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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7년 6월 24일, 문경 재생치료병원 병재는 지금 한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순히 의사 대 환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의 일에 관한 것이 달랐다. 병재의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은 이번에 수도경찰청장으로 취임한 장택상이었다.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은 경찰간부들과 같이 찾아왔고, 마약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중국을 망가뜨리기 시작한 문제, 바로 아편 문제였다.
“아편이라...”
장택상은 병재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조금 영역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약학에 대해서도 자네가 가장 전문적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네.”
병재는 그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장택상에게 말한다.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그 말에 장택상은 벌떡 일어서며 병재에게 말한다.
“그게 정말인가!?”
“다만 환자에게나 지금 아편을 단속하는 경찰에게나 답답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답답한 과정이라는 말에 장택상은 슬그머니 자리에 앉고는 고민을 하더니 이내 듣고 판단하자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일단 한 번 말해보게나.”
“그럼.”
병재는 곧 장택상을 포함한 경찰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마약 문제는 뇌에 상당한 자극을 주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약을 끊어버리면 그 뇌가 버티기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약을 아예 끊는 것이 아니라 마약을 하더라도 차츰 줄이는 방향으로 유도해서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설명을 했다. 장택상은 병재의 말을 듣더니 끄응 거리면서 말한다.
“자네 말대로 우리에게나 환자에게나 답답한 방법이군. 그 외 다른 방법은 없는가?”
병재는 그 말에 으음 하더니 잠시 생각을 하고는 장택상에게 말한다.
“인체에 무해한 약효로 중독 현상을 약화시키는 방향이 있지만 그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시간과 돈이 들 것입니다. 마약에 관해서 인체의 정신력은 꽤 나약한 편입니다.”
“......”
“물론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만연한 아편 확산을 차단하고, 환자들을 격리시켜서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가장 적당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택상은 병재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뒤에 서 있는 경찰들에게 눈치를 준다. 그러자 경찰간부들 중 두 명이 가서 밖으로 나간다. 병재는 그 두 사람의 뒷모습에 눈치를 챈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환자를 보여줄 셈이군.’
병재의 예상은 곧 들어맞았다. 경찰간부 두 명이 양손에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환자를 대동하고는 나타난 것이다. 장택상은 그 간부 두 명에게 묻는다.
“제대로 데려온 것 맞지?”
그 말에 간부 두 명 중 한 사람이 장택상에게 대답한다.
“아편 피는 녀석들 중 가장 심각한 놈입니다.”
장택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재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병재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장택상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 분을 토대로 어떻게 치료하는지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까?”
장택상은 그 물음에 으음 하면서 병재에게 말한다.
“웬만하면 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나?”
“여기는 병원입니다. 환자를 맞이하는데 당황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장택상은 그 말에 으음 하더니 이내 자신 역시 병재의 말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병재에게 묻는다.
“그럼 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지 확인 좀 해주겠나?”
병재는 그 말에 긴말하지 않고, 경찰들이 데려온 환자를 살펴본다. 병재가 관찰한 환자는 어떤 환자보다도 심각했다.
‘갈 데까지 간 폐인이군.’
어떤 의지도 어떤 말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는 것만 빼놓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죽은 사람이었다. 병재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우선 조금 솜씨를 발휘하려고 했다. 먼저 환자를 침대에 눕히고는 품속에서 무언가 꺼낸다. 바로 병재의 특기인 침들이 담긴 침통이었다. 자신의 상징이기도 한 이 침통 속에서 침들을 꺼낸 병재는 조심스럽게 환자의 몸 구석구석 찔러가기 시작한다.
장택상을 포함한 경찰간부들은 조용히 병재가 하는 짓을 쳐다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환자가 조용히 시선을 병재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경찰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장택상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적어도 의학에 관해서 신의 경지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군.”
병재는 장택상의 말을 신경 쓰는지 안 쓰는지 우선적으로 환자에게 정신을 집중한다.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껌뻑이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허우적거린다. 그러다가 이내 병재에게 시선을 집중하더니 이내 순간 팔로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른다.
“끄아아아악! 끄아아! 머... 머리가... 머리가 아파! 머리가!”
