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 / 0633 ----------------------------------------------
[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조금 시간이 지나 존 폰 노이만 교수를 포함한 미국의 연구진들은 한 회의실에 모인다. 그 곳에서 감연은 자료들을 하나씩 하나씩 나눠주었고,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본 일행들은 정리된 자료들을 보면서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존 폰 노이만 교수는 감연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컴퓨터 구도는 메인보드, 램, CPU, VGA,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로 구성되는 것이군?”
존 폰 노이만 교수는 자료를 살펴보면서 각 부품의 용도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았다. 아무래도 미니컴퓨터, 즉 개인용 컴퓨터의 경우는 많이 달랐다. 일단 컴퓨터의 용도가 계산이 주 목적인 만큼 CPU가 중요한 것은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외의 각 보조 장치들이 조금씩은 눈에 띄었다.
“이런 것들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말이지.”
연구원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컴퓨터 본연의 기능은 연산 기능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기능으로 분산되는 컴퓨터는 그들에게 있어서 쓸모없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은 기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감연의 얼굴은 당황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웃으면서 설명을 해준다.
“개인용 컴퓨터입니다. 연구원들만 사용될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말입니다.”
존 폰 노이만 교수는 그 말에 감연을 지그시 바라본다.
“일반인이 쓸 수 있는 컴퓨터라. 그래서 이 부품들이 필요한 것인가?”
감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존 폰 노이만 교수의 질문에 답한다.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일단 형태는 이렇게 완성되었으니 새로 만드는 것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존 폰 노이만 교수는 그 말에 으음 생각을 하더니 이내 감연에게 말한다.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라. 그 것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물론 컴퓨터를 사용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 일 것입니다. 키보드나 마우스로 대표되는 입력 장치, 모니터나 사운드박스로 대표되는 출력 장치,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부품들로 구성된 본체. 그러나 이 기기들을 효율적으로 돌릴 운영체제는 꼭 필요합니다.”
“흠. 이미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완성이 되었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우리가 할 것은...”
“예. GUI가 가장 중요한 핵심일 것입니다.”
GUI는 Graphical User Interface의 약자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히 컴퓨터를 쉽게 동작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단순한 기계어나 어셈블리는 전문가가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나와 연구진들은 굳이 그런 것을 개발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일반인이 쓸 것이니 어쩔 수 없겠군.”
그 말에 연구진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얼굴을 내비친다. 기계어나 어셈블리어나 연구진들에게 괴롭기는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연구방향은 정해진 것 같았다. GUI가 적용된 컴퓨터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만 오늘의 경우는 연구진들의 짐 정리 및 생활부분, 그리고 연구시설의 사용 외에 주의사항 기타 등등 할 일들이 많았기에 여기서 연구를 끝마쳤다. 다만 존 폰 노이만 교수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자료들을 꼭 가지고 퇴실했다. 그만큼 이 자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제 2차 미소공위의 경우는 지지부진했다. 한반도의 격렬한 좌우대립과 공위 참가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에서 반발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되자 미소공위에 참가하게 된 쉬티코프 중장은 소련군정의 사령관인 치스차코프를 만났다.
“요즘 남한에 수상한 행동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쉬티코프 동무.”
“계속 말을 해보게.”
“예. 9월 5일부터 문경에 남한 과학을 목적으로 한 대학이 완성되었는데. 각 연구시설들과 기자재들이 그 쪽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 말에 쉬티코프 중장은 생각을 하더니 차스차코프 사령관에게 말한다.
“원래는 종합의학대학을 건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쪽 인원들이 간 것이 아닌가?”
“그 것만 있으면 염려되는 수준으로 끝나는데. 의사들이 아닌 사람들이 그 쪽으로 가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치스차코프 사령관의 말에 쉬티코프 중장은 으음 하고는 생각을 거듭한다. 요즘따라 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여기저기서 충돌이 일어났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내전을 벌이고 있고, 유럽에서는 그리스에서 내전이 벌어졌다. 아직 동아시아의 한반도는 좌우간 격렬한 대립이 있고,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쉬티코프 중장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본국 소련이었다.
“굳이 미국 본토에서 연구하면 될 것을 인재들을 그 쪽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로...”
“예. 아무래도 중요한 연구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쉬티코프 중장은 치스차코프 사령관의 물음에 생각을 하더니 대답한다.
“무기라면 미국 본토 쪽으로 합동으로 연구했겠지. 바로 눈앞에 우리 본국 소련이 있는데 간 크게 무기 관련 연구를 합동으로 진행될 리는 없을 것이고, 아무래도 유출은 삼가되 유출이 되어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연구를 하는 것 같군.”
