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389화 (38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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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방완서의 집은 마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시골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방 안에서 우에시바 츠요시와 미유키는 정좌를 한 채 방완서를 바라본다. 자신의 아이가 챙기고, 잠이 들자 이제야 두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으음. 이 곳은 처음 오는군. 그런데 누구와 결혼을 했는가?”

“제 또래인 연형칠이랑. 어른들이 지어준 결혼이라서 그냥 이러려니 사는 것이에요.”

“그 남편인 연형칠은 또 어디에 갔고.”

그 말에 방완서는 우에시바 츠요시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제 남편은 지금 밖에서 일하고 있어요.”

“밖에서?”

“예. 병윤이가 방송국 해보라고 해서 지금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에시바 츠요시는 그 말에 으음 하면서 생각에 잠기고는 묻는다.

“설마 사현방송국이?”

“어라. 그건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우에시바 츠요시는 무언가 깨닫는 얼굴을 하고나서는 말한다.

“으음. 그렇게 연결이 되어 있었군. 쯧. 사실 후세 선생님을 따라 이 조선에 왔다. 아마 그 쪽에서도 모를 수도 있었지.”

“아. 후세 선생님이요? 으음. 제 남편이 요즘 그 분을 데려온다며 바쁜 걸로 알고 있던데.”

“그럼 그 쪽에서는 우리 둘이 찾아온 것은 모를 수가 있었겠군.”

“예. 그렇죠. 세상 참 좁네요. 우연과 우연이 만나서 만들어졌네요.”

우에시바 츠요시는 그 말에 동의를 한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서 필연을 만들어낸다. 아마 뵈지 않는 운명의 실들이 지금 이 만남을 만들어낸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우에시바 츠요시였다.

“그런데 사현방송국은 어떻게 된 것이냐?”

“예? 으음. 사현방송국은 그냥 제 남편의 사업장이에요. 단순한 사업장.”

“사업장이라고? 그런 방송조직을 개인적으로 소유한다는 말인가?”

방완서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그런 비유보다는. 음. 아무래도 국가의 통제를 받는 공장이 적절하겠네요.”

“그런가? 정말이지. 그 쪽의 사람들도 많이 위로 올라간 것 같구나.”

“위로 올라간다 라? 아니에요. 그냥 일만 많아진 것뿐인 걸요? 그런데 선생님은 야학 이후로 일본 본토로 돌아간 것이에요?”

“그렇지. 무술수행을 끝나고, 지금은 이 옆에 있는 미유키를 포함해서 내 제자들에게 내가 깨달았던 것들을 베풀고 있단다.”

방완서는 우에시바 츠요시의 말에 옛 생각이 난다는 얼굴로 한 마디 말한다.

“그 때는 어린 나이라서 무언가 배운다는 것이 기분 좋았는데 말이죠.”

“그 얼굴을 보아하니 잊어버린 모양이군.”

“잊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 험난한 세월 속에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들을 기억해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리가 없죠.”

“......”

“아마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이라면 병윤이 잘 알고 있을 거에요.”

“병윤이가? 하기야 그 아이가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서 가장 성과가 뛰어났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방완서는 그 말에 휴우 한숨을 내쉬면서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마 선생님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커다랗게 변한 이는 병윤이가 유일무이할 거에요.”

“무슨 뜻이냐?”

“선생님은 동협 그룹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들어는 보았다. 한반도에 오면서 그 기업 집단의 소리가 자주 들리는 구나. 설마... 으음. 그 그룹 집단을 이끄는 자가?”

방완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예. 맞아요. 그 동협 그룹을 만들고 운영하는 이가 병윤이에요.”

“예상치 못했구나. 그 아이가 그런 쪽에 재능이 있었던가?”

“그 녀석은 지금 회사 일로 바빠서 무술에 쏟을 시간이 없을 걸요? 그래도 그나마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받은 아이니까.”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 시간이라면 잊기가 충분할 정도이지.”

“아하하. 그렇군요. 그 12년의 세월이라. 정말이지. 선생님 역시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선생님과 같이 다니던 조광한 선생님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 말에 순간 우에시바 츠요시의 얼굴에는 어둡게 변한다.

“그 이는 이미 세상에 없다.”

“으음. 그렇군요.”

“알고 있었는가?”

“아뇨. 사실 해방 후에 병윤이 그 선생을 찾으려고 했는데 여전히 소식이 없어서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

“휴우.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까. 그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거죠?”

방완서의 직접적인 물음에 우에시바 츠요시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진다.

“그는... 내 조국에 의해 정치범으로 판명이 나 옥사를 했다.”

