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399화 (39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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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7년 8월 25일, 조병창 무기개발실장의 방 안, 감연은 이제 할 일이 거의 끝이 났다. 웬만큼 군의 요구는 들어주었기 때문에 감연은 이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그러나 감연의 능력을 아까워서 그러는지 방 안 쇼파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아쉬운 얼굴로 감연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꼭 이 곳을 그만두는 건가?”

감연은 짐을 조금씩 정리해가면서 쇼파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대답한다.

“떠나는 저도 그리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제 사정에 대해서 아시잖아요.”

쇼파에 앉은 사람 이범석 장군은 끄응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 내가 말한 이야기는 어길 수 없겠지. 그리고 네가 만들어준 성과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이제 곧 대학이 건립된다고 들었는데. 그 쪽에 총재 노릇을 하는 거냐?”

감연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한 마디 대답한다.

“그건 아닐 것입니다.”

“으음. 네 경력 정도면 그 정도의 자리는 주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아닌 것 같군.”

“솔직히 제 나이를 따져 봐도 겉멋 모르는 애송이로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런 자리에 앉혀줄 것 같아요?”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 하여튼 그 쪽으로 간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

“아직 끝내지 못한 것이 있어서 말이죠. 예를 들면 개인용 컴퓨터 개발이라던지.”

이범석은 그 컴퓨터라는 단어에 얼굴을 굳히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냥 계산하는 기계가 무엇이 중요하기에 신경을 쓰는 것이냐?”

그 말에 감연은 잠시 속으로 한숨을 내시다가 이내 천천히 설명을 해준다.

“철기 아저씨. 만약 스스로 움직이는 전차나 스스로 움직이는 전투기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말에 이범석은 깜짝 놀라면서 감연에게 묻는다.

“뭐? 그게 가능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컴퓨터에요. 그냥 단순히 계산만 하는 기기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서도 그 대처방안을 찾고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컴퓨터라고요. 인간으로 비유하면 뇌와 똑같은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제가 너무 복잡하게 설명한 것 같아서 그러는데. 군대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 어떤 작업이에요?”

“군대 일은 다 어렵지.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어. 일반적인 정비, 작업이라든지 아니면 군인들을 먹일 식사라든지. 그 외에도 행정적인 서류들의 처리도 힘들지. 그건 왜 물어보는 거냐?”

감연은 그 말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하나의 예시를 들었다.

“물론 컴퓨터가 다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서류 처리같은 부분은 도와드릴 수 있겠죠.”

“으응? 그게 무슨...”

“지금 그러니까 서류 같은 부분은 직접적으로 색연필로 일일이 사람 손으로 그려서 형식을 힘겹게 만들잖아요. 또 틀리면 번거롭게 수정도 해야 하고.”

“그런 부분은 인쇄하면...”

“물론 그 것도 방안이 될 거에요. 다만 아무래도 컴퓨터를 이용하면 다양한 서류 형식들을 만드는 것과 수정하는 것이 간단해질 것이고, 또 그 걸 바로 뽑아내 쓸 수 있겠죠.”

“상상이 안 가는군. 난 뭔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 컴퓨터라는 녀석은 만능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보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예. 맞아요, 아마도 그 것의 역할은 무궁무진할 거 에요. 아마 미래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돌아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녀석이라고요.”

“흠. 그런 것을 만든다고?”

“이미 개발을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아직은 미완성이니 할려고요.”

이범석은 그 말에 틀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감연에게 말한다.

“난 네가 여기서 계속 근무를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할 일은 없는 것으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 말입니다.”

감연의 얼굴은 정말로 일 없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이범석은 그의 얼굴을 보자 한 마디 말한다.

“네 녀석의 룸펜(잉여 인간의 과거 표현)의 본능이 나오는구나. 내가 권한 것이 잘못이지. 그 쪽에 가서 그 컴퓨터나 뭐나 하는 그 거나 연구해라.”

“끄응. 너무 그렇게 말하실 것은 없잖아요.”

“흥. 젊은데 노는 생각만 하고 있는 네 녀석의 한심한 작태에 너와 거의 비슷한 나이 대에 열심히 인생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그런다. 왜 꼽냐?”

“무기개발 간 저는 쉬지도 않고, 연구개발한 것을 잊으셨습니까?”

“쉬지도 않기는 잘만 휴일 챙겨서 냉큼 놀러 갔으면서.”

이범석은 감연의 행동에 대해 뻔히 알고 있었다. 남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는데. 저 녀석의 태도는 글러먹었다.

