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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7년 4월 20일, 몽양 여운형이 길남효를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전대미문의 사태에 병재, 병주, 병윤은 서로 모여서 수군거렸다. 병재는 병주와 병윤의 얼굴을 보고 묻는다.
“몽양 선생이 우리 집안을 찾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병주는 병재의 묻는 말에 텁텁하다는 인상을 남기고는 대답한다.
“글쎄요. 그 선생, 요즘 암살 위협이 자자했다고 들었던데.”
병주가 암살에 대해 언급을 하자, 병재와 병윤의 얼굴은 조금 안타까운 얼굴이었다. 병재는 쯧쯧 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 선생을 대놓고 보호하기는 그렇고, 또 그렇다고 놔둘 수는 없고.”
병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병재의 말에 동조한다.
“휴우. 그런 태풍을 몰고 오는 선생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볼 일이 있겠습니까? 일단 그 선생의 기상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죠.”
병주는 그 말에 병재와 병주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한 마디 말한다.
“우리들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를 찾았다는 것이 문제. 아버지가 여운형 선생 따라서 설득 당해서 그 쪽으로 가버리면 우리들 역시 그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세 형제 중 큰 형 병재는 아무런 말을 못한다.
“으음... 이거 큰일이군.”
병윤은 두 형님들의 얼굴을 보고선 한 마디 말한다.
“일단 몽양 선생이 우리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을 할지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병재와 병주는 병윤의 말에 내심 동조를 하는 듯 ‘어쩔 수 없지.’라는 대답을 하고는 자신들도 일단 여운형이 어떤 말을 꺼낼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세 형제가 고심한 얼굴로 자신들의 아버지가 있는 생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여운형과 같이 따라간 조동호는 의외의 집에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그 둘을 바라보며 길남효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한 마디 인사를 나눈다.
“제가 병재, 병주, 병윤의 애비가 되는 길남효라고 합니다.”
길남효가 당당한 표정과 태도로 여운형에게 악수를 청하자 여운형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남효의 악수를 받으며 대답한다.
“해방 뒤에 만난 것치고는 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길남효는 여운형의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말한다.
“요즘 집 안의 가장으로써 조금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누추한 곳까지 직접 몸을 이끌고 찾아오시다니 전 많이 놀랐습니다.”
길남효의 말대로 여기는 누추하기는 했다. 전형적인 초가집의 형태로 되어 있는 생가를 보니, 집에 대한 어떤 보수적인 성격이 보였다. 여운형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남효에게 말한다.
“집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자신이 편하면 집의 형태가 어떠하듯 상관 없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미소를 활짝 피우고는 이내 여운형과 조동호에게 말한다.
“그럼 이 집 안에서 이야기를 나눕시다그려.”
길남효는 집의 주인으로써 여운형과 조동호를 손님으로 받아들였다. 길남효가 잠시 자신의 아내 김민숙에게 말해서 손님들을 위한 상을 차려달라고 이야기할 동안 병재, 병주, 병윤 세 형제가 생가를 찾았다. 병재가 형제들의 대표로써 여운형과 조동호에게 인사를 한다.
“그간 격조 없었습니까? 선생님?”
그 말에 여운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 명을 바라보며 말한다.
“한반도에서나 세계에서나 명성이 자자한 세 형제들을 직접 바라보는군.”
여운형의 그 한 마디에 세 형제들은 뭔가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만을 남긴다. 그 때, 자신의 아내 김민숙에게 부탁을 한 길남효가 여운형과 조동호이 있는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자신의 세 아들들을 발견하고는 말한다.
“너희들도 왔느냐?”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버지에게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길남효는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병재의 말에 대답을 한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비록 효순이가 일을 나간 것은 아쉽지만 너희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여운형과 조동호가 길남효와 병재, 병주, 병윤의 세 자식들 사이를 관찰할 때, 보통 유대 관계가 아니었다. 가족의 정이 단단히 뭉쳤다는 인상이 확 들었다. 여운형은 그런 관계가 조금 부러운 듯 한 마디 말한다.
“가정이 화목하군.”
조동호가 그 말에 여운형에게 말한다.
“왜 부러운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해서 자신의 가정들을 화목하게 만든 뒤에야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저 예시가 저 가족에게 들어맞는 기분이 들어.”