순간 환자의 난동과 비명에 경찰들이 벌떡 일어서서 환자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병재가 한 손을 척 들며 경찰들을 제지시키고는 환자의 팔을 떼어놓고, 빠른 손놀림으로 환자의 머리 구석구석을 침으로 찌른다. 다행히 효과는 빨랐는지 환자의 난동은 점차 사라진다.
“으으으... 머리가 아파...”
아까의 극통은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자신의 머리가 콕콕 찔리는 아픔을 느끼는 환자는 이내 병재에게 시선을 두며 묻는다.
“여기는... 여기는... 어디오?”
병재는 그 물음에 환자에게 간단히 대답한다.
“병원입니다.”
환자는 병재에게 대답을 들었지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되묻는다.
“병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으으으... 머리가...”
그 때, 병재에게서 장택상이 다가와 묻는다.
“대단하군. 이 환자의 경우는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심문할 여지가 없었는데 말이야. 지금 바로 정신을 깨우다니.”
그 말에 병재는 장택상에게 시선을 돌리며 씁쓸한 얼굴로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심문은 하지 않은 것이 좋겠습니다.”
“그건 곤란하네. 우린 한시라도 빨리 아편문제를 해결해야하거든.”
병재는 그 말에 휴우 한숨을 쉬며 장택상에게 한 마디 말한다.
“심문 도중 환자가 고꾸라져서 죽는 꼴을 보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장택상은 끄응 하고는 병재를 쳐다본다.
“쯧. 알겠네. 저 인간이 심문할 여력이 되면 우리 경찰에게 꼭 보내주게나.”
장택상의 부탁에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택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를 지켜본다. 환자는 장택상의 강렬한 눈빛에 겁이 났다. 그러다가 이내 병재가 몸에 다시 침들을 놓자 이내 시선은 병재에게 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병재는 일단의 조치를 환자에게 해놓고는 그 환자를 자신의 아내이자 전속 간호사인 메리에게 맡겨두고는 자신은 다시 장택상과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그 환자는 어떻게 잘 치료가 되었나?”
그 말에 병재는 씁쓸하기 그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치료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저 사람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치료는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택상에게 한 마디 말한다.
“치료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에 꽤 많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서 그렇지. 그런데 경찰 측에서 그런 곳에 여력과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병재의 말에 장택상은 씁쓸한 얼굴을 지으면서 말한다.
“아픈 곳을 잘도 찌르는군. 맞는 말이야. 아편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우리 일이지. 아편에 중독된 사람들을 따로 책임지는 사람들이 아니야.”
장택상의 날카로운 말에 병재는 대답하지 못하고 장택상을 응시할 뿐이다.
“......”
장택상은 병재의 모습에 흠흠 거리면서 한 마디 더 말한다.
“뭐 실망한 말로 들리겠지만 그만큼 우리의 일은 거기에 쏟을 만큼 돈과 또 인력과 장비, 체계도 없어. 그래도 이 환자들을 병원에 데려다 줄 여력만 있을 뿐이야.”
장택상의 말에 병윤은 공감을 한다. 하기야 맞는 말이었다. 범죄들을 예방하거나 단속, 또 범죄자들의 체포에 온 힘을 다 해야 하는 경찰들이 아편 중독자들의 후속조치까지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나마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편 중독자들을 하여금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병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장택상을 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아편 환자들의 처리는 아무래도 백병원을 포함한 서울의 병원들과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장택상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병재에게 말한다.
“자네가 그렇게 해준다면 우리 역시 아편 문제의 해결에 대해 든든하게 생각을 하지. 일단 아편들을 끊어버리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겠군.”
병재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장택상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 것보다는 병원 외 아편 사용 금지가 더욱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이독제독입니다. 원래 마약환자는 마약을 즉시 끊어버리면 문제가 된다고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즉 마약 치료에는 마약이 어느 정도 소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택상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병재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흠. 그 것도 그렇겠군.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은 때로 나약하니 말이야. 알겠네. 자네가 전폭적으로 협조한 이상 우리도 그 정도는 협조해야지. 그 외에 부탁할 것은 없는가?”
