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20화 (42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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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7년 11월 18일, 중개상 박철건은 지금 이 비밀스러운 방 안에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병윤이 앉아 있었고, 병윤은 박철건이 말한 소식에 싱긋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걸렸군요.”

“예. 그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물건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물건 걱정은 안 합니다. 저에게 물건을 배정해주는 사람이 회장님이지 않습니까? 저들도 제가 회장님의 지원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호오? 그건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거야 회장님에게 물건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동협 그룹의 어느 간부에게 물건을 받는다고 소문을 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진실을 거짓으로 뒤덮는 방식이군요. 만족스럽습니다.”

“회장님이 저를 지원해주는 동안은 확실히 저도 회장님께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큭큭 웃으면서 박철건에게 말한다.

“만약 지원을 끊으면 배신을 때리겠다는 말이군요.”

그 말에 박철건은 오히려 어깨를 으쓱거리며 농담조로 한 마디 말한다.

“그게 밀상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 설득력이 있군요. 잘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는 저를 먼저 배신하지 않는 이상 상대방을 배신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회장님을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아부는 그만하고, 일단 걸려들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 쪽에게는 미화로 지불하라고 했습니까?”

“일본에 파먹을 자원 같은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아. 그렇군요. 확실히 미화로 받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한 박철건을 보면서 병윤은 슬며시 책상 위에 떡하니 서류들을 올리며 그 것들을 박철건에게 넘겨준다. 박철건은 뭔가 해서 서류들을 읽어보는데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박철건은 목소리가 벌벌 떨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저 회장님. 이건...”

“오랜 시간동안 제 부탁을 잘 들어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 서류에는 선박 소유 증명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들이 있었다. 서류에 나와 있는 선박은 10만 톤급 상선이었다. 병윤은 거기에 한 가지 더 말한다.

“그리고 선박 가격에 비해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신형 양산 헬기 100대를 건네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한 번 장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병윤의 말에 박철건은 상당히 감격스러운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병윤의 옆에서 그의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한 지난 몇 년 간 많이 해먹기도 했지만 이렇게 통 크게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으음. 이 정도의 규모는 아무래도 상사를 하나 만들 정도가 아닙니까?”

“가끔 밀상의 일을 하면서 정식적인 무역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까?”

박철건은 너무 많이 받아서 충격을 먹었는지 묵묵부답이었다. 병윤은 박철건을 향해 한 가지 더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이번 일을 잘만 처리하면 미화 10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하하. 당연히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미화 100만 달러는 넣어두십시오. 너무 많이 받는 것은 배탈이 나지 않겠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한 마디 말한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닙니까?”

“사람의 양심상 이 정도 먹었으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일단 일의 진행에 따라 몫을 분배하는 것은 잘 아시겠지요?”

“어차피 그 몫 때문에 이 일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익을 쫓는 상인입니다. 그래서 회장님 곁에 계속 있는 편이지요.”

“하하. 아부도 참 수준급입니다.”

“이건 아부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솔직히 전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몫과 보너스를 통 크게 주는 사람은 없거든요. 아마 동료 밀상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제 멱살을 잡고, 제발 그 사람에게 소개시켜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어깨를 으쓱 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1947년 11월 20일 새벽, 시모노세키의 어느 한 부두에 커다란 배가 입적해있었다. 그 주위에는 양복을 입은 이가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 배에 한 사람이 그 안으로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바로 이 일을 총책임자로 내정된 사이토 이카무라였다. 제안을 냈던 마츠나가 요헤이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아시다시피 그의 직책은 어르신을 호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일에는 사이토 이카무라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옆에는 아들 사이토 히데츠구가 부두에 입적한 거대한 배를 보고 감탄조로 한 마디 말한다.

“거래의 상대 세력이 꽤나 큽니다.”

“간의 크기만큼 세력의 크기도 크겠지. 국가 간에 대량으로 밀수하는 세력이다. 이 거대한 배를 가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어르신의 전성기시절에는 이 배를 여러 척 가지고 다녔겠습니다.”

“한 10척 정도는 가지고 조선과 일본 간에 오고 갔지.”