“......”

“아마 연고지도 없던 사람이었지. 그저 산골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던 사람이었다. 독립이든지 이념이든지 그저 자신이 배웠던 것을 베풀던 사람인데...”

우에시바 츠요시는 그 말을 하면서 순간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자신이 조선 경무국에서 일을 하던 10년 전의 일이었다.

‘아니. 그 이를 풀어준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흥. 그 이가 무슨 행동을 하던 우리 대일본제국에 해가 될 존재이다. 해가 되는 존재는 치우는 것이 맞겠지.’

‘웃기지 마십시오. 그는 독립이라든지 공산주의 이념이든 별 상관이 없던 사람입니다. 국장님은 그저 자신의 공을 세우기 위해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흥. 무술 수행을 하러 이 곳에 떠돈 한낱 무술가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너 같은 무식한 인간이 내 뜻을 알기나 하는가?’

‘당신의 사악한 뜻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고한 이를 풀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러다 세상에 밝혀지면 당신만 불행해질 것입니다.’

‘칙쇼! 감히 나에게 협박 질을 하는 것이냐? 우리에게 잘만 협력하던 녀석이 우리 대일본제국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냐? 저 이가 무고한지 안 무고한지는 내가 판단한다. 감히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을 놓다니 죽고 싶은가 보군.’

‘흥. 죽이려면 죽여라! 이 개 같은 자식아! 네 녀석 같은 놈들 때문에 조선인들이 우리 일본인들을 보고 개 쓰레기 작자라고 욕을 하는 거다.’

‘저 놈을 가둬라! 감히 나에게 소리를 치다니!’

그 일 이후에 우에시바 츠요시는 배신을 당하고, 자신의 조국에 대해 완전히 뜻을 접었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갔다. 그저 자신의 무술을 완성시키는 것에 접점을 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을 맞이하고, 또 미유키를 만나고, 그리고 후세 선생님도 만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조광한의 무고한 죽음은 우에시바 츠요시의 마음 한 구석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의 마지막 대화도 기억이 났다. 옥사 당하기 직전 면회에 나온 그는 우에시바 츠요시를 원망하지 않고, 한 마디 말한다.

‘죄송하군요. 저를 따라 다녀서 이렇게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만큼은 구출해야만 하는데.’

‘후후. 그럴 것 없습니다. 전 이룰 것은 이뤘습니다. 제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이미 조선의 방방곡곡에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제 뜻을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은 그런 대우와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함에도 그렇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입니까? 당신은 분하지도 않습니까? 원망하지도 않습니까?’

‘괜한 원망과 복수는 독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저들 역시 불쌍한 이들입니다. 제 눈에는 훤히 보입니다. 저들이 쌓아놓은 업들이 다시 한 번 저들을 향해 덮칠 것이라 말입니다.’

‘그 말은 원망이라고 말해도 좋겠습니까?’

‘후후. 그렇게 판단하면 그렇게 판단하십시오. 저 조광한 그래도 뜻은 이루고 죽으니까 별 후회는 없습니다.’

‘당신은 좋겠습니다. 당신 덕분에 난 후회할 일들을 잔뜩 짊어지고 갑니다.’

‘당신만큼은 잘 사십시오. 그리고 저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마십시오. 당신 역시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존재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배움을 얻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정말이지 불가해한 사람이군요.’

‘하하.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왕 죽는 김에 한 마디 소리를 드높이고 싶습니다. 대한독립만세라고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당신은 농을 하십니까?’

‘하하. 뭘 어떻습니까? 이미 죽는 마당에 제 소리는 높이고 죽어야지 않겠습니까?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제 마지막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전 평안합니다.’

‘예. 당신이 하늘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바라던 세상이 오기를 저는 개인적으로 기대할 뿐입니다.’

조광한에 대해 생각을 한 우에시바 츠요시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조광한, 그는 정말이지 긍정적이고, 능력 있고, 또 호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악한 무리들에 이끌려 그저 공을 세울 제물로 쓰이기에는 억울하기 그지 없었다.

‘그 소장 새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생각하기로는 그는 절대 편하게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편하게 산다는 소식이 들리면 자신이 직접 복수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 친우를 죽인 원수이자 또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이었다.

방완서는 우에시바 츠요시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미유키가 방완서를 흘겨 보더니 이내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옛날 사부님의 모습은 어땠어요?”

미유키의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방완서는 깜짝 놀라며 미유키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방완서는 으음 하더니 한 마디 말한다.

“저 때보다 젊을 뿐. 변한 것은 없었어요.”

“에? 정말로요?”

