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390화 (39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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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방완서는 방 안에 들어온 병윤과 연형칠을 보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오늘 일이 바쁠 텐데 일찍 왔네?”

연형칠은 우에시바 츠요시와 미유키에게 인사를 하고는 방완서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한다.

“오늘은 일이 없어서 직원들을 일찍 보냈어.”

그 말에 방완서는 의아한 얼굴을 짓고는 한 마디 말한다.

“일이 없다니? 요즘 문경에 들어온 사람 때문에 일이 바쁘다고 하던데? 그리고 병윤이 그럼 너도 일이 없어서 일찍 온 거야?”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방완서에게 대답을 한다.

“일도 없고, 이 녀석이랑 술이나 마시려고 했는데 말이지. 으음.”

그렇게 말한 병윤은 이내 우에시바 츠요시를 바라본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병윤의 모습을 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오랜만이구나. 병윤아.”

“선생님도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이제 12년이 흘렀나요?”

우에시바 츠요시는 그 말에 굵고 짧게 끄덕인다.

“그래.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

“선생님의 모습을 보시니 옛날 무술수행 했던 목적은 이룬 모양이군요.”

“덕분에 말이지. 지금은 내가 익히고 깨달은 것들을 베풀고 있다.”

“그래요? 흠...”

“그리고 많이 변한 것은 네 녀석인 것 같다. 기세를 보아하니 무술의 경지를 어느 정도 완성한 것 같구나.”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선생님에게서 배운 무술이 본능적으로 나가거든요.”

우에시바 츠요시는 그 말을 한 병윤의 모습을 살펴본다. 병윤에게서 왠지 무인의 기세가 느껴졌다. 아니 다른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는 분위기, 즉 기운이 무의식적으로 발산되는 것 같았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무술을 어느 정도 완수했군.’

“네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병윤아. 너를 보니. 넌 내 무술을 기본으로 너 만의 것을 완성시킨 것 같구나.”

미유키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말한다.

“예? 사부님. 그게 무슨...”

“미유키. 넌 느껴지지 않으냐?”

미유키는 그 말에 병윤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나 미유키의 눈에는 병윤은 한낱 양복을 입은 평범한 이였다. 미유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말한다.

“그냥 평범한 민간인 같아요.”

“그게 무서운 점이지. 무술가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되면 평범해지는 경향이 있지. 산 속에 은거하는 무술인들이 그냥 산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부님의 눈에는 그 것이 보이나요?”

“내 눈에는 조금씩 보인다. 정제된 투기와 살기 같은 것을 말이야.”

병윤은 우에시바 츠요시의 맞은편 방바닥에 앉으면서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하하. 선생님도 여전하군요. 그 무술가의 눈빛과 또 판단은 언제봐도...”

“그래도 내 가르침을 잘 받아먹는 아이는 내가 처음이었지. 이제는 그 무술은 완벽히 네 것으로 소화한 것 같구나.”

“예.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까 자동적으로 제 무술이 만들어지더군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구나.”

그 말에 병윤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제 이야기는 아주 깁니다. 그래도 듣겠습니까?”

“길다는 이야기는 곧 할 이야기가 많다는 이야기겠지.”

우에시바 츠요시의 말에 병윤은 고개를 돌려 연형칠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여기서 먹고 마시기에는 불편한 것 같군.”

그 말에 연형칠은 방완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병윤에게 말한다. 여기서 술주정을 부렸다가는 방완서의 바가지를 긁힐 것이다.

“배려해줘서 고맙군. 여보. 아무래도 손님들이랑 같이 나가서 마셔야 될 것 같아.”

“여기서도 상관이 없는데. 알겠어요.”

병윤은 우에시바 츠요시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제 가족의 집이 적당한 것 같군요.”

“으음. 알겠다.”

결국 술자리는 병윤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 결정이 났다.

걸음을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우리 집’의 풍경은 우에시바 츠요시와 미유키의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단했다. 냇가가 흐르고, 또 꽃들과 풀들이 잘 가꾸어진 정원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정원에 마련된 상들과 의자들은 서구권 사람들의 야외 파티를 연상케 한다.

“으음. 대단하구나.”