병재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장택상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앞으로 아편환자들을 검거할 때, 가장 심각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백병원에 우선 옮겨주십시오. 그럼 우리 재생치료병원이 그 사람들을 따로 추려서 치료를 하겠습니다.”
“결국 가장 심각한 환자들은 자네들이 담당하겠다는 말이군?”
병재는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장택상에게 대답한다.
“잘못 조치를 취했다가 환자들이 사망하는 것보다 허망한 일이 없으니 그렇습니다.”
장택상은 그 말에 마땅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맞는 말이군. 알겠네. 그 외에는 할 말이 없는가?”
“그 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부탁한 것들만 행한다면 어느 정도 아편 문제에 관련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알겠어. 자네 말대로 따르지.”
장택상은 직접 수첩을 꺼내어 병재가 한 말들과 조치들을 일일이 적고는 자신이 끌고 온 경찰간부들과 같이 병원 밖으로 나간다. 병원 밖 대문에서 경찰간부 중 한 사람이 장택상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수도경찰청장님께서는 저 청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택상은 그 말에 눈빛을 빛내더니 이내 대답한다.
“조금 건방지군.”
“......”
“그러나 건방짐과 동시에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오히려 호감이 들지. 그가 한 말에 대해서 거북했나?”
장택상의 말에 질문을 던진 경찰 간부는 당황한 얼굴로 간신히 대답한다.
“아까 듣기로 건방진 감을 느끼기는 했습니다만.”
경찰 간부의 변명에 장택상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감상을 대답한다.
“그래도 무언가를 믿고 날뛰는 애송이는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한 실력과 경지를 구축한 이라면 자동적으로 발산하는 분위기라고 여긴다네. 적어도 그가 말한 조언들은 우리 경찰에게 있어서 그다지 손해 볼 것들은 아니야.”
그 말에 경찰 간부 중 하나가 동조하며 말한다.
“맞습니다. 청장님. 그의 동생이 우리 경찰들을 후원하지 않습니까?”
장택상은 그 말에 씁쓸히 웃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후원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의 영향력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 적어도 부정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충돌이 있을까 우려스럽군. 쯧.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는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
그 말에 경찰간부들 일동이 장택상에게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택상을 포함한 경찰들은 병원에 마련한 헬기착륙장으로 우르르 발걸음을 돌린다.
한편, 병재는 침실에서 메리를 만나서 한 마디 묻는다.
“아편 환자는 지금 상태가 어때?”
메리는 휴우 한숨을 돌리면서 병재에게 대답한다.
“일단 안정을 취하고 잠들었어요.”
병재는 그 말에 환자를 쓰윽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리에게 한 마디 지시를 내린다.
“그가 깨어나면 나에게 보내.”
“알겠어요. 그런데 마약이라는 것은 정말 무섭네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말이에요.”
병재는 그 말에 씁쓸한 얼굴을 하고선 메리에게 대답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한 사람에게서 삶의 의지를 내고자 하는 유일한 길이지. 그 길이 사람의 모든 것을 뒤틀리고, 정신을 갉아먹지. 숨만 쉬는 인형처럼 만들어버리는 아주 무서운 녀석이야.”
병재의 말에 메리는 음울한 표정을 짓는다.
“으음.”
그러나 병재의 말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한 번 그 것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해. 끝없는 구덩이에 빠지는 꼴이야. 그리고 다시 제 자리로 되돌아오려면 구덩이의 벽들에 손을 잡고 기어올라 와야 돼. 그 과정이 얼마만큼 험난하고 그리고 힘든지는 누구도 공감할 수는 없을 거야. 오히려 사람들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비웃을 뿐이지.”
메리는 병재의 말에 숙연해졌다.
병재는 지금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고는 메리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그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려주자고.”
메리는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병재에게 말한다.
“맞는 말이에요. 여보.”
여보라는 말에 병재의 얼굴이 빨개진다.
============================ 작품 후기 ============================
원래 아편 문제는 구한 말부터 시작해서 한국 전쟁때까지 만연했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대놓고 양지에서 아편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조폭에게 있어서 수입원들 중 하나가 아편 밀매였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원역사의 아편문제에 관련해서는 윤태호 작가님의 '인천상륙작전'을 보시면 이해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