“지금이야 완벽히 몰락한 인간이 아닙니까?”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한 소리 말한다.

“시끄럽다. 어르신이라면 다시 일어설 것이다. 네가 어르신이 얼마나 초라한 곳에서 시작해 위대한 곳까지 다시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 같구나.”

“그래봤자 지금 이 배 한 척을 부러워하는 지경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 것도 어차피 잠시동안의 일이야. 일단 상대방을 만나서 계약을 해야겠지.”

두 사람은 경호원들을 이끌고 배 안 복도를 통해 목적지를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방문 앞에 도착하자 이학준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두 분.”

이학준의 정중한 인사에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에게 한 마디 묻는다.

“선주는 지금 방 안에 있는가?”

“예. 지금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흠흠 거리고는 곧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이토 히데츠구도 경박한 웃음을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가는데, 두 사람 방 안의 풍경을 보니 속으로 조금 놀란다. 그러나 사이토 히데츠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한 마디 말한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나리킨(일본에서의 졸부를 지칭)이군요.”

“그 소리는 속으로 해라. 제발.”

사이토 이카무라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쇼파에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박철건을 발견했다. 박철건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일어서서 인사를 한다.

“아. 저는 이 배의 선주인 박철건이라고 합니다. 당신들은 아무래도 제가 기다리는 손님들이군요.”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철건에게 말한다.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 원하던 물건을 구해준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소문이라. 알겠습니다. 그럼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그 말에 사이토 이카무라와 사이토 히데츠구 부자는 박철건의 맞은편에 위치한 쇼파 위에 살포시 앉았다. 박철건 역시 자리에 앉고는 사이토 이카무라를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이번에 연락을 들었습니다. 그 신형 헬기를 주문했다고 말입니다.”

“예. 그렇게 주문했습니다. 물건은 있습니까?”

박철건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대답한다.

“당연히 있습니다. 중개상이라는 저의 별명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흠흠 거리며 이내 마음을 가다듬더니 박철건을 향해 한 마디 말한다.

“사실 전 그 물건들을 구하고 싶어서 여기에 찾아왔습니다. 총 몇 대 있습니까?”

“지금은 총 10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능은 확실합니까?”

“시험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그럴 필요야 없지요. 저번에 북한에서의 거래 때에는 직접 확인시켜주고 거래를 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확실한 물건을 판매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밀상이라서 그렇지. 불량품은 팔지 않습니다. 이건 제 신조와 같은 말이지요.”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렇게 말하는 박철건을 향해 믿음직스럽다는 인상을 받고는 이내 그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럼 가격은 얼마정도 입니까?”

그 말에 박철건은 대답대신 서류를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넘겨준다. 사이토 이카무라는 서류의 내용을 읽다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이토 이카무라는 박철건에게 한 마디 말한다.

“대당 20만 달러라...”

“미국의 헬기 회사들은 대당 100만 달러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20만 달러는 아주 싸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으음. 그래도 그렇지. 이 가격은...”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가격입니다.”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박철건을 쳐다보며 생각을 한다.

‘돈독이 올랐군. 이 미친 자식.’

“흠흠.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겠군요.”

그렇게 말한 사이토 이카무라는 자신의 아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사이토 히데츠구는 자신이 가지고 온 아타셰케이스를 열어 박철건에게 보여준다. 박철건은 가방 속의 돈들을 만지다가 이내 얼굴이 자동적으로 굳어진다. 박철건은 후후후 웃으면서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손님. 장난이 너무 심하신 것 같군요.”

“예에?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설픈 미화로 저를 속일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사이토 히데츠구가 박철건에게 한 마디 소리친다.

“속이다니. 그 무슨 망발입니까?”

“흥. 그렇게 나오시면 어쩔 수 없군요.”

박철건은 이내 박수를 짝짝 쳤고, 그러자 방 안에는 소총을 가진 인원들이 우루루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사이토 이카무라와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소총을 겨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침을 꿀꺽 삼킨다.

“왜 제가 속이냐 마냐는 말이 궁금했지요? 이런 어설픈 위폐로 저를 속일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속으로 ‘제길...’이라고 한 마디 말한다. 그러나 사이토 히데츠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목소리를 드높인다.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증거가.”

