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22화 (42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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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이종형은 사이토 히데츠구의 제안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느 것이 이익인지 아니면 안전한지 판단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이종형의 모습에 니시무라 유헤이는 역겨웠지만 참았다. 이종형은 눈빛을 빛내더니 이내 사이토 히데츠구를 바라보면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동협 그룹을 깎아내려고 합니까?”

사이토 히데츠구는 그 물음에 속으로 ‘이것 봐라.’라고 말하고는 오히려 웃으며 대답한다.

“뭐 굳이 이유를 들어야 되겠나? 어차피 이 일을 저지른다는 것 자체가 동협 그룹을 타격 입히겠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그 것도 그렇지만. 동협 그룹이 그리 만만한 기업 집단은 아닙니다.”

“흥. 그런 기업일수록 비밀은 많고 뒤가 구린 여지가 충분하지. 그런 부분을 파헤치는 것이 언론이 아닌가?”

이종형은 그 말에 오히려 속으로 비웃는다. 자신은 언론인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선동가였다. 할 일 없는 청년들을 분노의 물결로 선동하여 돈이나 세력을 뜯어내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만약 이 일을 한다면 당신들이 저를 보호해줄 수 있습니까?”

순간 니시무라 유헤이가 이종형에게 소리친다.

“자네. 무슨 이야기를 그 따위로 하는가?”

이종형은 그 말에 오히려 웃으며 니시무라 유헤이에게 말한다.

“이건 제 안전과도 관계있는 이야기입니다. 쓰다가 버릴 수단으로 저를 꼽았다면 전 안 하고도 남겠습니다. 차라리 그게 이득입니다.”

니시무라 유헤이는 그 말에 끄응 침음을 흘린다. 이종형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이토 히데츠구, 니시무라 유헤이는 이종형을 한 번 쓰다 버릴 말로 취급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종형은 그걸 찌른 것이다. 그러나 사이토 히데츠구는 이종형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거절하고 싶다면 거절하게. 다만 뒷 일은...”

“뒷일 보장 못하는 것은 그 일을 받아들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종형의 말에 사이토 히데츠구는 ‘그 정도란 말인가?’라고 속으로 어려워했다. 그러나 이종형을 포섭하지 못하면 자신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좋아. 어떻게든 너를 보호해주지.”

이종형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말한다.

“좋습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증서를 받아야겠습니다.”

“철저하군.”

“철저해야 이 혼란한 시기에 살아남지요.”

사이토 히데츠구는 그 말에 웃으면서 이종형에게 말한다.

“그래. 좋아. 써주지. 대신 역할은 제대로 치러야한다.”

“흐흐. 뒤가 보장되어 있는데 일 저지르는 거야 순식간입니다.”

사이토 히데츠구는 계약서 두 장 중 한 장을 이종형에게 건넸고, 이종형은 그 한 장에 인주에 자신의 엄지 지문을 묻혀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사이토 히데츠구 역시 자신의 지문을 계약서에 묻힌다. 사이토 히데츠구는 이제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좋아. 이렇게 일을 같이 하게 된 이상. 정보들을 말해주지.”

이종형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며 사이토 히데츠구를 바라보았고, 사이토 히데츠구는 웃으며 이종형에게 슬슬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까 밀상 이야기를 했지?”

“예. 그렇습니다.”

“중개상 박철건에 대해서 알기는 하는가?”

“중개상? 그 인간은 도대체 왜?”

“그 말을 들으니 그 중개상 박철건에 대해서 알고는 있군.”

“예. 그런데 그는 동협 그룹의 물건을 취급하는 전문 밀상이라. 자세한 정보는 알 길이 없습니다.”

“호오. 알기는 하는군. 그 말이 맞아.”

“그런데 굳이 그를 언급하시는 이유가?”

“바로 그 거 때문이지. 밀상하면 자네는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거야. 밀수... 아.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거야. 밀상들은 같은 이들끼리 모여서 공유한다고 하지. 그런데 그 밀상들 중에서 조선에 지탄받았던 이들이 있을 거야. 내 말 틀린가?”

“그거야 그렇지만. 그 밀상하고 박철건하고 엮는 것입니까?”

“그렇지. 어때? 내 생각이 맞아 떨어지지 않겠나?”

이종형은 그 말에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단호하게 한 마디 말한다.

“그건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밀상을 지원했다는 것은 둘째 치고, 일단 그들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식량들을 대폭 수입하여 구호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모순입니다.”

