 거야.”
“야! 낙장불입이야! 한 번 결정했으면 도로 물리는 것은 없지!”
“아직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연형칠과 병윤은 서로 유치하게 말싸움을 붙이며 논다. 그렇게 둘이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내 병윤이 진지한 얼굴로 물어본다.
“그런데 그 방송 일은 어때?”
연형칠은 그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묻는다.
“방송 일? 그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방송국 사장으로써 만족스럽냐고?”
“아아. 그런 말뜻이었어?”
“그래. 이 웬수같은 자식아.”
그 말에 연형칠은 한숨을 쉬면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솔직히 만족스럽기는 하지. 요즘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만나는 TV 알지? 거기서 내 방송이 흘러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 살 맛이 난다. 비록 완서에게 빚을 진 인간이라고 타박이야 받겠지만 난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잘 됐네. 하여튼 방송 일이 네 적성이라는 것이지?”
연형칠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마디 대답한다.
“그래. 맞는 말이야. 요즘은 한반도 사람들 대다수가 농민이라서 농업에 관한 교육 방송들을 꾸미고 있다.”
“아. 저번에 마을 어른들이 보시고 있던 것 말이냐?”
연형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윤의 물음에 동의한다.
“그건 내가 생각한 방송이야. 공윤기 기획자도 내 생각을 들으니 좋은 계획이라고 말을 할 정도였지. 요즘은 사람들이 그 방송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정도이지.”
“잘 됐네. 너도 이제 일을 좀 하는 구나.”
연형칠은 그 말에 쓰게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흥. 일은 원래부터 하고 있었어. 다만 그 일이 성공적이냐 아니면 실패를 하는 것인가의 차이이지. 요즘은 동협 그룹에 대한 취재 열기로 바쁘다.”
“나를?”
“그래. 요즘 모리배 특집이라고 해서 세상의 약아빠진 녀석들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는 것들이다.”
“미친 놈. 나를 모리배 취급하는 거냐?”
병윤의 물음에 연형칠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너 정도면 모리배지. 그 것도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이 기생충 같은 자식이지!”
“흥. 나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 난 사람들에게 많은 기부를 했다고.”
“그만큼 네가 버는 것도 많잖아! 이 기생충같은 녀석아!”
“그거야 내 능력이고. 그리고 분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너 설마... 빨갱이는 아니지?!”
“웃기는 소리. 내가 빨갱이면 넌 흡혈귀야!‘
결국 병윤과 연형칠은 다시 한 번 유치한 말다툼을 벌였다.
같은 시각, 재생치료병원 안에 있는 병재의 진료실에는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붕대로 얼굴을 감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환자를 보고, 진료를 기다리던 환자들은 특이한 환자가 다 있다며 수군거린다. 그렇게 붕대로 감싼 환자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다.
병재는 그 환자의 특이한 모습에 한동안 관찰하다가 한 마디 말한다.
“환자분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그 말에 붕대를 쓴 환자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붕대들을 차츰 풀기 시작했다. 붕대를 풀면서 가려진 얼굴의 모습은 흉측했다. 얼굴이 불쑥 불쑥 튀어 나왔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너무 끔찍해서 다가가기 힘든 얼굴들. 그리고 그런 얼굴들 덕분에 역사 대대로 경원시된 사람들. 바로 문둥병 환자였다. 병재는 그 환자의 얼굴을 보고, 문둥병의 사람을 실질적으로 접했다는 것에 으음하며 환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메리에게 한 마디 말한다.
“진료실 문을 닫아줘.”
메리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진료실 문을 닫았다. 갑작스럽게 문이 닫히자 여기에 대기한 환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이 곳을 잘 아는 환자 한 사람이 의아한 환자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아무래도 골치 아픈 사람이 저 안에 들어온 것 같군.”
“골치 아픈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남들 보기에 흉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 말이야. 또 전염병 걸릴 우려가 있다는 사람들도 말이지.”
“그래? 그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문을 닫는 거야?”
“그렇지. 요즘은 별에 별 환자들이 들어와서 많은 골치를 앓나봐.”
그렇게 환자들은 그냥 별 일이 발생했다고 믿고는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환자들이 넉살좋게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동안 병재의 진료실에는 병재의 진지한 얼굴이 환자에게 시선을 쏟았다.
“휴우.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이해는 갑니다.”
그 말에 흉측한 얼굴을 지닌 환자가 병재에게 한 마디 이야기한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제가 치료받을 수 있습니까?”
병재는 그 말에 문둥병 환자의 증세를 눈으로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문둥병 환자는 그 말에 휴우 다행이라는 얼굴을 짓는다. 그리고 병재에게 한 마디 확인을 하고자 다시 말한다.
“그 말이 참말이 맞지요?”
“참말입니다. 그래서 치료받겠습니까? 아니면...”
“치료받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기 싫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세상을 저주하는 삶따위는 지쳤습니다.”
병재는 환자의 푸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한 번 치료를 하겠습니다.”
결국 병재는 문둥병 환자를 치료하기로 한다. 문둥병은 일명 한센병이라고 불리는 병으로써 나균이라는 병균으로 감염되는 전염병이었다. 그런데 사람들 95% 가량이 이 나균에 저항성이 있었고, 나머지 5%만이 나균에 감염되어 한센병의 환자가 되는 것이었다.
병재는 환자 몸속에 있는 나균부터 소멸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침을 들었다. 그러자 환자는 조금 놀라면서 병재에게 묻는다.
“그런데 치료는 침으로 하는 거요?”
“침으로 합니다. 뭐 다른 방식이 있는데. 그 것으로 하겠습니까?”
그 말에 문둥병 환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아닙니다. 그냥 침으로 치료받겠습니다.”
결국 병재는 침으로 문둥병 환자의 치료를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문둥병은 일명 한센병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병입니다. 역사가 시작됨으로써 이 병은 상당한 전설같은 일화를 만들 정도입니다. 지금이야 치료법과 약들이 있어서 별로 걱정은 안 했지만 그런 치료법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환자들은 멸시받기에 이릅니다. 문둥병 환자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청준 선생님이 지은 '당신들의 천국'을 읽어보시면 더 빠르게 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