“아. 연구 개발은 건강 상태가 중요한 법입니다. 피로에 찌들면서 그대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한참 쉬어서 일에 나서 성과를 얻는 것보다 못합니다. 저는 그런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서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 정도면 참신하다고 칭찬해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범석은 그 말에 오히려 기가 막힌 얼굴로 결국에는 감연에게 따져든다.

“야 내가 너의 담당이라서 네 그 행동이 용인될 줄 알고 있어라.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으면 넌 휴일 내내 계속 연구만 하고 지낼걸. 왜 성과 없냐고 야단을 치면서 말이지.”

“물론 그 상황이 되면 저는 무슨 짓을 하든 친구 놈에게 갈 것입니다.”

“흥. 병윤이 잘만 받아주겠다.”

결국 이범석과 감연 간에 조금은 냉기류가 흐르다가 이내 감연은 짐정리를 다시 시작하고는 이범석에게 한 마디 말한다.

“철기 아저씨. 이래나 저래나 저는 여기서의 할 일을 끝마쳤습니다.”

“그래. 장하다. 우쭈쭈 잘 했어요. 감연 어린이 이제 상을 주겠어요.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좋겠냐?”

“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감연의 승낙에 이범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럴 때는 그냥 자존심이 상해서 뭐든 화내는 것이 정상 아니냐?”

“왜 화를 냅니까? 그냥 우쭈쭈 잘 했어요. 우리 감연 어린이에게 상을 주겠어요. 이렇게 한 마디 하세요.”

이범석은 결국 졌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에이. 됐다. 됐어. 넌 나이를 먹어가며 유치해지는 것 같다.”

“하하. 제 장점이 유치하고, 비열한 것입니다. 이런 저를 본받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랑이다. 이 유치하고 비열한 자식아.”

그렇게 말하면서 이범석은 물건을 들고 감연에게 던지고 싶었다.

같은 시각, 병윤은 진세연에게 머물 곳을 안내해준다. 이른바 40층 주택 건물 중 한 가구를 아예 받은 것이다. 진세연은 지금의 가구 안을 보면서 조금은 흡족하다는 얼굴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런 집을 저에게 주신다고요?”

“비서실장만 특별 대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 없는 직원 분들은 여기서 살고 있는 편이지요.”

그 말에도 불구하고 진세연의 얼굴에는 불쾌감이란 없었다. 이 가구 안에는 꽤 비싼 가구들과 장식품들이 있었다. 그 것만 보면 병윤이 자신에게 얼마만큼 신경써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혼자 지내기에 적당하네요. 실내에 욕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침실도 있고, 적어도 가출한 이가 지내기에는 상당히 좋은 집이네요.”

스스로 가출했다는 것을 시인한 진세연의 말투에 병윤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저도 옛날에 가출했습니다.”

“그 중국으로 가출하여 그 곳에서 그만한 것을 일군 사람은 회장님뿐 일 걸요? 보통 사람이라면 현실의 냉혹함에 객사할 것인데 말이죠.”

그 말에 병윤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한 마디 말한다.

“뭐. 운이 좋은 편이죠.”

“운도 있지만 그 운을 살릴 실력도 있다는 말은 왜 빼세요?”

“쩝. 그렇군요.”

그 때, 진세연은 병윤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조용하게 말한다.

“그런데 회장님은 결혼을 했어요?”

그 말에 순간 병윤의 얼굴은 무덤덤해지면서 한 마디 말한다.

“제 개인사에 대해서 함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진세연은 여자로써의 감각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금방 병윤의 말과 주변의 정보로부터 자신의 의문을 유추할 수 있었다.

‘없나보군.’

사실 어제부로 병윤의 비서실장으로 출근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권한을 발휘해 동협 그룹의 핵심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병윤의 개인적인 정보도 말이다. 이만한 것을 일구었는데. 아직까지 결혼까지 안 했다는 것이 신기해했다.

‘나만 하여도 정략결혼을 하자는 말들이 많았는데. 저 젊은 회장님은 어떻게 그 요구들을 이겨낼지 조금 궁금한 걸?’

자신이 알기로는 병윤은 여자를 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직함만 회장일뿐 진세연이 생각하기로는 병윤은 심리학적 고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윤과 진세연은 이윽고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코코아와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는 않았다.

“흠. 제가 많은 것들을 알아보았지만 역시 회장님의 결정에 대해서 뭐라 말할 수는 없겠네요.”

“예. 저와 회사 직원들이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멀었다는 것이 현실이지만요.”