사이토 히데츠구는 그 말에 얼굴을 구기고 말았다.

“끄응. 그냥 식량을 밀수출하는 밀상하고 관계가 있다는 말은...”

“아니 그게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주장을 펼치면 이런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사람들에게 구호를 하냐고 말입니다. 즉 제가 사이토 상이 말한 대로 주장을 펼쳐보았자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곤란한 걸...”

사이토 히데츠구는 끄응 침음을 흘린다. 결국 다른 안건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이토 히데츠구는 휴우 한숨을 내뱉으며 이종형에게 이렇게 말한다.

“쩝. 그게 안 되면 다르게 들어가야지.”

“다르게라면?”

“중개상 박철건이 나라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동협 그룹에서 그를 버릴 것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지. 그래도 그의 배후에 동협 그룹이 있다고 엮으면 어찌 되지 않겠는가?”

“증거는 있습니까?”

“증거야 많지. 우리들에게 동협 그룹의 물건들을 판매한 계약서도 가지고 왔지. 그 것이면 되지 않겠나?”

“그런데 단순히 동협 그룹에서 물건을 사서 판매하는 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이토 히데츠구는 그 말에 끄응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의혹을 제기하면 재밌지는 않겠나?”

“그들이 가만히 있을거라고 봅니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불을 꺼드리는 것으로 시간을 소모하겠지.”

이종형은 그 말에 연신 불안하다는 얼굴이었다.

“전 두 사람을 믿고, 일을 저지르겠습니다. 결과가 어찌되든 전 할 일만 딱딱 해놓겠습니다.”

사이토 히데츠구와 니시무라 유헤이는 그 말에 끄응 침음을 흘릴 뿐이다. 하기야 자신들이 제시한 방법이 이종형의 말에 무력화되는 꼴을 지켜봐야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이의를 제기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니시무라 유헤이는 사이토 히데츠구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이 실패할 가능성이 넘칩니다.”

“어쩔 수 없지. 다만 실패해도 우리 측에게는 손해가 없으니 말이야.”

“성공한다면 대박이겠죠. 실패할 가능성은 무지 많지만.”

니시무라 유헤이의 말투 속에서는 조롱이 나오는 것 같아서 사이토 히데츠구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 이 모든 대화내용을 듣고 있었던 감청요원들이 수화로 큰일 났다고 얼른 전하라고 보고를 내린다.

같은 시각, 저택에서 한껏 쉬고 있었던 병윤의 옆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고경열, 고희수 남매였다. 고경열은 얼굴을 굳힌 채로 병윤에게 말한다.

“저 큰일 났습니다.”

“큰일?”

고경열은 감청한 대화내용을 서류로 병윤에게 건네주고, 병윤은 그 서류의 내용을 보다가 이내 흥미롭다는 얼굴을 짓는다.

“꽤 재밌네요. 적들도 어느 정도 저에 대해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는군요.”

“하지만 이렇게 흘러가다가는 회장님께 엄청난 타격을 입지 않습니까?”

“뭐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말한 병윤은 자신 앞에 있는 전화기를 들더니 이내 어디론가 전화연결을 시도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누구십니까?-

“중개상 박철건씨입니까? 저 동협 그룹 회장 병윤입니다.”

-아. 회장님. 이 시간에 어떤 전화입니까?-

“지금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것은 상황 2가 터져서 그렇습니다.”

-예? 상황 2라면...-

“아무래도 낚았던 무리들 중 하나가 우리를 이렇게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큰 일 아니겠습니까?-

“상황 2에 대한 대처 방법은 잘 알고 있겠죠?”

-염려 마십시오. 어차피 처음에 계약할 때, 그걸 염두를 해두고 계약하지 않았습니까? 저 의리 있는 남자 박철건입니다.-

“하하. 그렇게 말한다면 괜찮겠습니다. 일단 당신에게 쏟아지는 폭풍은 거세지다가 이내 점점 멎을 것입니다. 그 대신 당신에게 화끈한 보상을 해드리죠.-

-저번에 화끈하게 보상해주지 않았습니까? 일단 이 사실이 터지면 해외에 몸을 피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잘 처리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 것으로 박철건과 연락을 끊었고, 고경열은 그런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회장님. 그건...”

“아. 이런 상황이 올 거 같아서 미리 대비책들을 짜놓았습니다.”

“으음. 이런 일을 예지하고 있었습니까?”

“문제될 것은 이미 알고 있어서. 어떻게 대처할지 시간 날 때 마다 궁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이는 군요.”