우에시바 츠요시는 왠지 이 집의 풍경에 동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멋이 들어갔다. 그 때, 병윤에게서 한 사람이 다가가 말한다. 바로 전 집사이자 현재 집사로 활동 중인 손본규였다.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제 손님들입니다. 혹여 손님 대접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손본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야 물론입니다. 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시면 요리들을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손본규의 대답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내 시선을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돌리며 한 마디 말한다.

“여기에 앉으시면 요리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 말에 우에시바 츠요시는 정원에 마련된 의자에 앉게 되었다. 병윤은 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으면서 조용히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쯤 연형칠, 방완서 부부 역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미유키 역시 우에시바 츠요시의 옆자리에 앉았다.

병윤은 우에시바 츠요시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흠 뭐부터 시작하면 좋으라나.”

병윤은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을 복기하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나 이 인생을 결정하게 된 것이 자동적으로 생각났다.

“사실. 저는 이 마을에서 떠난 적이 있습니다. 무려 10년 전에 말이죠.”

“10년 전? 으음.”

우에시바 츠요시는 10년 전을 생각하자 안 좋은 기억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자신과 같이 다녔던 조광한 선생이 어떤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나간 일이 생각났다.

“전 이 마을을 벗어날 이유는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말이죠.”

“단 한 가지?”

“지금의 제 누나가 위안부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순간 우에시바 츠요시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진다. 그건 미유키 역시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병윤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전 제 누나를 되찾아서 다시 가족들끼리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출을 했습니다. 어린 마음으로 또 얼마 걸릴 것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그렇게 운을 뗀 병윤은 곧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누나를 찾아 한반도 경성에 기차를 타고 간 이야기, 또 일본군에 위안부로 팔아 넘겼던 일당들의 장부를 훔쳐 누나의 행방을 찾은 이야기, 그리고 누나의 행방이 상해에 있다는 소식에 바로 밀항을 해서 중국 상해로 건너간 이야기. 그리고 누나가 죽었다는 착각으로 인해서 복수를 위해 중국 내륙으로 흘러간 이야기 등. 수많은 경험들이 병윤의 입에서 쏟아졌다.

곧 냄새 좋고, 윤기 있는 음식들이 상 위에 내려놓을 때도 병윤의 이야기는 끊임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병윤의 이야기에 순간 집중을 한다. 실질적인 인생 이야기, 경험들이 그의 입 안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부족할 이야기였다. 병윤은 곧 날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하죠.”

그 말에 우에시바 츠요시는 물론 주위의 사람들 역시 멍해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흠흠 거리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네 말대로 우려곡절이 많았군.”

“후후. 제 이야기의 뒤는 많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다. 10대가 겪은 경험이라고 하지만 이건...”

“제 무술을 완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정도의 일들이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이미 밤도 늦었고 하니 여기서 주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우에시바 츠요시는 곧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새 주위는 어둠이 가라 앉았다. 그만큼 병윤의 이야기에 집중을 많이 한 것 같았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끄응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 점촌에 위치한 시청까지는...”

병윤은 그 말에 딱 잘라서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말한다.

“이 시간에 노면전차는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대신 이 집안에 전화기가 있으니 그걸 통해서 연락을 하면 될 것입니다.”

“알겠다. 그럼 신세를 지지.”

우에시바 츠요시와 미유키는 결국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집사 손본규의 안내에 따라 손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성별이 달라서 각 방을 머물게 해줬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곧 침대에 앉으며 생각에 잠긴다.

‘정말이지. 험한 인생을 살아왔군.’

자신도 그만한 인생을 살았을까? 기억을 더듬지만 아쉽게도 자신은 그런 기억이 없었다. 무술 명문가의 집 안에서 태어나 유파를 훈련받고, 자기 수양을 하며 살아왔던 인생. 그리고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일본, 조선 등 산속을 유람하며 무술수행을 했던 기억, 그리고 그 후 세상의 더러움을 겪고, 지금까지 제자들을 키워왔던 지금까지의 일. 병윤이 자신보다 적게 살았어도 병윤만큼의 인생은 못 살아봤다.

‘저 녀석이랑 나랑은 이미 차이가 나는 구나.’