조동호는 여운형의 그 말에 빈말 한 마디 말한다.
“맞는 것 같네.”
길남효와 병재, 병주, 병윤이 여운형과 조동호를 마주본 채로 앉아 있었다. 길남효는 여운형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솔직히 몽양 선생이 우리 집을 방문하신 것에 대해서 저는 가문의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여운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남효에게 말한다.
“하하. 요즘은 당신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 가족들에게 빚을 진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아들과 딸들은 잘 크고 있는지, 요즘 고민은 없는지. 또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어느 정도 푸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동안 김민숙이 상을 차려와 여운형과 조동호를 대접했다.
병재, 병주, 병윤은 간간이 질문을 던지는 여운형과 조동호의 말들을 받고, 간단하게 대답을 한다. 이제 슬슬 서론거리도 떨어질 무렵 여운형은 후후 웃으면서 길남효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이제 슬슬 우리가 이 곳에 온 목적을 꺼냈으면 좋겠군요.”
여운형이 그렇게 말하며 태도를 바꾸자 길남효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저도 많이 기다렸습니다.”
여운형은 길남효를 순간 보더니 이내 한 마디 말들을 꺼낸다.
“이 한반도에는 3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반도국가입니다. 그리고 2년 전에야 겨우 일제의 손아귀에서 해방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 2년 동안 한반도의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지도자들이 제 잇속을 채우기만 하고, 각 군정들은 그저 지나가는 심정으로 우리 한반도를 바라볼 뿐입니다.”
여운형의 기백이 터지는 말 한 마디에 길남효는 으음 하고는 여운형을 쳐다본다. 그러나 여운형의 말은 계속 되었다.
“작년 재해 사태동안 무능했던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민중들은 힘들다고 대구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민중들은 무력하게 진압을 당했습니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힘없는 양민들입니다. 저는 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외세의 바람에 흔들림 없는 정치를 할 생각입니다.”
“......”
여운형은 길남효에게 고개를 숙이고 한 마디 부탁을 건넨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한반도에는 당신들이 필요합니다.”
길남효는 여운형의 그 말에 으음 하고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아들들을 바라본다. 길남효의 눈치에 병재가 흠흠 거리면서 여운형에게 말한다.
“저희들에게 굳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전 선생님께 권유해 드리고 싶습니다.”
병재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더니 여운형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몽양 선생님. 잠시동안 정계에서 은퇴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여운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갑작스럽게 은퇴 권유를 하는 병재의 의도에 여운형과 조동호는 순간 말이 안 나왔다. 병재의 말에 이유를 덧붙이는 것은 병윤이었다.
“두 사람도 생각을 안 하십니까? 더 이상 정치판에 끼어들었다가는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운형은 그 말에 굳은 심지를 한 얼굴로 대답을 한다.
“의사가 자기 죽을 것 피하고자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네.”
병윤은 그 말에 휴우 한숨을 내뱉으며 여운형에게 말한다.
“몽양 선생님. 요즘 따라 당신에게 암살범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
여운형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올 해 들어 자신에게 가해지는 재난들이 더더욱 심해졌다. 정치적인 공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에게 불만을 가진 극단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 정도였다. 한 달 전에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방화를 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운형은 굳은 얼굴로 병윤의 말에 답을 한다.
“나에게 불만 있는 사람들이 많지. 그러나 난 내 뜻대로 의연하게 살 뿐이야.”
병윤은 그 말에 한 마디 충고를 준다.
“의연하게 가는 것도 좋지만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한 가지 방안입니다.”
여운형은 그 말에 반대로 병윤에게 물어본다.
“자네는 나와 같은 상황이 생길 때, 그렇게 행동할 것인가?”
“예. 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으음...”
병주가 재차 여운형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제가 군대에 알기로는 선생님을 암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계속 정계활동을 하다가는 진짜로 죽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물론 제 형제들은 당신이 이렇게 활동을 하다가 죽는 것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운형에게 말한다.
“선생님이 은퇴를 하시면 저희 형제들이 자리를 알아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운형은 그 말에 이내 결심을 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군.”
순간 병재, 병주, 병윤은 아무런 말을 못했다. 여운형은 이내 길남효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 마디 말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실 것입니까?”