“으음. 그게 무슨 연구일 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좋겠어.”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쉬티코프 중장에게 말한다.
“김일성을 불러 그 일을 맡기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것이 좋겠지. 한 번 그 쪽으로 간첩을 파견하여 알아봐.”
“예. 쉬티코프 동무.”
그렇게 쉬티코프 중장이 치스차코프 사령관에게 지시를 내리고 제 갈 길 가자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전화를 들어서 어딘가로 연락을 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난 김일성 동무이오. 무슨 일이오?-
김일성의 말투는 명백히 하대의 말투였다. 그러나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이해했다. 아무래도 김일성의 위치상 아랫사람들과 연락하는 일이 많을테니 말이다.
“아. 반갑소. 김일성 동무. 나 치스차코프 사령관이야.”
-아.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김일성은 자신이 통화하는 상대가 치스차코프 사령관임을 알게되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투를 바꾼다.
“북조선에서 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주었네.”
-할 일이라. 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 남한에 새로운 대학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말이야.”
-예. 익히 들어 알고는 있습니다. 요즘 과학기술관련 인재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그 사람들을 빼돌려서 골탕을 먹였습니다.-
“지금 김일성 동무의 업적을 치하하는 자리가 아니야.”
-아.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그럼 무슨 일을 하면 좋겠습니까?-
“왠지 그 쪽이 수상해서 말이지. 한 번 그쪽으로 간첩을 파견할 수 있겠나?”
-단순히 정보만을 빼돌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무언가 파괴나 방해 공작까지 포함해서 입니까?-
“파괴나 방해 공작까지 행한다면 그 더듬이 긴 녀석들이 눈치를 챌 가능성이 높지. 정보만을 빼돌리게. 미국의 주요 과학자들이 그 쪽으로 갔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자네만 믿고 있겠네. 김일성 동무.”
그렇게 치스차코프 사령관과 김일성 간의 연락은 끊어졌다.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뭔가 기대되는 얼굴로 싱긋 웃으며 생각한다.
‘과연 무엇을 숨기는지 상당히 궁금하군.’
한편, 방금 전 치스차코프 사령관과 통화를 한 김일성은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살포시 제 자리로 내려놓고는 의자에 등을 기댄다. 자신의 앞에는 자신의 친동생인 김영주가 서 있었다.
“전화에서 뭐라고 합니까? 형님?”
김일성은 그 말에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김영주에게 말한다.
“일이 들어왔어.”
“일이라면? 그 소련군정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그 쪽에서 무언가 수상한 것을 발견한 것 같군.”
“수상한 곳은 남한 어디서든 수상하지 않겠습니까?”
김일성은 그 말에 역정을 내며 김영주에게 말들을 쏟아붓는다.
“이 바보야! 소련에서 수상하다고 여기는 것이 그런 작은 곳들이겠나? 거기는 쭉정이야. 쭉정이라고. 소련에서 수상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득실이 큰 곳을 의미한다. 눈치를 좀 채라.”
김영주는 그 말에 헤헤 웃으면서 김일성에게 말한다.
“그냥 농담을 해본 것뿐입니다. 그냥 형님 기분 좀 풀리게...”
“쯧. 그 재미없는 농담을 하다가는 내 동생이라도 봐주지 않을 거다. 하여튼 남한 문경에 새로 지어진 대학에 간첩을 보내서 정보를 캐라고 하더군.”
“그 쪽이라면 동협 그룹의 영역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그래. 나에게 엿을 매번 먹였던 녀석들이 있는 곳이지.”
“으음. 그 곳이라면 만만치 않은 구석인데. 걱정스럽습니다.”
김일성은 김영주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 쪽이라도 이 쪽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할 리는 없다. 그래서 더더욱 기민하고, 영리한 녀석이 필요하다.”
“으음. 한 번 제가 적절한 인물들을 추려서 형님께 보내겠습니다.”
김일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김영주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저 쪽의 수준에 맞는 인간들을 찾아라. 일반 간첩으로 하다간 저 쪽에 금방 들키고 잡혀나갈 것이야.”
“힘들지만 해봐야겠습니다.”
그렇게 김일성과 김영주는 문경의 그 대학에 첩자를 보내는 일로 고심했다.
1947년 9월 10일, 재생치료병원은 새로 지어진 문경의 대학으로 이전을 완료했다. 기존의 재생치료병원 건물은 제 기능을 유지하지만 병재를 비롯한 알맹이 의사들이 이 쪽으로 빠졌다.
재생치료병원의 사무소장 시렌은 지금 자신의 앞에 선 병재를 바라본다.
