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366화 (36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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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7년 3월 3일, 지난 3월 1일 기념행사에서 좌우익이 남대문에서 각목을 들고 결투를 벌인 사건을 두고, 연일 TV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번 일을 두고, 수도 경찰청의 고위 간부인 장택상이 이번 기자회견에서 발표를 하였다.

-경사스러운 3·1절 기념식 끝에 혼란이 일어나 극소수나마 사망자가 났다는 것은 크게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시위행진은 일체 않겠다고 서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데 대하여는 그 주최자 측의 책임자가 당연히 처벌될 것이며 경찰로서 시위행진을 강압적으로 제지하려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일이지마는 강압적 수단을 취하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단호 중지를 못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시위행진이 서대문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서 기어이 해산을 못시키고 서울역 편으로 가게 한 것은 일이 나고 보니 서대문서의 실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발표를 한 장택상은 곧 이어지는 기자들의 각 질문에 답을 해줬다. 그런 TV의 화면을 보고, 길남효는 자신의 아들들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날이 갈수록 좌우익 대립이 심해지는군.”

병재는 그 말에 끄응 하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굳이 우리가 이 것에 신경 쓸 여력은 없다고 보십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눈빛을 날카롭게 하고는 병재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건 왜지?”

“아버지라면 집안이 좌우익 대립으로 갈라서는 꼴을 보고 싶습니까?”

“그건 아니지. 으음.”

병주가 자신의 아버지인 길남효에게 한 마디 말한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버지.”

“아무런 일이 없다.”

병윤은 그 말에 길남효에게 한 가지 말한다.

“솔직히 우리 형제들 역시 이런 상황에 자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곳에 끼어들어봤자 분란만 더 커집니다.”

“으음.”

“좌우익을 통합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가 왜 여운형 선생의 요청을 거절했습니까? 세계의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그렇게 상황을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휩쓸려가야 하나?”

길남효는 퉁한 얼굴로 병윤에게 쏘아 붙이자 병윤은 진정하라는 말투로 대답을 한다.

“물론 우리가 휩쓸려서는 안 되지만 현실은 다른 법입니다. 아버지.”

“쯧. 그 놈의 현실. 알겠다.”

길남효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예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틀어 버렸다. 그러자 TV화면은 병윤의 친우인 사현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방송이 보인다. 방송국 내부에 시설을 만들어서 그 곳에 진행자와 참가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방송이었다.

진행자와 참가자들이 잘 어울러져 서로 농담을 하며 지내는 방송 ‘내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러 계층 사이에서 꽤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단 이야기 진행 내용이 정치적인 내용과 사회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참가자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었다. 국가와 경찰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재치 있는 진행자의 물 흐르듯 넘어가는 진행능력과 만담까지 더해지자 길남효는 깔깔 거리며 웃는다. 병재, 병주, 병윤은 휴우 하고 자신들 역시 TV화면에 집중했다. ‘내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버지 길남효 뿐만 아니라 어머니 김민숙, 그리고 효순 역시 좋아했다.

병윤은 이 TV 방송 내용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꽤나 재능 있네. 이런 방송까지 만들고 말이야.’

‘내 아름다운 이야기’는 병윤이 전에 듣기로는 연형칠이 직접 구상하여 제작했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병윤은 이 방송을 보면서 연형칠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방송 내용은 진행되다가 이내 진행자인 조환진이 참가자 박석현에게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혹여 박석혁 참가자께서는 집에 새로 보일러를 갖췄습니까?-

그 말에 TV 화면 속 박석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환진에게 대답한다.

-하하. 보일러는 무슨. 그냥 옷을 두껍게 껴입고, 편안하게 잤습니다. 보일러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 아궁이에서 불이 나는 것을 더 좋아하지.-

그 말에 방청객들이 깔깔 웃어댄다. 그러다가 이내 조환진이 큐카드를 들고, 박석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혹여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 여러분에게 한 마디 말씀하십시오.-

-이번에 방송국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 ‘숙이는 내 운명’을 많이 사랑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조환진은 박석현에게 한 마디 던진다.