길남효는 그 물음에 조용히 생각을 하더니 이내 여운형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저로써는 거절입니다. 선생님의 행동과 이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식들과 친우들, 그리고 TV에서 선생님의 행동과 말들을 많이 관찰했고, 또 선생님이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
“그러나 제 아들들이 원치를 않는 군요. 전 아들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제 자신만의 의견을 밀고 나가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으음.”
“비록 직접 저희들을 찾아와 권유를 하신 것 감사하지만. 우리와는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여운형의 권유는 끝내 거절당했다. 여운형과 조동호가 다시 제 갈 길을 가고 생가에 자신의 가족들만 남게 되자 길남효는 아들들을 바라보고는 크게 한숨을 짓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정말로 괜찮은 거냐?”
그 말에 병재, 병주, 병윤은 한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병재가 괴로운 얼굴을 짓고는 결국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을 한다.
“잘 하셨습니다. 아버지.”
길남효는 병재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 마디 묻는다.
“왜 우리가 여운형 선생의 제의를 거절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와 여운형 선생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의 이상은 훌륭하고, 따라가게끔 하는 매력을 느끼지만 그러기에는 여운형 선생의 목표가 너무 높고, 또 그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선생은 너무 고결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길남효가 그렇게 묻자 병재가 한 마디 대답한다.
“정치는 오물을 묻혀야 합니다. 또 괴로운 결정들이 많을 것입니다. 결국 그 정치의 독이 여운형 선생에게 쏟아질 것입니다. TV에서 봤던 암살 건들을 기억나십니까? 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런 것쯤은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남효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병재에게 묻는다.
“그럼. 여운형 선생에게 정계 은퇴를 권유한 이유는...”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여운형 선생은 별세를 하실 것입니다.”
“......”
병재는 그 말을 하고 난 뒤 휴우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 길남효에게 말한다.
“장씨 아저씨가 가는 그 정치판이라는 곳이 그만큼 무서운 곳입니다. 아버지.”
순간 길남효의 얼굴은 흙색이 되다 못해 검게 변한다.
한편, 경성으로 돌아가는 기찻길에 몸을 실은 여운형과 조동호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는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미련을 못 버리는 건가?”
조동호가 이렇게 묻자 여운형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들도 언젠가 내 뜻을 알아줄 날들이 오겠지.”
조동호는 그 말에 여운형에게 한 마디 말을 던진다.
“이미 안 지는 오래야. 그들은 이미 선택을 했을 뿐이네. 자네는 선택을 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시 돌리고자 하는 것뿐일세.”
“후후후. 그럴 수도 있겠군.”
“솔직히 난 아까 세 형제가 하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네. 이대로 가다가 자네는 물론 자네 가족들이 위험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순국할 마음을 품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건 너무 하다고 생각하네.”
여운형은 그 말에 얼굴을 조금 찡그리며 조동호에게 말한다.
“자네까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가?”
조동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여운형에게 대답을 한다.
“살면서 기회는 많이 있어. 정계에서 은퇴를 한다고 하면 자네를 향한 암살의 발걸음들도 많이 줄겠지.”
“내 목숨을 구차하게 연명하면서 내 뜻을 꺾을 생각은 없어.”
조동호는 그 말에 답답하다는 듯 여운형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게나. 그리고 난 구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자네는 우리들에게 우상이자 희망이야. 그런 자네가 갑작스럽게 순국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겠나?”
“......”
“산은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민중들은 나의 말들을 기다리고 있고, 민중들의 괴로움을 난 알아야 하네. 그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제 목숨이 아깝다고 숨어지내고 싶지는 않아.”
조동호는 그 말에 휴우 하고 여운형에게 한 마디 말한다.
“쯧. 자네는 결심을 한 모양이군.”
“미안하이.”
“만약 자네가 죽는다면 자네의 식구들은 어떻게든 먹여 살리겠네.”
조동호의 말 한 마디에 여운형은 매번 감사했다. 역시 친구를 잘 사귀었다고 생각한 여운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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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여운형 선생은 원역사대로 죽을까요? 아니면 은퇴를 할까요? 저 결심을 꺾을 수 있는 말들이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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