“쯧. 그렇게 나오시면 어쩔 수 없군요. 학준아.”

이학준은 그 말에 바로 반응을 하더니 박철건에게 대답한다.

“예. 사장님.”

“미화 위폐 감지기를 가져와라.”

“옙!”

이학준은 어디론가 쏜살같이 방 밖으로 사라진다. 박철건은 사이토 이카무라와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흐흐 웃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이거 너무 실망이군요. 저희들을 평상시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에 뻔히 보입니다.”

사이토 히데츠구는 오히려 능글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 오히려 저희들을 겁박해서 유리한 거래 조건을 만들지 않습니까? 이런 하찮은 수에 저희가 넘어갈 것 같습니까?”

“흥. 저는 밀상 중에서도 정직하다고 손에 꼽힙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예의를 안 지키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모습을 보니까 예의가 없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인 것 같습니다.”

“뭐 그거야 두고보면 알겠지요.”

그 때, 이학준이 무언가를 가지고 박철건에게 건넨다. 박철건은 이학준이 가져온 물건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설명해준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건 미국 재무부에서 위폐를 감지하기 위해 만든 위폐 감지기입니다. 어설픈 위폐정도는 확실히 잡아내는 물건입니다. 저 역시 이 걸 입수하기 위해 꽤나 노력을 많이 한 편입니다.”

두 사람은 그 설명에 끄응 침음을 흘렸다. 박철건은 아타셰케이스 안에 있는 미화 한 장을 감지기 위에 올린다. 그러자 감지기는 빨간 빛들을 내며 삐삐 소리를 낸다. 박철건은 싱긋 웃으면서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말한다.

“어떻습니까? 감지기가 제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정상적인 미화 1달러를 감지해보지요.”

이학준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박철건에게 미화 1달러를 건네주었고, 박철건은 그 걸 감지기 위에 올리자 이번에는 감지기의 반응이 없었다.

“이것으로 감지기의 성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이토 히데츠구는 아타셰케이스 안에 있는 미화들이 위폐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밝히는 박철건의 모습에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참 위험한 걸. 만만치 않아. 어쩔 수가 없군.’

사이토 히데츠구는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시선을 준다. 그러자 사이토 이카무라는 끄응 침음을 흘리더니 이내 자신이 가진 아타셰케이스를 열어 박철건에게 넘긴다. 박철건은 그 안의 미화들을 보자 별 감흥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번에는 진짜가 맞군요. 하지만 감히 저를 시험하고 속이려는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미화 25만 달러로 올리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괜히 위폐를 건네주다가 더더욱 물건을 비싸게 살 것 같았다. 사이토 이카무라는 절박한 얼굴로 박철건에게 말한다.

“아까 전처럼 20만 달러 안 되겠습니까?”

“흥 그러기에. 왜 저를 속일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누구 엿 먹으라고 말입니다. 평상시에 일본인들이 저를 포함한 조선인들을 어떻게 바보 취급했는지 잘 알겠습니다. 온갖 예의를 차리고 거래를 해봤자 대접은 이거밖에 되지 않는 군요.”

박철건의 비아냥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히데츠구는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면서 박철건에게 한 마디 말한다.

“하하 장난입니다. 장난. 제가 조금 철이 없어서 이런 장난을 많이 치는 편입니다. 그래도 전 이번에 밀상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 말로 그냥 지나치기에는 제 자존심이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하하. 오히려 중개상께서 아까 능력을 증명하면서 자존심을 바로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번 일로 중개상이 얼마만큼 치밀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한 수 배웠습니다. 이번 일로 자존심이 상했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박철건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좋습니다. 조건을 조금 바꾸지요. 대당 25만 달러는 동일합니다. 다만 10대 모두 산다면 대당 20만 달러에 쳐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순간 사이토 이카무라는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박철건에게 한 마디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가진 돈이 100만 달러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빌어먹게도 말이다.

============================ 작품 후기 ============================

박철건 : 선심 쓰는 척 폭탄 10대를 200만 달러에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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