-아 박석현씨. 여기는 ‘내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숙이는 내 운명’ 홍보장이 아니에요. 아 잠시만요. 전화가 왔군요.-

조환진은 전화기가 없는 데도 전화기가 있는 척 하더니 이내 송수화기를 받는 척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아 사장님. 그냥 이 곳은 홍보장이라고요? 예. 예. 알겠습니다. 여기는 홍보장 ‘내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방청객들은 조환진의 말에 하하 웃는다. TV를 보고 있던 길남효 역시 방청객들 따라 웃는다. 그렇게 길남효가 TV에 정신을 팔릴 동안 병재, 병주, 병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모레에 직접 미국으로 가는 거냐?”

병주의 물음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두 형에게 한 가지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보인다.

“미국의 마스터가 저를 향해 초청을 했습니다.”

미국에 한 때 생활했던 병재가 턱을 쓰다듬으며 한 마디 말한다.

“마스터라... 어지간히 비밀스러운 인물이군. 하지만 이 편지 밀봉 방식과 필체를 보니 꽤나 최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런 최상류층이라면 결코 비밀을 유지할 이유가 없을 텐데.”

“큰 형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유력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병재는 그 말에 으음 하더니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두 가문 중 한 사람이겠군. 하나는 록펠러 가문, 하나는 로스차일드 가문. 두 가문은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지. 뭐 소문을 들어보면 미국의 그림자 정부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이야.”

“흐음. 그림자 정부라.”

병재는 병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는 말을 해준다.

“우리 가족이 만만치는 않지만 그들을 대항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들의 인맥은 다른 최상류층 미국의 가문까지 얽혀 있다고 보면 된다. 아마 마스터도 그런 인물들 중 하나이겠지.”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록펠러 가문이 유력하겠군요.”

“록펠러라. 록펠러 가문은 석유에 관련된 것에 모든 지분이 있다. ‘석유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이니 말이야. 아무래도 네가 밀고 있는 규소 연료 사업과 또 2차 전지 사업이 그들의 산업에 위협을 줄 수 있지.”

“그 때문에 미국 본토에서는 조선유의 수입을 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윤에게 말한다.

“처음 산업을 시작할 때는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최대 규모의 석유 화학 공업 단지들이 즐비하다. 만약 규소 연료를 수입하게 된다면 석유의 지분이 확 떨어지지. 그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조치이지.”

“저 역시 그들을 자극할 생각은 없습니다.”

“잘했다. 그들과 괜히 충돌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들이 우리를 직접 노려서 싸움을 걸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충돌을 할 거지만 말입니다.”

병재와 병주는 병윤의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짓는다. 지금은 안 부딪치겠지만 언젠가는 부딪칠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해서 많은 준비를 해놓아야 했다.

1947년 3월 5일, 미국의 어느 고풍스러운 저택, 병윤과 손채현 비서는 복장을 차려 입고는 저택의 집사를 따라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택은 르네상스식으로 된 화려하기 그지없는 저택이었다. 그 저택의 복도를 걷다가 이내 집사가 어느 방문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문을 두들긴다.

-똑! 똑! 똑!-

그러자 방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손님인가 보군. 안으로 모시게나.”

그 말에 집사는 직접 문을 열고, 병윤과 손채현 비서를 안으로 들인다. 그러자 그 방 안은 장인들이 손수 제작한 장식품들과 원목으로 만든 가구들, 그리고 책장들 안에 가득한 책들이 존재했다. 그런 방 안 중간에는 원목으로 된 테이블과 또 테이블 주위에 쇼파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 베네치아의 가면 축제처럼 가면을 쓴 한 남성이 눈에 보였다.

바로 마스터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마스터는 병윤과 손채현 비서를 보더니 서서히 일어나고는 이내 병윤에게 악수를 청한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길. 제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에 병윤 역시 싱긋 웃으며 마스터에게 말한다.

“오히려 저를 초청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 겸손하시군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마스터와 병윤, 손채현 비서는 각각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마스터의 집사는 마스터에게 인사를 하고는 말한다.

“손님을 대접할 상들을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오.”

그 말에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나간다. 마스터는 다시 병윤과 손채현 비서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싱긋 웃고는 말한다.

“이번에 처음 보는군요. 편지에서 봤듯 저를 마스터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마스터에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병윤과 마스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탐색전을 치른다. 둘 사이에는 화목한 말들이 오고 가지만 손채현 비서가 느끼기에는 두 맹수가 서로를 간보기 위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마스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병윤에게 말한다.

“이제 슬슬 본 이야기로 들어갔으면 좋겠군요.”