진세연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직까지 멀었다는 현실이 한반도에서 제 1위 기업이라는 사실이에요?”

병윤은 코코아를 한 잔 마시면서 그 말에 대답을 해준다.

“한반도에서 1위가 대수입니까? 세계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무엇을 이루는가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세계만 노리는 것이 아니군요. 그런데 우주라.”

“시간이 얼마정도 들든 간에 전 우주로 나설 것입니다. 무한하기 그지없는 가능성, 무한하기 그지없는 자원, 무한하기 그지없는 영토, 무한하기 그지없는 알지 못한 지식과 신비들. 아마 그런 것들이 저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왠지 그런 것을 이뤄낼 것 같네요.”

진세연은 옆에서 병윤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을 간단하게 이룩한 것이 병윤이었다. 병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얼마만큼 시간이 걸리는지 이뤄낼 수 있다고 진세연은 믿었다.

“흠. 회장님이 우주로 진출하게 되면 재밌겠네요. 이제 막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의 열풍이 사그라질 터인데. 인간이 우주로의 발걸음을 걸어가면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들은 그 쪽으로 발걸음을 돌릴 것 같네요.”

“순순히 그런 방법들은 내줄 생각은 없습니다.”

“어머. 순순히라는 단어는 다시 말하면 회장님이 원하는 것을 받으면 내줄 생각이 있다는 것이네요.”

병윤은 진세연의 한 마디에 침음을 흘리며 말한다.

“끄응. 비서실장은 저를 너무 알아서 어쩔 수가 없네요.”

“몇 년을 같이 일해 왔으니 이 정도는 기본이 아닐까요?”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비서실장에게 물어보죠. 당신의 목표는 뭐에요?”

진세연은 순간 말문이 막힌다. 자신의 목표라. 이미 자신은 가문의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배경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하고 익히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진세연은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꿈 없는 여자는 재미없나요?”

“전 그 걸 말한 것이 아닙니다. 비서실장.”

‘내 꿈이라.’

진세연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이내 답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대답은 안 할 수 없는 법. 진세연은 재치있게 한 마디 말한다.

“그 걸 찾는 것이 지금 제 목표네요. 어때요?”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뭐. 좋습니다. 사람들 중 그걸 찾는 것으로 즐거움을 얻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지금은 회장님 옆에서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호호호.”

진세연의 말에 병윤은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진지한 얼굴로 진세연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사실 전 당신을 평생 동안 비서실장으로 나둘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에 진세연은 의아한 얼굴로 병윤에게 묻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흐음. 회장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당신은 비서실장으로 일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에요.”

진세연은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짓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럼 회장님은 제 가능성에 대해서 어디까지 보시는 것이죠?”

“당신은 적어도 중국에서 한 번 놀아보는 것이 좋겠네요.”

“끄응.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저를 다시 그 곳으로 보내시는 것이에요?”

진세연의 퉁명한 어조의 하소연에 병윤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명목상은 동협 그룹 중국 지부가 될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신의 회사에요. 어때요? 비서실장의 생각은?”

‘내 회사라...’

병윤은 자신에게 야심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아직은 모르겠네요. 많은 시간 생각해볼 요소가 있어요.”

“저 역시 제 사업을 이 곳에 국한되는 것으로 원치 않습니다.”

“하기야 우주에 진출하겠다고 원대한 포부를 가졌는데.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흐음. 회장님이 현재 가지고 있는 사업으로는 언제든지 세계로 나갈 수 있지 않나요?”

“제 판단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할 뿐입니다.”

진세연은 그 말에 농담조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준비가 너무 과한 것 아니에요? 비유를 하자면 지금도 회장님의 기업 집단은 나뭇 배로 이루어진 세계에 철선으로 보이는데. 회장님은 그 철선을 아예 거대군함으로 만들고 진출하려고 하는 군요.”

“방심이야말로 어떤 상황이든 경시해야할 재앙이죠.”

“너무 신중한 것도 좋지 않은 방법이에요.”

“후후. 제 방식 아시지 않습니까?”

“회장님과 경쟁하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될 법한 발언이에요. 그건.”

진세연의 농담에 병윤은 대답대신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여기서 만들어질 컴퓨터는 아무래도 지금 이 곳 최고 사양의 컴퓨터와 비견될 것 같습니다. 아마 이야기 속 기술수준과 현재의 기술수준의 격차는 시간이 갈 수록 30년에서 40년, 50년, 60년, 100년, 200년 이렇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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