“예. 그래요. 정말로 그랬어요. 변한 것은 없었어요. 지금 바라보니까 예전 엄격했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네요.”

“흐음.”

“후후. 대답이 실망스러웠나요?”

“아니에요. 한결같이 똑같다는 말에 안도가 되네요.”

“예. 그런 사람은 별로 없죠. 사람은 성장해도 잘 바뀌지 않아요.”

“그런데 아까 그 병윤이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던데 무슨 사람이에요?”

순간 방완서는 미유키의 물음에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 대답을 한다.

“글쎄요. 옛날 모습과 똑같기는 한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인성은 옛날과 똑같은데 그보다는 무언가 존재감이 변한 것 같아요. 병윤이 정말로 그 자리에 선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말이죠.”

“헤에...”

“그런 남자는 잘 찾아보기는 어려워요. 무언가 일에 열정적이면서 또 능력 있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미래를 바라는 그의 모습은 뭇 사람들이 이끌리게 되요. 그 사람들이 보잘 것 없던 아니면 방황하던 사람들이던 말이죠.”

방완서의 설명에 미유키는 오히려 혼란을 느낀다. 뭔가 설명을 하는 것 같은데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방완서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대단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우에시바 츠요시는 방완서를 바라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휴우. 그 징용 갔다던 아이들의 소식을 듣고 싶구나.”

순간 방완서의 얼굴은 어두워지더니 슬픈 눈길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떠나고 몇 년 뒤의 일이었어요. 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각 마을에 공출이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방완서는 곧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공출제의 시행에 따라 마을의 청년들이 징병되거나 징용되어서 차출을 당한 것. 또 박출환에 의해서 아예 돈을 받고 팔려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그리고 마을 처녀들은 위안부로 끌려가서 더 이상 소식을 못 들었던 것. 그리고 더 이상 소식이 없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끝없는 절망과 체념 속에서 살아왔던 것. 그 모든 이야기들이 방완서의 입에서 쏟아 졌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에 잠겼고, 미유키는 자동적으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결국 마을의 불행은 미유키와 같은 일본인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을 알자 미유키 역시 양심이 찔렀던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의 사부가 함부로 자신들의 존재를 안 드러내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해방 후에. 징용에 갔던 사람들은 더 이상 소식이 없어요. 제 동갑내기 친구들은 제 남편인 연형칠, 그리고 송감연과 병윤 밖에 없죠.”

우에시바 츠요시는 고개를 푹 숙이며 방완서에게 연신 사과한다.

“미안하다.”

“선생님이 잘못을 저질렀나요? 왜 사과를 하시죠?”

“그렇게 말을 해도 난 사과를 해야겠다. 같은 일본인으로써 정말이지 가르친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다.”

“......”

“그리고 면목이 없다. 난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무력하다는 이유로 또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현실을 도피해왔지. 난 비겁한 인물이다.”

방완서는 그 말에 우에시바 츠요시를 응시하며 강한 어조로 말한다.

“선생님은 비겁한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비겁한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도 사과는커녕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그저 말로만 사과를 할 뿐인 사람이라고요. 선생님처럼 직접 이 곳에 오면서 사과를 하는 이가 정녕 비겁한 이라면 어떤 인간이 안 비겁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사과하지 마세요. 선생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다른 비겁한 사람들의 잘못에 선생님이 사과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할 일이에요.”

“......”

우에시바 츠요시는 숙연한 표정으로 방완서를 쳐다보았고, 미유키는 동경하는 눈빛으로 방완서를 바라본다.

‘정말 멋지다. 이 사람.’

자신의 사부가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강한 사람인지는 몰랐다. 그런 방완서에 대해 미유키는 동경심과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같은 여성으로써 미유키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우. 알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면 사과는 하지 않으마. 대신 난 아이들을 위해서 위령을 했으면 좋겠다.”

방완서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말한다.

“부디 그래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고맙구나. 그리고...”

그 때, 집 안에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본다. 양복을 입은 두 청년, 두 청년은 방 안에 있던 방완서와 우에시바 츠요시의 모습을 보자 순간 눈동자가 커진다.

우에시바 츠요시 역시 눈동자가 커졌다. 두 청년 역시 우에시바 츠요시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연형칠과 병윤이었다. 병윤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한 마디 말한다.

“키바오니 선생님?”

“......”

우에시바 츠요시는 조용히 병윤을 응시할 뿐이었다. 병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몸을 바로 한 채 이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에게 인사 한 마디 말한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키바오니 선생님.”

============================ 작품 후기 ============================

우에시바 선생과 병윤이 드디어 해후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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