“자네도 이제 위치가 위치인 만큼 교수직으로 이수를 했으면 좋겠군.”
“제 동생이 세운 대학이라서 왠지 짜고 치는 포커 같군요.”
그 말에 시렌은 피식 웃으며 병재에게 말한다.
“대학 간판이 중요한가? 자네 실력은 이미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마 타 대학이나 대형 병원이라면 자네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지. 자네의 실력으로는 이미 개원 정도는 충분하지 않은가?”
“휴우. 맞는 말씀입니다. 시렌은 여기서 계속 근무를 하는 것입니까?”
시렌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병재에게 말한다.
“어차피 내 인생은 자네를 보조하는 것으로 걸었어.”
“으음. 그건...”
“하하. 남자의 관심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가?”
“시렌의 능력은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안 좋은 발언입니다.”
“흥. 싱겁기는. 그래도 진심이기는 해. 뭐 사정상 다투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해왔지 않은가? 지금도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군.”
“하하. 그렇게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시렌은 그 말에 밝은 미소를 짓고는 곧 자료들을 살피면서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이 대학에 전염병 연구소, 희귀병 연구소, 또 유전자 연구소의 경우는 꽤나 머리가 복잡한 것이 많아. 이번에 소아마비 예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고 들었네. 그런데 소아마비는 치료법에 대해서 확립되지 않았나 싶은데...”
“예방과 치료는 다른 법입니다.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안 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거야 맞는 말이기는 하지. 그런데 소아마비 예방에 대해서 자네가 엉뚱한 사람에게 위임을 했다고 들었네.”
“아. 조너스 소크 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그 녀석이 이 쪽에 들어온 신입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그런 중요한 연구를 그에게 일임하는 것은 너무 중책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제 안목은 그가 훌륭히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너선 소크는 미국 피츠버그의과대학 연구소에 있었던 의사였고, 개인적으로 소아마비 관련 연구들을 모으고 있었다. 지금은 병재의 소아마비 치료법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배우고 있다고 들어서 시렌을 통해서 그 인물을 소아마비 예방 연구에 끼어들게 만들었다.
병재가 조너선 소크에 대해서 그렇게 평가를 하자 시렌은 흠흠 거리면서 대답을 한다.
“그렇게 말을 하니 어쩔 수가 없군. 소아마비야 그렇게 되었다고 치지. 그런데 암의 연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개인적으로 치료를 했던 제 진료기록서 들과 제가 알고 있는 이론들로 각종 암에 대한 보편적인 치료법을 확립할 것입니다.”
암은 이른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걸리면 죽는다는 것이 암이었다. 물론 그 암을 이겨내고 건강히 지내는 사람의 경우는 있기는 하지만 그건 소수에 해당되었다.
“암의 치료법이라. 으음. 암 말기 환자 정도는 자네의 손으로 간단히 치료한다고 하여도 말이지. 하기야 다른 의사들이 이 말을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말이야.”
“제 목적이 저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것이 왠지 빨갱이스럽군.”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시렌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 놈의 레드 콤플렉스에 걸렸습니까? 하기야 저도 빨갱이는 싫어합니다만.”
“그래도 남한의 사정상 복잡한 질병보다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는 것이 급우선이라고 생각을 한다만.”
“물론 그 쪽의 경우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작년에 콜레라 때문에 얼마만큼 개고생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콜레라라는 단어에 시렌의 얼굴은 자동적으로 구겨진다.
“그 놈의 콜레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아는가? 휴우.”
작년의 콜레라 사태는 다행히 발 빠른 조치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지만 후유증도 존재를 했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콜레라를 비롯한 수질전염병을 원천적으로 막아야한다는 공감대가 존재한 것이다.
그 때문에 동협 관수회사의 전국적인 진출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었다. 위생적으로 깨끗해야 수질전염병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전통 선진국에 비해서 한국의 위생수준은 한참 모자라지만 빠르게 개선이 되고 있었다.
“그 쪽 부분은 예방백신들의 대대적인 생산과 또 수입으로 사람들에게 접종을 하고 있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그거야 그렇지만. 그나저나 요양원은 그대로 그 쪽에 놔두는 건가?”
“아마 그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요양원은 사람들에게 경원시 되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재생치료병원의 부속건물이었다. 보통은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치료법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가자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환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하기야 재생치료병원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하겠지.”
병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대학에 있는 의사들은 제 할 일들을 다 한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김일성이 나왔네요. 그리고 간첩은 누가 될 것인가? 아마 예상하는 이가 있지만 저는 전혀 새로운 인물로 배정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