“그런데 폭풍이 거세지다가 잠잠해진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경열의 말에 병윤은 흐흐 웃으면서 고경열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상대방이 폭탄을 터뜨린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이상적일 것 같습니까?”

“그거야 상대방이 폭탄을 못 터뜨리게 막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상대방이 폭탄을 못 던지게 하면 됩니다.”

“그 말은?”

“예.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고경열은 그 말에 오히려 아리송하다는 얼굴을 짓는다. 병윤은 그런 고경열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뭐 지켜보면 알 것입니다.”

1947년 11월 25일, 이종형이 운영하고 있던 대동신문에서 한 가지 사실들이 유포되고 있었다. 그건 동협 그룹이 밀상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P군이라는 밀상과 동협 그룹과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로 P군이 동협 그룹의 물건을 빼돌리는 데 동협 그룹의 관계자가 묵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역시 찌라시라고 말을 했는데. 사실 대동신문 자체가 이종형이 친일 한시를 지으면 그걸 여운형이 만들어냈다고 내용을 덧붙이는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 지식이 대동신문을 보고 극우 깡패들만이 보는 종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자극적인 것이 사실이었기에 다른 언론사들에서 이 내용에 대해 퍼갔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취재한 것처럼 내용을 떡하니 내놓았고, 그 때문인지 신문에는 동협 그룹의 밀상 지원에 대한 내용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 신문의 내용에 대해 병윤은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진세연 비서실장은 그런 병윤의 여유로운 모습에 끄응 침음을 흘리면서 한 마디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 것입니까?”

“후후. 적이 알아서 우리 제품을 홍보하지 않습니까?”

“아니 장난을 치시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동협 그룹의 이름에 먹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일단 아니라고 대응하는 것이...”

진세연의 말에 병윤은 웃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비서실장. 너무 무르군요. 과연 반박한다고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그 말씀은...”

“이런 걸 스페인에서는 마타도어, 미국에서는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전략에 그대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것이 진짜 말려드는 이유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무대응 한다고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뭐 조치는 이미 취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자 한 번 내용을 바꿔보죠. 동협 그룹이 밀상을 지원했다는 것이 아니라 밀상이 너무 물건을 원해서 어떻게든 입수하여 판매했다고 내용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한 말장난입니다. 그러나...”

“예. 의미가 바뀌는 것입니다. 저들은 그런 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다시 말해서 우리 제품들에 대한 홍보가 되는 것입니다. 저들은 아마 우리나라의 중요한 제품을 유출해 나간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건 오히려 다시 말하면 우리 제품이 다른 국가들에 대해 그만큼 인정을 많이 받는다고 말을 바꿀 수가 있지요. 그렇게 된다면...”

진세연은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병윤은 진세연을 보면서 고경열에게 했던 것처럼 한 마디 말해준다.

“상대방이 폭탄을 던지려고 한다면 진세연 비서실장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거야 상대방이 폭탄을 못 던지게 막는 것이...”

“후후. 저라면 상대방이 폭탄을 던진 것을 받아 터뜨려야 할 곳에 넘길 것입니다. 그래야 이득입니다.”

“회장님은 도대체 이런 것도 예상을 했다는 것입니까?”

“네거티브 전략은 그대로 받아넘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중국에서의 경험을 잊으셨습니까?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말에 진세연은 무언가 깨닫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한 마디 말한다.

“으음. 알겠습니다. 제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폭풍은 조금만 넘기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갈 때면 그대로 반격하면 될 일이죠. 오히려 상대방이 이런 공격을 해서 고맙군요.”

“......”

진세연은 그런 것을 보고, 못 말리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병윤은 진세연의 그런 얼굴에 피식 웃더니 이내 신문 내용을 파악한다.

그리고 병윤의 말한 대로 상황이 돌아갔다. 바로 병윤에게 사전에 연락을 받은 연형칠이 병윤이 말한 대로 오히려 홍보의 장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즉 동협 그룹이 밀상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보다는 밀상이 얼마나 동협 그룹의 물품들을 갖고 싶었다면 이런 일까지 저질렀나? 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대중들의 시선은 반전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흑색선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관점을 바꾸는 일입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내용을 긍정적인 내용으로 홍보하는 일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배우 : 백윤식)가 "끝에 단어 세 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말이죠." 이런 말을 남겼죠. 즉 말의 단어와 문장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얼마만큼 사람을 현혹시키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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