병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터에게 말한다.

“그게 좋겠습니다.”

손채현 비서는 두 사람의 말과 서로를 향해 응시하는 얼굴을 보고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킨다.

“요즘 한반도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마스터에게 말한다.

“한반도라 해봤자 미국 본토와는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연못 속에서 튀어봤자 얼마나 튀겠습니까?”

“후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지요.”

한 마디로 반박하는 마스터의 말에도 불구하고 병윤의 얼굴은 변함없었다. 마스터는 그런 병윤의 여유로운 태도에 대해서 속으로 ‘제법 하는군’이라고 중얼거린다. 마스터는 병윤을 좀 더 자극해볼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병윤은 왠지 씨가 안 먹힐 것 같았다. 마스터는 결국 손에 깍지를 끼고, 한 마디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미스터 길 당신을 초대한 이유는 당신의 사업이 우리에게 위협이 됩니다.”

마스터가 병윤에게 돌직구를 날리자 병윤은 하하 웃으면서 마스터에게 말한다.

“위협이 된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기업에서 개발한 조선유는 우리 석유화학 산업에 많은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도 불구하고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을 한다.

“미국 본토에서 조선유의 수입을 금지한 이유에 대해서 저도 잘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름 하나 나오지 않는 한반도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는 것은 잘 알지 않습니까?”

마스터는 그 말에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개미새끼가 사람에게 위협이 된다면 개미새끼가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밟아 죽일 수 있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렇게 받아친다.

“거대한 사람이라도 한 순간 죽일 수 있는 독들을 가진 곤충은 많습니다.”

그 말에 마스터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진다. 그러나 병윤의 표정은 웃음으로 가득 찰 뿐이다. 결국 마스터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반기며 말한다.

“하하. 이거 한 방 먹었군요.”

병윤은 그 때가 기회라는 것을 직시했다. 병윤은 여유로운 미소를 가지며 마스터에게 한 마디 말한다.

“솔직하게 우리 두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간극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병윤의 말에 마스터는 ‘호오?’거리며 병윤의 말을 기다린다.

“규소 연료와 석유 연료,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또 대립을 할 수밖에 없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마스터가 원할 때까지 미국으로의 규소 연료와 그에 필요한 엔진을 수출하지 않겠습니다.”

마스터는 그 말에 턱을 매만지면서 병윤을 향해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날리며 이야기를 한다.

“흠. 너무 오냐오냐 해서 정신이 나갔군요. 저에게 제안을 하는 것입니까?”

마스터에게서 은근한 살기가 내비쳤다. 그러나 병윤의 얼굴은 여유만만이었다.

“마스터가 숨기는 힘이 많듯 저도 숨기는 힘이 많습니다. 뭐 여기서 제안이 깨지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불가침조약을 맺는가 아니면 전쟁을 선포 하는가는 마스터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스터는 병윤의 여유만만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은근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이내 마스터는 피식 웃고는 한 마디 말한다.

“저에게 선택권을 주시다니. 당신의 담도 만만치는 않군요.”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마스터에게 말한다.

“이것보다 더한 상황을 겪어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소풍이 아니겠습니까?”

마스터는 병윤의 그 말에 진심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허풍으로 봐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굳이 대립할 의도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마스터는 여기서 일을 끝낼 수는 없었다. 마스터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후후. 그렇다면 규소연료를 만들 기술들을 베풀 수 있습니까?”

“흐음. 당신들이 이룩한 석유 산업들을 포기할 방침입니까?”

그 말에 마스터는 싱긋 웃으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저도 보험을 하나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마스터의 의중을 생각한다.

‘아무래도 자신들 역시 석유의 시대가 끝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군.’

병윤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마스터에게 한 마디 이야기를 한다.

“흠. 규소 연료도 규소 연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것을 돌릴 엔진입니다.”

“간단하군요. 두 가지 주시면 당신이 제안한 불가침협정을 맺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마스터에게 한 마디 말한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마스터. 당신들의 석유를 저와 거래해주시면 들어주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스터는 오히려 한 가지 더 제안을 하는 병윤의 말에 병윤이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용감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런 병윤의 태도에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기브 앤 테이크! 아마 마스터와는 대립 관계보다는 안 부딪친다는 개념으로 갈 것 같습니다. 병윤을 비롯한 형제들에게는 적들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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