우에시바 츠요시는 왠지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병윤은 병윤이고, 나는 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윤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왔듯 자신 역시 인생을 살아왔다. 그 녀석이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고 하지만 자신 역시 경험한 것 없지 않아 있었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방 안 주변을 돌아본다. 방 안은 장식품들과 TV, 에어컨, 선풍기, 개인 욕실까지 완비된 방이었다. 손님이 이 안에서 볼 일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 같았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외출복을 벗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돌아본다. 곳곳에 상처들이 있었다. 무술수행을 하며 얻은 일종의 명예 흉터 같은 것이었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이 흉터들을 바라보면서 쓴 웃음이 난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복장을 갈아입었다. 이 방에서 간단한 복장은 있었지만 자신이 챙겨온 옷들을 꺼내 하나를 입었다.

“내일은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군.”

후세 선생님의 연설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때 동안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 그 녀석이 완성한 것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7년 8월 9일, 아침이 되자 우에시바 츠요시는 몸이 기억나는 대로 일으켰다. 규칙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항상 5시에 눈이 떠졌다. 그는 졸린 잠을 준비운동으로 털어 버리고는 방에 마련된 개인 욕실의 세면대로 세수와 또 양치질, 그리고 머리를 감은 뒤에 오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이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병윤의 형들인 병재와 병주였다. 두 사람 모두 주말을 맞아서 휴식을 취한다. 그 때, 미유키와 함께 나오던 우에시바 츠요시를 바라보고는 순간 알아차린다.

‘흠. 무술가인가? 잘 정돈된 투기가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무술가인 것 같군.’

병재와 병주는 우에시바 츠요시와 미유키를 그렇게 평가한다. 그 때, 병재가 먼저 우에시바 츠요시에게 인사를 한다.

“어제 병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에시바 츠요시는 병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 역시 병재에 대해 판단을 한다.

‘가늠하기 힘든 사람이군. 의사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작 숨기고 있는 것은 잘 정제된 투기와 살기. 역시 만만치 않군.’

“예. 이 집 안에서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부탁합니다.”

병재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에게 말한다.

“이 곳을 제 집처럼 여기고 편안하게 생활해주시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병재의 호의를 받은 우에시바 츠요시는 자신 역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병재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병주와도 이야기를 하게 된다.

“병윤의 어릴 적 야학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때는 잠시 무술수행 도중이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병윤이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병윤을 만들게 한 것은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기초를 가르친 것은 저 이지만 그 것을 가지고 완성한 것은 그 녀석의 몫이겠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시는 것입니까?”

“아. 바깥의 경치를 구경하다가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혹여 병윤을 만나고 싶다면 여기 주위에 정자가 있으니 그 쪽에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병주의 말에 우에시바 츠요시는 감사를 표한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 말을 하고, 병재와 병주에게 인사를 한 뒤 우에시바 츠요시와 미유키는 집 밖으로 나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본 병재와 병주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다.

“저 사람이 바로 그...”

“그래. 우리가 익힌 무술의 기초가 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겠지.”

“으음. 상당히 미묘하군요.”

“미묘하다면 미묘할 수 있겠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제 찾아온 후세 다쓰지 선생님과 같이 온 사람이라고 하더군. 그런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지.”

“끄응. 문경 시청 쪽에서 엉뚱한 일을 꾸미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병윤이 녀석은 왜 그런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걸까요?”

“아마. 끄집어내려고 하는 거겠지.”

“끄집어낸다니 그게 무슨...”

“적어도 이 상황이 불만인 사람이 따로 있지 않겠느냐?”

순간 병주는 아! 하고는 누군가를 알아차린다.

“아무래도 그 망상에 젖은 어르신을 끄집어내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내 생각에는 그렇게 여긴다. 한 마디로 이걸 만드는 이유가 덫이지.”

“덫이라.”

병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생각에 빠진다.

============================ 작품 후기 ============================

여기서 슬슬 음모 정도는 들어가줘야 이야기가 감칠 맛 나겠죠?

요즘따라 제 자신이 매너리즘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뭔가 써도 써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음. 혹시 묻는 것인데 제가 흘려놓고 간 떡밥같은 것은 없습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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